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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타관의 늙은 감나무 아래서
염소가 우는 저녁에
살구가 떨어질 때
갈퀴와 지게
서쪽
식구주의자
초록빛 스웨터가 있는 사진
가을의 판다
흰구름빌라 가는 길
붕어빵
남는 것
탁구와 흰둥이와 막걸리
확진 이후
타관의 낡은 감나무 아래서
시렁
젖는 마음

제2부 나무가 살아나고 사람이 돌아오고
푸른 손
1987
돌아오는 나무들
삽
거울
떠 있는 신발
내를 건너
이짝과 저짝 사이에서
패잔의 족보
반려
물텀벙이 생각
흠향
눈 치우는 아이
참외
배를 기다리는 집

제3부 서쪽 방
서쪽 방
하룻밤 가시사(史)
사월의 넋두리
장판 서사
옥수수를 찌며
포유류
흑호두나무 아래서
어려운 술
말의 세계
그해 겨울
논을 보며
나침반
열대야의 배송원
묻어두고씨가 오지 않는다
활인(活人)

제4부 프랜차이즈와 시
눈빛
공손한 뿔에게
프랜차이즈와 시
무릎과 발목
충분히 많은 사람
돌아가시다
면은 면을 간다
무관(無冠)의 행진
목장갑들의 집
시집 부치는 역사
벌매를 기다리며
첫눈
노래는 돌아온다
얼룩
연애시

해설|장은영
시인의 말

저자 소개 1

공저문동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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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으로 『그네』 『구르는 잠』 『설운 일 덜 생각하고』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가만히 두는 아름다움』이 있다. 제1회 박영근 작품상, 제19회 이육사시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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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1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125*200*12mm
ISBN13
9788936425456

책 속으로

우린 맨날 논도 없네, 어린 말에
더 따뜻해진 무논 봇도랑에서
흙 묻은 정강이를 씻겨주던 당신이
주운 살구 한개를
그 논물에 씻어 손에 쥐여줄 때
―「살구가 떨어질 때」 부분

노을의 자식이었다 해가 먼저 뜨는 곳에서 살아보지 못했으므로 갯벌이나 뜨거운 신작로, 돌게인 양 눈 찡그리며 삐딱하게 걷는 아이였다 엄마와는 모시조개나 맛조개를 잡았고 아버지와는 주먹만 한 백합을 캤다 썰물이 끝까지 밀려가는 곳에 살던 비단무늬 백합은 아름다웠고 어떤 것도 똑같은 무늬가 없었다

모깃불 연기 속에서 조개국수 끓이던 밤이면 딱 멍석만 한 땅만큼의 천국이 별똥별로 내리기도 했다 곁에서 킁킁거리던 아이들은 하나같이 메리였다

살아야 하는 곳은 북쪽이었고, 돌아가고 싶은 곳은 서남쪽이었다
올라가요라는 말은 살러 가요였고, 내려가요라는 말은 그리워요였다
―「서쪽」 부분

오래 두어도 썩지 않는 소금이나
소량의 꿀 같은 것들이
조금 달고 깊이 짠 것들이
서로를 지키고 간을 보태주며

구명의 식량으로서
사랑의 징표로서
늘 이 식탁 아래 묻혀 있기를
―「붕어빵」 부분

이 얼마나 가벼워 무겁고
소소해서 실점할 수 없는 랠리인가
날아가버리기 쉬운 가벼운 것들의 예민한 감각과
몇 배속으로 더 빨리 세월을 먹는 목숨과
빨리 취하기 좋은 배부른 술과 더불어

랠리를 하며 함께 살 수 있다는 것
―「탁구와 흰둥이와 막걸리」 부분

아, 눈이 젖으면 마음이 젖고
이래서 생각에 젖는다는 말이
생겼구나 생각했습니다

젖으면서도 말리며 해야 할 일이
가야 할 길이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젖는 마음」 부분

집이 무너지자 어른이 되었고 나무가 베어지자 새순 같은 아이를 낳았고 이제 낳고 기를 수도, 돌아가 살 수도, 되살릴 수도 없는 시차에서 나는 자주 꿈을 꾸고, 꿈에서나마 영원히 함께 살 것처럼 나무가 다시 살아나 자라나고, 사람이 돌아오고 집이 지어지고 메리도 꼬리를 흔들며 달려와 안기는데
―「돌아오는 나무들」 부분

내가 가장 슬펐을 때
내가 가장 애틋한 이름들을 불렀을 때
내가 가장 싸우고 싶었을 때
꼭 돌아왔다 노래는, 도돌이표처럼
또 하나의 낯선 노래를, 다시 배워야 할 노래를
친구처럼 이끌고
―「노래는 돌아온다」 부분

출판사 리뷰

“어디서 살아도 어디서 울어도 어디서 잡혀도
다 핏줄인 우리 물텀벙이들”
작고 동그란 것들에 담긴 누대의 삶


시인은 저물녘 우는 염소의 줄을 풀어주러 달려가는 어린 손(「염소가 우는 저녁에」), 나뭇짐을 이고 지고 눈보라 치는 산길을 함께 걷던 어머니(「갈퀴와 지게」), 늘 식구들보다 낮은 자리에서 그들을 먹이던 ‘당신’(「식구주의자」)까지, 기억 속 존재들을 하나하나 불러내며 “씻어도 흙손인 손”(「살구가 떨어질 때」)으로 삶을 일구어온 이들의 고단한 내력으로써 오늘의 삶을 돌아본다. 그 기억들 사이사이에는 “손에 쥐면 꼭 맞을 정도로 작고 동그란 것이 여럿”(유병록, 추천사)이다. 비둘기에게 쪼개 준 삶은 달걀, 모낸 논에 떨어진 살구, 어린 아버지가 주워 온 홍시 같은 작고 동그란 세계를 오래 들여다보면 시인의 삶과 누대에 걸친 가족사가, 나아가 오랜 세월을 건너 오늘에 닿은 우리네 삶이 보인다.

시인이 더듬는 가족사는 곧 현대사의 굴곡과 포개진다. 귀국선을 탔다는 소식만 남기고 돌아오지 않은 백부(「배를 기다리는 집」), 동학란 때 숨어 흘러 들어온 타성바지라는 당숙의 전언(「패잔의 족보」)이 그렇다. 이렇듯 가족사를 거슬러 오르던 시인의 시선은 마침내 ‘핏줄’이라는 물음에 가닿는데, 이번 시집에서 특히 눈여겨볼 대목이 바로 이 핏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시인은 핏줄을 유전적 혈연이나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가두지 않고 “서로 아귀를 맞대고 의지”(「삽」)하며 삶과 죽음의 이력을 공유해온 존재들로 확장한다. “피라는 허깨비”에 머물지 않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도 아끼고 좋아하는”(「패잔의 족보」) 이들의 사회적 혈연마저 핏줄이라 호명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현대사의 아픈 그늘을 돌이켜보며 사회적 참사로 무참히 스러져간 이들의 흔적을 성실하게 기록하고 애도한다. “아가미도 없이 해류에 쓸려 가던”(「사월의 넋두리」) 세월호의 희생자들과 이태원에서 “나무들처럼 억울하게 서서 죽은 사람들”이 남긴 “다 외울 수도 잊을 수도 없는 이름들”(「돌아오는 나무들」), 새벽 배송에 나섰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배송원(「열대야의 배송원」)을 시인은 외면하지 않는다.

이처럼 억울하게 떠나보낸 이름들을 기억하는 일은 더는 누구도 잃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그 다짐이 가장 생생하게 모인 자리가 바로 2024년 겨울의 광장이다. “흘렸던 피를 더는 흘릴 수 없어/빛과 노래로 틀어막았던” 광장에서 “새로운 시간의 혈연이 된”(「무관(無冠)의 행진」) 이웃들, 단식하는 동료 앞에서 “다른 배로 태어나 다른 배로 살았지만 꼭 다른 배는 아닌 듯”(「어려운 술」) 마음을 나누는 이들이 그렇다. 서로 먹겠다고 달려들던 식구들을 먹이고 돌보던 ‘당신’의 식구주의가 광장으로 옮겨와 돌봄의 공동체를 이룬 것이다. 그러니 시인에게 핏줄이란 고단한 세월의 고통을 함께 견디고 서로의 삶을 지탱해온 이들을 아우르는 “거대한 목숨의 연대”(해설)인 셈이다.

“같이 웃을 때는 사는 것 같았지만
같이 울어줄 때는 우리가 사람 같았습니다”
얼룩이 살아갈 자리에서 다시 배우는 노래


한편 시인이 바라보는 세계의 이면에는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삶의 상처와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오롯이 ‘얼룩’으로 남아 있다. 시인은 삶의 상처를 애써 지우려 하기보다 그 얼룩을 “그만큼의 질량으로서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진정한 포용임을 보여준다. “사랑만큼이나 어떠한 얼룩의 힘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고/용서할 때도 있었습니다”(「얼룩」)라는 고백은 서로의 흠과 상처를 알아보는 데에서 환대가 시작되며, 그것이 타자를 받아들이는 바탕이 될 수 있음을 일러준다. 또한 “제 뺨을 때리는 손과/제 뺨을 어루만지는 손이 같은 손”(「거울」)임을 깨닫듯 시인은 끊임없는 자아성찰을 통해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고자 한다. 그런가 하면 “시마저도 프랜차이즈로 인공지능으로 완수되는 세상”(「프랜차이즈와 시」)이 올 것을 우려하며, 얼룩이 사라진 세계에서 시가 결국 “평생 혼자 중얼거리기만 해야 하는 함구의 감옥”(「말의 세계」)에 갇힐지도 모를 위기를 경고한다.

그러나 상처로 얼룩진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도 시인은 끝내 희망과 회복의 가능성을 놓지 않는다. “미끈한 슈트로 변복한 자들이 법전을 착검하고 휘젓는 악몽”(「흑호두나무 아래서」) 같은 현실에 직면할 때마다 “쓰는 일이 무력해서 더 써야겠구나”(「확진 이후」)라며 시인으로서의 책무를 가다듬고, “젖는 사람이 더 젖는 세계”에서도 “빛과 사람이 있는 쪽을 유일한 비상구”(「그해 겨울」) 삼아 “젖으면서도 말리며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길”(「젖는 마음」)을 찾는다. 김민기를 생각하며 쓴 표제작 「노래는 돌아온다」에서 시인은 까마득한 과거에 “서울에서 몰래” 불리던 노래가 유구한 노래로 돌아와 계엄령마저 뚫는 장면을 목격한다. 가장 슬플 때, 가장 애틋한 이름들을 부를 때, 가장 싸우고 싶을 때마다 “도돌이표처럼” 돌아오는 그 노래와 같이, 시인은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과 회복의 노래가 다시 들려올 것임을 확신한다. 문동만의 시는 인공지능이 시마저 대체하려는 삭막한 시대에 “구명의 식량”이자 “사랑의 징표”(「붕어빵」)로서, 우리를 잃어버린 생명의 광장으로 이끄는 따뜻한 서정의 등불이 되어줄 것이다.

추천평

이 시집에는 손에 쥐면 꼭 맞을 정도로 작고 동그란 것이 여럿입니다. 시인은 “헛헛해서 먹으려던 삶은 달걀을 쪼개 비둘기에게” 나누어주면서, 긴 목을 기울여 소반 위에 차려진 음식을 나누어 먹던 식구들을 떠올립니다. 모낸 논에 이르게 떨어진 살구를 주워서 “우린 맨날 논도 없네” 푸념하는 어린 것의 손에 쥐여주던 이를 기억합니다. “남의 집 늙은 감나무 아래로 달려가/떨어진 홍시”를 주워서 홀어머니에게 가져다주는 어린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한없이 가벼운 탁구공을 최선을 다해 받고 넘기면서, 가벼운 듯하지만 묵직한 일상의 무게를 새삼 발견합니다. 시인이 꺼내놓는 작고 동그란 세계를 오래 들여다보면, 시인의 삶과 누대에 걸친 가족사가 보입니다. 저 멀리서부터 오늘에까지 이르는 우리네 삶이 보입니다. 예쁘고 애틋한 순간도 있으나 버겁고 억울한 시간도 적지 않습니다. 작고 동그란 세계에 많은 것을 오밀조밀 담아냈으니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세계가 단단해져서 “쥐고 자면 좋았을 호두알도, 나눠 먹을 주먹밥도, 멀리 던질 돌멩이도” 된다는 것입니다. 한없이 연약해 보이는 세계가 비로소 크고 단단해진 것은 시인이 다정한 손으로 오래 어루만진 덕분이겠습니다. - 유병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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