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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경
어떤 슬픔은 끝나지 않아서 신촌 1980 미메시스 범인 어느 우연한 자리에 산문 - 우리라는 숲을 이루고 김조라 식탁에서 여자애와 여자애 행진 희망적 관측 멀리 있는 사람에게 산문 - 작은 동산 김병관 모두 입에 둥지가 없고 각각 또는 무량공처 내일 봐 아림 산문 - 단속반 신헤아림 순진한 건 우리였고 옛 노래 있는 사람 미완성 시대 돌고개역 산문 - 공통-점 공-통점 장가영 남산 오르기 소란 일어난 일 인과 자조 모임 산문 - 네가 있는 광주 이서영 낯선 양식 여름 환영 플로리스트의 뜰 가족 앨범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걸어가는 산문 - 너와 문학과 역사 이기현 통증의 군락 쉬었음 청년 할 일 테라리움 칠그릇과 사람 산문 - 그저 그런 사람으로 살아갈 용기 조온윤 새천년 건강체조 열쇠의 집 그림자 관광 산성비 미래 너는 나를 천사라고 부르네 산문 - 엇갈리며 함께 걷는 이들에게 해설 느슨한 연대를 향한 통각 - 김원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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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도 적지 못하다가 시집만 다시 펼쳤어
나는 그만두지 못하겠어 나는 사실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과는 헤어지는 일이 너무 어려워 나는 사실 마음을 내어 준 적 있다면 그 사람의 안부를 오래 물어 나는 사실 사람에게 못되게 군 걸 아직도 후회하고 있어 마음 준 것을 회수하는 법을 몰라서 잃어버린 대상을 잊지 못한 대상으로 애써 감추려 들어서 속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사설이 길어지듯이 어설프게 선한 태도가 누군가를 먼 길에 오르게 한다고 그건 선한 게 아니라 비겁한 거라고 진심에는 은유를 붙이지 않겠다고 다짐했어 --- 「김도경, 신촌」 중에서 우리는 다리 위에 서서 광주천 보는 걸 좋아했잖아 광주천을 보면서 번갈아 노래도 불렀고 어떤 날엔 물이 너무 반짝거려서 돌을 주워다 물에 던지고는 소원을 빈 날도 있었잖아 가만히 있는 물이었다면 반짝이지 않았을 거야 반짝이더라도 조금이었을 거야 이렇게나 많이 반짝이지는 않았을 거야 나 네가 없는 날에도 혼자 광주천에 가서 물이 흘러가는 걸 엄청나게 많이 봤어 이제는 눈을 감고도 볼 수 있게 됐지 강물은 매번 달라지고 흘러간 강물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 돌아오지 않는 건 돌아오지 않아서 좋지 제자리에 있는 건 제자리에 있어서 좋고 오 년 전에 봤던 나무를 작년에도 보고 엊그제도 본 건 확실히 즐거운 일이야 그래 테이프로 코팅한 꽃잎을 어떤 책 속에 영원히 꽂아 둔다고 해도 나무가 같은 자리에 있는 것과는 다른 일이고 말이야 --- 「김조라, 행진」 중에서 이상하지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을 연습했다는 것은 첩첩산중으로 쌓인 알들 속에서 틈으로만 세상을 봤다 너를 처음 본 게 그쯤이었나 너는 외발 전동 휠을 타는 것처럼 알을 타고 가더라 어깨엔 반려동물처럼 파충류를 올려 두고 고통을 시도 때도 없이 낳던 모습이 거긴 없다니 이상했어 누군가는 이토록 쉬이 원망하며 알 속에 갇혀 버리는데도 아림, 너는 단 한 번도 힘들다 얘기한 적 없었지 알 탑에 살던 나는 햇살 아래 서 있던 너와 얘기하는 게 좋았다 --- 「김병관, 내일 봐 아림」 중에서 어쩌면 우린 이미 사라져 버린 흔적뿐이었을지도 몰라 내 것인 줄 알았던 모든 사랑이 수많은 전생을 지내고 여기에 있다 살지 않아도 살아진 것 같은 시간이 있다 나의 일기라 믿으며 받아들였던 수많은 가사들 너의 일부라 착각하며 자라 왔던 뼛조각들 몸의 내부를 파고들어 환상통처럼 층층이 쌓여 있었다 케케묵은 일기장엔 2002년 월드컵 엽기토끼 초딩 담탱이 오래된 후회를 태우고 남은 매연 같은 것 내 생을 또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다 --- 「신헤아림, 옛 노래」 중에서 우리는 둥그렇게 모여서, 그 말… 그 말을 듣고 있는 거야. 서글픈 사람들이 웃어서 웃기다. 이번에는 술을 한 잔씩만 마셨어요. (짝짝짝) 통각이 조금 마비된 듯합니다. (짝짝짝) 손톱을 보고 자르겠다는 생각만 하고 자르지 않았어요. (짝짝짝) 남해에 한 번도 안 가봤는데. 그동안 남해에 관한 시를 엄청 썼거든요. 이제 그 짓을 그만뒀어요. (짝짝짝) 다리가 달달 떨릴 때쯤 너는 내가 준 옥수수를 가만히 바라본다. 저는 부드러우면서도 단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생각해 보니 그것은 유해 물질 같기도 하더라고요. 그럼 저는 이제 뭐가 되어야 할까요? (…) 둥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아무도 박수 치지 못했다. 섣부른 대답은 유해해지기 십상이니까. 그걸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은 역시나 서글프다. --- 「장가영, 자조 모임」 중에서 나는 한 무더기의 잠을 헤치고 씩씩하게 걸어가 움켜쥐고 싶은 손을 찾아 헤맬 것입니다 복종 없이 천진한 얼굴을 들여다볼 것입니다 그럼 뿌리는 몸을 뚫고 나갈 경로를 모색하겠지요 안쪽의 어두움과 바깥의 밝음을 동시에 탐내겠지요 시도하겠지요, 명확한 일인칭으로 피어오르는 방식을 빛과 피를 교환하는 방법을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잘려 나간 자리에 나의 세계가 있는데 --- 「이서영, 플로리스트의 뜰」 중에서 우리의 군락을 지키고 있는 건 어떤 게 선한 것인지 구분하려는 마음이 아닌 선함 자체를 믿는 마음이었지 하지만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이 사실을 실감할 때가 오곤 했지 각자의 보면대에 올려 둔 악보가 모두 다른 곡이었으니까 고기에는 뼈가 있고 물고기에게는 가시가 있고 우리에게는 다만 통증이 있었을 뿐 그래도 우리는 통증을 멈추지 않았지 우리가 서로에게 기거하기로 하며 통증의 가장자리에서 새어 나오는 시에 대한 탐닉을 거부하지 않았던 것처럼 --- 「이기현, 통증의 군락」 중에서 열쇠가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복도에 갇혀 쓸쓸히 녹슬어 가는 자전거처럼 실은 내가 바깥이라는 슬픔에 갇힌 거라면? 우리 집이 바깥이 아니라 안쪽에서 열리는 집이라면 좋겠어 열쇠가 아니라 사람이 사는 집이라면 다녀왔어요, 말하면 어서 와, 대답이 들려오는 기다림을 바깥에 세워 두지 않는 집이라면 두드릴 수 있는 문이 있다면 좋겠어 불 꺼진 복도에 우두커니 앉아 있을 때 나의 슬픔이 철컥이는 열쇠인 것처럼 들어와, 여기서 기다리렴 환하게 열리는 문이 있다면 --- 「조온윤, 열쇠의 집」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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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의 말
오래전부터 이들을 멀리서 지켜봤습니다. 친한 사람끼리도 속삭이듯 대화할 정도로 유난히 내향적인 모습에 호기심이 생겼어요. 문학의 쓸모에 대해 회의적이던 저와 치열하게 시를 쓰는 이 사람들과는 차이점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문학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모여 서로의 시를 나누어 읽고 책을 만들고 새로운 실험들을 도모하더라고요. 대책 없이 순수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이 조용한 사람들을 동경하게 되어 점점 가까이서 응원하다가, 저도 하나의 통점으로 공통점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시를 쓴다는 건 형용할 수 없던 슬픔을 자신만의 언어로 써낼 때까지 묵묵히 곁을 지켜 주는 이들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만난 공통점은 불안 속에서 홀로 시를 써 내려가더라도 그 시에 담긴 마음을 바로 읽어 주고 서로를 위해 언제든지 곁을 내어 주는 공동체입니다. 미숙했던 저도 미완성된 글만 가득 들고 처음 공통점을 만났지만, 조금 늦더라도 나란히 걸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이들과 함께한 덕분에 조금 더 성장하고 문학도 마음껏 사랑하게 되었어요. 공통점이 시작된 지 꼬박 열 번째 해가 되어 오랜 염원이던 동인시집을 엮습니다. 첫 동인시집에는 여덟 명의 시인이 공유하는 다섯 가지 주제로 창작한 시와 산문을 담았습니다. 비슷한 사회·문화적 경험을 하며 성장한 90년대생으로서, 5·18이란 숫자의 의미를 무겁게 배우고 자란 청년들로서, 기후 환경 변화의 문제를 마주하고 있는 세대로서 같은 마음이 되어 시를 썼어요. 아울러 우리를 한데 묶어 주는 공통점이라는 이름의 공동체에게, 또 긴 시간을 함께해 온 서로에게 선물하듯 시를 써서 나누어 읽기도 했습니다. 이 뜻깊은 시집을 엮는 데 함께한 동인의 일원으로서, 다 같이 오래도록 시를 쓰고 읽자던 약속이 변치 않은 것 같아 기쁩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 갈 ‘공-통점’들 을 지켜봐 주시길요.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 다른 일상을 살아가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문학이라는 공통점 아래 다시 모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5 가을 공통점을 대표하여 막내 윤소현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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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학교에서 힘겹게 부대끼면서도 시가 내준 질문과 숙제를 내려놓지 않는 학생들. 서로의 손을 이끌고 발을 기다려 주며 같은 빛을 향해 걸어온 시인들. 고통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나눌 수는 있다고 말하는 드문 우정의 친구들. 나도 그 통점의 일부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문학의 동지들……. 공통점 동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애틋하고 뜨거워집니다.
나무처럼 유난히 내성적이고 진지한 이 영혼들은 알고 있을까요. 서로를 발견해 주었기에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십 년 넘게 서로의 지옥과 골방을 읽어 주는 동안 그곳이 어느덧 시의 환한 정원과 울창한 숲이 되었다는 것을. “통증의 군락이 이루는 연대”(김원경)의 한 방식을 너무도 아름답게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을. 통증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시도 끝나지 않겠지요. 시 앞에서 우리가 처음 느꼈던 두근거림과 열정을 늘 햇곡식처럼 간직하기를! 부디, 공동 언어를 향한 이들의 꿈과 실험이 오래오래 향기롭기를! - 나희덕 (시인,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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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광주의 어느 볕 잘 드는 광활한 강의실에서 이들의 시를 처음 읽었다. 시인의 여러 요건들을 이미 넉넉하게 갖추고 있어서 어떤 종류의 조언도 무색했다. ‘공통점’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활동하기로 했다는 말은 학기가 끝나갈 무렵 전해 들었다. 학기는 끝났지만, 이들의 빛나는 시를 계속해서 읽을 수 있겠다는 기쁨을 안고 나는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다. 이후로 공통점의 행보를 기대와 신뢰로 지켜보았다. 은은해서 더 빛났고 오롯해서 더욱 자랑스러웠다. 공통점의 여러 실험은 우리의 일상과 현실을 세심히 챙기며 성큼성큼 독자들을 매료시켜 왔다. 『우리는 같은 통점이 된다』는 미래에서 날아온 시집 같다. 두터운 과거를 선명히 되살리고 미래를 경유해 부메랑처럼 현재로 되돌아오는 언어들. 같은 통점으로 더 멀리까지 회귀해 보려는 노력들. 노력이라고 적지만, 이토록 맑은 노력은 무어라 불러야 옳을까. 목격해 본 적 없는 선선함과 단단함과 자연스러움. 유유幽幽한 언어들. 어깨를 겯는 방식조차 유유한 공통점. 이들에게 시가 있어 기뻤던 마음이 이제는 시에게 이들이 있어서 기쁜 마음이 되었다. 공통점을 생각하면 미래가 환해진다. -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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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통점을 지닌 여덟 명의 시인이 써내려간 글이다. 십여 년 동안 나의 통점을 너의 통점으로 연결하며 지속해 온 기록들. 이들이 문학을 살고, 사랑하며, 기꺼이 걸어온 마음이 반갑고 사랑스럽다. - 김혜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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