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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5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252g | 130*215*13mm
ISBN13 9791170402619
ISBN10 1170402615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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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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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장례미사가 있는 날이다.
여름 오후의 빛과 스테인드글라스.
직각의 빛은 하나의 울타리처럼 보인다.

할머니는 체크 모자를 쓴 노인을 응원한다. 아는 사람이냐 물으니 그런 건 아니라고 한다. 그냥 단순하게, 어떤 이유도 없이 누군가를 응원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모자를 쓴 노인은 검은 셔츠를 입은 노인에게 패배하고, 할머니는 금세 흥미를 잃는다. 모자를 쓴 노인의 시계를 훔쳐본 뒤 할머니에게 곧 영화가 시작할 것이라 일러주자 할머니가 묻는다.
너는 이제 어디로 갈 거냐.
글쎄요.
할머니는 주머니에 들어 있던 자두 하나를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네가 재밌는 걸 해라.
재밌는 거. 내가 자두를 한 손에 든 채 그 말을 생각하고 있을 때 할머니는 유유히, 허리우드 극장을 향해 간다. 나는 투명해진 자두를 바라보다 그것을 한 입 베어 문다.
--- p.12-13 「김여름_공중산책」 중에서

옆자리에 있던 언니가 녹았다.
촛농이 불에 녹듯 앉아 있는 자세 그대로
액체로 녹아 원목 의자에 흘러내렸다.

빗물에 쓸려 내려갔어요.
비둘기가 날아와 목을 축이던데요.
옆에 쌓여 있던 나뭇잎으로 덮어주었어요.
온통 현실감 없는 글뿐이었다. 처음 이런 일이 일어나 주목받은 이후로는 액체가 방치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고인을 위한 행위로는 바닥에 흩뿌려진 액체에 무언가를 덮어주었다는 것이었다. 길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지나친 옆 사람에게 벌어진 일이 대부분이었다. 나처럼 곁에 있는 친구에게 일이 벌어진 경우는 아직 없는 모양이었다.
이 액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지만 우선 텀블러에 담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느껴졌다. 언니를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찾아보면 언니를 다시 되돌릴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언니, 걱정 마. 언니는 혼자가 아니야.
--- p.36-37 「라유경_블러링」 중에서

왜 나의 지구는 맨날 망할까.
순지는 드디어 궁금해졌다. 한 달쯤 전부터
순지의 꿈속에서 지구는 각양각색으로 망해갔다.

토베이 아줌마의 목소리는 의욕이 넘치면서도 굼떴다. 자신이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늙었다는 것은 알아도, 그게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는 목소리였다. 그녀는 이렇게 나이 들어서 가면 다른 학생들이 싫어하지 않을까요, 라고 자주 묻곤 했는데 사실 그 말은 다른 학생들이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나는 자신 있다,의 다른 표현이었다. 순지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학원에서 아이들도 직접 가르치셨는데, 가면 우등생 되실 거예요.
저 같이 나이 많은 학생들은 그래도 없겠지요?
아줌마는 순지의 답변도 재깍 알아듣지 못했다. 문의했던 것을 묻고 또 물었다. 특히나 자신이 원하는 답변이 아닐 때는 더욱 그랬다. 잘 들리면서, 싫은 것은 흘려버린다. 늙어버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이런 것이리라 순지는 생각했다. 어쨌거나 아줌마는,
- 네, 알겠습니다. 항상 친절히 감사해요.
라고 인사하는 걸 잊지 않았다.
--- p.68-69 「서고운_정글의 이름은 토베이」 중에서

“저도 들은 얘기지만, 힘들 땐 물을 보면 좋대요.
이런 더러운 물 말고요. 강이나 바다 같은.”
“그런 말을 믿어요?”

운전을 했던 연구원이 다른 사람들과 눈을 한 번씩 마주치고 말했다. 인수인계는 잘해줬나 보네.
단강은 일에 금세 익숙해졌다. 일은 단조로웠지만 통제하기 편했다. 전임자가 처리했다 반려된 서류에서 누락된 사항이나 불일치하는 날짜들을 찾아내는 것도 만족스러웠다. 사람들도 친절한 편이었다. 가끔 저수지까지 가서 터무니없이 비싼 점심을 먹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깔끔한 옷을 입었고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주름이 매끄럽게 정돈된 삶. 보풀이 인 옷은 버리고 새 옷을 살 수 있는 삶. 단강도 그런 사람들처럼 보이고 싶었다. 단기 계약직이더라도, 당분간은, 그런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전임자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잠시 착각할 수 있었다.
--- p.94-95 「성혜령_대체 근무」 중에서

오류가 오류를 만난 셈이지만
다른 말로 하면 그게 바로 시작이니까.

파란 바탕에 하얀 고딕체로 끝없이 이어지는 비밀 코드. 결국 우리는 시시한 마음으로 게임을 종료했다. 게임도 끝났고 여인2도 냉동되었다. 나는 더 이상 이곳에 찾아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온 마음을 다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덩그러니 앉아 있거나 누워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여자에게 여인 2가 사용하던 노트북을 잠시 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유니텔에 접속해 해피엔드와 여인2가 나눴던 모든 대화들을 삭제했다.
지켜보던 여자가 민영이 상심할 것을 걱정했다. 나는 얼마간 상심하는 것쯤은 괜찮다고 얘기했다. 우리가 그랬듯이.
--- p.136-137 「예소연_통신광장」 중에서

내가 말하지 않느냐, 새라고.
그는 붉은 새로 왔느니라. 먼 데서 열매를 물고?

민나가 ‘또’를 그 자리에 단단히 묶어두고 기다리라고 말한 뒤 방향을 아는 이를 찾아 나서니 곧 말 한 마리가 보였다. 그런데 말이 선 데서 찡찡 얼음 우는 소리가 났다. 민나는 이런 소리에 몹시 이끌리므로 모두 잊어버리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꽁꽁 언 연못이 있었다. 말이 그 연못을 마주 대하여 구슬같이 단단한 눈물을 떨구니, 굳은 것에 굳은 것이 부딪쳐 찡, 하거나 낑, 하거나 띵, 하는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민나는 말 옆에 쪼그려 앉아 구슬을 하나하나 주워 모았다. 밝은 데 비추어 잘 들여다보면 구슬 내부는 점액질로 차 있고 그 안에서 금빛 올챙이들이 꼬리로 얼굴을 가리고 잠자는 게 보였다. 민나가 머리카락을 부스스 세우고는 서둘러 큰 숨으로 연못을 녹였다. 그리고 물 안에 구슬들을 와르르 쏟아부었다.
울던 말이 그 모습을 보더니 울기를 멈추었다. 말은 구슬이 섞여든 연못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기 시작했다.
--- p.146?147 「현호정_옥구슬 민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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