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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멀리 던지면 누구나 길을 잃겠지
박진이
걷는사람 201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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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세상의 모든 노래는 젊어서
숨바꼭질
욕조에서
줄넘기
고무줄놀이
나는 죽어서도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다
죽은 신부의 얼굴
꽃놀이
손금
세상의 모든 노래는 젊어서
강박 신경증
흰 할머니를 잃었다는 동화
낭만적 등굣길
할머니 언제 이곳까지 와서 울고 계셔요
꽃상여

2부 공기놀이
가위바위보
신발
지갑
어금니
공기놀이
속눈썹 연장술
베이비 박스
달방
버들강아지
날파리증
철거 통지문
콜렉트콜
마중
숨은그림찾기

무릎
환승

3부 사다리타기
냇가의 물이 무릎까지 차오를 때
마지막 졸음
물고기 계단
신발을 멀리 던지면 누구나 길을 잃겠지
발자국을 지나다
주먹 쥔 나이
간주
바래다줄게
예쁜 혈액형
과거로 달리는 시속
숟가락
사다리타기
천하명당복권방
공공근로
공작단풍

4부 가임기의 나를 지나는 아이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가임기의 나를 지나는 아이들
술에 취해 우는 여자는 어떤 얼굴을
애호박
원을 세다
그리운 나무그늘이여!
불꽃의 이력서
직소퍼즐
다만 이름만 빌려왔을 뿐
육백
불안한 이탈
가을 운동회
화전花戰

해설
모노산달로스의 시적 여정 :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서 길 잃기
-김지윤(시인·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2015년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시 「신발」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신발을 멀리 던지면 누구나 길을 잃겠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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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2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143쪽 | 178g | 125*200*10mm
ISBN13
9791189128630

책 속으로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때
내가 찾아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는 것이었지
지금도 여전히
--- 「숨바꼭질」 중에서

무승부가 없는 놀이
나는 지기만 했지
바위는 보에 지고 보는 가위에 진다
조금만 기다리면 데리러 온다고 했지
--- 「가위바위보」 중에서

발 하나 들어 있지 않은 난전의 신발들
맨발보다 더 시려 보이는 저 표준의 사이즈들은
몇 번을 신어 보고 몇 번을 돌아서 보고
몇 번을 벗어두고 나서야
발의 온도를 이해할까
오늘도 얇은 먼지와 흰 눈에게 제 크기를 내어준다
겨울, 한기를 견디던 힘으로 발을 기다리는 일
진열이 아닌 나열의 추운 발
그러나 아무도 저 시린 발은 사지 않겠다는 듯
지나가는 걸음들은 빠르다
맞춤이 아니어서 주인이 없는 발
--- 「신발」 중에서

몇 장의 꽃잎 세는 동안
손가락 끝을 빠져나가는 꽃

내리실 분은 벨을 눌러주세요
난 여기까지야
저녁마다 버튼이 붙어 있다

꽃잎과 꽃잎 사이로 차창이 지나고
졸음이 밀려오고
꽃에 내리려면
건망증만큼의 할증이 있어서

몇 장의 붉은 꽃잎
다시 세는 동안
덜컹, 흔들리는 버스

어떤 꽃은 나무에 들어 햇살만 축내고
한철 흩날리는 봄
우린 다른 봄을 살았을까
난 여기까지야
--- 「환승」 중에서

신발을 멀리 던지면 누구나 길을 잃겠지

모래톱에 찍힌 발자국에는
지난밤 큰 물고기를 물가까지 끌고 나온 수달이 있고
들쥐를 쫓는 너구리가 있고
황조롱이 한 마리 앉았다 날아오르고
--- 「신발을 멀리 던지면 누구나 길을 잃겠지」 중에서

바래다줄게, 꽃 피는 근처까지

막 햇빛이 다녀간 벤치에 앉아
지루한 발밑에서 절걱거리는
돌멩이 소리를 듣곤 했지
문득 새들이 날아들었다 흩어지고

갓 쌓인 눈에 발이 잠기는 순간까지만
바래다줘
말을 걸지 않았다면
이곳까지 올 일도 없었을 거야

어디?
오래된 질문이 마음에 들어
--- 「바래다줄게」 중에서

차라리 맨발로 땅을 걷고 싶어요 계모와 이복언니는 행복의 전제 조건인가요? 행복해지기 위해 얼마나 더 불행해져야 할까요 계단은 너무 길어서 구르거나 넘어지거나 일정 부분은 운명에 맡겨야 해요

어느새 시간은 자정이 다 되어가고 여자의 유일한 혈육인 신발은 꽉 끼어 잘 벗겨지지 않아요
--- 「술에 취해 우는 여자는 어떤 얼굴을」 중에서

엄마는 만국기 중 어느 국가에서 펄럭이고 있을까
매트 위를 한 번 구르고
훌라후프 두 개를 빠르게 통과한다
몇 개의 장애물을 지나
작은 쪽지를 펼쳐 엄마가 나오면
나는 잠깐 동안 지워지는 아이

해마다 할머니는 엄마가 있다는 나라를 바꿨다
안경 낀 할아버지
교감 선생님
쌍꺼풀이 있는 남학생
파마머리의 아주머니
기형적인 가족이어도 너무 좋아
엄마가 아닌 사람의 손을 잡고 뛰는 나는
세상에서 제일 빠른 아이

할머니는 흙이 묻지도 않은 내 운동복을 자주 털어 주었고
가끔 올려다본 하늘엔
만국기처럼 많은 엄마의 나라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 「가을 운동회」 중에서

출판사 리뷰

걷는사람 시인선 18
박진이 -『신발을 멀리 던지면 누구나 길을 잃겠지』 출간


박진이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신발을 멀리 던지면 누구나 길을 잃겠지』가 출간되었다. 찢겨진 가족사 속에서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이 시집 곳곳에 드러나 있다. 박진이 시인은 비현실적인 장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준다. 그는 현실이 아주 비현실적이고 비현실적 장면이 현실적으로 보이도록 시 곳곳에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장면을 많이 배치하였다.

송재학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가족사는 시인에게 “그렁그렁 괴어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외로움이라는 깊이에 엄마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결국 시인의 탄생은 “엄마가 만들어내는 가장 슬픈 자리”에 다름 아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지윤은 박진이 시인이 만들어낸 시적 시간에 대해 주목하며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기다림 속에 침잠해 있는 채로 자신이 발견하게 될 ‘시의 순간’과, 그것을 비로소 찾아 언어로 옮겼을 때 자기만의 방법으로 읽어내 줄 누군가를 동시에 원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박진이의 시에서 “길을 잃는다는 건, 오히려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사건이 된다. 신발을 잃어버린 것이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닌 자의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주목된다.”(「모노산달로스 :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 길 잃기」, 김지윤 해설 부분)

시를 쓰는 것은 어쩌면 누군가에게 발견당하기 위해 소리 내어 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떠나고 없는 놀이터에 홀로 선 그는 중얼거린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때/ 내가 찾아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는 것이었지/ 지금도 여전히”(「숨바꼭질」부분)라고. 지금 시를 쓰는 행위는 몇십 년 전의 그 장소와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과 같다. 박진이 시에서 등장하는 놀이들(공기놀이, 숨바꼭질, 줄넘기, 가위바위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은 우리를 과거의 어느 한 지점으로 데려간다. 과거의 놀이를 재현하며 그는 지금 시 쓰기가 곧 과거 놀이의 반복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늘 지는 게임, 다시 술래가 되는 게임이며 “내 주먹과 증오만으로도 나는/ 나를 만신창이로 만들 수 있”(「가위바위보」부분)다는 고백처럼 그 게임은 시 쓰기의 외로움과 닮아 있다.

박진이에게 지금 ‘시 쓰기 놀이’는 벽에 얼굴을 묻고 울며 지는 게임을 반복해야 했던 과거에 대한 복수이며 소환이다. 박진이 시에서 놀이는 자신을 더욱 고독하게 만드는 숙명과도 같은 무게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무게야말로 역설적으로 이 시집을 더욱 희소성 있게 만들고 있다. 시집『신발을 멀리 던지면 누구나 길을 잃겠지』에는 어떤 ‘순간’들이 기록되어 있다. 순간은 지나가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다시 돌아오기도 하며, 순간과 순환의 반복 속에서 우린 살고 있다. 시에서 등장하는 화자들 엄마, 할머니, 남학생과 여학생, 아이 같은 다양한 사람들은 모두 박진이의 모태이며 박진이의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시인의 말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고 생각했지
창밖으로는 꽃들이 지나갔는데

언제까지고 계속될 듯한
한낮이 있어서

언제든 제대로 내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여전히 나는 의자에 앉아 있고
다음 정류장은 보이지도 않고

2019년 12월
박진이

추천평

여기 가족(들)을 필경해야만 하는 권리가 있다. 시집은 온통 할머니, 엄마, 남동생, 자신의 아이, 심지어 계모와 이복언니까지 등장하는 나무형(Tree Structure)이라는 가계도의 형식을 따라간다. “찢어지거나 구겨지거나 버려지는”(「철거 통지문」) 가족사는 시인에게 “그렁그렁 괴어 있는”(「숨바꼭질」) 유일한 방법이다. ‘자정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품는 울음을 담는 욕조, 그게 “손과 발을 만들고 외로움을 만들었”(「욕조에서」)다. 물의 외로움이라는 깊이에 엄마가 있다. 시인의 탄생은 “엄마가 만들어내는 가장 슬픈 자리”, 이것은 발명일까. 차라리 “엄마를 지목하”고 “엄마를 의심”하고픈 욕망이다. “세상에서 내 대답을/ 가장 믿지 못하는 사람”(「죽은 신부의 얼굴」)이기에 엄마를 떠나 ‘새로운 얼굴’을 꽃피우고자 한다. 엄마에의 투영은 “나는 죽어서도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다”라는 살아 있는 독백을 반복하면서, “낮에도 죽은 사람들을 보고 다”(「꽃놀이」)닌다. 엄마 대신 등장하는 할머니가 ‘검은색 세월’로 이미 ‘죽은 할머니’인 것조차 놀랍지 않다. “늬 엄마가 너를 몇 번이나 흘릴 뻔 했단다”(「공기놀이」)라는 할머니 말을 믿으면서, “얼굴보다 손바닥이 먼저 늙는”(「손금」) 유년기가 지나갔다. 엄마가 되려 하고 엄마가 된 가족사에서 태어난 벚꽃의 아이들은 “내가 나를 지나면서 두고 온 아이들”(「가임기의 나를 지나는 아이들」) 또는 “우리는 하나이거나 둘”이다. 너/ 아이 속에서 나/ 엄마를 보는 나무형 가계도가 다시 자란다. 때로 “발 하나 들어 있지 않”(「신발」)다는 신발, 때로 “나는/ 나를 만신창이로 만들 수 있는”(「가위바위보」) 놀이, 때로 “집을 보러 다니듯 나무들을 보러 다”(「나는 죽어서도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다」)니는 나무, 때로 “꽃잎이 커다란 아홉 송이 홍작약은/ 수백 번 내 손에 포개지던 손”(「죽은 신부의 얼굴」)들처럼 몸을 통과하는 것들은 죄다 가족이라는 얼굴/ 기억을 가졌다. 스스로 위로하는 몸의 다른 의무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 마음껏 파괴되었던 무릎의 문양을 읽었다. - 송재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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