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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관하여 / 러스킨에 의한 아미앵의 노트르담 / 샤르댕과 렘브란트 / 렘브란트 / 와토 / 귀스타브 모로의 신비세계에 관한 노트 / 화가, 그림자, 모네 /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와 엘리자베스 시달 / 역자해설 ? 프루스트, 러스킨, 그리고 화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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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관하여 / 러스킨에 의한 아미앵의 노트르담 / 샤르댕과 렘브란트 / 렘브란트 / 와토 / 귀스타브 모로의 신비세계에 관한 노트 / 화가, 그림자, 모네 /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와 엘리자베스 시달 / 역자해설 ? 프루스트, 러스킨, 그리고 화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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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추억을 입체적, 감각적 묘사로 생생히 살려낸 숨겨진 걸작
영국의 대문호 러스킨은 본래 미술 평론가로서 활동을 시작했으나, 점점 사회정의 실현에 중점을 두면서 예술에 있어서도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이 아름답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프루스트는 당대의 많은 사람들처럼 러스킨의 열렬한 애독자였지만, 7년에 걸쳐 그의 책 두 권을 번역하는 동안 점점 그에게 반발하여 자신만의 예술관을 세우게 된다. 따라서 이 글들은 프루스트가 러스킨에게 받은 영향과, 이를 통해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완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표제작 〈독서에 관하여〉는 특유의 서정적이고 호흡이 긴 문장으로 유년기를 생생히 되살리고 있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숨겨진 속편처럼 반갑게 읽힌다.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을 읽을 때 친구가 와서 같이 하자는 놀이, 페이지에서 눈길을 돌리게 하거나 자리를 바꾸게 만드는 귀찮은 꿀벌이나 한 줄기 햇빛, 손도 대지 않은 채 옆에 있는 벤치 위에 밀어둔 간식, 파란 하늘 속으로 해가 점점 그 힘을 잃어가면 집에 들어가서 먹어야 하는 저녁식사, … 만약 지금도 다시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뒤척이기라도 하면 그 책들은 묻혀버린 날들을 간직한 유일한 달력들로 다가오고, 그 페이지들에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저택과 연못 들이 반사되어 보이는 것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독서에 관하여》 17쪽 그러나, 프루스트는 느긋하고 매혹적인 수다에 그치지 않고 독서와 예술에 대한 통찰로 나아간다. 우리 내부에 위치한 장소들의 문을 열어주는 존재로 남아 있는 한 독서는 우리의 삶에 유익하다. 반대로 독서가 정신의 개인적인 삶에 눈을 뜨게 하는 대신에 그것을 대체하려 할 때 위험해진다. 그럴 때면 진리는 … 수동적으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이미 준비된 꿀을 음미하는 것과도 같이 서재 선반들에 꽂힌 책들에 손을 뻗어 닿기만 하면 되는 물질적인 것이며, 위험한 존재가 된다. -《독서에 관하여》 38쪽 프루스트에게 독서의 의미란 책의 내용이 아니라 어떻게, 어디서, 무엇을 느끼며 읽었는가 하는 것이다. 책을 쓴 작가보다 그것을 읽는 독자의 역할에 더 큰 비중을 싣는 셈이다. 그는 특히, 러스킨이 도덕으로 예술을 평가했듯 예술에 절대적 가치를 갖다 대는 것은 ‘이상적’ 예술에 현실을 끼워 맞추는 ‘우상숭배’로 이어진다며 강력하게 비판한다. 이는 책(예술작품)의 내용과 작가(예술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독서(예술)론에 정면으로 던지는 반박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예고하는 프루스트 예술론의 시작 러스킨을 탐독하고 반박하면서, 프루스트는 번역자를 넘어 독창적인 소설가로 거듭나고 마침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창작에 이르렀다. 거창한 주제보다 진솔한 자신만의 표현방식이 작품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신념으로, 프루스트는 평범한 부르주아 청년인 자신의 삶을 불멸의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 같은 그의 예술론은 고전에 대한 맹목적 ‘우상숭배’에 빠지기 쉬운 현대의 독자에게 좋은 귀감이 되며, 항상 새롭게 읽히는 ‘살아 있는’ 고전을 지향하는 《위대한 생각》 시리즈의 첫 권으로서도 손색이 없다고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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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그 무엇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
1894년, 프랑스를 비롯해 전 유럽을 뒤흔든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났다. 드레퓌스라는 이름의 한 장교가 독일군과 내통한다는 혐의를 받게 되었다. 그가 내통자가 아님을 가리키는 명백한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드레퓌스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국가 안보와 군대의 권위를 위해 논란을 잠재우는 것이 모두에게 이롭다는 이유로 비공개 재판을 통해 유죄를 선고 받았다. 드레퓌스와는 일면식도 없던 에밀 졸라는, 당시 상원의원 쉐레르-케스트네르를 비롯해 드레퓌스의 결백을 밝히고자 했던 이들의 노력에 힘입어 드레퓌스의 결백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은 사건의 진위를 밝히기보다는 마녀사냥을 즐기는 반유대주의 여론을 등에 업고 드레퓌스를 진범으로 몰아갔고, 이러한 상황에서 졸라는 드레퓌스의 결백을 옹호한다면 당시 프랑스 최고 작가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자신의 명성과 이미지에 큰 타격이 올 것임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는 ‘공화주의와 자유와 토론을 중시하는 정부가 통치하는 이 19세기에 과거의 절대왕정 시대에나 있었을 법한 사악한 일이 자행되는’ 것을 막고자 펜을 들기로 결심했고 ‘무슈 쉐레르-케스트네르’를 시작으로 열세 편의 격문을 발표하며 진실과 정의를 옹호했다.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그 무엇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 악의적인 무리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때가 되면 진실은 어김없이 한 걸음씩 전진하게 될 것이다. 진실은 모든 장애물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그 앞을 가로막거나,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진실을 땅속에 묻어 놓아 보라. 그러면 진실은 그 속에서 힘을 축적하면서 때를 기다리다가 다시 땅 위로 솟아오르는 날, 강력한 폭발로 주위의 모든 것을 휩쓸어 가게 될 것이다. -《전진하는 진실》 157쪽 ‘인간적 양심의 위대한 한 순간’ 에밀 졸라, 영혼의 외침 조지 오웰은 “보편적인 기만의 시대에 진리를 말하는 것이야말로 가히 혁명적 행위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쥘 게드가 ‘세기의 가장 위대한 혁명적인 행위’로 규정지은 ‘나는 고발한다...!’는 드레퓌스 사건 전개에 일종의 전기를 마련한 글로, 졸라에게는 ‘진실과 정의의 폭발을 앞당기기 위한 혁명적 수단’이었다. 〈로로르〉 지에 발표한 이 글에서, 졸라는 숨겨진 진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드레퓌스 사건의 흑막을 공개적으로 고발하여 스스로를 법정에 세우며 논란에 불을 붙였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오랫동안 고통받아 왔으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 인류의 이름으로 진실을 밝히는 것뿐입니다. 나의 열렬한 항의는 곧 내 영혼이 외치는 소리입니다. -《전진하는 진실》 215쪽 ‘나는 고발한다...!’가 발표된 후, 미국의 마크 트웨인은 〈뉴욕 헤럴드〉 지를 통해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졸라를 향한 깊은 존경과 가없는 찬사에 사무쳐 있다. 군인과 성직자 같은 겁쟁이 위선자 아첨꾼들은 한 해에도 백만 명씩 태어난다. 그러나 잔 다르크나 졸라 같은 인물이 태어나는 데는 5세기가 걸린다.” 보편적인 기만의 시대에 진실과 정의를 외친 혁명가 에밀 졸라는 투쟁을 계속하던 중 1902년 의문의 가스 중독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백여 년의 시간이 훌쩍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역사의 과오가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진실과 정의가 지극히 상식적인 것임을 외치며 자신과 같은 ‘영웅’이 필요 없는 세상을 우리에게 물려주고자 했던 졸라의 목소리가 다시금 생생하게 귓전에 울려 퍼지는 듯하다. 나는 진실이 승리하는 날까지 글로써 투쟁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결국에는 진실이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나 홀로 모든 언론과 정부 그리고 여론에 맞서 싸우게 될지라도 말입니다. 게다가 그 결과에 대해서는 조금도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에 진실이 영영 묻혀 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드레퓌스 대위의 결백을 믿습니다. 저열한 언론이 내게 온갖 욕설을 퍼붓고 모욕을 주어도 나를 침묵하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전진하는 진실》 40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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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한 유머와 신랄한 풍자로 그려낸 산업혁명기 런던의 실상
불면증 환자였던 디킨스는 밤새 런던 거리를 걸으며 화려하고 비참한 이 도시의 양면성을 목격하였고, 그 내용을 ‘비상업적인 여행자’라는 이름으로 연재했다. 이 에세이들에서 그는 놀라울 정도로 광범위한 시사 문제들에 관심을 보인다. 유독 물질로 인해 병든 공장 노동자, 빈민 노역소의 열악한 환경, 가난뱅이들의 주머니를 털어먹는 경마 사기꾼들, 장기 실업자인 남편 대신 삯일로 식구들의 입에 풀칠을 하는 아낙네, 남이 받은 동냥까지 빼앗으려 달려드는 부랑아들……. 파이 장사꾼의 마지막 화롯불과 함께 밤새 깨어 있던 사람들의 일상도 꺼져 가면, 거리 모퉁이에서 가장 먼저 아침밥을 파는 노점의 화로에 불이 붙는다. … 그런 시각에 귀가하는 일이 런던에서 가장 비참한 일은 아니며, 런던에서 가장 형편없는 지역이라고 해서 집 없는 노숙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필요하면 어디에서 온갖 악과 불행을 찾을 수 있는지 잘 알게 되었다. 다만 그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서, 내가 노숙자처럼 수 킬로미터의 거리를 그것도 혼자서 외롭게 돌아다니지 않았으면 절대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밤 산책》 25~26쪽 디킨스가 ‘비상업적인’이라는 말을 택한 데는 ‘상업’이라는 말의 부정적 이미지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의도도 있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프랑스와의 통상조약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표면적으로는 전쟁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지만, 많은 이들은 윤리보다 상업적 동기로 인한 정책이라며 비판했다. 이처럼 ‘대량, 대규모’를 중시하는 공리주의의 비인간성은 디킨스의 주요 비판 대상이었다. 공리주의는 빈곤의 원인을 개인의 나태에 돌리고 복지가 빈민을 의존적으로 만든다는 이론을 내세웠다. 디킨스는 이에 단호히 반대했으며, 손쉽게 가난한 이들을 탓하는 대신 부패한 공직자들에게 날선 비판을 가한다. 훗날 마르크스는 디킨스에 대해 “혁명을 옹호하진 않았어도 정치인이나 학자들보다 더 많이 정치, 사회적 진실에 대해 말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요즘 런던 시내에 가면 내가 무척이나 교활한 인간이 된 것 같아 서글퍼진다. … 그때 나는 영국 상인이자 시장님을 떠올리며 숭배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요즘 그곳을 걸어 다니면 신성한 국가 공무원의 제복을 비웃고, 가장 흔한 농담거리로 전락해버린 기업들에 대해 분개한다. … 하기는 내가 그때, 그 훌륭한 사람이 이 사람을 이 자리에 앉히고 저 사람을 저 자리에 앉히며, 이 사람의 채권자와 담판을 짓고, 저 사람의 아들을 부양하고, 이 대형 합자회사의 확실성에 ‘투자하고’ 저 생명보험회사의 명단에 자기 이름을 올려놓지만,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밤 산책》 38~39쪽 젊은 시절 런던 거리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사회를 비판하는 익명 기사를 쓰던 저널리스트 디킨스는, ‘비상업적인 여행자’라는 페르소나를 통해 풍자 작가이자 르포 기자, 나아가 당대를 대표하는 에세이스트라는 복합적 면모를 보여주기에 이른다. 이 선집의 글들은 그러한 그의 진수를 보여주며,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대도시의 빛과 그늘을 좀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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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예술의 원료일 뿐이다
19세기 파리는 경제적·문화적으로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대량생산된 상품이 넘쳐나는 백화점과 부르주아들이 부(富)를 자랑하는 거리를 배경으로 새로운 예술이 등장하고 있었다. 그리스·로마 미술을 번지르르하게 모방한 신고전주의로 대표되던 부르주아의 미적 관념을 거부하고 현대의 일상을 솔직하게 재현한 이런 예술을 보들레르는 ‘현대’ 예술이라고 부르며, 기스는 이 예술의 거장이다. 이는 자연주의와는 다른데, 보들레르는 예술가의 상상력으로 ‘교정’되지 않은 자연을 경멸했기 때문이다. 대기가 새의 활동영역이고 물이 물고기의 활동영역이듯, 군중은 그의 활동영역이다. 그의 열정과 그의 직업, 그것은 군중 속에 몸을 섞는 것이다. 자기 집을 벗어나 있기, 하지만 어디서든 자기 집인 양 느끼기. 세상을 바라보기, 세상 한가운데 있으면서 세상 속에 숨어 있기. … 관찰자는 여기저기에서 자신의 익명성을 즐기는 군주다. … 일반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거대한 전기 에너지 저장소로 들어가듯 군중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또한 그 사람을 이 군중만큼이나 거대한 거울에 빗댈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움직일 때마다 다양한 모습의 삶을, 삶의 온갖 요소들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아함을 비춰주는, 인지력을 갖춘 만화경에다가도.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 25~26쪽 과거에 예술의 임무는 아름다움을 정확하고 완벽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객관적 아름다움이 존재하지 않는 현대에 아름다움은 예술가를 통해서만 존재하는 주관적 창조물이 되었다. 예술가는 역사 속에서 유행이 담아내는 시적인 그 무엇을 끌어내야 한다. 세상의 ‘영원한 덧없음’을 재현할 수 있는 한 예술은 자연보다 아름답다. 예술이 아름답다면 삶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예술가의 미적 능력 때문이며, 그것이 예술가가 현대라는 ‘폐허’를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예술의 덧없음과 영원함을 위하여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에 묘사된 19세기 여성들은 터무니없이 큰 리본과 어색하게 든 부채 등 유행을 좇은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며 남자들을 곁눈질한다. 그런데 한편, 이들은 당대의 그 어떤 예술작품보다도 동시대적으로 느껴진다. 안나 카레니나 같은 명작소설의 히로인이 현대로 옮겼을 때 패션 화보의 여배우와 같다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친숙한 이 여성들은 SNS의 사진 속 우리들 모습 같다. 재단사가 만들어준 우아한 의상을 걸치고 이발사가 다듬어준 머리를 한 얼간이들 가운데 한 명이, 안팎으로 환히 밝힌 유리창에 기댄 채 카페 문간에 나와 있다. 그의 곁에는 정부가 요긴한 발받침 위에 두 발을 올려놓은 채 앉아 있는데, 이 여인은 행실은 나쁘지만 귀부인처럼 보이기에는 부족한 게 거의 없다. … 이 두 존재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다. 뭔가를 보고는 있는 걸까· 어리석음의 나르시스인 그들이, 자신들의 이미지를 반사하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군중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사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쾌감보다는 관찰자의 쾌감을 위해 존재한다.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 75~76쪽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는 시시하고 하찮은, 그러나 영원한 존재들에 바쳐진 화려한 수식이다. 보들레르는 들라크루아를 동경했으나 사실상 기스에 더 가까웠다. 그는 부르주아를 혐오하고 조롱했지만, 그들이 자신의 주된 독자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예술이 더 이상 아름다움의 재현이 아닌 시대에 예술가의 새로운 역할을 성찰한 이 글로써,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도래하기 백 년도 더 이전에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를 허문 선구자가 되었다. 바야흐로 대중문화가 소위 순수예술보다 각광받게 된 지금, 진정 ‘현대의 삶을 그리는’ 예술가는 누구일까· 대답은 우리들의 몫으로 남겨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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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로 에머슨 전공자가 번역한 선집!
그대의 형이상학, 그대의 논리에 던지는 물음표 에머슨을 통해 인생을 다르게 살게 되었다 말하는 에머슨 전공자 서동석의 번역으로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이 선집은, 영미문학깨나 읽어 본 사람이라면 모두 들어 보았을 ‘에머슨’이라는 이름, 그러나 한 번도 국내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위대한 사상가의 정수가 되는 글 다섯 편을 뽑아 모은 책이다. 미국의 위대한 영혼, 혹은 미국적 상상력의 전형 식상하지만, 미국 문학은 에머슨을 빼고는 논할 수 없다는 말이 가장 정확하기 때문에 이 표현을 쓸 수밖에 없다. 미국을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시인, 오죽하면 그의 삶과 글을 다룬 평전이 그가 죽기도 전에 벌써 출간되었을 정도였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본인 역시 목사였던 에머슨은 그러나 종교의 형식과 교리에 회의를 느끼고 종교인이 될 것을 거부했고, 아들을 잃고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과정에서 자연에 기초한 새로운 질서를 발견해 가며 그의 순환론적 세계관을 확립했다. 이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힘이 자연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속에 혹은 둘의 조화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 자연은 언제나 영혼의 색을 지니고 있다. 불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쬐는 불의 온기 속에서도 슬픔을 느낀다. 그리고 죽음으로 친한 친구를 방금 잃은 사람에게는 풍경에 대한 일종의 경멸감이 깃들어 있는 법이다. 하늘은 그 가치를 못 느끼는 사람들에게 드리울 때는 장대함이 줄어든다. -《자연》 17쪽 풍경이란 보는 이의 감상과 시선이 공모한 환각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인식. 불행한 사람은 세상 모든 게 불행하게 보이고 행복한 사람은 사소한 모든 것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에머슨은 일상적인 듯하지만 인식하지 못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조화로운 삶을 주창한다. 여기서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는 원효의 ‘일체유심조’가 떠오르는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니다. 에머슨은 동양의 철학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19세기 미국문학의 르네상스를 이끈 인물이며 바로 이런 이유로 그의 사상은 오래도록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삶과의 연관성 속에서 그를 재조명하게 만든다. 가장 개인적인 21세기의 처세론 에머슨의 이름은 대체로 혼자보다는 《월든》으로 유명한 소로우, 혹은 해럴드 블룸이나 오바마 대통령과 나란히 놓일 때가 많다. 그는 소로우의 스승이었고,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에머슨의 책을 “성경 다음으로 가장 큰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말했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혹은 지루함의 상징이 된 이 미국의 위대한 영혼은 기꺼이 오해받으며, 기꺼이 바른 말을 하면서 세기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좋은 삶을 살 것을, 자유로운 삶을 살 것을 권하고 있다. 위대한 영혼은 일관성과 전혀 상관이 없다. … 그대가 현재 생각하는 것을 확고한 언어로 말하라. 비록 오늘 그대가 말한 모든 것과 모순될지라도, 내일은 내일 생각하는 것을 확고한 언어로 다시 말하라. 아, 그러면 그대는 분명 오해받을 것이다. 오해받는 것이 그렇게 나쁜 것인가? 피타고라스도 오해받았고 소크라테스, 예수, 루터,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뉴턴 등 육체를 가진 순수하고 현명한 정신은 모두 오해받았다. 위대한 것은 오해받는 법이다. -《자연》 102쪽 실제로 에머슨의 글을 읽으면 초절주의라는 낯선 단어가 오히려 그에 대한 이해를 막아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글과 메시지는 실용적인 동시에 철학적이고, 직접적인 동시에 영적이다. 그리고 에머슨은 그 ‘중도’를 삶으로 살아낸 시인이자 사상가였다. 이제 유명하고 거창한 누군가에게 감명 깊었던 사상가로서의 에머슨을 버리고 바로 나, 21세기의 독자 우리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와 닿는 위대한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을 만나 볼 일이다. 오늘의 독자를 위한 살아 있는 고전, 《은행나무 위대한 생각》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고전 논픽션 시리즈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내놓는 《위대한 생각》은 국내 최초의 ‘고전 논픽션’ 시리즈이다. 문학, 예술,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거장들의 치열한 삶, 솔직한 감정, 특별한 사유가 담긴 저술들을 소개한다. 지나치게 전문적이거나 난해한 내용은 지양하고, 광범위한 독자의 흥미를 살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된다. 저자의 삶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작품을 우선 채택하므로, 해당 저자에 입문하려는 독자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게다가 국내에 번역된 적이 없거나 부분 번역, 혹은 이미 절판된 작품 위주로 엄선하여 고전 애독자라면 놓칠 수 없는 시리즈가 될 것이다. 또한 전공자와 전문 번역자 들이 번역에 참여하여 유려한 텍스트는 물론 해설과 도판 등 작품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보충 자료도 제공한다. 논픽션의 특성상 읽다 보면 당대 정치?경제?문화에 대한 풍부한 배경지식도 자연히 얻게 된다. 낯익은 거장의 숨겨진 걸작을 만나다 프루스트를 처음으로 읽어보려고 하는데 가장 쉽고 재미있는 작품은 무엇일까? 평범한 소설가였던 졸라를 ‘행동하는 양심’의 표상으로 남긴 ‘나는 고발한다...!’는 어떻게 쓰였을까? 영국의 국민 작가 디킨스는 저널리스트로 먼저 유명해졌다는데 그가 쓴 잡지 기사들은 과연 어땠을까? 고전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귀가 솔깃할 얘기들이다. 프루스트는 ‘소설가’, 보들레르는 ‘시인’이라는 생각은 고정관념일 뿐이다. 지금까지 거장들의 일면만 알아온 독자는 《위대한 생각》을 통해 그들의 새로운 면모, 새로운 목소리를 접할 것이다. 고전문학과 인문교양 독자 모두를 만족시킬 선택 《위대한 생각》은 매번 새롭게 읽히는, 지속성과 현재성을 모두 갖춘 시리즈를 지향한다. 보들레르는 150년 전에 일찍이 예술의 현대성은 아름다움만 가지고 평가할 수 없으며, 순수예술과 대중문화가 동등한 지위와 가치를 지녔음을 통찰하였다. ‘미국 철학의 아버지’ 에머슨의 글은 지금 서점에서 찾을 수 있는 그 어떤 자기계발서보다도 명쾌한 처세론을 담고 있다. 디킨스와 졸라의 에세이는 지금 여기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정치적?경제적 문제들을 좀더 넓은 시각으로 고민하게 한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거장의 통찰은 오늘날 우리의 새로운 통찰을 부르고, 그들과 우리의 부단한 대화로 이어진다. 현대에도 시의성 있는 주제, 그리고 검증된 저자의 뛰어난 문장을 겸비한 《위대한 생각》은 고전문학과 인문교양 독자 모두를 만족시킬 시리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