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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누나
도서1팀 김도훈 (eyefamily@yes24.com)
2013.04.03.
#1_삭막한 서울지하철에서 말랑말랑한 시인예찬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선다. 노량진에서 여의도까지, 멀지 않은 거리라 가벼운 산보 나가는 마음으로 회사를 향한다. 겨우내 귀를 앗아갈 듯한 동장군의 위엄 앞에 무릎을 꿇고 대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녔는데, 지하철 안 풍경은 갈수록 내 마음을 씁쓸하게 했다. 열 사람 중 아홉은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을 들여다 보고 있었고, 나머지 한 사람은 모자란 잠을 청하고 있었기에. 마침 손에 쥐고 있던 함민복의 시집에는 이러한 서울 지하철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어서 새삼 흥미로웠다. 2 전철 안에 의사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모두 귀에 청진기를 끼고 있었다 위장을 눌러보고 갈빗대를 두드려보고 눈동자를 들여다보던 옛 의술을 접고 가운을 입지 않은 젊은 의사들은 손가락 두개로 스마트하게 전파 그물을 기우며 세상을 진찰 진단하고 있었다 수평의 깊이를 넓히고 있었다 (p.86, 「서울 지하철에 놀라다」 중에서) 이렇듯 그의 시는 평범한 일상의 현장에서 시작된다. ‘영혼의 무게 달아주며’ 달리는 영구차를 타고 가면서, 현금지급기 앞에서 본 열쇠를 주렁주렁 매단 아저씨를 보면서, 그리고 ‘죽은 시계를 손목에 차고 수은전지를 갈러 가는 길’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래서 그의 시가 참 좋다. 대개 시를 보고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의 시는 어렵지 않다. 보통 사람들에게 친숙한 일상에서 시작하여 평범한 단어로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를 펼쳐낸다. “빠름 빠름 빠름”을 외쳐대는 세상에서 빠르지 않아도 좋다고 말해서 좋다. 효율을 강조하는 딱딱하기만 한 세상에 말랑말랑한 힘을 노래해서 좋다. 무엇보다 과하지 않은, 소박하지만 진득하게 깊이가 있는 그의 생각과 표현이 참 좋다. 8년 만에 선보이는 시집인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에도 그만의 시가 가득 담겨 있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표시하다 보니 시집 전체에 포스트잇이 가득하다. 시집이 덕지덕지 지저분해질수록 내 마음은 더 말랑말랑해진다. #2_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는 이치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다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pp.14-15, 「흔들린다」) 유독 곱씹게 되는 시다. 흔들림과 흔들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의지와 흔들리지 말라는 소중한 이들의 응원과 흔들림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나라는 존재가 뒤엉켜 있던 지난 날의 시간이 생각나지만, 시는 여전히 내게 말하고 있다. 흔들려도 좋다고,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일들이 실은 그런 것이 아니었노라고 위로한다. 중심을 잡고 서 있는 일도 중요하지만 가지를 뻗고 이파리를 틔우는 일 역시 흔들리지 않으려고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는 것임을. 나무는 흔들리는 것과 흔들리지 않은 것이 함께 있기에 중심을 잡고 있을진대, 내 삶 역시 그러한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왜 그리 아둥바둥하면서 살았을까. 오늘도 흔들린다. 자전거를 타고 오는 한강변에서 바람이 세차게 부는 걸 보니 오늘은 마구 흔들려 보는 것도 꽤 괜찮지 않을까. 그의 시집을 곱씹으며 책장을 넘기다 보니 바람은 차갑게 불지만 왠지 마음은 더 따뜻하다. 조급해하지 않겠다. 흔들려도 괜찮다. 짜증내거나 불만스럽다면 참지 않아도 좋다. 좀더 솔직하게, 오늘을 대면하련다. 오늘도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누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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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처럼 따스한 눈물, 모든 아픔과 희망을 위한 노래
선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선천성 그리움’의 힘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가난한 삶을 노래해온 함민복 시인의 신작 시집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이 출간되었다. 2005년, 10년 만에 네번째 시집 『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을 펴낸 데 이어 다시 8년 만에 선보이는 다섯번째 시집이다. 요즘 시단의 풍경으로 보자면 꽤나 느린 걸음이지만, “함민복의 상상력은 우리가 기꺼이 공유해야 할 사회적 자본이다”(이문재, 추천사)라는 평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세월의 무게에 값하는 70편의 수작을 담았다. 부드러운 서정의 힘이 한결 돋보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가난한 삶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여유로움이 배어 있는 삶의 철학과,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는 “경험에서 이끌어낸 실존론적 사유”(문혜원, 해설)의 세계관을 펼쳐 보인다. 손끝에서 놀아나는 섣부른 수사나 과장 없이 정갈한 언어에 실린 솔직하고 담백한 ‘삶의 목소리’로 일구어낸 시편들이 따듯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잔잔한 울림을 선사한다. 보름달 보면 맘 금세 둥그러지고/그믐달에 귀 기울이면 움푹 비워진다//달은/마음의 숫돌//모난 맘/환하고 서럽게 다스려주는//달//그림자 내가 만난/서정성이 가장 짙은 거울(「달」 전문)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평등한 삶을 지향하는 시인의 사유는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흥미롭게도 시인은 “감겨 제 몸을 재고 있”는 줄자(「줄자」), “살아 움직일 때보다” 더 무거운 고장난 시계(「죽은 시계」), 녹이 슬어 버려진 저울(「앉은뱅이저울」)처럼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사물에 주목하면서 그것들로부터 존재론적인 사유의 바탕을 얻는다. 여기서 시인은 “풍경을 지우며/풍경을 그”리고 “건물을 지워/건물이 없던 시절을 그려놓는” 안개와도 같은 시각으로 폐기된 사물에서 빛나는 사물성을 읽어내며 “보임의 세계에서 해방된”(「안개」) 사물 고유의 본성을 감지한다. 나는 나를 보태기도 하고 덜기도 하며/당신을 읽어나갑니다//나는 당신을 통해 나를 읽을 수 있기를 기다리며/당신 쪽으로 기울었다가 내 쪽으로 기울기도 합니다//상대를 향한 집중, 끝에, 평형,/실제 던 짐은 없으나 서로 짐 덜어 가벼워지는(「양팔저울」 부분) 매일의 고달픈 일상을 힘겹게 이어나가는 현실은 세대나 계층을 불문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비애가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다. 시인 또한 그러한 삶의 남루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이 남루한 삶의 풍경들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가운데 그 모든 장삼이사들의 끈기 어린 의지적 면모를 살며시 들춰 보여준다. 좌판의 생선 대가리는/모두 주인을 향하고 있다//꽁지를 천천히 들어봐//꿈의 칠할이 직장 꿈이라는/쌜러리맨들의 넥타이가 참 무겁지(「금란시장」 전문) 벌써 17년째, “수직에 중독”(「직각자」)된 도시를 떠돌다 강화도 뻘밭에 터를 잡고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시인은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현대 문명’(「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말랑말랑한 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감추지 않는다. “문명의 세례”인 듯 “방사능 비에 젖으며” 날아가는 기러기떼를 무연히 바라보던 시인은 그토록 “환호하던 원자력 밝은 빛”이 결국은 “어둠”(「봄비, 2011, 한반도, 후꾸시마에서 날아온」)이 되고, “산업화 열기에/깨 진 오 존 층 파 편 이/납덩이가 되어/산탄 외탄 총알이 되어” “우리들의 폐에 날아와 박히고 있”는 사태에 이르자 “생명을 총으로 만들어놓았으니” “우리는 자발적으로 추방되어야 할 뿐”(「공기총」)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시인은 또 유전자 조작으로 “슈퍼 옥수수/슈퍼 콩/슈퍼 소”를 개발해내는 현실을 개탄하며 “꼭 그리해야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다면” 차라리 “꼬막 밥그릇”이 어울릴 만큼 “사람들이 작아지는 방법을 연구해보”(「농약상회에서」)자며, 자연의 존귀함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일깨운다. 물이 법(法)이었는데/법이 물이라 하네//물을 보고 삶을 배워왔거늘/티끌 중생이 물을 가르치려 하네//흐르는 물의 힘을 빌리는 것과/물을 가둬 실용화하는 것은 사뭇 다르네//무용(無用)의 용(用)을 모르고/괴물강산 만든다 하니//물소리 어찌 들을 건가/새봄의 피 흐려지겠네(「대운하망상」 전문) 함민복의 시는 꾸밈없는 삶의 기록이다. 시인은 삶의 어느 한 순간도 가벼이 보지 않고 소중한 의미로 받아들이며 세상의 모든 존재들에게 애틋한 마음을 건네며 다가선다. 가난을 일으켜 세우는 긍정의 힘이 있기에 그의 시는 가난하면서도 따듯하다.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흔들린다」)며 “먼 길 걸어온 사람들 목을 축여줄 수 있”(「폐타이어 3」)기를 소망하는 그의 시는 더 나은 삶과 사회,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따스한 위로가 될 것이다. 메마른 대지를 촉촉하게 적시는 봄비처럼 그렇게. 뜨겁고 깊고/단호하게/매순간을 사랑하며/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들을/당장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데/현실은 딴전/딴전의 힘으로 세계가 윤활히 돌아가고/별과 꽃이 아름다운 것 같기도 하지만/늘 딴전이어서/죽음이 뒤에서 나를 몰고 가는가/죽음이 앞에서 나를 끌어당기고 있는가/그래도/세상은 세계는/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단호하고 깊고/뜨겁게/매순간 나를 낳아주고 있다(「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