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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몽군(강기희) | 빼앗긴 죽음(이성아) | 손님(홍명진) | 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최용탁) | 돼지 아빠(신혜진) | 붉고 푸른 못(이시백) | 벌레들(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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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하늘이다. 우리의 하늘을 지켜 내자!”
무창이 준태가 들으라는 듯 크게 소리쳤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왈길의 소재지를 발설하지 말라는 뜻을 담은 외침이었다. 준태가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낮에 형청으로 끌려간 준태는 밤이 이슥해서야 옥사로 돌아왔다. 그는 여기저기 피멍이 들어 있었으며 힘이 들었던지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무창아, 저놈들은 사람이 아니다…….” ---「동몽군」중에서 이 얼마나 가련한 생이란 말입니까. 그러니 살아야 할까요? 살아있다 보면 좋은 날을 볼 수 있을까요? 하긴 이제 죽음조차 제 것이 아니니, 어떻게든 살아 보아야겠습니다. 온갖 오욕과 치욕과 고통을 견디어 내고 질기게 살아남으렵니다. 원수의 감옥에서라도 살아남아 해방된 조국을 보고야 말겠습니다. ---「빼앗긴 죽음」중에서 언젠가 엄마도 그랬다. 바닷속으로 들어가면 이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만난다고. 물속에선 눈물도 안 나고 한숨도 안 난다고. 어쩌면 엄마도 명희 언니처럼 바닷속 끝까지 닿아 다시는 이 세상으로 떠오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손님」중에서 제복들이 가슴에 매었던 도시락에서는 밥이 아닌 총알이 나왔다. 얼굴에서 땀을 줄줄 흘리며 제복들은 계속 총을 쏘아 댔다. 사실 내가 인간들에게 약간 감탄하는 것은 이런 면이었다. 인간들은 아무리 힘이 들어도 무언가 해야 할 일이면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족속인 것 같았다. 엄청나게 큰 나뭇짐을 지게에 지고 헐떡거리며 산을 내려가는 사람이나, 괴로운 얼굴빛을 하고도 쉬지 않고 깨밭을 매는 농군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여러 생령들 중에 두 발 달린 인간들만이 하는 특이한 것이었다. 아마 오늘 골짜기에 와서 서로 총을 쏘고 총을 맞고 하는 것도 내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일상사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중에서 잘은 모르지만 삼촌은 사람들이 다 같이 잘살 수 있는 세상을 바랐던 게 아닐까. 삼촌 딸이라고 오해받는 게 싫고 이 집이 지긋지긋해서 삼촌이 죽어 버렸으면 하고 바랐는데 오늘부터 뭔가 달라질 것만 같다. 친구들이 놀리는 ‘돼지 년’ 소리도 더 이상은 아영이의 화를 돋우지 못할 것만 같다. ---「돼지 아빠」중에서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옆자리의 창호 아저씨가 죽어 있었다. 미처 삼키지 못한 못이 목덜미 밖으로 비죽 튀어나와 있었다. “불거져 나온 못대가리는 망치가 약이래잖여.” 호프집 장 씨의 말이 뒤늦게 가슴을 두드렸다. 붉고 푸른 못. 그것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삼켜지지 않은 채 백 씨의 가슴팍에 박혀 붉고 푸르게 녹슬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_「붉고 푸른 못」 그는 문득 저 많은 촛불 가운데 자신에게 메일을 보냈던 카프카의 여인이 들고 있는 촛불은 어느 것일까 생각했다. 왠지 아득한 느낌 속에서도 그는 그녀의 촛불이 그녀의 언 몸 전체를 다 녹일 만큼 밝고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밤, 그렇게 유리창 안과 밖에서 한 벌레가 다른 한 벌레를 서로 바라보고 있었다. ---「벌레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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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왜 알아야 할까?
“여러분의 오늘은, 그분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바로 그날입니다” 일찍이 단재 신채호 선생은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며 나라를 되찾을 희망이 ‘역사 알기’에 있음을 말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역사 알기’는 소리만 요란할 뿐 많은 부분 왜곡되거나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8?15가 뭔지, 광복절과 건국절이 어떻게 다른지, 역사적 사관까지 갈 것도 없이 지금 우리를 있게 한 피땀 어린 역사가 끊임없이 폄훼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안타까움을 넘어 절망스러울 지경이다. “말 안 들으면 삼청교육대로”라며 인권 유린의 끔찍함을 가볍게 생각하거나 “5·18민주화운동” 같은 민주화를 위해 치러야 했던 값진 투쟁은 예사로 깎아내려지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는 야스쿠니 젠틀맨”, “위안부는 독립운동을 했던 곳” 같은 말장난에서 보이는 것처럼 역사를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대다수 십 대들의 현실은 온전히, ‘역사 바로 세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 기성세대들의 책임이다. 역사테마소설집『벌레들』은 온몸으로 불의에 맞서 싸운 사람들, 영문도 모른 채 희생당한 안타까운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스러져간 사람들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그들이 그토록 간절히 염원한 ‘그날’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는 ‘오늘’임을 인식하는 것에서 ‘역사 알기’도 시작될 것이며 우리가 왜 역사를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되기도 할 것이다. 역사, 세상을 진화시키는 힘 『벌레들』에 수록된 일곱 편의 단편소설은 우리나라의 민주, 인권, 평화의 주춧돌이 된 근·현대사의 주요한 사건, 인물 혹은 특정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지왈길 접주가 생포되어 효수되기까지의 며칠간, 강원도 동학의 마지막 현장을 한 소년의 눈으로 그려낸 강기희의 「동몽군」, 무력항일독립운동단체였던 의열단원 실존인물 김지섭 선생을 화자로 한 이성아의 「빼앗긴 죽음」, 물푸레나무 한 그루가 들려주는 충청도 어느 산골에서 벌어진 국민보도연맹의 처참한 학살 현장을 그린 최용탁의 「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 아버지를 따라 부모님의 고향인 제주에 간 한 소녀의 눈에 비친 제주4?3의 상흔을 담은 홍명진의 「손님」, 특유의 입담과 해학으로 전두환 독재정권의 유물 삼청교육대를 소재로 삼아 오늘날 현실 속에 만연한 폭력을 성찰한 이시백의 「붉고 푸른 못」, 돼지치는 바보 삼촌의 비밀을 통해 부마항쟁을 건드린 신혜진의 「돼지 아빠」와 함께 표제작이기도 한 이순원의 「벌레들」은 한 보수언론의 논설위원에게 날아든 완곡한 항의메일에서 시작해 유신시대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2002년 대선현장, 미군장갑차에 치인 두 여중생의 죽음을 추모하는 광화문 촛불 시위까지 자연스럽게 담아내고 있다. 「동몽군」의 무창과 같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빼앗긴 죽음」의 김지섭 선생과 같은 사람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당당한 주권국가의 국민으로 살 수 있었을까? 미선이와 효순이를 추모하며 광화문에 타올랐던 촛불 없이 과연 SOFA협정의 불합리한 부분이 부분이나마 개정될 수 있었을까? 독자들은 일곱 편의 작품을 통해서 상처로 기억되는 역사, 갈등과 반목으로 대립하는 역사일지라도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집의 의도와 콘셉트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건 각 작품 말미에 작가의 말이다. 허구와 현실이 만나는 순간 충격과 혼란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길 기대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