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부 눈물 너머 구멍 저편
쇠미역 할복 북쪽 바다로 간 늙은 애인들 랜턴을 켜고 걷는 밤길 먹태를 두드리며 미역 한 타래 구멍 많은 집 당신과 먹는 점심 녹·2 거미의 집 풋사과 속, 방 한 칸 가래 몇 알 2부 고랭지 골뱅이, 골뱅이 마중 복어 가루가 된 말 몸집 고랭지 4월 속 빈 나무 발자국이 오는 골목의 시간 인형에게 비린내가 풍기는 골목에 대한 기억 냉장고 속에 십이월 벌판을 들이다 발효의 시간 구석 3부 라디오를 싣고 달리는 국도 길의 감식가 라디오를 싣고 달리는 아침 날씨에 묻다 풍문 모래시계, 사막 한증막 시월의 말 선인장 녹·1 가뭄·2 꽃 피는 시절 눈물 있던 자리 산책 서쪽 4부 잃어버린 소읍 간절한 안쪽 아궁이에 매일매일 공양하는 사람 마른 꽃 공동묘지 해바라기의 최후 점자를 만져 본다 잃어버린 소읍 뿔 잃은 달팽이 소나기 쏟아지는 오후 헌 옷 수거함에 옷을 버리며 보는 풍경 다비 모래에 적는 말 춤 빌려 쓴 슬픔, 동백 해설 존재함이라는 호혜 ―박동억(문학평론가) |
김창균의 다른 상품
|
나는 남쪽 먼 곳까지 와서
그믐 같은 저녁을 맞으며 다리가 기운 낮은 밥상에 턱을 괴고 앉아 굳어 버린 입을 하늘로 쳐들고 눈비 맞았을 저것에 마음을 써 보기도 하고 또, 웃음 끝에 올 긴 울음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먹태를 두드리며」중에서 몇 번 이별을 경험한 눈을 마주하고 앉은 나는 마치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누군가의 눈물 뒤편을 촘촘하게 깁는다 ---「구멍 많은 집」중에서 저 깊은 곳 덜 여문 몸속 깊이 들어앉은 눈물이 눈동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소리가 절멸할 듯 위태로운 방 닫힌 방 앞에서 방의 통점을 여기저기 짚으며 오랫동안 나는 나를 기다린다 ---「풋사과 속, 방 한 칸」중에서 어둠 속에서는 모든 것이 어긋나서 서로 몸 닿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어딘가에 닿지 않으면 모든 것은 혼자였으며 당신도 나도 초면처럼 낯설어 치명적이진 않았다 (중략) 그리하여 우리의 사랑은 자주 서로를 외면하며 울고 또 운다 ---「복어」중에서 학교에 두고 온 관찰용 누에고치의 생애가 궁금했다 궁금증이 증폭되는 사이 몇 번의 어둠이 왔다 갔고 어둠 속에서 설계한 생들은 모두 캄캄했다 누에고치에서 뽑은 실로 피가 통하지 않게 손가락을 묶고 체증을 다스리려 까맣게 죽은 피를 뽑아내기도 하던 시절 흐리고 비 내리는 날을 기다려 몸을 밀어내고 몸 밖에 무수히 많은 나를 세워 두었지 ---「몸집」중에서 봄부터 겨울 초입까지 귀가 얇아진다 귀가 얇아 남의 꼬임에 잘 넘어갈 거라는 엄마의 옛말이 나를 앞세워 가고 힐끔 뒤를 돌아보면 저 무성했던 발걸음과 한시도 쉬지 않고 지나가고 오는 것들 길을 들여다보기 위해 길 위에 허리를 숙이거나 오래 서 있어야 하는 시간 나는 고열 앓아 붉어진 단풍나무와 한통속이 되어 바람에 휩쓸린다 ---「산책」중에서 합장한 손을 비우느라 두려워 외면하고 싶은 것들을 내 말의 바깥으로 몰아내느라 안간힘으로 간절하다 가끔 가족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 돌아가신 엄마가 막막하고 재미없고 슬픈 노래를 거둬 갔으면 하는 생각 헐벗은 나를 곧 쓰러질 가을 꽃대에 기대 놓고 다시 마음 한쪽으로 모셔 오는 간절 나의 팔목을 감고 있는 염주가 들여다보는 나의 안쪽 그 안쪽이 더 어두워질까 봐 가끔 풍경 같은 마음을 때리며 바람이 지나간다 ---「간절한 안쪽」중에서 나는 도시의 한 모퉁이에서 가끔 시간을 염색하거나 탈색하며 저녁이면 마음을 다친 수많은 이별을 배차하며 거기, 거기서 내 안의 폐허가 네 안으로 옮겨 갈 때 끝을 알 수 없는 어떤 이별을 생각하기도 한다 ---「잃어버린 소읍」중에서 |
|
시인의 말
귀가 조금씩 멀고 또 어두워진다. 타자의 소리를 듣는 귀도 내 속의 비명을 듣는 귀도 멀어진다 속삭임들이 나를 떠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서운해진다. 이제 점점 나에게 오는 것보다 멀어지는 것들이 많아지니 당신과 나 사이가 더 멀어지기 전에 이 가을엔 귀라도 찬란하게 물들여야겠다. 그리고 겸손하게 북쪽의 바람을 맞아야겠다. 2023년 가을 미시령 아래에서 쓴다. 김창균 |
|
그는 ‘북족(北族)이다. ‘낡고 오래된 구식의 땅’에서 오래 산 사람, 더 정확하게는 ‘북쪽을 온몸에 들이고 오래 산’ 사람이다. 북쪽 산의 까탈스러운 봄바람, 북쪽 바다의 까칠한 겨울바람에도 기꺼이 몸을 내주면서, 햇살 인색한 도시 한 귀퉁이에서 이따금씩 삶의 시간을 염색하거나 탈색하면서, 저녁이면 마음을 다친 크고 작은 수많은 이별을 정성껏 배차하면서, 밤이 깊으면 자신의 몸보다도 더 어둑한 저 크고 깊은 바다 ‘북명(北溟)’의 기척에도 귀를 내어 주면서. 그래도 여전히 남는 몸의 그늘을 슬퍼하면서. “꽃 피고 꽃 지는 일은/당신과 나의 바깥의 일.”(「꽃 피는 시절」) 그래서 그는 “내 슬픔을 다 쓰고 또/누군가의 슬픔을 빌려다 쓰”(「빌려 쓴 슬픔, 동백」)는 사람, 남방의 동백꽃까지 빌려다 슬픔의 시를 쓰고야 마는 북방의 시인, 한사코 낡고 오래된 슬픔을 온몸에 들이고 살아가는 ‘북족의 서정 시인’이다. - 심재상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