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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누구한테 배웠을까 낮아지는 저 기술은

잉여숨
쪼그려 뛰기
그늘흔
살고 싶은 아이
화정
징걸이
일인용
섀도복서
소파미륵
빵 나오는 시간
중고 소년
내부순환로
누생
보기 중에 없음

2부 극단에로의 전조


그레타 툰베리에게
보건증
셔틀
태권브이
꼭두
아무와 누구의 총파업
요양원
개와 기계의 나라
사바나 가설
투사에게
창문 도둑
녹슨 풀
림보의 연인
일란성

3부 부서진 꽃대를 위한 변호


10리터의 눈물
먼 등
한 닢의 女子
약달력
주소들
석태아
환승
월말
고립계
햇물
무지개를 데리고 갔다
연희삼거리
개미마을

4부 빨강은 모두 연애를 한다


눈님
일부러 사랑한 당신
삼대 유감
손잡이
귀에서 삐 하는 소리가
도자기 여인
조왕
해류병
개닛
늙숨
사량
끝과 미안
아름다운 태풍의 생애주기

해설
그늘의 계보학 - 사라진 그림자들과 마주하기
- 김대현(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서울에서 태어나 2018년 계간 《시현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제14회 조영관 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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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6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176쪽 | 182g | 125*200*10mm
ISBN13
9791193412954

책 속으로

거울 깊숙이 울음을 파묻는 놀이
아이는 꼬리를 잘라 그늘을 살찌웠다
여름이라는 짐승, 그 서늘한 발작

여름에서 하나씩 버리면
어른이 되지

기다림이 어두울수록 끄트머리가 헐거워지는
그늘의 실패
--- 「그늘흔」 중에서

여인이 방을 나오는 시간은 빵들의 장례식
너는 두 개의 창문 너머로 방을 본다
부풀어 오를 대로 올라야 숨이 멎는 곡물의 뼛가루

석양이 노릇노릇 익어 갈 때면 여인은 손바닥을 우려낸 물에 방을 헹구곤 했다
오븐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던 많은 밤들

(중략)

무에서 유가 태어나는 우연과
빈 고택에 누룩이 움틀 확률에 기대어

텅이 가득 찬 빔에서
멍이 분주한 함까지
--- 「빵 나오는 시간」 중에서

막이라는 말에는 지향점이 박혀 있어서 반드시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
무릎을 부수고 가죽을 찢고
기상천외한 터닝 포인트를 찾아 얼음이 불타기를 기다리는 붕어처럼
그것은 뭐랄까, 마지막 신파일 것

(중략)

예정된 엔딩을 벗어나 썩기만을 기다리는 독백처럼
드러내기 힘든 나의 절반은
당신에겐 누수 같은 존재였을 것

뚝뚝 떨어지는 모든 것은
간절했다
--- 「누생」 중에서

폭탄이요, 어르신은 시한폭탄이라고, 열댓은 단칼에 해치울 수 있는 냄새에, 한 방에 건물을 통째로 날려 버릴 수 있는 소음까지, 폭탄은 반드시 터져야 해 불발탄이라는 오명을 얻으려고? 저 혀들 똥구멍들 빨간 것들 저 썩지 않는 것들 좀 봐, 세상의 모든 드라마와 이어달리기를 끝장낼 수 있는 어르신은 아름다운 시한폭탄이라니까
--- 「요양원」 중에서

계단참에 살림을 차린 여인이 있으니

처음 보는 결말이 하르르 쌓이는 이별보관소
계단참을 위해 계단을 만들었다는 고백을 듣는다

구석구석 파먹으며 부피를 키우는 흰개미처럼
쏟아지는 높이와 멍드는 깊이
최초의 계단은 내려가기 위해 만들어졌으니

여인은 온종일 숨을 참는다
여인은 한 달 동안 목을 매기도 한다
줄자처럼 팽팽하게 당겨지다가
아무에게도 들킨 적 없는 미필적고의로 남는다
계단은 뒤집어도 계단일 뿐

여인은 아직 밟히기 전인데 계단을 곱게 접어
몸 안에 들인다

수직이 끝나는 곳에서 수평을 만날까
--- 「환승」 중에서

어떤 기억은 영혼이 몸을 떠난 후에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몸 깊은 중심에 앉아 이승의 손익을 따져 본다
뼈와 살이 다음 일정에 떠밀려 허겁지겁 몸을 떠나도
어떤 이별은 쇠 말뚝처럼 자리를 지킨다

업을 이어받은 소년은 아비의 몸을 조각조각 잘라 독수리 무리에 던져 주었다 원래 저들 것인 양

(중략)

독수리 한 마리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멀리서 이승을 더듬거렸다
--- 「고립계」 중에서

지나고 보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구멍임을 알았네
이제는 내가 두 아이의 구멍임을 알았네
있음에서 없음으로 맺어지는 황홀한 중첩
늙은 구멍에 차오르는 허물의 질량을 알았네

은하를 키우는 검은 구멍의
무심無心을 알았네

단추 하나 뚝,
떨어지자
구멍이 눈을 감네

--- 「늙숨」 중에서

출판사 리뷰

김성백의 시는 그늘에 구획된 존재의 “오븐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던 많은 밤들”(「빵 나오는 시간」)에 주목하며, 하루의 가장 일상적인 장면들 속에 숨어 있는 생존의 최전선으로 시선을 침투시킨다. 「빵 나오는 시간」은 단순한 아침 풍경이 아니라, 온몸을 던져 구워낸 노동의 리듬이다. “여인이 방을 나오는 시간”은 오븐 앞의 시간으로 전환되고, 얼마간 생계를 견디는 온도로 철저하게 맞춰질 것이다. 그러한 여인의 마지막 얼굴도 계산대 옆에 남겨 두고서 머지않아 방을 떠나겠지만, 여인이 사라져도 빵은 제시간이 돌아오면 여지없이 나올 것임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우리가 뿌리내린 토양은 “식욕들이 줄을 서는 벌건 대낮” 아래에서 영원히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잉여숨」은 2023년 7월, 호우피해 실종자 수색작전 중 숨진 故 채수근 상병을 추모하며 쓰인 작품으로, 개인의 비극이 어떻게 공동체의 윤리적 과제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장화가 떠올랐다”는 첫 구절은 실종과 부재의 현실을 직면하게 하며, 이어 폭력적 제도, 감정이 배제된 무력한 구조로서의 물을 상징하며, 구조되지 못한 존재를 향한 시스템의 죄의식을 암시한다. 시인은 “손과 발을 잘라내도 손등과 발바닥이 가려운/둥근 죄”라는 구절로 육체의 소멸 이후에도 남는 감각과 고통, 그리고 그것이 되풀이되는 폭력의 구조를 형상화하며, 감정에 함몰되지 않은 채 상실을 응시한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인 “물에 녹았던 아이는 다시 아이로 돌아갈 수 없다”는 선언은 죽음을 목격한 세계 전체가 더 이상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시는 이 지점에서 “방향”을 얻으며, 비극을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너머로 나아가야 할 윤리적 행보를 시작한다. 마지막 구절 “세상의 모든 물은 아이가 녹은 물이다”는 고통의 기억이 개인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의 기억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면밀하게 보여준다. 김성백은 이 시를 통해 죽음 이후에도 지속되는 존재의 감각, 그리고 그 감각을 감당해야 할 공동체의 윤리를 환기시키며, 애도라는 말로는 부족한 문학의 윤리적 목소리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고립계」에서는 이와 같은 종류의 죽음과 장례를 통해 잊힌 존재들의 존엄에 대한 사유를 가능케 한다. ‘독수리 한 마리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멀리서 이승을 더듬거렸다’는 시의 문장은, 이 시를 관통하는 윤리의 출발점이다. 이는 “업을 이어받은 소년은 아비의 몸을 조각조각 잘라 독수리 무리에 던져 주었다 원래 저들 것인 양”이라는 시적 순간을 포착함으로써, 단순한 시적 상징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으로 제거된 자, 구조화되지 못한 슬픔, 의례의 무력함을 드러낸다. 죽음이 개인의 소멸이 아니라 집단의 무관심과 무례 속에서 지속되는 고립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김성백은 아주 조용하고 차가운 언어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그늘흔』 시집의 정서적 축과도 닿아 있다. 애도되지 못한 얼굴들을 기억하고, 잊힌 자들의 흔적을 언어로 복원하는 일. 김성백은 ‘말해지지 않았던 존재들’을 고립의 영역에서 끌어올려 ‘기억의 윤리’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김성백의 시는 “한 번 더 태울까요/그대로 박제라도 할까요”(「일인용」)라며 사라진 존재들의 육체가 아닌, 그 이름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묻는다. 기억이란 단순한 회고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되는 억압의 구조를 인식하고 말해내는 실천으로 확장해 나간다. 이에 시인은 “이 세계에 서명하지 않는”(「끝과 미안」) 방식으로 삶의 가장 어두운 자리에서 언어를 불러낸다. “심장보다 더 뜨거운 언어”(「손잡이」)를 통해서 말이다.

지금, 우리가 시를 읽는 일은 곧 얼굴을 찾아주는 일이다. 김성백의 『그늘흔』은 그렇게 지워진 얼굴들 곁에서, 침묵을 잃지 않는 언어로, “흐릿한 기척을 부여잡고”(「시인의 말」) 끝내 “그 손을 누가 좀 잡아 줬으면 하”는 마음을 조용히, 그러나 끝내 포기하지 않고 건네는 시집이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한 순간들. 그런 순간에도 말이 남아야 한다면, 그 말은 아마 이런 시였을 것이다.

시인의 말

흐릿한 기척을 부여잡고 산 지
구 년째
물가에 그 비린 손을 조금
풀어놓는다.
그늘 속에서 유영하던 밤들
상흔이 있던 자리엔
온기만 남았으니
그 손을 누가 좀 잡아 줬으면 하고.

2025년 여름
김성백

추천평

오랫동안, 이 고단한 행성의 먼 길을 돌아온 한 숭고한 여행자의 비망록을 접하는 기분이다. 조금은 남루해 보이고 지쳐 보이는 모습이 안쓰럽지만, 그 가식 없는 고투의 흔적들이 긴 수행을 마치고 온 이와 대면하는 듯한 깊은 신뢰와 오롯한 기쁨을 느끼게 한다. 호두알처럼 단단한 사유와 어떤 그물에도 갇히지 않고 세계의 여러 모순과 불의를 정직하게 직시하는 투명한 정신이 밤하늘 어느 곳에서 우두커니 서성이고 있는 별빛처럼 맑고 외롭다.

“맨 아래부터 잘려 나가는 변두리의 질서” 그 애잔한 잔뿌리 공동체의 수난과 아픔에 대한 절실한 연대의 시집이기에 더더욱 고맙고 뜻깊다. “모두가 지옥이면서 천국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세계의 여러 허위와 비애에 맞서 그는 또 하나의 진실한 인간 선언을 구축해낸 듯하다. 어떤 상투성과도 결별한 채 독특하고 새로운 은유와 상상으로 가득 찬 그의 혼신이 한국문학사에 귀한 진경의 한 장으로 자리 잡아 나갈 것이라는 기대와 바람이 크다. -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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