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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적인 것과 관찰적인 것(발자크 연구 노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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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관찰문학소론 -
체험과 관찰이 서로 대립되는 개념인지 아닌지는 나의 알 바가 아니다. 내 자신의 문학적 행정(行程)에 대해서 간명한 표현을 가지려 할 때에 비교적 편의적인 생각에서 체험과 관찰의 두 개의 개념을 설정해 보는 것이다. 가령 문학자가 사회적 생존의 방식에 따라 두 개의 유형으로 보아질 수 있다면, 그의 하나는 체험적인 것에서 자기를 살리려는 방법에 몸을 의탁하는 작가, 그의 다른 하나는 관찰적인 묘사 가운데서 그것만을 가지고 자기의 사회적 존재 이유를 삼으려는 작가 - 이러한 것으로 나누어질 수 있지는 아니할까. 어떤 사람처럼 그대로 간단히, 하나는 체험하려는 정열, 하나는 묘사하려는 정열이라고 불러버려도 무망하다. 그러므로 전자에 있어서는 자기의 체험이 중요한 데 반하여, 후자에 있어서는 묘사되는 대상만의 관찰에 정신을 잃어버린다. 전자는 자기를 보다 아름답게 살리기 위하여 자기검토와 자기개조를 중심에 두고, 이러한 자기의 체험을 제일의적(第一義的)으로 간주하여 이곳에서 문학, 내지는 작가의 사회적 생존을 주장하려 할 것이오 후자는 자기를 허허(虛虛)히 가지고 대상에 몰입하여 투철한 통찰과 용서없는 가혹한 관찰로써 사회의 전체를, 그 모순과 갈등과 길항(拮抗)과 기만(欺瞞)의 상모(相貌)를 티끌 하나 놓치지 않고 묘사해 보이는 가운데서 자기의 사회생존의 이유를 발견하려 할 것이다. 전자에 있어서는 작품은 하나의 수단이오 차라리 인격에서 자기를 도야하는 것이 일의적(一義的)이 될 것이다. --- “체험적인 것과 관찰적인 것(발자크 연구 노트 4)”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