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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무의미 13사랑 14괴로운 자 16백지에게 18투신 20모두 폭발하러 가는 것 같다 22영원 24바쁜 사람 25쉬고 싶은 사람 26슬픈 사람 272부자세 31외투 32두 사람 33누가 불러서 왔습니까? 36제안 38이것은 40가족 42배운 사람 44혼자 울고 있다 45산 자와 괴로운 자 48된다 49신원 50만년필 51파리의 기억 52고향 앞으로 54나는 원했다 58원산지 603부계속되는 마지막 63필자 64종소리 66기술자 67파티에 가는 일기 70등장인물 74약속 78다시 밤이다 81용건 없는 사람 84불안 86불안 91상관없는 밤 924부당신 95겪어 보지도 않고 나쁜 사람 96악인 100미의 102저쪽은 모른다 105다만 본다 106미친 사람 ― 찰스 부코스키를 읽다가 108없다 111어쩌다가 만났을까? 112반려 113누가 숨어서 우는가? 114우는 사람 115인생 116얼마 남아 있지 않다 118돈 120여분 122언제 한번 보자 123작품 해설 125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도 없는 곳으로_ 박대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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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를 깨우는 목소리얼음이 되지 못하는 사람도 웃는다. 원산지가 어디냐고 물으니까 웃는다. 멀리서 왔다고 한다. 그래, 원산지는 멀다. 가까운 곳에선 나지 않는다. ―「원산지」에서태어난 순간을 하나의 장소처럼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모두 시작된 곳으로부터 멀리 떠나온 존재들이다. 그리고 여전히 멀리 떠나가고 있는 중이다. 자신이 탄생한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탄생의 증거일 뿐, 태어난 순간은 깜깜한 망각 속에 묻혀 있다. 영원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탄생의 순간이라는 과거는 미래와도 닮았다. 김언의 시 속 존재들은 이런 시간의 속성 속에서 유랑하듯 떠다닌다. 그들은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 말을 시작한다. 갑자기 ‘저곳’이나 ‘외투’가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거나, ‘너’를 가진 사람이자 가지지 못한 사람이 동시에 되려 한다는 실현 불가능한 의지를 선언하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는 어쩌다가 앉아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모두 폭발하러 가는 것 같다」) 하며 현재 상태에 대한 고민에 골똘히 빠진다. 그 목소리들은 마치 우리가 우리 자신을 낯설게 느끼는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 같다. 그 목소리는 세상의 소음을 멈추고 오직 지금 그 목소리를 듣는 ‘나’라는 존재를 깨운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까마득한 과거와 미래까지도 한꺼번에 불러와 의식하게 한다. 김언의 말들은 깜깜한 곳에서 태어나 깜깜한 곳으로 떠나간다. 아득히 먼 곳에서 시작해 여전히 아득히 먼 곳으로 나아가야 하는 우리를 깨우는 목소리로 『백지에게』가 말을 건다.■ 울고 걷고 돈을 세는 사람들장례식장에서 누가 가장 슬픈가? 유가족이겠지. 그런데 그들이 가장 바쁘다. 그들이 가장 바쁘게 움직이고 그들이 가장 바쁘게 소리를 내고 그들이 가장 바쁘게 울음을 울고 그들이 가장 바쁘게 서 있다.―「바쁜 사람」에서그동안 김언의 시는 목격하는 순간 허공으로 사라지는 ‘연기’, 보이지 않는 ‘유령’의 말, ‘공백’으로 차 있는 문장 등 쉽게 실체를 포착할 수 없는 것들을 중심으로 빚어졌기에, 독해 또한 이런 이미지를 중심으로 시도되었다. 그러나 이번 시집 『백지에게』에는 유독 「바쁜 사람」 「쉬고 싶은 사람」 「슬픈 사람」 「배운 사람」 「용건 없는 사람」 「겪어 보지도 않고 나쁜 사람」 「미친 사람」 「우는 사람」 등 구체적인 ‘사람’의 모습을 지칭하는 제목의 시가 많이 보인다. 그 ‘사람’은 슬픔에 빠져 있지만 바쁘게 손님을 받아야 하는 장례식장의 유가족들처럼 실제 생활을 가진 모습으로 그려진다. 또한 시인이 생활하는 흔적 또한 곳곳에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자신에게 악의를 보이는 사람을 향해 냉소하는 목소리,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백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 “수중에서 나가는 돈은/ 다 큰돈”(「미의」)이라는 생활의 말들이 날것의 감각으로 다가온다. 『백지에게』는 “선풍기를 바꾸려고 했다. 아주 본질적으로 바꾸려고 했다. 돈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시인의 말로 시작하고 있다. 생활의 냄새를 가득 머금고 있는 “선풍기”와 “돈” 사이에 놓인 “본질적”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이 생경하다. 선풍기의 본질에 대해, 선풍기의 본질을 바꿀 돈에 대해 거듭 고민하다 보면 선풍기도, 돈도, 본질도 모두 낯설어진다. 이 낯선 감각은 우리 생활 속에 도사리고 있던 비밀의 문이 열리는 신호탄이다. 그렇게 김언은 『백지에게』로 또 하나의 새로운 통로를 열었다. 일상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오직 김언의 시를 읽는 동안의 감각으로만 가닿을 수 있는 세계의 통로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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