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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자의 공동체
한승태
걷는사람 2023.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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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몸뚱이 하나를 밤비는 언제 다 적시나

남은 햇살을 쥐고
강 같은 평화
산소에 올라
울음이 찾아왔다
당신이라는 안부
이미 나는 잃었다
아는 얼굴
다행이다
그 때문인지 몰라
위가 늘어난 사람이 되어
고향의 봄
휴일
스위트 홈
차례
~하고 울었다

2부 별의 목소리 겹쳐 들었다는 그때

멧비둘기
나뭇잎은 벨라차오 벨라차오
더 필요하다
울음 한 그릇
바다엘 갔다 너와
손톱자국
외발 썰매
산에 들다
어른이라는 말
소래포구에서
까마귀
소문
여담
고래와 나

3부 어제 그리고 오늘

일일 교대
돈벌레라는데
꿈틀거리는 어둠
아무의 얼굴
피라미드
고마워, 알지?
단단해지는 것들
붉은귀거북
나의 안쪽
만성피로
동행
다만 다리 밑을 흘러왔다
아전, 인수의 나라
그녀의 웃음소리뿐
더 킬러 라이브
안전하다
굴뚝의 연대

4부 중간놀이

최선을 다해 실패할 것이다
출근길
중간놀이
신석기 뒤뜰
골목대장
전문가라는 직업
장생포에서
닮았다는 우리
눈먼 항해사
식솔

해설
능동적 순응의 운명애
―박다솜(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강원도 내린천에서 태어나 2002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바람분교』 『사소한 구원』, 산문집 『#아니마-시와 애니메이션의 미메시스』를 냈으며, 1회 실레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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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2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124쪽 | 136g | 125*200*20mm
ISBN13
9791193412176

책 속으로

당신은 딸아이의 실내화를 빨고 있었고
나는 맞은편에 앉아서 이를 닦고 있었지
칫솔은 실내화의 겉은 물론 깔창까지
닦고 또 닦았어 꺼끌꺼끌한 혓바닥까지

건강하세요 그리고 행복하세요
라는 말은 일회용 컵에 쓰인 말

딸 얘기는 핑계였겠지 그랬을 거야
소양댐 아래 세월교 한가운데 차를 세웠지
오른쪽으로 들어온 격랑이 왼쪽 귀로
다만 지나는 것인지 넘어서는 것인지
---「당신이라는 안부」중에서

산에 오르니 양지 녘 눈길이 녹고 있었다
그늘까지 녹으려면 꽤 지나야겠지만 오는 봄을 막지 못하듯

서너 명 걷던 길이 때로 한두 명 걷는 길로 바뀌는데

(중략)

그런 길을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걸어오셨단다

이 산에 와서 먼저 길을 넓힌 이여
그대가 아홉에 스물에 서른에 무엇에 혹해 여인을 만나고 아일 낳았는가!
나도 안다 이렇게 왔으니 가야 한다는 거
아내의 손을 잡고 딸의 손을 잡고 걸었던 길

꼭 뭔가 있을 것만 같은 성묫길에
겨울은 간다 가고야 만다
---「차례」중에서

바다에 가서 울었다
엉키고 굴곡진 마음이 평평해졌다

바다는 울기에 좋았다
---「~하고 울었다-재동에게」중에서

춘천엔 청평사라는 절이 있어 누구나 거기에 가면 사랑한다네
토굴에서 시작되었을 기도는 골짜기와 산을 불국토(佛國土)로 만들었지
연한 찻잎만 따서 공양하던 진락공(眞樂公)의 연꽃이 사랑으로 바뀐 거지
마음은 어디부터 시작할까 몸은 어디부터 내 몸이고 너에게 어떻게 건너갈까
---「나뭇잎은 벨라차오 벨라차오(Bella Ciao)」중에서

십일월의 숲은 깊고 여전히 상투적이다
낙엽보다 떨구지 않은 잎이 많아 보였다

아직 가기 싫은 모양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일하는 분들이 다른 사람의 무덤을 팠다

자연에 실수란 없다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도 하는 거라 어깨를 다독이는데

나뭇잎이 꼭 떨어져야 하는 건 아니라고
하늘의 나팔 소리를 들었다는 인간도 있다
---「어른이라는 말」중에서

그저 품어 줄 친구가 되려니 하고
철길 따라 걸었지, 이미 사라진 협궤열차
포구는 자신의 활력과 횟감으로 유혹하는 황혼
티브이는 종일토록 듣는지 마는지 떠들고
소금 바람은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개펄은 너를 먹여 살렸다며 발목을 잡았다
지나는 이들은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같이 좀 살자고 장사치는 팔을 잡아끄는데
---「소래포구에서」중에서

가다 가다가 이게 아닌 것 같아도 갈 수밖에 없는
가족을 애인을 일렬종대로 줄 세운 벌레여
징그럽고 아름다운 나여
갈 곳도 모르면서 그 많은 다리를 절룩거리는
---「돈벌레라는데」중에서

연봉과 서열에 따라 악악대다가
겸연쩍거나 뻔뻔한 속삭임으로
바위며 모래톱에 거품의 자서(自敍)를
지난하게 새겨 넣으며 흘렀다 개천이라도
쌓이는 모래 두께는 굽이마다 달랐으니
오래 서성였던 윤슬이며 일렁이는 이야기는
교각 아래 쉼이 없다 개천은
흐르는 대로 흐르고 흘러
모래톱에 물길을 새길 뿐이다
---「다만 다리 밑을 흘러왔다」중에서

모르는 이의 수고가 없다면 하루도 살기 힘든 나는 끊임없이 무엇 하나 온전치 못한 나사와 볼트를 만들어 왔다 조립하여 판매하는 회사에서, 판매한 노동으로 집을 빌리고 옷을 샀다 고길 사다 냉장고에 잔뜩 쌓았다 쌀알이 어떻게 여물고 어떻게 내게 오는지 모르고 이웃과 칸막이를 했다 아무 불편이 없이, 미세먼지의 하늘 아래 불구를 꿈꾸었다

---「전문가라는 직업」중에서

출판사 리뷰

걷는사람 시인선 104
한승태 시집 『고독한 자의 공동체』 출간

“징그럽고 아름다운 나여
갈 곳도 모르면서 그 많은 다리를 절룩거리는”

사회 공동체의 일부로 살아가는 단독자들
최선을 다해 실패하려는 단단하고도 굳건한 마음


2002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한승태 시인의 시집 『고독한 자의 공동체』가 걷는사람 시인선 104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시집 『바람분교』 『사소한 구원』과 산문집 『#아니마―시와 애니메이션의 미메시스』를 집필하며 왕성한 활동을 선보여 온 시인 한승태의 새로운 행보다. 특히 이번 신간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위에서 시간과 삶의 퇴적이 오롯이 담긴 흔적을 정직하게 기록”(신철규 시인, 추천사)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우리는 왜 고독할 수밖에 없는가. 시인은 이 질문에 골몰하며 가만히 걸음을 옮긴다. 진솔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자신만의 시 세계를 구축하는 시인을 따라 발을 옮기다 보면, 과열된 공동체의 일부로 존재하는 화자들이 보인다. 이들은 “내 맘대로 되는 거 하나 없는”(「출근길」) 세계에서 저마다의 자리를 책임감 있게 지켜내며 “연봉과 서열에 따라”(「다만 다리 밑을 흘러왔다」) 구분되는 삶을, “허기진 영혼마저”(「신석기 뒤뜰」) 빼앗기는 기분이 드는 현실을 묵묵히 감내한다. 오직 한 번의 쓰임을 위해 만들어진 “일회용 컵”에 적힌 “건강하세요 그리고 행복하세요”(「당신이라는 안부」)라는 빤하고도 씁쓸한 안부와 “건너편 옥상에도 나와 같은 의자들”(「꿈틀거리는 어둠」)이 나란히 놓여 있는 쌉싸름한 장면이 거대하고도 일상적인 고독을 들춰내며 자본주의 사회의 면면을 투시한다.

시인의 통찰이 비단 거대한 공동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한승태의 시 세계에선 모양도 크기도 다른 여러 가지 형태의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들이 서로의 삶을 살피고 이해하기 위해 힘쓴다. “사는 소리”(「다행이다」)를 만들어내며 적막한 삶에 온기를 보태 주는 애틋한 이들, “모르는 이의 수고가 없다면 하루도 살기 힘든”(「전문가라는 직업」) 현실을 받아들이고 서로의 수고에 감사할 줄 아는 태도를 지니는 마음들까지도 섬세하게 보듬는 것이다. 그러니 삶을 공유하는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과 믿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낡지 않고 함께 살아가겠다는 다짐은 생이 꿈틀거리는 감각을 묘파하는 것으로 이어지며,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는 일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단독자들이 서로의 존재를 위로 삼아 더 멀리 발을 떼어 보는 풍경은 눈부시다.

그런가 하면 시인은 자연을 통해 지금 현실을 돌파하는 듯 보인다. “자연에 실수란 없다 사람이기 때문에/실수도 하는 거라”(「어른이라는 말」)는 위로나, “바다는 울기에 좋았다”(「~하고 울었다」)라는 고백처럼, 무릇 시란 우리가 가진 각자의 울음을 두기에 가장 알맞은 곳을 찾기 위해 떠나는 여행인지 모른다. 시인은 다만 “겨울은 간다 가고야 만다”(「차례」)라는 진실을 안다. 그러니 “그저 품어 줄 친구가 되려니 하고”(「소래포구에서」) 서로의 곁을 묵묵히 지켜 주는 것이 고독으로 가득한 생을 대하는 우리의 소임이라고, 시인은 말하는 듯하다. “작은 울음은 울음끼리 뭉쳐 밤하늘에 둥그러지”(「울음 한 그릇」)듯이, “먼 데를 떠돌던”(「울음이 찾아왔다」) 조그마한 개인인 우리가 모여 또 하나의 공동체로 완성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희망적이다. “마음은 어디부터 시작할까 몸은 어디부터 내 몸이고 너에게 어떻게 건너갈까”(「나뭇잎은 벨라차오 벨라차오」)라는 속삭임이 유효한 것은 그 때문이리라.

해설을 쓴 박다솜 문학평론가는 이 시집이 “공동체를 와해시키고 인간을 자연과 멀어지게 만든 산업화를 비판”하는 지점에 주목하며 “한승태의 시적 화자는 속절없는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상실된 것들을 애도하는 한편,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일의 어려움을 노래”하고 있다고 밝힌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삶은 결국 실패란 것을, 따라서 나 역시 실패할 것을 알지만 ‘최선을 다해서’ 그것을 하겠다는 결연한 다짐”을 한승태의 시에서 짚어낸다. “그늘까지 녹으려면 꽤 지나야겠지만 오는 봄을 막지 못하듯”(「차례」), 이 책은 고독할 수밖에 없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을 해 드는 방향으로 안내한다.

시인의 말

중얼거리는 사람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어두운 방 한 칸 없이 살아왔다. 사방이 유리인 방에서 어둠을 한사코 밀어내며 살아왔다. 자면서도 불을 끄지 못했다. 엘이디 불빛을 가둔 내면, 스스로 발광해 왔다. 불현듯 오십 대, 그렇게 내 캐릭터는 만들어졌다. 밥알 한 알까지 꼭꼭 씹어 먹듯 맨발로 걸어 본다. 느린 보사노바 리듬으로 미워하지 말자 이제 미워하지 말아야지 하며, 몸에서 매일 태어나고 죽는 것들, 아침의 꽹과리 소리에 깨어나는 것과 함께 나는 여기 있다. 괴롭다는 착각 속에.

2023년 겨울 초입
한승태

추천평

다리 밑으로는 물이 흐른다. 물은 넘실거리며 교각에 높이의 흔적을 남긴다. 홍수가 들었을 때는 불어난 물이 격랑이 되어 간혹 다리를 넘기도 했을 것이고 가뭄이 들어 교각의 아래쪽에 물길의 흔적을 간신히 남기기도 했을 것이다. 한승태의 시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위에서 시간과 삶의 퇴적이 오롯이 담긴 흔적을 정직하게 기록한다. 과거를 향하는 시선은 애수와 그리움을 드러내며 현재를 향하는 시선은 냉혹한 삶의 기율을 투시한다. 손수 자신이 쓸 것을 짓거나 만들고 그것을 나누며 살던 평화롭고 온전한 삶은 이제 여기에 없다. 노동을 팔아서 생산의 결과물이 아닌 교환 가치로 환산된 화폐를 받는, 유령 같은 ‘전문가’의 세계에서 온전한 삶은 불가능해졌다. 우리는 그러한 온전한 세계에서 “얼마나 멀리/미끄러져 왔나”(「외발 썰매」). 시인은 온전했던 과거로부터 떨어진 거리를 가늠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그렇게 떠밀려 온 흐름의 속도와 굴곡을 느끼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비에 젖은 몸뚱이로 어둠을 뚫고 스스로 ‘발광’하면서 ‘맨발’로 이 길을 걸어왔다. 그보다 먼저 갔거나 그를 스쳐 간 사람들의 삶이 그의 가슴에 수많은 금을 그었다. 그들이 지나간 길을 걷는 것은 나를 듣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 사이로 ‘사는 소리’가 들린다. 이웃집의 소음, 가족의 숨결, 삶의 애환이 담긴 넋두리, 오랜 벗들의 안부,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흐느낌이 우리 삶을 에워싼다. 그것은 서로 살아 있음을 알리는 것이기에 ‘사는 소리’는 ‘살리는 소리’이기도 하다. “엉키고 굴곡진 마음”(「~하고 울었다」)이 둥근 울음과 평평한 금이 되어 윤슬로 부서지는 바다가 바로 이 시집이다. - 신철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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