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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예감은 쿠키의 맛처럼 제각각이어서
수국과 치자꽃 옥수수 입하 석류와 석유의 오묘한 뜻 소설 분자 요리 에그노그 트란스라피드 무문관 진달래꽃 나라 서면로터리 꽃밭에서 여기 낭만이 조금 남아 있어요 외국어 채널 2부 우리는 딴사람이 되곤 한다 비건 채식주의 소쉬르를 사랑하다 명가 파란 깃털과 손거울 이쁜 나는 요한의원 윤리 시간의 기록자 메리 크리스마스 침묵의 형태 랑랑 앨리사의 죽음 노트 1 밈의 강 3부 너에겐 어떤 체육관이 존재할까 어제의 시 친절한 전철 벼 속에 벼가 없고 개구리 속에 개구리가 없다 봄비 다종 어류 나노 인간 코코몽 해변5 신어산 C7H5NO3S 해맑은 식단표 송정 베이컨 죽음의 계단에서 머물고 태움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해설 단숨에 터져 나온 세계 ―김참(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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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지 못할 거라는 예감은 쿠키의 맛처럼 제각각이어서 젖은 하늘빛 린넨 셔츠가 마르기 전에 서둘러 육체를 마쳤다 치자의 끝말은 치자리 수국의 끝말은 수구리 짙어진 하늘과 옅어진 등대 사이에서 면과 읍과 리를 그리워한 거지 사라진 희뿌연 낮달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보랏빛 비를 뿌렸지 다가오는 달빛은 인간의 뜨거운 손끝에 누런 화상의 자국마저 길가에 버려진 치자꽃의 리, 그렇다 치자 아니라고 치자 수국은 태양처럼 크고 둥글었지 방금 육체를 마친 얼굴처럼
--- 「수국과 치자꽃」 중에서 채식하세요? 발톱 끝의 피를 짜던 그가 물었다 네 그러고는 대화가 끊어졌다 그는 꿇어앉아 피를 짜고 나는 누런 전기장판이 놓여 있는 병실 의자에 기역으로 걸터앉아 그에게 두 발을 맡기고 있다 그의 바늘은 손톱을 향해 다가온다 엄지 검지 차례차례 피를 짠다 그가 채식하세요 다시 묻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그 말을 계속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서울에 가야 해서요 약이 더 필요해요 그는 언제 떠나는지 물었다 이번 일요일에 올 거예요 나는 돌아올 날짜를 말하는 중이었다 올갱잇국처럼 엇갈리는 시점이었으나 올갱잇국처럼 같은 시점이기도 했다 그가 손바닥에 침을 놓았다 위에 문제가 생긴 게 맞군요 이십 분 후 그에 의해 일회용 침이 제거되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셔야 해요 그는 내 왼쪽 손바닥 생명선 두 갈래로 연하게 갈라진 꼬리 부분을 약솜으로 지그시 눌렀다 안 아팠어요 제가 누를게요 아… 안 돼요… 꼭 눌러야 지혈이 돼요 그는 오늘 딴사람 같다 우리는 늘 딴사람이 되곤 한다 곧 다가올 겨울이 달 뜬 가을을 보여 주듯이 --- 「요한의원」 중에서 달을 삼킨 얼음호수가 울먹이며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아랫도리가 다 녹아 상체에 간신히 몇 마리의 펭귄이 붙어 있었습니다 빙하는 시속 235km 달리는 자동차보다 빨리 녹고 있었습니다 영혼의 맨발은 꽁꽁 언발을 도끼로 잘랐습니다 오랫동안 아무 감각이 없던 심장도 꺼내 펭귄과 나누어 맛있게 먹었습니다 썩어 들어가던 다섯 개의 팔은 장작처럼 바짝 말려 하늘나라 선녀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마침 기후의 변화는 도끼를 도와주었습니다 도끼는 늘 운이 좋아 보입니다 더 이상 뛰어넘을 담이 보이지 않습니다 달빛은 호수 속으로 스며들어 유유자적 한 마리 물고기처럼 유영하고 있습니다 얼음호수는 목탁처럼 공정하고 윤리적으로 보였습니다 얼음호수 속에서 막 꺼낸 반야심경 속에서 울지 않는 아기가 태어나고 있다는 전갈이 도착했습니다 탈영혼은 달빛의 담벼락에 쭈그리고 앉아 니는 뭐꼬 니는 뭐꼬 없는 손가락으로 윤리적으로 적었습니다 니가 뭐기는 뭐겠노 그저 어리석은 인간이지 허공에서 번쩍 번갯불이 일어나 콩자반이 볶아졌습니다 --- 「메리 크리스마스」 중에서 공동묘지에서 노래가 흘러나올 때 랑랑 새들이 서로의 뼈를 뜯어 먹을 때 랑랑 슬쩍 한 팔 끼워 넣으며 내 편 하자고 할 때 랑랑 나도 할까 생각했어 랑랑 살짝 편안해지고 싶었거든 랑랑 저녁마다 유서를 적어 랑랑 내일 눈 뜨지 말자고 랑랑 몸은 젖은 소금가마니 랑랑 쉴 새 없이 놈들이 덮쳐 랑랑 그놈들을 누가 키웠다면 랑랑 이 땅의 풀들이 키웠지 랑랑 말해서 뭘 해 랑랑 말해서 뭘 해 랑랑 말은 말을 말아먹어 --- 「랑랑」 중에서 다이소에 들어가서 태풍 다나스와 자동차 다마스를 만났습니다 우리의 첫만남은 이렇듯 신선하였습니다 열대과일로 가득한 만남이었습니다 향기는 푸르렀고 파도는 노랗게 부서졌습니다 자동차는 흘러넘쳤고 수입과자는 줄을 섰습니다 우리는 복면강도입니다 쇼핑을 온 사람들은 우리가 무서워 오줌을 쌌습니다 아이야 괜찮아 울지 마 하면 더 크게 울거나 아예 까무러쳐 버렸습니다 우리는 자루에 더 담을 것이 없어 자루를 버리고 나왔습니다 주린 창자는 배불렀고 주름진 뇌는 노곤했습니다 센텀 광장은 평화로웠고 하늘에는 패션 구름들이 외출을 나왔습니다 시청자미디어센터 앞에 심어진 대추나무 신기합니다 (도심 한가운데 대추나무라니요) 인도 바닥에 떨어진 연둣빛 대추들 인도 사람 두 남자가 비유 말고 진짜 대추나무 열매를 따 먹고 있었습니다 대추에는 매연이 가득할 텐데요 여기저기 인도에 떨어진 이빨 자국 어룽어룽 어린 대추들 연둣빛 터번을 쓴 것 같습니다 --- 「윤리」 중에서 자몽하다는 비몽사몽간이라는 뜻이래요 망고하다는 연 날릴 때 연실을 다 푸는 것을 뜻한대요 블랙아이스는 아스팔트에 검게 보이는 결빙이래요 결핍인지 결빙인지 세계의 언어는 늘 민트빛처럼 새록새록 아름다워요 볕뉘는 틈 사이로 들어오는 작은 햇살이래요 국어사전을 찾아본 적은 없어요 맞으면 어떻고 틀리면 어때요 아름다운걸요 얼음다운걸요 --- 「시간의 기록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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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사람 시인선 59
송진 『방금 육체를 마친 얼굴처럼』 출간 독자의 상상을 전복시키는 접신의 목소리 “하반신이 떨어져 나간 새들이 결코 울지 않았다 그건 살아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1999년 《다층》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송진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방금 육체를 마친 얼굴처럼』(걷는사람)이 출간되었다. 보편적인 상식의 세계를 일탈한 송진 특유의 초현실적인 언어와 이미지는 리드미컬하게 독자들의 상상을 전복시키며, 마치 접신한 듯한 그의 목소리는 몽환적인 페이소스와 광기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곳곳에 스민 뼈아픈 유머 감각은 이 시집의 덤이다. 송진은 대한민국 현대시사에서 전무후무한 스타일로 시를 쓴다. 그는 언어의 의미보다는 소리, 언어의 음악적 면을 더 중시하여 시를 써 나간다. 의미 있는 언어를 생산하기보다 언어 자체가 만들어내는 소리의 결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송진의 시는 아방가르드에 가까우며 그는 누구보다도 자유분방하게 시를 쓰는 사람이다. 그는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쓴다. 이를테면 「소설(小雪)」이라는 시에서는 “뭐 하나라도 예측된 게 없다 예측되었다면 그건 거짓이다”라고, “더러운 입냄새조차도” 그러하다고 꼬집는다. 그러니까 ‘그냥 살라’는 거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시인은 말한다. “나오는 대로 썼다 나오는 대로 말했다”. 눈치 따윈 보지 않고 나답게 살겠다는 의지가 시퍼렇게 살아 있다. 마지막 문장에서 그는 일갈한다. “그래서 뭐 잘못됐나?” 한편 송진의 작품들은 펀(pun, 말놀이)을 통해 음악성을 더욱 극대화한다. 작품들은 대부분 산문시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아래에 인용한 것처럼 재치 있는 펀(pun)과 내재율을 통해 리듬감을 십분 발휘한다. “인애는 인내의 안내도 없이 순백의 뇌를 파먹었다” -「옥수수」 부분 “부상열차를 타고 부상을 당한 채 부상을 찾아가는 중이었어 해가 뜨는 동쪽 바다 속에 있다고 하는 상상의 나무 말이야 부상당한 그 나무의 이름이 부상이라니 기가 막혔어” -「트란스라피드」 부분 “새벽은 되었지만 마음은커녕 미음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다 (중략) 누군가 잿빛 빈 의자 위에 제비빛 보온병을 두고 갔다” -「무문관」 부분 “오란다를 먹으며 오르골을 생각했어요 오골오골 오골계도 생각했어요” -「시간의 기록자」 부분 해설을 쓴 김참 시인의 표현대로 “예술은 광기에 사로잡혀 현실의 나를 망각하고, 나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나의 내면에 자리 잡은 나의 목소리를 끄집어내는 작업”이다. 특히 송진 시인의 시는 “순간적으로 탄생한, 형용하기 어려운 어떤 내면적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렇기 때문에 송진의 작품은 시보다 주술에 가깝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신들린 언어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송진의 신들린 언어는 어쩌면 섬뜩함을 줄 수도 있을 것이나 한 번도 맛보지 못한 황홀감을 우리는 먼저 만나게 될 것이다. 시인의 말 밤의 계단을 오르며 생각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건 산송장 같은 일이라고, 보고 듣고 알고 죽은 듯 살아간다 또 하루를 살아간다 안녕, 밤의 빛나는 두 귀! 부기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 2022년 1월 송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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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들은(산문 투의 진술일지라도) 곧잘 옆길로 샌다. 옆길이 더 유혹적이라고? 그보다는 “어릴 적 깊은 홍수가 방 한가운데를 쓸고 지나간 뒤 초록 눈동자의 어머니가 석유난로에 끓여 주던 하얀 쌀밥”의 기억을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누워 있거나 만행을 하는 발견의 발정”으로 뒤틀어 버리는 것(「석류와 석유의 오묘한 뜻」)이다. 현실을 토대로 말하지만, 그 현실은 차츰 언어의 미로 공간으로 난입한다. 현실의 단면들 하나하나는 그러한 굴절을 통해 다른 세계를 표출한다. “우리는 괴물이 되지 말자 말한 사람이 더 괴물이 되고 괴물의 아이를 낳고 괴물의 아이들은 자라 진달래꽃 나라에 세금을 낸다”(「진달래꽃 나라」)는 변전의 놀라움.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상상을 나누거나 분리하기보다는 함께 말로 뒤섞어 얽어 짬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직조해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 세계는 결국 비극적 현실의 연장이며, 언어로 가공된 현실의 꿈과 자각이다. 그는 그 사실을 ‘침묵이 아닌’(「침묵의 형태」) ‘말’로 낯설게 드러내려 애쓰는 게 시인이라고 믿는다. - 이하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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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은 말과 말 사이를 보는 시인이다. 말과 말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그 사이를 다시 말로 채워서 신나게 말잔치를 벌여 놓는 시인. 그 말의 대잔치에서는 석류와 석유도, 친절과 전철도, 토마토와 톱도 원래는 아주 가까웠던 사이인 것처럼 사이좋게 만나서 논다. 한바탕 질펀하게 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로 돌아가지만, 한바탕 질펀해진 말잔치를 구경한 입장에서는 영영 그 사이를 잊지 못하고 석류와 석유를, 친절과 전철을, 토마토와 톱을 한데 묶어서 떠올릴 것이다. 뿐인가. 의미상으로도 발음상으로도 전혀 상관이 없는 꽃과 질병 사이에도 송진 특유의 ‘사이’가 개입하면 흥건한 사유의 잔치로 돌변한다. 뿐인가. 벼와 벼 사이에도, 개구리와 개구리 사이에도. 언어와 사물의 간극만큼이나 먼 ‘사이’가 있다는 것을 새삼 증명하는 방식으로 송진의 시는 힘을 발휘한다. 아득히 먼 사이를 가깝게 하고, 한 몸처럼 가까운 사이를 다시 멀게 만드는 힘. 그 힘에 기대어 눈물에서 별을 느끼고, 땀에서는 태양을 느끼게 하는 마법 같은 순간이 송진의 시에서는 ‘실화’처럼 벌어진다. 우리들 언어의 허상 같은 순간을 벼락처럼 깨쳐 주는 마력이 송진의 시에는 어김없이 들어가 있다. 어찌 거부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의 온갖 ‘사이’에서 벌어지는 그 말의 흥겨운 잔치를, 놀라운 발견을. - 김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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