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문
모로 박사의 섬 주석 작품 해설 허버트 조지 웰스 연보 |
Herbert George Wells
허버트 조지 웰스의 다른 상품
한동훈의 다른 상품
|
이 인물이 그 모로 박사가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디로 보나 그랬다. 이제 다른 짐들과 함께 내 방 뒤쪽 마당으로 들어간 퓨마와 다른 동물들의 예정된 운명이 서서히 그려졌다.
--- p.54 이게 다 무슨 뜻일까? 외딴섬의 철통같은 담장, 악명 높은 생체실험, 뒤틀린 기형 사내들이라니! --- p.55 예의 울부짖는 소리는 옥외에서 더 크게 들렸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한데 뭉뚱그려놓은 소리 같았다. 바로 옆방에 그런 고통이 존재함을 알더라도 소리만 나지 않는다면 나는 훨씬 무난히 견뎌냈으리라 믿는다. 고통에 소리가 입혀지고 그 소리가 우리의 신경을 들쑤실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그 고통을 동정하는 수고를 한다. 찬란한 햇빛과 초록 잎사귀가 바닷바람에 산들거렸다. --- p.60 그 괴기스럽고 불가해한 몸짓을 지켜보면서 나는 문득 불쾌감의 근원을 처음으로 똑똑히 깨달았다. 철저히 낯설면서도 기묘하게 낯익은, 앞뒤가 안 맞고 서로 어긋나는 그 인상이 무엇 때문에 비롯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 불가사의한 의식에 참여한 세 녀석은 사람 형상이었다. 사람의 형상임에도 그들에게선 어떤 낯익은 동물의 기묘한 분위기가 풍겼다. --- p.65 심장이 오싹오싹 죄어들었지만 내 유일한 무기는 엄포뿐이어서 나는 그를 향해 굳세게 걸어갔다. 녀석은 또 한 번 돌아보더니 어스름 속으로 사라졌다. 이번에도 그 눈에서 섬광이 번쩍한 것 같았다. 그뿐이었다. --- p.67 사람의 경우, 지능적으로 될수록 그만큼 지능적으로 자신의 복지를 추구하게 되고 그 결과, 위험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자극의 필요성은 점점 줄어들게 되오. 쓸데없는 것은 진화에 따라 머지않아 소멸하는 법이오. 안 그렇소? 고통은 쓸모없어지고 있소. --- p.112 나는 연구만 했고 연구가 방향을 이끌었소. 참된 연구 방법이란 바로 그런 식 아니겠소. 나는 하나의 의문을 품었고 그 해답을 얻는 나름의 방식을 고안해냈소. (…) 이런 질문이 연구자한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당신은 모를 거요. 연구자가 지적 열정을 쏟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당신은 모를 거요! 그 지적 열망이 가져다주는 기묘하고 무색투명한 기쁨을 당신은 모를 거요! 당신 눈앞에 있는 것들은 더는 동물이 아니라 같은 인간이오. --- p.113 그때 내 안의 야릇한 모순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는지 모르겠다. 완벽한 동물의 자세를 취하고서 눈빛을 번쩍이며 공포에 뒤틀린 그 불완전한 인간 얼굴을 보면서 나는 녀석이 인간과 다를 바 없음을 새삼 깨달았다. --- p.142 이 섬의 고통스러운 혼돈을 모르는 체하는 이 세상의 이성에 신뢰를 잃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맹목적인 숙명이, 어떤 한없이 비정한 메커니즘이 존재의 양상을 칼질하고 빚는 것 같았다. --- p.145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로부터 한없는 평온과 위안을 얻는데 그 까닭을 나도 모르겠다. 우리가 찾아야 할 우리 내부의 동물성 이상의 어떤 것, 그 위안과 희망은 우리들 일상사와 속악과 고민거리에서가 아니라 저 광대 불변한 법칙에서 찾아야 하리라. 나는 그런 희망 없이는 살지 못한다. --- p.197 |
|
“이게 다 무슨 뜻일까?
외딴섬의 철통같은 담장, 악명 높은 생체실험, 뒤틀린 기형 사내들이라니!” 소설은 찰스 에드워드 프렌딕이 쓴 서문으로 시작된다. 그는 남태평양에서 난파한 레이디베인호에 타고 있던 방랑벽 있는 자신의 삼촌 에드워드 프렌딕이 익사한 줄로만 알았다가 무려 열한 달 나흘 뒤 구조된 후 삼촌이 들려준 도저히 믿기 어려운 괴상한 이야기로 독자를 안내한다. 레이디베인호는 출항한 지 열흘째 되는 1887년 2월 1일, 남위 1도 서경 107도 인근에서 어떤 유기물과 충돌해 침몰했다. 그 배에 타고 있던 에드워드 프렌딕은 우여곡절 끝에 지나가던 배에 구조돼 한 섬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프렌딕은 정체 모를 짐승의 고통스러운 신음을 듣게 되고, 얼마 뒤 기이하고 흉측한 ‘동물 인간’을 발견한다. 그리고 표범 인간, 하이에나-돼지 인간, 황소 인간, 등 그 동물 인간들은 오래전 영국 학계에서 추방당한 과학자 모로 박사가 벌인 잔인한 생체실험을 통해 탄생한 피조물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된다. 어느 날 생체실험 도중 탈출한 퓨마가 모로 박사와 사람들을 공격하고 동물 인간들은 동요한다. 추격과 난투극을 벌인 퓨마와 모로 박사는 섬의 서쪽 끝에서 끔찍한 모습의 사체로 발견되고 그렇게 인간의 노예가 될 새로운 종(種)을 탄생시키려던 모로 박사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프렌딕은 자신을 구조해 이 섬으로 데려왔으며 의과학자로 10년 동안 모로 박사의 계획에 동참해온 몽고메리와 함께 박사의 연구실로 돌아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죽인다. 그날 밤 몽고메리와 그의 조수 엠링은 다시 동물 인간들의 공격을 받아 죽는다. 프렌딕은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몽고메리가 그 자신과 프렌딕의 탈출을 스스로 막으려고 배들을 이미 모두 불태운 사실을 깨닫고 분노 속에서 좌절한다. 섬에 홀로 남은 프렌딕은 모로 박사와 몽고메리가 예견했던 동물 인간들의 죽음과 회귀와 퇴화를 목격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시체 두 구가 실린 작은 조각배 하나가 떠밀려오자, 프렌딕은 그 배를 타고 가까스로 공포의 섬에서 탈출한다. 사흘 동안 표류하던 그는 한 범선에 구조되어 문명 세계로 돌아오지만 인간 내면의 동물성을 민감하게 감각하며 깊은 고뇌와 고독에 빠져든다. 과학만능주의에 빠진 인간의 어리석음과 잔악성을 놀라운 상상력, 깊이 있는 문제의식으로 들춰내 ‘신 놀음’과 다윈주의 논쟁에 불을 지핀 문제작! 1896년 발표한 《모로 박사의 섬》을 통해 웰스는 사회와 공동체의 의미, 인간 본성과 정체성, 신 놀음(playing God)과 다윈주의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 깔린 배경지식과 관점은 그가 과학사범학교를 다니던 시절, 토머스 헨리 헉슬리(당대 저명한 생물학자, 올더스 헉슬리의 조부) 밑에서 생물학과 진화론을 공부하며 습득했다. 이 소설이 발표되자 영국의 과학자들은 동물 생체실험을 둘러싼 논쟁에 휘말리게 되었고, 일부 사람들은 생체실험을 반대하는 조직까지 구성했다. 결국 이 작품이 출간된 지 2년 만에 ‘생체실험을 반대하는 영국인 연합’이 결성되었다. 동물을 외과술로 뜯어고쳐 인간과 유사하게 만든다는 설정은 이 작품이 쓰인 당시에는 놀라운 상상력이었고, 한 세기가 훨씬 지난 현대 독자의 입장에서는 작가의 예지력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그러나 그 현실성은 차치하더라도 이 소설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 소설은 동물 생체실험에서 동물이 받는 고통과 생명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생체실험의 비정함은 인간의 잔인성을 새삼 되돌아보게 하며, 유전자 조작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논쟁을 선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웰스가 자신의 묘비명에 새기고 싶어 했다는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이 아둔한 사람들아”라는 문구를 곱씹게 된다. “우리 내부의 동물성 이상의 어떤 것, 그 위안과 희망은 우리들 일상사와 속악과 고민거리에서가 아니라 저 광대 불변한 법칙에서 찾아야 하리라.” 이 소설이 쓰인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면 민중의 삶은 비참했고, 노동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현격히 고양되고 있었다. 영국의 수단 침공은 애국주의의 준동을 불러왔고, 기독교적 양심을 중시한 글래드스턴과 노골적인 제국주의 정책을 표방한 디즈레일리가 정치적으로 대립하기도 했다. 19세기 말 영국은 급격한 산업화에 뒤따른 진보와 보수, 노동과 자본, 양심과 제국주의의 총체적 충돌의 장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하층민의 아들로 태어난 웰스가 과학자로서, 사회운동가로서, 문명 비평가로서 억압적인 종교적 교리를 거부하고 국가의 제국주의적 본성을 규탄하는 한편 인간 본성을 개조하는 방편으로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
웰스는 무엇보다 사상과 상사력의 해방자라는 점에서 괄목할 만하다. - 버트런드 러셀 (철학자, 문학가)
|
|
만약 웰스가 없었다면 우리의 정신적, 물리적 세계는 지금의 모습과 확연히 달랐을 것이다. - 조지 오웰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