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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이네 가는 길을 우리는 백 계단이라고 불렀습니다. 정확하게는 오십팔 계단이었지만요. 뛰어오르면 일 분에 갈 수 있지만, 가위바위보 하며 올라가면 삽심 분도 넘게 걸렸습니다. 아파트 지으면 천 계단 되겠다. 가위바위보 하면 세 시간 걸리겠다. 우리는 그러면서 쌀쌀 웃었지만, 백 계단 아닌 계단을 가위바위보로 올라가는 건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본문 중에서 |
정미네 할머니는 우리 집보다 더 오래 동네를 지킨 분이었습니다. 아흔이 넘었지만 온갖 옛일을 생생하게 기억했습니다. 곱고 예쁘던 처녀 시절, 우리집 지어지는 모습도 지켜보았다지요. 엄마 어릴 때 얼굴 그대로라며 할머니는 가끔 내 머리를 쓸어 주기도 했습니다.
---본문 중에서 |
이 책은 사직동에서 삼십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그림 그리는 이와, 글을 쓰는 그의 친구가 뜻을 모아 사직동과 그것에 사는 이들의 삶을 그림책으로 담아낸 것이다. 아직 재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시점에서 허구의 요소가 첨가되었지만, 등장하는 인물과 장소는 대부분 실제로 존재한다.
다큐멘터리적인 사실감을 살리기 위하여, 그림은 실제 사직동 풍경과 그것에 사는 사람들을 사진 촬영한 뒤에 연필과 수채화로 리터치 작업을 하였다. 사진이 주는 객관성과 연필선과 수채화의 섬세함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주인공의 일인칭 서술로 이루어진 독백체의 글은 내밀하면서도 호소력이 짙다. 절제된 감정으로 사라지는 시절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목소리는 낮지만 울림은 큰 그림책이다. 주제의식으로 보나, 소재로 보나 표현기법으로 보나, 우리 그림책사에 남을 귀한 작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