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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동백 한 첩

의자
곰칫국
낙안댁
말똥
그림책
빗소리 듣기 모임
갈 수 없어도 가야 한다
시집
밀화부리
하고 싶다

버드나무벌레혹
기본소득
지속 가능한
꽃의 부하들

2부 가장 먼 고장의 차표를 끊자

눈사람 만드는 사람
아버지에게 호랑이 이야기를 듣다
풍장
커튼콜
돼지국밥의 비약
나는 배우다
상위 2%
처용공업사
냄비의 역습
행복도시
눈 극장
생계
선풍기
바람은 어떤 뜻을 가졌을까
미래기술공업사

3부 쩜매 주고 싶은 상처

장수풍뎅이
안다는 것
사투
라이더
알뿌리

벌교
삼룡이
올갱잇국
비 오는 날 어머니와 강낭콩을 까며
꽃절 간다
제비
퉁점

4부 오늘은 생강나무까지만 가자

시에 바다 한 줄 나오지 않는
사내
허구가 살린다
완역본
시내에서 혼자 먹다
투명 인간
오늘은 생강나무까지만 가자
노각나무가 있는

염소 풀 뜯어 먹는 소리를 듣다
도시락
눈썹위에사마귀 철학관
마이
유수지의 아이들
나비 여인숙

해설

당신은 꿈 없음을 희망하세요
-박다솜(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전남 벌교에서 태어나 청주에서 참도깨비작은도서관을 운영하며 책과 시를 기본소득 삼아 살고 있다. 199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장닭공화국」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처럼』, 『달함지』, 『안녕, 나의 별』, 『빗소리 듣기 모임』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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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9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124쪽 | 142g | 125*200*20mm
ISBN13
9791192333250

책 속으로

의자를 처음 만들었던 사람은
사람들이 이렇게 오래 앉아
일할 줄 몰랐을 것이다
---「의자」중에서

잎새주 한 잔에 바랄 건
한 가지
아버지, 어머니 기침 좀 멎게 해 주세요

악머구리처럼 떨어지지 않는 기침만 아니면 지금이라도
훨훨 날아가실 것만 같은데
나는 어쩌지도 못하여
어머니 손에 얼른 동백 한 첩 쥐어 주었다
---「낙안댁」중에서

빗소리 들으며 도시락 먹으면
소나기밥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점심 먹는 속도가
느려지는 걸 알 수 있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 만한
비 오는 날의 소풍에 나오는 것처럼
비 오는 날 길에 텐트 치고 점심 먹을 때
꼭 지나가는 사람은 한마디 한다
날궂이가 따로 없다고
그러면 비 안 오는 셈 치고 먹지요
하는 대답은 빗소리 듣기 모임의 창시자다운 말씀이다
간이책상 펴고
젓가락질할 때 빗소리는
언치지 말라고
꼭꼭 씹으라고
---「빗소리 듣기 모임」중에서

끝이 없을 거라는 믿음은 얼마나 텅 빈 말인가
지속 가능한 것에는 안위와 행복, 공동선으로 요약된 피 같은 것이 묻어 있기는 하지만
침식하는 바닷가 언덕에서 바라보는 수평선이나
자기 관을 채우는 순장품들,
누려 왔던 것들의 지속 가능한 뜻이다
(…)
그러나 아무도 수천수만 번 폐허 위에서도 고리를 끊지 않았다
고쳐 쓴 연설문처럼
스스로 자기복제를 하고 말았다
---「지속 가능한」중에서

이이야기의 끝은
엔딩 자막이 올라야만
의자에서 일어날 수있다
그래야만 거기
지나가는 사람 9라도
한 줄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이야기,
장르 불문 당신의 차기 출연작
연속 상영하는
눈발을 맞으며 퇴장할 일만 남은,
이런 날엔
가장 먼 고장의 차표를 끊자
---「눈 극장」중에서

꿈이 무엇이냐고 아내가 물었다
집앞 골목 구룡포횟집을 지나올 때
회를 뜨다 말고 아는 척을 하는
보지도 않고 정확히 살과 가시를 발라내는 주인장의 능숙한 칼질 같아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뼈째 드러내는 꿈을
아직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었던가
---「꿈」중에서

무찌르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으나
이 사람만은 가장
순백하게 빚고 싶어
가장 미운 사람 지우고,
끝내

스스로 엎어져 우는 사람
---「눈사람 만드는 사람」중에서

생계가 무슨 말인지 아냐고 물으니
그거야 당연히 먹고사는 일이죠
그걸 모를까 보냐고 눈을 크게 뜨는 아이들 앞에서
생계란 말을 몸소 알게 되는 날은 언제일까
가난이란 말이 그저 돈이 좀 모자라거나
집 없다는 것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될까

그러나 대답을 그리 궁금해하지 않은 듯
질문일 뿐이다
살아갈 방도나 형편이란 뜻풀이는 어렵기만 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밥 굶지 않고 살 만하다고 말하는 것도
궁색하다

바지락 씻듯 해감한 아이들의 눈빛을 보고 싶다

---「생계」중에서

출판사 리뷰

“산에는 꼭대기까지 오르려고 가는 것이 아니다
오늘은 생강나무까지만 가자“

살아내야 하는 오늘에 전하는 쉬어 가도 된다는 응원
빗소리처럼 푸른 생명력이 전하는 무소유의 자세


걷는사람 시인선 68번째 작품으로 이종수 시인의 『빗소리 듣기 모임』이 출간되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종수 시인은 첫 시집 『자작나무 눈처럼』에서는 언어 미학의 진수를 보여 주었고, 두 번째 낸 『달함지』에서는 소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며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펼쳐냈다는 평을 받았다. 이후 그림 시집 『안녕 나의 별』을 냈고, 작은도서관 참도깨비를 운영하며 ‘엽서시 동인’이란 이름으로 시와 그림을 담아 발행하고 있다.

시집『빗소리 듣기 모임』을 통해 시인은 ‘꿈, 기본소득, 투명인간’ 같은 키워드를 바탕으로 ‘고뇌하는 사람’의 면모를 보여 준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는 방법을 통해 자아 성찰을 겪게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거울 같다고 말할 수 있다. 표제작 「빗소리 듣기 모임」처럼 실제 경험담을 담은 시는, 시를 읽는 독자 역시 빗방울의 정서와 템포에 맞추어 “속도가 느려지는” 체험을 통해 지금의 삶을 잠시 쉬어 가게 만든다. 잠시 쉬어야만 마땅히 갈 수 있는 ‘소풍’을, ‘꼭꼭 씹’어 먹음으로써 삶이 얹히지 않는 정화淨化의 시간을 그려낸다. 갈급한 이들에게 떨어지는 다디단 빗소리 같은 시집이다 이종수 시인의 시는 자연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광대노린재, 붉은산꽃하늘소, 늦털매미/호랑꽃무지, 검정파리매, 멋쟁이딱정벌레”(‘시인의 말’) 등과 “산수유나무 아래 죽은/밀화부리”(「밀화부리」)의 존재가 눈에 띈다. 이러한 존재 호명을 통해 생명력을 부각시키면서도 사소한 상상으로 그쳤을 일을 무궁무진한 서사로 끌어 가는 면모를 보여 준다.

그뿐 아니라 이 시집에는 비판의식에 힘을 실어 주는 섬세한 언어적 표현들이 살아 있다. “끝이 없을 거라는 믿음은 얼마나 텅 빈 말인가/지속 가능한 것에는 안위와 행복, 공동선으로 요약된 피 같은 것이 묻어 있기는 하지만/침식하는 바닷가 언덕에서 바라보는 수평선이나/자기 관을 채우는 순장품들,/누려 왔던 것들의 지속 가능한 뜻이다”(「지속 가능한」) 같은 표현에서 여전히 들끓는 그의 꿈과 시세계를 엿볼 수 있다.

시인은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갈 법한 인간의 모습에도 집중한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하나도 까먹지 않고 화수분처럼 가슴속에 이야기 안고 사는 것을,/다 하지는 못하고 식어 흙이 되는/밥알 튀는 이야기들을”(「아버지에게 호랑이 이야기를 듣다」) 같은 구절에서 보듯 옛이야기 속 한 대목 같은 시들은 우리가 잊고 있던 본질을 깨워 주며, 그런 옛 정서와 덕목 들을 중시하려는 시인 자신도 기실은 “배역은 늘 도시로 돌아오는 배우”(「나는 배우다」)라는 사실을 인지함으로써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복잡한 심리를 현실감 있게 짚어낸다. 도시에도 고향에도 머물지 못하는 경계인으로서의 아이러니, 자유, 번뇌 등을 어떤 제스처 없이 그대로 채록한 글이 바로 이종수의 시일 것이다.

추천사를 쓴 송진권 시인은 “세상에 상처받아 속이 속이 아닐 때 눈을 감고 빗소리를 들어 보자.”라며 이 시집이 지닌 원형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고 청한다. 해설을 쓴 박다솜 문학평론가는 “목표에 연연하지 않는 삶의 태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심껏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는 각오가 만나는 이 지점에서 이종수만의 무無목적적 삶의 미학 같은 것이 도도록하게 떠오른다.”고 상찬한다.

시인의 말

산책할 때마다
다른 무엇이 되려고 한다.
광대노린재, 붉은산꽃하늘소, 늦털매미
호랑꽃무지, 검정파리매, 멋쟁이딱정벌레
나무와 풀을 근간으로 한
파르티잔!
늙지 않고 다시 태어나는
파르티잔들과

2022년 가을
이종수

추천평

“높은 곳에 올라 보니 세상 사람들이 다/자기가 거느린 암탉처럼 멍청해 보인다”(「장닭공화국」, 시집 『자작나무 눈처럼』)고 1990년대의 풍경을 탁월하게 풍자한 종수 형의 시는 이제 이렇게 고즈넉하고 아늑한 길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나지막하고 어눌하게 말한다. 오늘은 생강나무까지만 가자고. 멸족 직전의 전업시인으로 살면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들은 종수 형을 거쳐 이 시집 속에 마늘청처럼 배어나와 숙성되고 발효되어 되살아난다. 이는 “눈물은 늘 길바닥에 넘쳤으니/울보의 하늘은 길바닥이었던 셈이다”라고 말한 시(「삼룡이」)에도 나오지만 눈물 많은 남도에 종수 형의 뿌리가 있기 때문이고, 타고난 사람됨이 따스하고 인정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시집을 읽어 보면 “하나같이 몸과 마음에 어혈이 들어/속이 속이 아닌 것이어서/(…)/겨울 파도에 궁글린 곰치 살을/후루룩 넘기며/눈물 한 방울로 시작된 전생 같은 것”(「곰칫국」)을 절로 떠올리게 된다. 더운 김을 내는 곰칫국같이 늘 거기서 나를 기다려 주고 있을 것 같은 따스하고 순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가. 세상에 상처받아 속이 속이 아닐 때 눈을 감고 빗소리를 들어 보자. 그리고 나직하게 말해 보자. 오늘은 생강나무까지만 가자고. - 송진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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