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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내 몸에는 남는 방이 있었다 11모서리 12없던 일 14사물의 월식 16숲과숲 181의 애인 20부분 22싸움 28보이지 않는 도시 30얇은 방 32계약 34덫은 36코너 40상자 43왼손잡이용 햄버거 47포장 풀린 상자는 상자와 같아서 50연구 532부창문 없는 방 59책갈피 서사 60얼룩말 상자 62203 67운 70비 내리는 비 72한 명 이후 74사이 76마지막 장소 78스물 80물의 서사 82과일 걷기 86저녁에는 담장이 자란다 89날개 92서른 97빈 꿈 102노랑 아래 106환절기 1083부봉합된 복도 117벽에게 118나의 방 옷장과 천장 사이 스핑크스가 엎드려 있다 122한쪽 138비상구 140영원한 것 뒤에는 무엇이 놓여 있습니까 144철거하다 149폴리곤 153소거법 158안내 사항 162작품 해설-최선교(문학평론가) 165추천의 말-신용목(시인)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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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의 속도오래 훔쳐본 유리일수록 빨리 녹는다 오래 지켜본 눈일수록쉽게 잠긴다―「싸움」에서배진우는 사물에 속도를 맞춘다. 사물의 움직임을 측정하는 인간 기준의 단위가 ‘속도’라면, 배진우는 사물의 단위로써 ‘흔적’을 발견한다. 『얼룩말 상자』의 첫 시 「내 몸에는 남는 방이 있었다」에서 들여다본 ‘몸’의 주름을 시작으로 ‘박스’, ‘나무’, ‘물결’, ‘도시의 밤’ 등 배진우의 화자는 사물 곳곳에서 접힌 자국, 그어진 선, 얼룩 같은 흔적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사물의 시간과 공간 앞뒤를 살핀다. 『얼룩말 상자』에서 흔적은 사물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지표가 된다. 얼굴의 주름이 이전의 감정과 이후의 움직임을 보여 주듯, 배진우의 시에서 ‘흔적’은 과거의 잔해만이 아니라 미래의 모양이기도 하다. 흔적을 통해 사물의 속도에 맞춰 움직이는 배진우를 따라, 우리는 정물의 생동을 마주한다. 소리도 없이, 움직임도 없이 다음 순간으로 고요하고 가뿐하게 나아가는 존재들의 힘을. 손을 한 번도 떼지 않고 그린 그림덫은 상처의 모양을 생각하고 만든 첫 번째 물건(......)덫은 덫을 닮았다상처는 상처를 닮았고상처와 덫이 자리를 바꾸고덫 위와 덫 아래에 있는 고요가 다를 때한 동작을 앞서가고 있는 것만 같고물건이 있고 상상이 있고어떤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흉터는 상처를 주는 물건과 닮아 간다―「덫은」에서생동하는 정물은 서로 연결된다. 표제작 「얼룩말 상자」에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한 번도 손을 떼지 않고” 그린 그림의 사물들이 복잡한 선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배진우의 사물들은 서로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공명하고 전이되며 때때로 사건을 일으킨다. 「덫은」의 ‘덫’과 ‘상처’는 닮은 모양을 따라 자리를 맞바꾼다. 상처가 있던 자리에 덫이 놓일 때 발생하는 차이는 화자의 상상을 촉발하고, 상상은 사건의 징조가 된다. “나무와 그늘이 있는 곳에 눅눅한 함정”처럼 놓였던 ‘덫’은 그와 닮은 ‘상처’와 ‘흉터’로 이어지다 “내가 보고 싶어 했던 사람”이 되고, ‘그 사람’은 나의 “문제” “잘못” “사랑”으로 이어지며 마음 깊은 곳에 도착한다. 덫, 상처, 흉터, 함정, 내가 보고 싶어 했던 사람, 문제, 잘못, 사랑은 한 번도 손을 떼지 않고 그린 그림처럼 하나의 복잡한 선으로 연결된다. “이야기가 없기에 단단한 것”(「싸움」)이었던 정물들이 이야기 가운데 놓이며 살아 움직인다. 무엇이 먼저 있고 무엇이 나중에 왔는지, 무엇이 무엇을 닮아 갔는지 알 수 없다. 무엇을 출발점으로 삼느냐에 따라 새로 쓰이는 배진우의 시를 담는 이제 “영원히 마를 수 없는 이야기”(「물의 서사」)가 되어 우리 앞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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