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부 어떤 일이든 가능한 것처럼
돌고래 선언 이리 비정규 이력서 미성년 앙상블 비보호 400번의 작화 400번의 난장 출렁이는 파도와 시끄러운 갈매기들 기이한 버릇을 가진 잠과 앙상한 C 씨 2부 배를 뒤집으면 관이 되지 그림자들의 음악 검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 노력하는 자세 주말 한 치 앞 반의반 저편의 말 개와 돼지의 시간 병상 추하고도 아름다운 3부 우리는 왜 멀리서 죽었을까 구름이 검다 올바른 나체 쌍생 앞으로 잘할 것 기쁨과 슬픔을 꾹꾹 담아 천천히 말하기 저녁에 관한 문제 언더독 언더스로우 인간의 시 4부 일상은 계속될 것 쓸모의 꼴 비탄의 조상 죽음이라는 이상한 말 하나의 통로 항간 레드존 믿어야 할 앞날 사소한 유서 아홉 번의 삶 이후 리얼리스트 |
崔志認
최지인의 다른 상품
|
나의 잘못을 고백하지 않았다면
나는 좀 더 편안한 사람이 되었겠지 당신과 다투지 않았다면 다정한 사람이 되었겠지 울지도 기쁘지도 않았겠지 평온했겠지 ---「이리」중에서 미래 같은 건 필요 없다 이것은 미래가 아니다 덧붙임이라고 해 두자 사람 죽으면 그 영혼이 떠돌아다니는 것처럼 ---「검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중에서 죽지 않았다면 날 보러 올래 우리 집엔 책이 많고 마음껏 담배를 태워도 된다 슬플 거다 쉬지 않고 일해서 부모는 나에게 헌신했다 나는 그러질 못하고 |
|
연인들의 공동체
우리는 아직 젊고 앞으로도 젊을 거야 그 때문에 고통받을 거야 버는 돈이 적어서 요절 따위를 두려워해야 할 거야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은 많다 그중 하나가 사라지는 일 거기서 보았던 그림 기억해? 나는 너와 손잡고 그림 앞에 오래 서 있었다 -「기쁨과 슬픔을 꾹꾹 담아」에서 최지인의 시에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맞벌이로 생계를 꾸려 나가지만, 작은 집에 살고 늘 가난하다. 그러나 그들은 천천히 말라 죽어 가는 듯한 삶 앞에서 맞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최지인에게 이 연인들의 공동체는 더 이상 개인이 시대에 저항할 수 없어진 오늘을 버티는 가능성이다. ‘나’의 곁에는 내 삶의 지난함을 생생히 지켜보는 ‘네’가 있고, ‘나’ 역시 ‘너’의 고통을 가늠할 수 있다. 그들은 계속 삶을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가장 작은 공동체이자 가장 애틋한 공동체는 서로의 고통에 고개 돌리지 않는다.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최지인의 시에서 느껴지는 슬프고 따뜻한 온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궁지에 몰린 사람들 그런데 우리 먹고사는 데 돈이 필요하지 않다면 다정한 사람이 되었을까 모니터 앞을 떠나지 않는 나에게 아침 일찍 일어나 사람 가득한 지하철 타는 나에게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 나에게 긴긴 슬럼프야, 라고 말하는 나에게 -「인간의 시」에서 최지인의 시에는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구직 중이거나 간신히 직업을 구하더라도 언제나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그들이 겪는 갑작스러운 해고는 죽음과 비슷하다. 최지인은 그들의 일상을 통해 삶의 구차함과 날선 죽음의 순간을 동시에 그려 낸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두려워질 때, 시인은 그 순간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담담하고 섬세한 언어로 연약한 벽을 만들어 두른다. 하지만 현실은 언어보다 냉혹하고, 결국 그 벽은 부서져 버리고 만다. 최지인의 시에서 느껴지는 근원적인 쓸쓸함은 결국엔 현실 앞에서 부서질 언어의 벽을 끊임없이 정성스럽게 짓는 것에서 시작된다. 믿어야 할 앞날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린다 무사히 이륙하겠지 착한 사람들 -「리얼리스트」에서 결국 최지인의 시가 최종적으로 도착하는 곳은 미래에 대한 소극적인 확신이다. 궁지에 몰린 착한 사람들을 태운 비행기가 무사히 이륙하길 바라는 미래를 시인은 “믿어야 할 앞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시인이 품은 작은 희망이 순진한 낙관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앞선 시들에서 보여 준 삶과 죽음의 이미지를 통해 그가 진정한 “리얼리스트”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최지인은 오늘의 젊은 시인들 중 가장 날것의 현실을 보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가 “믿어야 할 앞날”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 믿음에 동참하고 싶다. 시인의 말 되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처음 기타를 안았을 때 줄을 누르고 퉁겼을 때 붙박이장에 처박혔을 때 무언가 쓰고 있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기타를 선물하지 않았다면 붉은 눈으로 방문을 두드리지 않았다면 아무래도 너는 글렀다고 슬퍼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골방에서 침묵했을 것이다. 작품 해설에서 여러 겹의 시간과 여러 타인들의 목소리가 최지인의 시에 자유자재로 들어와 흘러 다니다 사라지며 흔적을 남긴다. 통어된 하나의 목소리로는 더 이상 시인이 보고 듣고 경험하는 세계를 담아낼 수 없다. 등단하고 첫 시집을 내기까지 4년의 시간 동안 그에겐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흘러 버렸다. 어쩌면 최지인의 첫 시집은 그 시간에 대한 고백이자 기록이다. 그의 첫 시집이 묵직한 통증을 유발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경수(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