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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구릉 어디쯤 낙타는 나를 기다리고
윤선
걷는사람 2023.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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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알 듯도 한 사람

훌륭한 밀월
달빛이 너무 좋아서
말을 가두어요, 조세핀
프로펠러
삼월
, 동물원
사월인 줄도 모르고
조조 영화를 보러 갔다
장미는 어떻게 흘러내리는지 몰라
귓속의 그녀
메이저리거
비봉길 초록 대문

2부 우리는 연두까지 걸으며 흔들리는 중

얼굴
슬픔보다 높이
사과나무 아래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피라미드
자수
연두
수선화는 피었지만 난 쓸쓸해요
초록이
숨소리 닿는 저 깊숙한 곳
나는 일요일마다 굿모닝랜드로 간다

3부 목요일의 아일랜드로 가요

바빌론
아르노 강가에서
목요일의 아일랜드
모란은 피고 있는데
추격
사이프러스가 있는 길
당신의 리듬을 매만져 봅니다
왈츠 2번
렌토
어느 날 수캐가 돌아왔다
허파가 뜨는 시간

4부 나는 불안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어부의 아내
모과나무 주소
방아쇠 손가락
트럭
쇠 구두
벚꽃 이불
덕수궁 돌담길이 문장이었으면
장미색 비강진
나는 저팔계다
출렁이다
어두운 벽지처럼 붙여 두고
검은 밤

해설
귓속의 시인
- 김대현(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2018년 《시와반시》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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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9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170g | 125*200*20mm
ISBN13
9791192333922

책 속으로

그는 나에게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먹음직하게 잘 익은 사과를
광주리 가득 따서 담았다

나무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중략)

보여 줄 것도 없는 내게
광주리를 들고 걸어 들어오는
알 듯도 한 그 사람

사과를 입안 가득 베어 먹는 시간이
달콤하고 황홀한 밤이었다면
훌륭한 밀월이다

일찍이 내게
소리 없이 붙잡혀
붉은 어둠으로 내려앉는 것이
슬쩍 빼앗기는 것이
사과의 미덕이라고 알려 준

알 듯도 한 그 사람
---「훌륭한 밀월」중에서

내 귓속에 사는 그녀는 토막 난 말들을 잔뜩 부려 놓고 심술을 부릴 때도 있어 그녀가 부풀린 말이 줄어들지 않아 밤새 거품을 지우느라 하얗게 날을 밝힐 때도 있었지 그녀가 튀긴 얼룩은 여러 색깔로 변해 내 몸에 이상한 지도를 그려 놓고 귓바퀴가 울리도록 깔깔대며 데구루루 구르지 부메랑은 왜 다시 날아드는지 알아?네가 던진 말이 그리워서 네 가슴에 별처럼 박히고 싶은 거야 내 귓속에 사는 그녀는 심술보가 커서 입이 찢어지는 줄도 모르고 마구잡이로 말들을 집어삼키지 얘야, 말은 퍼 나르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깊숙이 가두는 거란다 그래야 가끔씩 넘나드는 햇볕과 바람과 구름이 너를 단단하게 감싸 준단다
---「귓속의 그녀」중에서

아무도 선수를 선수답게 대접해 주지 않았지만
엄마는 선수였다?

살아 있는 날은 계속 삼진이었지만
죽음 앞에서 멋진 홈런을 날린 거다

죽음을 몇 번 연습한 우리는
세상의 공명으로 떨리는 새가슴을 움켜잡으며
엄마의 뜨끈한 희생타를
오래 끌어안고
이렇게 떨고 있다
---「메이저저리거」중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작은오빠가 꿈속을 자주 기웃거렸다 큰오빠는 종일 전축을 끌어안고 더그린그린그래스오브호옴이 대청마루를 훑는 동안 나는 두꺼운 책에 코를 박았다 언니는 상방 방구석에 틀어박혀 서울에서 온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오붓하게 불러 오던 언니 배가 찬송가가 펼쳐진 풍금에 닿았고 건반 위로 아카시아꽃이 자꾸 떨어졌다 나는 세계 명작동화를 옆구리에 끼고 철 가면을 썼다가 폭풍의 언덕을 오르내렸다가
---「비봉길 초록 대문」중에서

힘을 다해 꼭대기까지 뽑아 올린 불안들이
굴풋한 소리로 붉게 익어요
내 사과는 긴장하면 할수록
시도 때도 없이 맑은 과즙을 만들어내요
---「사과나무 아래」중에서

발끝에 차이는 기억을 주우며
타오르던 꿈은 오늘도 유효하다
디아스포라의 갈피에 흔들리던 울음들 하나둘 일어서고
담을 넘은 광대싸리나무 그림자가 머리를 두르고
언제 흘러내릴지 모를 뒹구는 낱말들을 끌어안고
출렁 걷고 또 걷는다

걸.어.서.걸.어.서.닿.을.수.만.있.다.면.너.라.는.문.장.에.
---「덕수궁 돌담길이 문장이었으면」중에서

어제도 오늘도 말이 되지 못한 재의 날들이
바닥에서 꾸물대고
별들의 구릉 어디쯤 낙타는 나를 기다리고
내 울음을 받아 삼킨 눈이 붉은 낙타는
그렁그렁한 노을을 붙잡고

(중략)

뭇별을 꼬아 만든 나의 안드로메다는
성좌의 붉은 얼굴로 나를 비추고
계단은 바깥을 항해 흐르고 있다
왜 바깥인가

나는불안을얼마나사랑하는지밤의두얼굴은바깥이되고싶어안달이다서늘한새벽이머리를누르고몸속으로흘러드는더딘바람은언제태풍으로몰아치려는지나를별들의늪으로내몰고있는

---「검은 밤」중에서

출판사 리뷰

걷는사람 시인선 90
윤선 『별들의 구릉 어디쯤 낙타는 나를 기다리고』 출간

“나는 불안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햇빛과 바람과 구름을 당신 눈 속으로 담는
시의 언어를 감춤으로 드러내는 시인


2018년 《시와반시》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윤선 시인의 첫 시집 『별들의 구릉 어디쯤 낙타는 나를 기다리고』가 걷는사람 시인선 90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말의 수위를 풀빛으로 잔잔하게 조율해 보세요”(「말을 가두어요, 조세핀」)라는 시구에서 알 수 있듯, 이 시집은 시의 절대적 언어에 다가가기 위한 방법론적 모색이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 밤과 낮의 경계, 불안과 일상의 경계에 시는 존재하며 그것은 앎과 모름의 경계에 자리 잡고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래서 시의 절대자 혹은 신적인 존재인 듯한 “알 듯도 한 그 사람”은 “소리 없이 붙잡혀/붉은 어둠으로 내려앉는 것이/슬쩍 빼앗기는 것이” 시의 미덕이라 알려 준다. 문학평론가 김대현은 해설에서 이러한 시인의 태도를 파블로 네루다에 빗대며, 윤선의 “그 사람”은 네루다의 “시”처럼 “아무도 모르게 다가와 ‘나’의 온몸을 열병처럼 휘감고 ‘영혼 속에서 무언가를 시작하’게 만드는 무언가”라고 말한다.

영혼을 열병 상태의 시적 에너지로 만들기 위해 시인은 어떻게 자신을 만들어야 할까. 역설적이게도 에너지를 가득 채우기 위해 시인의 존재는 비움의 상태이다. 시의 언어를 탐구하는 것 외에 “보여 줄 것도 없는”사람, 그것 외엔 가진 것 없는 존재다. 언어의 비움 상태야말로 시를 받아들이기에 필요 조건이며, “광주리를 들고 걸어 들어오는/알 듯도 한 그 사람”과 내가 “사과를 입안 가득 베어 먹는 시간”을 겪으며 시의 “달콤하고 황홀한 밤”(「훌륭한 밀월」)을 경험한다.

불안과 어둠, 미지, 야생의 존재야말로 문명화된 인간에게 훼손되지 않은 생명의 언어를 가져다준다. 「어부의 아내」, 「방아쇠 손가락」, 「검은 밤」에서 시인은 살아 있는 언어를 갈망하며 기다리고 있다. 시 속에서 야성, 야만의 상징으로 보이는 ‘어부’는 언뜻 에로틱하고 비문명적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예술이 가진 속성, 정리되거나 획일화되지 않은 상태, 질서가 자리 잡기 이전의 알레고리로 읽힌다. 또한 이 무질서의 상태로 접어들기 위해 시인은 “화살 같은 불안을 끌어안고 사방에서 낚아챈 사유의 장/음악으로도 긴 이야기로도 빛나는 문장으로도/닦이지 않는 것들”(「검은 밤」) 때문에 괴로워하며 ‘검은 밤’을 보낸다. 그러나 빛나는 문장은 찾아 나섬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순간 던져짐을 받는 것이다. 그 문장, 생명의 언어를 받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오직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림이 간절해졌을 때, 마음의 비움 상태가 되었을 때 “종횡무진으로 달리는 불면의 자락들을/나는 얼마나 기다리는지” 회의하고, 검은 밤을 지새울 때 시의 언어는 획득된다.

‘검은 밤’을 기다리는 시인을 만들어낸 존재, 시적 유산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것은 “운동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린/술 취한 아버지”, “곱게 차려입은 한복 치마 속으로/마디가 없는 손을 감추고/소풍 따라 나온 어머니”(「어두운 벽지처럼 붙여 두고」)에 대한 기억이다. 그가 “방바닥 가득 써 내려간 사연들이 너무 아파서/울음이 문밖까지 새어 나갈 때쯤” 사람들은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겠지만 그는 기억을 “어두운 벽지처럼 붙여 두고” 시를 쓴다. 그 어두운 벽지 같은 기억이야말로 자신의 시적 원천이며, 시적 원천으로 기록해낸 시야말로 사라진 아버지와 어머니를 시집 속에 되살려 영원한 생명을 부여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손택수 시인은 추천사에서 “등에 따개비가 지은 집”(「목요일의 아일랜드」)을 이고 사는 붉은바다거북의 수고로운 일상을 지긋이 견디게 하는 힘의 근원은 “새로운 글자를 쏟아 놓”(「나는 일요일마다 굿모닝랜드로 간다」)는 시의 복식호흡이라고 말한다. 일상의 지루한 시간과 고뇌를 견딜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시의 존재야말로 “별들의 구릉 어디쯤 낙타는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시인의 말

별을 바라볼 수 있는 쪽에

문 하나를 그렸습니다

몇 번의 봄이 지나갔지만

문고리만 잡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문이 열렸습니다

혼자 춤추다 들킨 것처럼

온몸이 발갛습니다

2023년 9월
윤선

추천평

「어부의 아내」가 부르는 물의 노래는 기호 너머의 ‘갯냄새를 불룩하게 감춘 배꼽’에 탯줄이 이어져 있습니다. “설명과 부연과 변명이 필요 없는/너의 숨”을 쉬게 하는 「초록이」로서 「숨소리 닿는 저 깊숙한 곳」을 깨우는 시의 복식호흡이라고나 할까요. 언어와 세상에 포복하는 숨결을 통해 시인은 “새로운 글자를 쏟아 놓”(「나는 일요일마다 굿모닝랜드로 간다」)는 노래가 되어 “등에 따개비가 지은 집”을 이고 사는 붉은바다거북의 수고로운 일상을 지긋이 견디게 합니다(「목요일의 아일랜드」). 여기서 저는 ‘나는 어쩌다 어부의 아내가 못 되었는가’라는 물음이 탄식이기도 하고 성찰이기도 하며 새로운 음(音)에 대한 꿈이기도 하다는 걸 알겠습니다. 시인은 그 음을 걸음으로 시와 세상에 거름을 주고 있군요. “줄 것이 없는 내게/보여 줄 것도 없는 내게/광주리를 들고 걸어 들어오는/알 듯도 한 그 사람”과의 「훌륭한 밀월」에 슬쩍 저를 빼앗겨 보렵니다. “비밀이 자꾸 만들어지는 어둠”을 향해 망치를 든 「렌토」의 묵직한 타격음과 ‘깨진 유리 조각’들을 밟고 흔들리는 조팝나무꽃으로 눈부신 「왈츠 2번」의 우아한 도약음까지 동시에 지닌 「당신의 리듬을 매만져 봅니다」. - 손택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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