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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浩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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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간행한 시집『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정호승 시인의 신작시집이 나왔다. 한편도 발표하지 않은 작품 74편을 곱게 모아놓은 이번의 신작시집『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는 시인이 일년간 시작에 전념하여 묶은 시집이다. 화법이 기도적이며 명료한 시 세계를 지향해온 정호승 시인의 시세계는 순수하지만 어딘지 우리의 피를 당기는 음악성을 가지고 있다. 간결 단순하면서도 역설의 시 문법을 가지고 있는 그의 시는 어떤 선(禪)적인 향기를 풍긴다.
그러나 그냥 맑기만 한 것이 아니라 더럽고 진부하고 낡고 오염되어 있는 세속의 그 어떤 진창들을 참혹하게 뿌리침으로써 시인의 시는 순결한 날개가 솟아오르는 것 같은 기쁨을 준다. 병든 우리들의 영혼을 단번에 절벽에서 무너뜨리는 세속 파괴의 힘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절벽에 당도한 사람이 필사적으로 껴안아야 하는 허공 같은 사랑의 신성함도 가지고 있다. 정호승 시인의 시는 어린이가 읽어도 이해가 될 듯 쉬워 보이지만 어른들이 읽으면 결코 쉽다고 말할 수 없는 묘한 명암을 가지고 있다. 시 편편이 쉬워 보이지만 색다른 세계를 느끼게 한다. 이런 점에서 시인이 일년간 시에 전념하면서 우리 시의 어떤 범상을 뛰어넘으려는 각고의 고투를 엿볼 수 있다. 난해하고 뒤틀리고 평이해진 현대 우리 시의 언어에 새롭고 발랄하고 힘찬 생명을 불어넣어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눈물과 모래알과 길과 사랑이 수많은 자아 속에서 순환하는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정호승 시인은 첫시집『슬픔이 기쁨에게』를 펴낸 지 20년 만에 펴내는 이 시집의 후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동안 한움큼 움켜쥐고 살아왔던 모래가 꼭 쥔다고 쥐었으나 이제는 손아귀 밖으로 슬슬 다 빠져나가고 말았다. 손바닥에 오직 한 알 남아 있는 모래가 있다면 그것은 시의 모래일뿐이다. 그 모래는 언제나 눈물에 젖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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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학이 날아간다
지리산으로 날아간다 비가 오면 종이는 슬쩍 남겨두고 날아간다 --- p.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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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선암사>전문 --- p.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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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한 알 모래 속에 바다가 있다 한 알 모래 속에 섬이 있다 그 섬에 나그네 한 사람이 쓰러져 있다 --- p.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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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 <미안하다>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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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다>
강아지똥이 얼어붙어 고요하다 개밥그릇도 얼어붙어 고요하다 천지연 폭포도 얼어붙어 고요하다 새벽이 지나도록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꼭대기에 앉아 있는 새 한 마리도 날아가다가 얼어붙어 고요하다 <여수역> 봄날에 기차를 타고 종착역 여수역에 내리면 기차가 동백꽃 속으로 들어가버린다 가을에 기차를 타고 종착역 여수역에 내리면 기차는 오동도 바다 위를 계속 달린다 다시 봄날에 기차를 타고 여수역에 내리면 동백꽃이 기차가 되어버린다 <연꽃> 남대문과 서울역 일대가 온통 연꽃으로 만발한 연못이었다는 서울시청 앞 프라자호텔 자리에 지천사라는 절이 있었고 그 절의 연못 자리가 바로 지금의 서울역 자리라는 그런 사실을 안 순간부터 서울역은 거대한 연꽃 한 송이로 피어나더라 기차가 입에 연꽃을 물고 남쪽으로 달리고 지하철이 연꽃을 태우고 수서역까지 달리고 진흙 속에 잠긴 인수봉도 드디어 연꽃으로 피어나 서울에 연꽃 향기 진동하더라 --- pp. 15, 74, 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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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다>
강아지똥이 얼어붙어 고요하다 개밥그릇도 얼어붙어 고요하다 천지연 폭포도 얼어붙어 고요하다 새벽이 지나도록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꼭대기에 앉아 있는 새 한 마리도 날아가다가 얼어붙어 고요하다 <여수역> 봄날에 기차를 타고 종착역 여수역에 내리면 기차가 동백꽃 속으로 들어가버린다 가을에 기차를 타고 종착역 여수역에 내리면 기차는 오동도 바다 위를 계속 달린다 다시 봄날에 기차를 타고 여수역에 내리면 동백꽃이 기차가 되어버린다 <연꽃> 남대문과 서울역 일대가 온통 연꽃으로 만발한 연못이었다는 서울시청 앞 프라자호텔 자리에 지천사라는 절이 있었고 그 절의 연못 자리가 바로 지금의 서울역 자리라는 그런 사실을 안 순간부터 서울역은 거대한 연꽃 한 송이로 피어나더라 기차가 입에 연꽃을 물고 남쪽으로 달리고 지하철이 연꽃을 태우고 수서역까지 달리고 진흙 속에 잠긴 인수봉도 드디어 연꽃으로 피어나 서울에 연꽃 향기 진동하더라 --- pp. 15, 74, 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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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간행한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정호승 시인의 신작시집이 나왔다. 한편도 발표하지 않은 작품 74편을 곱게 모아놓은 이번의 신작시집[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는 시인이 일년간 시작에 전념하여 묶은 시집이다. 화법이 기도적이며 명료한 시 세계를 지향해온 정호승 시인의 시세계는 순수하지만 어딘지 우리의 피를 당기는 음악성을 가지고 있다. 간결 단순하면서도 역설의 시 문법을 가지고 있는 그의 시는 어떤 선(禪)적인 향기를 풍긴다.
그러나 그냥 맑기만 한 것이 아니라 더럽고 진부하고 낡고 오염되어 있는 세속의 그 어떤 진창들을 참혹하게 뿌리침으로써 시인의 시는 순결한 날개가 솟아오르는 것 같은 기쁨을 준다. 병든 우리들의 영혼을 단번에 절벽에서 무너뜨리는 세속 파괴의 힘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절벽에 당도한 사람이 필사적으로 껴안아야 하는 허공 같은 사랑의 신성함도 가지고 있다. 정호승 시인의 시는 어린이가 읽어도 이해가 될 듯 쉬워 보이지만 어른들이 읽으면 결코 쉽다고 말할 수 없는 묘한 명암을 가지고 있다. 시 편편이 쉬워 보이지만 색다른 세계를 느끼게 한다. 이런 점에서 시인이 일년간 시에 전념하면서 우리 시의 어떤 범상을 뛰어넘으려는 각고의 고투를 엿볼 수 있다. 난해하고 뒤틀리고 평이해진 현대 우리 시의 언어에 새롭고 발랄하고 힘찬 생명을 불어넣어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눈물과 모래알과 길과 사랑이 수많은 자아 속에서 순환하는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정호승 시인은 첫시집 '슬픔이 기쁨에게'를 펴낸 지 20년 만에 펴내는 이 시집의 후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동안 한움큼 움켜쥐고 살아왔던 모래가 꼭 쥔다고 쥐었으나 이제는 손아귀 밖으로 슬슬 다 빠져나가고 말았다. 손바닥에 오직 한 알 남아 있는 모래가 있다면 그것은 시의 모래일뿐이다. 그 모래는 언제나 눈물에 젖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