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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善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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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편지에 눈물이 떨어져서 얼른 옷소매로 닦았다. 문소리가 났다. 얼른 방에서 나왔는데 언니가 나를 보고 말았다. 하지만 언니는 모르는 척했다. 사 갖고 온 금색, 은색 종이만 펴 놓으며 일부러 퉁명스레 말했다.
“아빠를 위해서 하는 거야. 그러니까 잘 해. 왕비는 쌀쌀맞게 굴어야 된다고. 나를 진짜 미워하는 마음으로 말이야. 넌 나를 정말 미워하니까 도움이 되겠다. 안 그러니?” “…….” 나는 말없이 언니를 보다가 가만히 다가가서 어깨를 안고 얼굴을 기댔다. 언니는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언니도 내 어깨를 안아 주었다. 아무래도 나는 연극을 할 자신이 없다. 아무리 못된 왕비라고 해도 이런 언니를 미워하지 못할 테니까. 백설공주보다 더 예쁘고 속 깊은 언니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테니까. --- 「네 번째 행운」중에서 만약 할아버지가 하늘 나라에 계시고, 거기에 연이 닿는다면 아빠는 연에다 편지라도 쓰고 싶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상민이도 편지를 쓰고 싶었다. ‘할아버지, 저예요.’ 편지에 쓸 말이 더 생각나지 않았다. 사진 속의 얼굴만 떠올랐다. 아빠가 더 늙으면 바로 그렇게 보일 것 같은 사진 속의 할아버지. ‘할아버지, 저예요. 아빠한테 용기 좀 주세요.’ 상민이는 코끝이 찡해서 눈을 찡그리고 연만 보았다. 쉬지 않고 풀어져 나가는 실을 그대로 두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지만 아빠는 지금 속마음을 다 털어놓고 싶을지도 모른다. 아깝기는 해도 편지가 되어 버린 연이니까 보내는 게 옳았다. 얼레에서 실이 다 풀려 나가고 연이 보이지 않았어도 상민이와 아빠는 꽤 오랫동안 들판에 서 있었다. 내일부터는 봄이다. ---「할아버지 저예요」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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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도 없는 단짝이지만 대장과 쫄병 사이처럼 지내던 철이와 동연이가 요요 대회를 눈앞에 두고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는 〈돌아라 요요〉, 시골에서 전학 온 아이 경수가 자신을 소외시키는 아이들을 오히려 도와 주며 진정한 우정의 소중함을 가르쳐 준 〈산을 오르며〉, 아빠의 실직을 두고 갈등을 겪지만 결국 진한 가족애를 확인하게 된다는 〈네 번째 행운〉, 아빠가 만들어 주신 연을 날리며 아빠에게 힘과 용기를 달라고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를 불러 보는 〈할아버지 저예요〉, 심장병을 앓고 있는 일란성 쌍둥이 언니에 대한 아픔을 가슴 시리도록 절절히 그려 내고 있는 〈생일 나무〉, 자기 내면에 갇혀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는 소녀 은이가 벽에 그려진 물푸레나무와 대화하고 나무에서 나온 카나리아를 바깥 세상으로 날려 보내는 이야기 〈마법에 걸린 방〉, 병든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배고픔으로 고통스러워하다 위험한 고비를 맞는 누렁이가 들려 주는 이야기 〈까치 우는 아침〉, 소영이라는 소녀의 눈을 통해 바라보고 겪는 고양이의 성장 모습과 습성의 변화가 섬세하게 그려진 작품 〈구슬아 구슬아〉 등 작가가 희망으로 써 낸 우리 이웃들의 풋풋한 이야기 여덟 편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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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내밀한 마음 고백서
〈마법에 걸린 방〉에는 여러 인물들의 마음이 세심하게 녹아 있다. 여러 아이들이 맞닥뜨린 세계와 그 상황에서 겪게 되는 마음의 부침이 스르르 읽는 이의 마음으로 건너와서 어느 새 마음에 나의 이야기로 자리잡는 마력이 있다. 〈돌아라 요요〉 속 철이는 요요를 살 수 없고 친구 동연의 요요를 빌릴 수도 없는 것이 화나고 속상하지만, 그 과정에서 철이를 향한 동연의 마음을 알게 되고 친구와 무언가를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깨달아 간다. 〈네 번째 행운〉 속 자매는 아빠의 실직을 두고 팽팽하게 대립한다. 아빠의 실직을 알면서도 두렵고 속상함이 앞서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던 언니와 힘든 아빠에게 연극에서 입을 공주 드레스를 사달라고 조르는 언니가 그저 못마땅하기만 한 동생은 서로 표현이 달랐을 뿐, 아빠를 향한 마음은 둘다 애틋했다. 아빠에게 용기를 달라고 하늘 나라에 계실 할아버지에게 연을 날리며 봄을 기다리는 〈할아버지 저예요〉 속 상민, 아빠와 생일 나무를 심고 나무 주위의 흙을 꼭꼭 눌러 밟으며 일란성 쌍둥이 언니의 건강을 기도하는 〈생일 나무〉 속 다운, 스스로의 마음의 방에 갇혀 새엄마, 새아빠가 내미는 손을 잡지 못하고 괴로워하다, 종국에는 그 방의 문을 연 〈마법에 걸린 방〉 속 은이, 고양이 구슬이의 성장과 변화를 못내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새끼를 벤 구슬이를 위해 정성스럽게 깔개를 만든 〈구슬아 구슬아〉 속 소영의 이야기는 모두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우리의 이야기이다. ‘내일부터는 봄이다’ 〈마법에 걸린 방〉을 관통하는 새로운 이미지의 키워드는 ‘손’이다. 친구의 손을 맞잡는 손, 두 배로 잡아 주고픈 아빠의, 언니의, 새엄마의 손, 가족 같은 강아지를, 고양이를 쓰다듬고픈 손……. 안경미 작가는 〈마법에 걸린 방〉에서 손을 맞잡고 어깨에 기대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발견하고, 그 모습을 작품마다 곱게 구현해 넣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든 어떤 일을 겪든, 맞잡은 손, 기댈 수 있게 내어 준 어깨처럼 희망을 꿈꾸게 하는 씨앗은 존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