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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숲

책소개

목차

이별
1. 굿바이 - 다자이 오사무
2. 화원의 사상 - 요코미쓰 리이치
3. 광야 - 호리 다쓰오
4. 공사 중 - 모리 오가이
5. 탐닉 - 이와노 호메이

사랑
1. 들국화의 무덤 -이토 사치오
2. 가을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3. 사랑 / 사랑이여, 사랑 - 오카모토 가노코
4. 밤의 어린잎 - 미야모토 유리코
5. 연애론 - 사카구치 안고

저자 소개 4

다자이 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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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zai Osamu,だざい おさむ,太宰 治,츠시마 슈지津島修治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35년 제1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단편 「역행」이 올랐지만 차석에 그쳤고, 1936년에는 첫 단편집 『만년(晩年)』을 발표한다. 복막염 치료에 사용된 진통제 주사로 인해 약물 중독에 빠지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지만, 소설 집필에 전념한다. 1939년에 스승 이부세 마스지의 중매로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한 후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썼다.

1947년에는 전쟁에서 패한 일본 사회의 혼란한 현실을 반영한 작품인 「사양(斜陽)」을 발표한다. 전후 「사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기 작가가 된다. 그의 작가적 위상은 1948년에 발표된, 작가 개인의 체험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을 통해 더욱 견고해진다. 수차례 자살 기도를 거듭했던 대표작은 『만년(晩年)』, 『사양(斜陽)』, 「달려라 메로스」, 『쓰기루(津?)』, 「여학생」, 「비용의 아내」, 등. 그는 1948년 6월 13일, 폐 질환이 악화되자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人間失格)』을 남기고 카페 여급과 함께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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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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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uunosuke Akutagawa,あくたがわ りゅうのすけ,芥川 龍之介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1892년 도쿄의 서민 지역인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외가에 양자로 들어가 두 이모가 그를 양육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도쿄제일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했다. 기쿠치 칸, 구메 마사오 등과 재학생 시절 동인지 『신사조』를 발간해 『라쇼몬』 『코』 등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나츠메 소세키로부터 단편 『코』가 절찬을 받으며 일약 다이쇼 시대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전공인 영문학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러시아문학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아 간결하면서도 평이하고 명쾌한 필치가 특징이지만 한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왕조물’, ‘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1892년 도쿄의 서민 지역인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외가에 양자로 들어가 두 이모가 그를 양육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도쿄제일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했다. 기쿠치 칸, 구메 마사오 등과 재학생 시절 동인지 『신사조』를 발간해 『라쇼몬』 『코』 등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나츠메 소세키로부터 단편 『코』가 절찬을 받으며 일약 다이쇼 시대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전공인 영문학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러시아문학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아 간결하면서도 평이하고 명쾌한 필치가 특징이지만 한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왕조물’, ‘기독교물’, ‘에도물’, ‘개화기물’, ‘현대물’ 등의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나생문(羅生門)』, 『마죽(芋粥)』 등 150편 정도의 단편 소설을 남겼다.

초기에는 일본 고대 설화 문학에서 소재를 취해 보편적이면서 현대적인 인간 에고이즘의 내면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썼고, 이후 예술지상주의적인 경향의 작품들, 에도 시대 그리스도교 박해를 다룬 기리시탄 작품들, 일본의 근대화를 주제로 한 작품들 등을 쓰다가 말년에는 자살을 염두에 둔 듯 자신의 삶을 무자비하게 조롱하고 야유하는 자전적인 작품들이 많다. 1927년 7월 24일 새벽, 비가 세차게 내리는 가운데 다바타의 자택에서 치사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했다. 그가 밝힌 자살의 이유는 ‘장래에 대한 그저 막연한 불안’이었다. 아쿠타가와의 자살은 관동대지진과 더불어 일본 근대사에서 다이쇼라는 한 시대의 종언으로 느껴질 정도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던졌다. 1935년 아쿠타가와의 친구였던 문예춘추의 사주 기쿠치 칸이 아쿠타가와상을 제정했고 현재까지도 이 상은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으로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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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유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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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iko Miyamoto,みやもと ゆりこ,宮本 百合子

1899년 도쿄 출생. 1916년 3월 오차노미즈 고증학교를 졸업하고, 4월 일본여자대학 영문과 예과에 입학하였으나, 데뷔작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를 『중앙공론』9월호에 발표하고 학교를 자퇴해 작가 생활에 들어갔다. 1918년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그곳에서 아라키 시게루를 만나 이듬해 결혼하였다. 1930년 일본 프롤레타리아 작가 동맹에 가입하였으며, 이듬해 11월에는 일본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작품활동으로 인해 여러 차례 검거와 석방을 되풀이 하였으며, 1938년 1월 부터 이듬해 봄까지 집필 금지를 당하여 정신적,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았다. 태평양 전쟁 발발
1899년 도쿄 출생. 1916년 3월 오차노미즈 고증학교를 졸업하고, 4월 일본여자대학 영문과 예과에 입학하였으나, 데뷔작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를 『중앙공론』9월호에 발표하고 학교를 자퇴해 작가 생활에 들어갔다. 1918년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그곳에서 아라키 시게루를 만나 이듬해 결혼하였다. 1930년 일본 프롤레타리아 작가 동맹에 가입하였으며, 이듬해 11월에는 일본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작품활동으로 인해 여러 차례 검거와 석방을 되풀이 하였으며, 1938년 1월 부터 이듬해 봄까지 집필 금지를 당하여 정신적,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았다. 태평양 전쟁 발발 직후 검거되어 시력과 언어장애 등을 얻었지만, 작품활동을 계속 하였으며, 1951년 1월 21일 급성 뇌수막염균 패혈증으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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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구치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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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o Sakaguchi,さかぐち あんご,坂口 安吾,사카구치 헤이고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로 다자이 오사무와 더불어 ‘무뢰파(無賴派)’의 대표 작가이다. 본명은 헤이고. 1906년 10월 20일 니가타현 니가타시에서 아버지 니이치로와 어머니 아사 사이의 5남으로 태어났다. 사카구치가의 선조는 지금의 후쿠오카현 가라쓰의 도공이었다가 후에 니가타로 이동해 온 지방 부호다. 아버지 니이치로는 당시 중의원 의원이자 니가타 신문사 사장이었고 한시 시인으로도 알려진 정치가로서 언제나 다망했으며 장남을 제외한 자식들에게는 무관심하고 냉담했다. 사카구치가의 재산은 체면과 의리를 중시했던 니이치로의 대에서 탕진되게 된다. 니이치로의 전처와 첩의 아이까지 합한 열세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로 다자이 오사무와 더불어 ‘무뢰파(無賴派)’의 대표 작가이다. 본명은 헤이고. 1906년 10월 20일 니가타현 니가타시에서 아버지 니이치로와 어머니 아사 사이의 5남으로 태어났다. 사카구치가의 선조는 지금의 후쿠오카현 가라쓰의 도공이었다가 후에 니가타로 이동해 온 지방 부호다. 아버지 니이치로는 당시 중의원 의원이자 니가타 신문사 사장이었고 한시 시인으로도 알려진 정치가로서 언제나 다망했으며 장남을 제외한 자식들에게는 무관심하고 냉담했다. 사카구치가의 재산은 체면과 의리를 중시했던 니이치로의 대에서 탕진되게 된다. 니이치로의 전처와 첩의 아이까지 합한 열세 명의 형제 중 열두 번째 아이로 태어난 안고는, 어린 시절 이미 방랑벽이 있었으며, 골목대장 행세를 하며 싸움질을 하고 돌아다녀 어머니의 미움을 사는 한편, 주로 무사들의 군담을 숙독했고, 남몰래 닌자의 인술을 연구하기도 했다. 1919년 니가타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이 무렵부터 집과 학교를 싫어해서 수업을 빠지고 홀로 방황하는 날들을 보내다 낙제하게 되고,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발자크 등의 소설을 탐독하며 지내다가 결국 1922년에 퇴학당했다. 그해 가을 상경해 부잔 중학교에 입학했고 에드거 앨런 포와 이시카와 다쿠보쿠 등을 인생의 낙오자로서 사랑하며 그들의 작품을 숙독했다.

막연하게 엄격한 구도자의 삶을 동경하여 1926년, 도요 대학 인도철학윤리과에 입학한다. 입학 후 불교서와 철학서를 섭렵하는 데 몸을 혹사하며 공부에 매진한 탓에 생긴 신경쇠약 증세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티베트어, 라틴어, 프랑스어 등 어학을 맹렬히 공부한다. 1930년, 대학을 졸업한 후 동인지 [말]과 [청마]를 창간했다. 1931년에 발표한 단편소설『바람 박사』와 『구로타니 마을』이 소설가 마키노 신이치의 극찬을 받음으로써 신진 작가로 급부상한다. 1932년 여류 작가 야다 쓰세코를 알고 사랑에 빠지지만 1936년 절교한 후 신생을 기하며 교토를 방랑하면서 그녀와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눈보라 이야기』를 썼다. 1946년, 전후의 시대적 본질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파악한 「타락론」과「백치」에 의해 일약 시대의 총아, 오피니언 리더로 떠오르며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에세이 「타락론」에서는 전쟁에 졌기 때문에 인간이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인간에게는 타락의 본성이 있고 혼란은 필연적이며, 타락을 통해 다시 일어날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타락론」을 소설화한 것이 「백치」다.

1947년 가지 미치요와 결혼하고, 전후의 시대상을 반영한 소설과 에세이, 탐정소설, 역사 연구, 문명 비평 르포르타주 등 다채로운 집필 활동을 전개하여 전후의 난세에 문화와 역사 및 사회의 흐름에 대한 대중의 지적 갈증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와 동시에 세무 당국을 상대로 한 소송, 경륜 부정 사건 고발, 각성제와 수면제 중독에 의한 정신착란 발작 등 실생활 면에서도 언제나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1955년 2월 17일 지방 취재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자택에서 뇌일혈로 급사했다. 향년 50세였다. 전후 일본 사회의 혼란과 퇴폐를 반영한 작풍을 확립하고 시대의 새로운 윤리를 제시함으로써 일본인에게 충격과 감동을 안겨준 사카구치 안고는 다자이 오사무와 오다 사쿠노스케 등과 함께 전후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무뢰파 작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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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 소 개
요코미쓰 리이치
호리 다쓰오
모리 오가이
이와노 호메이
이토 사치오
오카모토 가노코
역자 : 박현석
국문학을 전공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 및 직장생활을 하다 지금은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우리나라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서 출판을 시작했다. 번역서로는 『인간실격/정의와 미소』, 『일본 대표작가 대표작품선』, 『갱부』, 『청춘의 착란』, 『엄마는 저격수』, 『태어나서 미안합니다』, 『판도라의 상자』, 『젊은 날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태풍』 등 다수가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396g | 128*188*30mm
ISBN13
9788996472094

책 속으로

그는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했기에 눈썹 끝으로 간신히 막은 채 화단 속으로 내려갔다. 그는 무리 진 밤의 꽃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차가운 꽃을 차례차례, 벌레처럼 냄새 맡았다. 그는 냄새를 맡으며 격렬한 기도를 꽃 속에서 하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그녀를 구해주소서. 신이시여, 그녀를 구해주소서.”
그는 앵초를 한 움큼 쥐어뜯어 뺨의 눈물을 닦았다. 달이 뜨기 전으로 바다는 은은하게 흰빛을 띠고 있었다. 저녁 까마귀가 기괴한 곡선을 그리며 화단 위를 날카로운 그림자처럼 날아갔다. 그는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몇 바퀴고 고요한 분수 주위를 슬픔처럼 맴돌았다.---요코미쓰 리이치 『화원의 사상』 중에서

그리고 이 불행한 여자, 전남편을 스쳐 지나가는 남자라 생각하고 스쳐 지나가는 남자에게 몸을 맡길 때와 같은 체념으로 몸을 맡긴 이 비참한 여자, 이 여자야말로 이 세상에서 자신이 만날 수 있었던 유일한 행복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러나 여자는 괴롭다는 듯 남자에게 안긴 채 딱 한 번 눈을 커다랗게 떠서 남자의 얼굴을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았을 뿐, 점점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호리 다쓰오 『광야』 중에서

겨울의 등불을 밝힐 무렵이면 파리의 화실에서 고향 생각이 더욱 깊어진다고 적어 보낸 편지를 읽은 나는 바로 이 사람을 깨운다. 평소에는 한번 잠에 들면 좀처럼 일어나지 않던 이 사람도 쉽게 일어난다. 그리고 눈물을 글썽이며 둘이서 차를 마시는 깊은 밤. 밖에는 희미한 초겨울 삭풍. ---오카모토 가노코 『사랑이여, 사랑』 중에서

“……전혀 생각해본 적 없어?”
“그렇지는 않아.”
생각해본 적이 없기는커녕, 모모코는 거듭해서 몇 번이고 생각했을 것이다. 특히 회사에 다니게 되어 여러 타입의 남자들을 보게 되면서 모모코는 준스케가 결코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청년이 아님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다.
“어떻게 생각해? ……불가능한 일일까?”
“저기, 오빠…….”
눈물이 솟아올라, 모모코는 간신히 억누른 목소리로,
“어째서 사촌오빠로 태어난 거야!”
두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모모코는 거칠게 손등으로 닦더니 어린아이처럼 그것을 치마에 문질렀다.

---미야모토 유리코 『밤의 어린잎』 중에서

출판사 리뷰

문학은 물론 인생의 영원한 화두라 할 수 있는 ‘이별’과 ‘사랑’이라는 단어에 주목하여 일본 작가 10인들의 단편 및 중편 소설들을 모아 엮었다.
어느 소설이나 마찬가지지만 이 작품들도 우리에게 다양한 간접경험을 주어 인생의 가장 커다란 문제라 할 수 있는 ‘이별’과 ‘사랑’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삶을 더욱 깊고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작가와 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몇 번의 자살미수 끝에 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 다자이 오사무의 마지막 작품인 굿바이.
자신의 아픈 경험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승화시킨 요코미쓰 리이치의 화원의 사상.
이른바 일본 왕조문학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호리 다쓰오의 광야.
서양 여성과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무희의 후속작인 모리 오가이의 공사 중
신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자 중 하나인 이와노 호메이의 탐닉.
10대 소년, 소녀의 풋내나면서도 슬픈 사랑을 그린 이토 사치오의 들국화의 무덤.
일본 문학의 폭을 넓힌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전환기적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가을.
여성으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사랑을 시적 문장으로 묘사한 오카모토 가노코의 사랑과 사랑이여, 사랑.
사회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여성 프롤레타리아 작가 미야모토 유리코의 밤의 어린잎.
전후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무뢰파 작가 중 한 명인 사카구치 안고의 연애론.

우리 독자에게도 비교적 잘 알려진 작가는 물론, 아직은 생소하고 낯선 작가들의 작품도 하나의 주제로 묶었기에 일본 근현대 문학의 전반적인 이해에 커다란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또한 하나의 주제로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엮었기에 서로간의 비교를 통해서 각 작가의 특징과 문체, 기법, 사상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끝으로 사카구치 안고의 글을 짧게 인용해보겠다.
「연애는 인간의 영원한 문제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아마도 그 인생의 가장 주요한 문제는 연애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영원한 미래, 지금 내가 여기서 연애의 진상을 이야기할 수도 없으며, 또 우리가 올바른 연애라는 것을 미래에 걸고 단언할 수 있을 리도 없다.
단지 우리는 각자가 각자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것으로 자신만의 진실을 슬프게 자부하고, 위로하지 않으면 안 될 뿐이다.」

리뷰/한줄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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