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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러지는 차연(次緣)의 슬픔
이번 시집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사랑 이야기다. 그렇지만 그것은 지나간,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기에 아름다웠던 만큼 더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다. 시집의 첫 문을 여는 시 역시 봄에 관한 시다. 만물이 소생하는, 색색 가지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는 봄.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새로운 사랑이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갖게 하는 봄. 그러나 시인에게 봄은 사랑의 계절이 아니다. 바깥세상이 아름다울수록 나의 아픔 또한 더욱 커지는 것만 같고, “잠결에 잠시 돌아눕”기만 해도 꽃이 다 져버릴 것만 같고, 지는 꽃잎은 또 “제 그늘만큼 봄빛을 떼어 가”버리리라는 생각에 더욱 슬퍼지는, 그런 계절인 것이다. 어떤 손이 모과를 거두어 갔을까 내가 바라본 것은 모과뿐이었다 잠시 모과 이파리를 본 것도 같고 또 아주 잠시 모과 꽃을 보았던 것도 같은데 모과 이파리가 돋아나는 동안 모과 꽃이 피어나는 동안 그리고 모과 열매가 익어가는 내내 나는 모과만을 보았다 바라보면 볼수록 모과는 나의 것이었는데 어느 날 순식간에 모과가 사라졌다 내 눈맞춤이 모과 꼭지를 숨막히게 했을까 내 눈독(毒)이 모과 살을 멍들게 했을까 (중략) 모과가 익어가던 자리에 주먹만한 허공이 피었다 모과가 익어가던 자리를 보고 있다 보면 볼수록 모과는 여전히 나의 것이건만 모과 즙에 닿은 눈시울이 아리다 ― 「어떤 자리」 중에서 내 것이라 생각했던 사랑은 어느 순간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그 후로 마음에선 “종일 공테이프가 돌아가고” 허리띠가 남아돌 정도로 봄이(몸이, 마음이) 말라간다. 시인은 “차마 무너지지 못한 마음과/ 차마 보내지 못한 마음이/ 얼마 동안은 그렇게 엉켜 있으리라/ 서로가 덫인 채/ 서로에게 걸려 있으리라”라고 말하며 미련으로 가득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다시 사랑이란 “손바닥에 잠시 모였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 같은 것, “어떤 간절한 손바닥도/ 지나고 나면 다 새어 나가는 것”이라며 집착을 버리고 초연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음의 줄기를 타고 오르는/ 눈물의 힘을 믿겠다”며 소극적이긴 하지만 슬픔을 딛고 다시 한번 일어서려는 의지를 살며시 보여준다. 목메인 밥이 쓰다 이번 시집에는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제목과 같은 「자작나무 내 인생」이라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시에는 “명치끝에 누르스름한 멍이 배어 나왔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두 번째 시집의 주제였던 ‘농(膿)’이라는 주제가 이 시집에서도 반복되고 있음을 뜻한다. 이 ‘농’이란 것은 일상의 상처로부터 흘러나온 고름을 말한다. 그리고 그 상처는 「밥이 쓰다」라는 시에서 극대화된다. “독감에 걸려 먹는 밥이 쓰”고, “변해 가는 애인을 생각하며 먹는 밥이 쓰”고, “늘어나는 빚 걱정을 하며 먹는 밥이 쓰”기 때문이다. 이 ‘쓰다’라는 단어는 ‘쓰다(bitter)’와 ‘쓰다(use)’와 ‘쓰다(write)’라는 세 가지 의미로 변주되면서 점점 더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그리고 정끝별 특유의 숨 한번 안 쉬고 내달리는 듯한 시어들은 같은 어구의 반복을 통해 마치 노래의 후렴구와도 같은 일정한 운율을 만들어낸다. 돈을 쓰고 머리를 쓰고 손을 쓰고 말을 쓰고 수를 쓰고 몸을 쓰고 힘을 쓰고 억지를 쓰고 색을 쓰고 글을 쓰고 안경을 쓰고 모자를 쓰고 약을 쓰고 관을 쓰고 쓰고 싶어 별루무 짓을 다 쓰고 쓰다 그러나 시인은 끝까지, 끈질기게, 검은 타이어처럼 굴러 갈 것이다. “길바닥에/ 제 속의 바람을 굴리면서/ 제 몸 깊이/ 길의 상처를 받아내며 굴러” 갈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받아들이면서 나아가는 둥근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불 속이 온통 둥그렇다 정끝별의 시에서 가족은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다. 가족은 애틋한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 옛집과 함께 사진처럼 박혀 있는 그리움의 대상이기도 하고(「동백 한 그루」), 나이를 먹고 자식을 둔 부모가 되고 보니 그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된 부모님이기도 하고(「헝큰머리엄마」), 어느새 아이처럼 투정 부리는 노인이 되어버린 아버지이기도 하다(「눈이 감길 때마다」). 하지만 마냥 따듯하기만 할 것 같은 이 가족이라는 단어는 한낮의 악몽과도 같은 수천의 개미 떼에 의해 습격을 당하기도 하고(「개미와 앨범」), 빈 낮 내내 엄마를 부둥켜안고 싶어 하던 딸애처럼 내 칫솔을 부둥켜안고 있는 딸애의 칫솔에 의해 ‘일하는 엄마’의 죄책감과 그로 인한 공포로 탈바꿈되기도 한다(「밤의 소독」). 한밤중에 칫솔을 끓는 물에 팔팔 삶는 소독은 일면 그로테스크해 보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소독된 두 마음은 서로를 부둥켜안는다”. 가족이란 여성에게 굴레와 속박인 동시에 사랑의 근원이기도 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