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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기억은 어항이 아니라서
반지하 앨리스 광합성 없는 나날 백 년 의왕 사람 여자들, 샬롬 사랑 밥을 끓이며 오늘만큼은 함께 있고 싶다 기억은 어항이 아니라서 사랑을 잊은 남자 맨홀 뚜껑을 열고 나오다 잃어버린 나라의 사람들에게 11월의 사람들 바람 부는 날 가난의 힘 촛불 비단길 1부 팬티를 찾으러 여자라는 외로운 여자 나도 알고 보면 좋은 사람 팬티를 찾으러 노브라, 노 프라블럼 모피 코트를 입은 남자 다리미는 키스 중 한국의 여자라서 Don't Cry 베이비 박스 쿨한 척하는 디지털 당신 2부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외로움도 엿같이 달게 먹는 날 절망 인사동 입구에 술 취한 청년이 쓰러져 있다 당신 없는 가을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1 그만 일어나렴 '나만 왜 이럴까'란 이름의 우물 절망의 옷을 벗겨 줘 세 평 시 정류장 당신 없이 잘 사는 법 3부 반지하 앨리스 눈보라가 퍼붓는 방 내 혼은 밤 고양이야 윈터 와인 물음 주머니 반지하 방에 내리는 눈 장마 헬프 미 섹스에 대한 생각 반지하 앨리스의 행복 슬픔 없는 앨리스는 없다 4부 혁명을 꿈꾸는 사람 우린 똑같은 사람이다 살아 있는 이유 내 마음은 혁명 중 누구도 외면치 않고 혁명을 꿈꾸는 사람 바다를 털고 나오렴 저물녘 푸른빛이 어른거리면 안국동에 빛이 흐느낀다 민심 촛불 광화문은 빛을 향해 간다 5부 오래된 엄마의 방 오래된 엄마의 방 이산가족을 찾는 긴 여행 이산가족을 찾는 긴 여행 2 오랫동안 상상만 했어 우리의 소원은 통일 북녘 하늘 우체통 에필로그 내일 역을 지나치기 전에 내일 역을 지나치기 전에 어떤 내일 거울 알 코끼리가 되기 전에 안부 인사 햇살 설탕 당신 생각하는 힘으로 운주사 연인 사과, 날다 작품 해설 김순아 현실에 응전하는 도발적 상상력 |
申鉉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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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아무도 자살하지 않는다
내일은 아무도 배고프지 않는다 내일은 힘겨운 일 찾기도 없고 누구든 고된 일로 울지 않는다 삽과 펜도 물고기처럼 숨을 쉬고 내일은 에어컨 수리 기사가 난간에서 추락하지 않는다 내일은 자폭 테러와 어떤 총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내일은 야채 장사 할머니도 점포를 얻을 것이다 내일은 외로워 떠는 이를 껴안아 줄 것이다 ---「어떤 내일」중에서 토끼 굴에 빠져든 백 년 전의 앨리스와 돈에 쫓겨 반지하로 꺼져 든 앨리스들과 만났다 생의 반이 다 묻힌 반지하 인생의 나는 생의 반을 꽃피우는 이들을 만나 목련 차를 마셨다 서로 마음에 등불을 켜 갔다 ---「반지하 앨리스」중에서 골목길마다 고양이는 쓰레기를 뒤지며 깨진 유리처럼 울었다 나는 지루한 구두를 하늘로 던지고 사라져 버린 들판을 향해 맨발로 걸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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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극복하는 도발적인 아름다움
절망의 이 옷을 벗겨 줘 무력감에 찌든 살과 뼈를 태워 줘 물고기처럼 바다 위로 솟아올라 다시 펄펄 살아나 살 아 서 하늘 끝까지 튀어 오르게 ―「절망의 옷을 벗겨 줘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3」 『반지하 앨리스』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죽음에 저항하며 삶을 이어나가는 시인의 태도이다.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라는 선언적인 제목으로 발표되었던 연작시는 시집에서 새로운 제목으로 독자들을 찾아간다. 절망으로부터 도약하는 순간을 포착한 이 시에서는 맨몸으로 마주한 두 연인이 있다. ‘나’의 힘만으로는 떼어낼 수 없는 절망을 벗기 위해서는 ‘너’의 손이 필요하다. 혼자서는 벗을 수 없는 ‘절망의 옷’을 벗겨 줄 사랑하는 사람의 손이 있기에 우리는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을 극복하고 절망으로부터 탈출하는 이 애틋한 에로티시즘의 순간은 죽음의 반대편에서 생명을 만드는 사랑의 기원을 떠올리게 한다. 문학적 성찰로 바라보는 삶의 깊이 세월은 내 발을 코끼리 발처럼 두툼하게 만들었다 땅을 어루만지는 발 느리게 춤추는 발 속삭이는 발 너도 코끼리가 되기 전에 할 일은 살아있음에 고마워하기 바람 부는 땅에 입맞춤하기 ―「코끼리가 되기 전에」에서 아무도 세월에서 빗겨날 수 없기에, 신현림 시인은 더 풍요롭게 나이 드는 법을 택한다. 시간이 쌓여 두툼해진 발은 곧 살아온 삶의 경험과 궤적이다. 인생의 우여곡절로 발바닥에 베긴 굳은살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감각하게 한다.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 만지고 맞닿으면서 삶 자체를 음미하는 발은 결국 살아 있기에 얻게 된 새로운 감각이다. 죽음을 머리맡에 두고 잠들었던 시간을 이겨낸 끝에 쟁취한 작은 평화이기도 하다. 시인은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지금 그가 서 있는 자리에 감사해 한다. 근사하고 지혜로운 코끼리가 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시인의 말 그리고 힘겹게 싸워 가는 동시대인들 앞에 이 시집을 바친다. 해설에서 당대의 제도권적 여성 담론을 뒤흔든 가장 전위적인 여성 시인이었던 신현림은 늘 세계를 새롭게 해석하고 미적 지평을 갱신해 왔다. 첫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이후 『세기말 블루스』, 『해질녘에 아픈 사람』, 『침대를 타고 달렸어』를 펴내는 동안에도 그녀의 시는 늘 다르고 그래서 낯설었다. 이번 시집『반지하 엘리스』역시 마찬가지다. 문학성과 대중성을 골고루 갖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여성의 몸이나 섹슈얼리티를 넘어 이미지 존재의 본성, 타자와 만나는 시간, 자본 권력, 신이라는 절대 타자, 사회 정치의 중심, 잊힌 역사 등, 다양한 문제의식을 담은 주제들이 다채로운 빛깔로 변주된다. ―김순아(시인·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