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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가족 5
다잘난군에게 무슨 일이? 9 제발 내 말 좀 들어 주세요! 21 한밤중의 회의 36 이제 제 말을 믿으시겠어요? 47 뜻하지 않은 휴가 61 드디어 만나다! 78 그림자들과의 한판 89 어쩔 수 없잖아 105 바빠가족이 흘려보낸 아까운 시간들 115 소풍 136 작가의 말 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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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시 행복구 여유로 82번길 가장 끝 집에 유별난 가족이 살고 있다. 생긴 모습은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게 없지만, 사는 모습이 무척 독특해서 동네 사람들 가운데 그 가족을 모르는 이가 거의 없다. 그 가족이 바로 ‘바빠가족’이다.
--- p.5 그런데 그때, 뭔가 이상한 것이 다잘난군 눈에 들어왔다. 이상하다 못해 괴기스럽기까지 한 그것! 그건 그렇게 괴상한 모습으로 다잘난군 발끝에 붙어 있었다. 그림자! 이상한 것은 바로 다잘난군의 그림자였다! 다잘난군은 분명히 열두 살 남자아이인데, 발끝에 붙어 있는 그림자는 곰처럼 커다란 덩치에 폭탄 머리를 하고 있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다잘난군은 자기 눈이 의심스러워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 p.15 “우리 그냥 ‘그 방법’을 써요! 우리는 너무나 오래 참아 왔어요. 우리는 지금 피곤에 절어 있어요! 이대로 나가다간 우리도 ‘더바빠가족’ 그림자들처럼 까만 가루로 부서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 거예요!” 비교해씨 그림자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 p.45 “너, 왼손잡이니?” 서로 아무 말 없이 식사를 하는데 유능여사가 뜬금없이 다잘난군에게 물었다. “아니요, 밥 먹을 때만 왼손을 써요. 어? 엄마도 왼손을 쓰시네요?” “오호호호! 이 녀석, 별걸 다 닮았네.” 바빠가족은 점심을 먹으면서, 다잘난군이 밥 먹을 때만 왼손을 쓴다는 사실을, 우아한양이 콩 요리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교해씨가 다이어트 중이란 사실을, 유능여사가 두부 부침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날의 식사 시간은 평소보다 세 배쯤 길었다. --- p.74 “당신들의 이런 반응을 이해할 수 없군요. 어차피 당신들은 그림자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았잖아요. 왜 갑자기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겁니까? 당신들이 그림자를 살필 시간이라도 있습니까? 서로의 말도 들어 줄 시간도 없으면서, 밖에서 만나면 모른 채 스쳐 지나갈 만큼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 시간도 없는 게 바로 당신들, 바빠가족 아닙니까? 이미 당신들은 유령처럼 살고 있잖아요!” 비교해씨 그림자의 말에 바빠가족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럼,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요?” --- p.97 이제 바빠가족은 안 바빠지게 됐다. 이게 다 조정기간 내내 그림자들을 따라 한 덕분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은 바빠가족이 그림자를 따라 하는 건지, 그림자가 바빠가족을 따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즐거운시 행복구 여유로 82번길 가장 끝 집에 사는 이들은, 생긴 모습도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게 없고 사는 방법도 그다지 특별할 게 없다. 그래도 굳이 남들과 다른 점을 찾으라면, 글쎄……. --- p.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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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다 뒤처질까 봐 불안하고 조바심 나십니까?
잠시 멈춰 그림자의 경고에 귀 기울이세요 이야기는 다잘난군이 이 긴급한 사태를 가족들에게 알리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그림자 가족들과 협상에 나서는 과정을 그린다. 처음에 바빠가족은 다잘난군이 골목길에 동전을 뿌리면서까지 그림자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안간힘을 쓰는데도 꿈쩍하지 않는다. 그릇도 박박 닦아야 하고, 상사를 모시고 갈 맛집도 찾아야 하고, 매일 시를 한 편 외워야 하는 등 할 일이 많아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얼마나 바쁜가 하면 서로 얼굴을 까먹어서 엄마와 아들이 서로를 몰라볼 정도다. 작품 속에서 밤 열두 시가 되면 그림자들이 모여 회합을 갖는다거나 최종 수단인 ‘그 방법’을 쓸지 말지 의논하는 장면은 꽤나 섬찟하다. 하지만 한집에 살면서 가족의 식성도 모르고 밥 먹을 때 왼손을 쓰는 것도 몰랐다니 그것이 더 으스스한 일이 아닐까? 바빠가족은 스스로 원하는 만큼 스스로를 다그치며 치열하게 살아간다. 딱히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일도 아니다. 하지만 바빠가족처럼 촌각을 다투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바쁘게 살아가는 삶이 좋은 삶일 리 없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지위 같은 성취만을 좇느라 가족의 사랑이나 친구의 우정 같은 건 있는지도 모를 테니까. 아마도 바빠가족은 아무 생각 없이 사회가 가리키는 대로 탐욕과 경쟁을 삶의 원칙으로 받아들이고 고대로 따랐을 것이다. 바빠가족만 그런 것도 아니다. 남보다 뒤처질까 봐 불안하고 기회를 빼앗길까 봐 조바심 내는 것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고질병 같은 것이니까. 많은 문학 작품에서 그림자는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욕망이나 어두운 그늘을 상징해 왔다. 빛을 받을 때 가장 또렷하게 나타나고 어두운 곳에서 자취를 감추는 그림자는 그 자체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인 동시에 자아 분열의 위험을 경고해주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바빠가족』에서도 아무 문제 의식 없이 살아가던 바빠가족들은 그림자들의 경고와 위협을 통해 삶의 방식을 바꿔나가기로 결심한다. 물론 쉽게 될 리 없다. 후반부에 바빠가족이 그림자를 따라다니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그림자들의 고집이 아니었더라면 이웃에게 받는 따뜻한 환대와 최고의 강정 레시피, 교실 창가에서 친구들과 나누는 잡담의 즐거움, 점심시간에 직원들과 함께 먹는 떡볶이의 맛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늦게라도 인생의 참맛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일 수밖에. 그런데 친구에게 축구공을 패스한 발놀림은 다잘난군의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림자의 것이었을까. 사실 그림자와 주인이 하나라는 건 그림자 이야기가 갖는 가장 심오한 대목일 것이다. 애초에 우리는 모두 우리 안에 그늘과 빛을 동시에 갖고 있는 법이니 말이다. 이렇듯 『바빠가족』은 유머러스하고 과장된 판타지를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하는 우리 모두에게 발밑을 내려다보라고 권하는 동화이다. 2006년 초판으로 출간된 작품인데, 이번에 시대의 변화에 맞게 꼼꼼히 고쳐 썼다. 살림하는 엄마 대신 살림하는 아빠가 등장할 뿐 아니라 표현도 다듬었다. 여기에 정진희의 감각적이고 개성 넘치는 그림이 더해지면서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두 번째 개정판이 출간되는 동안 슬프게도 우리 일상의 속도는 더욱 빨라진 것 같다. 여전히 이 작품을 읽어야 할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