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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거미 / 새 / 어머니 / 주술가 / 달팽이가 지나간 길은 축축하다 / 보름달 / 개구리밥 / 마이산 / 악연 / 개야도 김발 / 몸에 맞는 그릇 / 어청도 / 표본 / 귀퉁이 / 거미 2 / 길 제2부 초승달 / 단풍 / 섬 / 오이를 씹다가 / 염소의 똥이 둥글게 쏟아진다 / 봄소풍 / 민달팽이 / 옹이 / 띠쟁이고모네 점방 / 성에꽃, 그 구멍으로 제3부 감꽃 / 미싱 창고 / 소록도 / 망둥어 / 참새 / 생솔 / 선물 / 방 / 굴비 / 누에 / 대나무는 나이테가 없다 제4부 정읍역 / 기차 / 상천사에서 / 찜통 / 황홀한 수박 / 콩나물 / 겨울 둥지 / 민둥머리새 / 두꺼비 / 취나물 / 반나잘 혹은 한나잘 / 싸라기밥풀 / 빨판상어 / 내소사 꽃창살 / 깨꽃 / 미이라 / 촛농 / 망해사 / 친전 |
朴城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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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가 허공을 짚고 내려온다
걸으면 걷는 대로 길이 된다 허나 헛발질 다음에야 길을 열어주는 공중의 길, 아슬아슬하게 늘려간다 한 사내가 가느다란 줄을 타고 내려간 뒤 그 사내는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 올라와야 했다 목격자에 의하면 사내는 거미줄에 걸린 끼니처럼 옥탑 밑에 떠 있었다 곤충의 마지막 날갯짓이 그물에 걸려 멈춰 있듯 사내의 맨 나중 생이 공중에 늘어져 있었다 그 사내의 눈은 양조장 사택을 겨누고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당겨질 기세였다 유서의 첫 문장을 차지했던 주인공은 사흘 만에 유령거미같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조장 뜰에 남편을 묻겠다던 그 사내의 아내는 일주일이 넘어서야 장례를 치렀고 어디론가 떠났다 하는데 소문만 무성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은 그 사내의 집을 거미집이라 불렀다 거미는 스스로 제 목에 줄을 감지 않는다 ---「거미」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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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빚 때문에
그해 겨울도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집엔 여느 집처럼 외양간 옆에 장작더미가 없었고 낯익은 얼굴들이 아버지의 소식을 묻곤 했다 정지에서 시래깃국 끓이던 셋째 누나는 가끔 생솔가지를 아궁이에 넣고 움츠려 있었다 한번은 연기가 맵다고 투덜거리는 내 등을 한참 동안이나 안고 있었는데 불에 던져진 생솔보다 더 끈적이는 송진을 흘렸다 성냥개비가 되어가는 줄 모르는 어머니는 베틀에 앉아 삼베 품을 팔고 늦은 밤에 돌아오셨다 그런 이유로 우리들은 남의 집 반찬에 익숙해져갔다 ---「생솔」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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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구조를 지닌 시 「거미」로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박성우(朴城佑) 시인의 첫 시집이 간행되었다.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가난과 슬픔의 가족사를 진솔하게 녹여낸 그의 시편들은 다른 신예시인들과 대별되는 쓰라리게 아름다운 서정의 세계를 열어 보여준다. 자신이 조교로 있는 대학의 청소부인 어머니 옆에서 시를 발견하는 시인의 눈은 맑고 정직하고 자연스럽다. 그러한 눈으로 시인은 서사와 서정이 적절한 조화를 이룬, 곱고 당찬 시편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 시집에는 가족, 특히 어머니에 대한 시들이 여럿 있는데, 예컨대 "어머니, 미륵산에서 하루죙일 뭐하고 놀았습디요" 하는 시인의 물음에 "뭐허고 놀긴 이놈아, 수박이랑 깨먹고 오지게 놀았지"(「어머니」)라는 멋진 화답은 이 시집이 그리는 가족사의 풍경을 한마디로 요약한다 하겠다. 학교 청소부로 일하다 아킬레스건을 다친 어머니가 발목을 오줌요강에 담그다 담그다 그만 지쳐 아들에게 하는 말 "막둥아, 맥주 한잔 헐텨?"나 "다음주까정 핵교 청소일 못 나가면 모가지라는디"(「찜통」)라는 중얼거림은 그냥 우리를 감동시키는 대목이다.
이 시집 맨끝 작품 「친전」의 마지막 구절 "아버지 안녕히 가세요"는 또다른 작품 「두꺼비」의 슬픈 아버지에게 이어진다. 헌집을 바쳐 새 집을 지었으나 겨울잠에 들어 다시는 깨어나지 않은 아버지의 양손에서 우툴두툴한 두꺼비를 발견하는 이 시는 「거미」와 함께 아직도 유전되는 우리 시대의 슬픈 이야기이다. 부재하는 아버지, 어려운 삶을 감내하는 어머니를 두고 "지렁이처럼 마른 손으로 / 서로를 꼬옥 부둥켜안은 까치집"(「겨울 둥지」)을 절대 외면할 수 없는 자로서, 세상의 "옹이진 상처"(「해설」)를 끌어안는 이러한 시편들에서 우리는 그 삶의 내막을 슬쩍슬쩍 들여다보며 스스로의 상처를 돌아보게 된다.
시인의 곧고 정직한 눈길은 또한 자신이 참여한 현실에서 흥미로운 노동의 현장을 성공적으로 포착하는 데까지 미친다. 여러 미싱 가운데 고장나 있는 "보조사원 박성우 한 대"를 발견하는 [미싱 창고]나 '어깨끈달이'로 불리는 여공을 눈여겨보는 「참새」 등은 그러한 성공의 증거들이다. 현실의 고통과 상처에 분노하기 전에 그것들을 낳는 정황을 정확히 그려내는 데 주력한다는 점에서 그의 시는 지난날의 경직된 노동시와 궤를 달리하는 한편, 독특한 서정의 영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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