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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변두리 동네, 반 지하층 빈 집에 일곱 살 명희가 혼자 있습니다. 아빠는 밤이 이슥해야 술 냄새를 풍기며 들어올 테고 엄마는 돈을 벌어 오겠다며 집을 나간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방에서 명희는 엄마 스웨터를 끌어안고, 작년 생일날 엄마가 사준 그림책을 보며 두려움과 외로움을 달랩니다.
그림책 표지에는 커다란 흰곰이 그려져 있습니다. 책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명희는 이제 내용을 다 외웁니다. 어느 날 커다란 흰곰이 주인공 여자아이 방으로 놀러와 재미있게 하루를 보내는 이야기. 명희는 그림책 속 아이가 부럽습니다. 아이를 사랑해주는 엄마 아빠, 아이를 찾아와서 실컷 놀아주는 힘세고 다정한 친구 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책을 펴 놓고 한참을 보던 명희 앞에 갑자기 곰이 나타납니다. 너무나 반가운 까닭에 명희는 놀랄 사이도 없습니다. 곰이 명희에게 무얼 하고 싶으냐고 다정한 목소리로 묻습니다.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명희는 꼭 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까요. 명희는 곰과 함께 길을 나섭니다. 커다란 곰의 등에 올라탄 명희를 사람들이 놀란 듯, 부러운 듯 쳐다봅니다. 택시를 타고,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드디어 식당에서 일하는 엄마를 찾았습니다. 놀란 엄마는 명희를 안아주고 명희는 엄마 품에서 눈물을 쏟습니다. 명희가 엄마에게 말합니다. 힘세고 다정한 곰이 있으니 걱정 말고 집에 가자고요. 다음은 아빠를 찾으러 갈 차례입니다. 마침내 명희가 엄마 아빠를 찾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때마침 하늘에서는 곰의 새하얀 털처럼 흰 눈이 내리는데……. 대도시의 변두리 동네, 반 지하층의 빈 집에서는 일곱 살 명희가 그림책에 얼굴을 묻고 혼자 잠들어 있습니다. 작게 꼬부리고 잠든 모습이 마치 기도를 하는 것 같습니다. |
“어린이는 건전하게 태어나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 속에 자라야 한다.”_대한민국 어린이헌장 1조
_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월수입 100만 원 이하 18만 가구, 생활고로 끼니를 굶어 본 초등학생 3만 5천 명, 낮 시간에 돌봐 주는 어른 없이 혼자 지내는 초등학생 14만 명, 그리고 우리가 사는 바로 이 곳, 수많은 명희들의 이야기 그림책 속에는 명희가 꿈꾸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따뜻하고 안락한 집,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 아빠,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아이를 찾아와서 아이와 실컷 놀아주는 덩치 크고 순한 친구, 곰도 있습니다. 그림책 속 아이는 외롭지도 않고 배고프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습니다. 작고 힘없는 명희는 꿈을 꿉니다. 힘세고 다정한 곰이 명희에게도 찾아왔으면, 엄마를 찾아 주었으면, 아빠를 혼내 주었으면, 예전처럼 가족이 다시 모여 살았으면. 명희가 할 수 있는 것은 꿈꾸는 것뿐이고, 명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간절한 소망뿐입니다. 가족의 복원을 바라는 아이의 간절한 꿈은 그러나 견고한 현실의 벽 앞에서 무력하기만 합니다.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을 그어 불러낸 꿈이 그랬던 것처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