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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빗소리 몇 평쯤 들여놓고
슬하 통영은 칠월에 도미회를 뜬다 오십견 넥타이 장마 조종사 욕 이화에 월백하고 소가죽 소파 십리사탕 에이스 침대 편두통 솜틀집 2부 우두커니와 물끄러미 사이 크라슐라오바타 찔레꽃 백서 고콜 봉제 인형 일포스티노 형상기억합금 유도화 우화 갈대의 순정에 부쳐 밥집 억새꽃 원고료 가로등 비망록 그놈의 물티슈 3부 집도 절도 없는 봄 물구슬 입춘 수양버들 봄호 벚꽃축제 목화 공주 유월 11 월 살구꽃 감자꽃 야말반도의 꼴랴에게 터키 2 4부 출구는 어디쯤입니까 그레타 툰베리 경칩 1004호 고양이를 부탁해 야옹아 야옹, 해 봐 나는 오늘도 코스트코에 간다 2021 겨울, 가계부 신호등, 미안합니다 투르크메니스탄도 좀 이기면 안 되나 마중 두절 가자미 올뉴소렌토 49조0677 보고서 주점 타클라마칸 해설 용서에 다다르기 위하여 -김안(시인) |
정용기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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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곳은 우두커니와 물끄러미 사이
목질의 기다림과 다육질의 그리움 사이 해 지고, 긴 밤 홀로 우두커니 견디는 가로등과 남몰래 외로움을 나눠 가져요 풍랑이 잦아든 길모퉁이 꽃집의 뿌리 잘린 꽃들이 이종교배를 꿈꾸며 밤새 발바닥을 간질일 때 물 냄새에 몸이 달아오르곤 하지요 수평선 너머 물끄러미 바라보며 조금씩 조금씩 발돋움을 하지요 ---「크라슐라오바타」중에서 지나온 길은 구차하고 다가올 길은 두렵기만 한데 서로 잇대어 홀치면 삶이 잔잔해질지도 몰라요. 뜯어진 솔기를 비집고 꾸역꾸역 밀려 나오는 저 어둠은 무엇인가요. 오글오글 몰려 있던 시름이 두더지처럼 등을 자주 들쑤시네요. 햇빛에 말릴 수도 없어 늘 젖어 있던, 내 허기를 채워 주던 자투리들을 위해 어깨뽕을 채워 넣어야 할까 봐요. 간혹 어둠에 발을 헛디뎌 아귀가 어긋나도 뒷덜미쯤에서 서둘러 봉합하면 주름 한두 개 생긴다 한들 무슨 대수겠어요. 이따금씩 날카로운 바늘에 찔리더라도 빗방울로 올올이 어루만져 준다면 악다구니도 심술도 허물도 수더분해지겠지요. ---「봉제 인형」중에서 봄비 오신 날 산도 하늘도 들여앉혀 놓고서 내 마음도 불러다가 가두어 놓고서 하룻밤 곁에 누워 보지도 못했는데 훌쩍 떠나 버린 당신 집도 절도 없는 봄 ---「물구슬」중에서 저승에서 잠시 짬을 내어 오신 어머니가 가마솥 가득 밥을 안쳐 놓았다 가마솥 안의 쌀들이 불꽃을 받아들여 투명하게, 하얗게 부풀고 있다 골짜기가 통째로 익어 가고 있다 밥 먹어라, 골짜기 가득 아득하게 번지며 두레 밥상에 수저 놓는 소리 ---「벚꽃축제」중에서 꽃 피고 새 울고 날씨는 화창하니 나는 오늘도 코스트코에 간다. 부위마다 영하 2도 이하에서 진열하여 육즙이 살아 있는 냉장칸을 지날 때 아메리카의 초원에서 소들이 풀을 뜯는 평화를 느낀다. 훈제를 하고 얇게 포를 떠서 진공 포장한 슬라이스 오리고기는 어디서 왔는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저녁 식탁에 올렸으면 좋겠다. (중략) 오곡백과 풍성하고 산해진미 가득하니 사계절 먹고 마시고 즐길 거리가 차고 넘치는 낙원 온갖 쓰레기들의 고상한 고향 주머니를 탈탈 털리고 할부로 어깨를 야금야금 갉아먹히더라도 배불뚝이가 되어 어기적어기적거리며 이곳에서 오래 살고 싶어라.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고 서늘한 이곳에서 오래 보관되고 싶어라. 주체 못 할 욕망을 가득 실은 카트를 밀면서 이곳에서 오래오래 머물고 싶어라. 해는 저물고 봄날은 가고 나는, 나는 오늘도 코스트코에 간다. ---「나는 오늘도 코스트코에 간다」중에서 이를테면, 곡선보다는 직선을 선호한다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오로지 나아간다 길의 이력을 필사하는 능력은 출중하지만 눈물샘이 없어 어떤 비애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블랙아이스와 거친 빗길에서 자해를 꿈꾸긴 해도 지나온 길을 다 잡아먹은 백미러가 허기를 채워 준다 쌍심지 켠 눈, 튼튼한 다리, 지칠 줄 모르는 심장으로 꿋꿋하게 나아가는 육식성의 연비 이 맹목적인 질주본능을 보라 오르막을 박차고 오를 때는 지구가 잠시 휘청거린다 ---「올뉴소렌토 49조0677 보고서」중에서 여기는 온통 사막이다. 한때는 문명이 번성했던 곳, 이제는 역병이 창궐하고 독침을 숨긴 전갈이 매복해 있는 곳, 터무니없는 복음을 팔기 위해 사이비 교주들이 어슬렁거리는 곳이다 바람이 소용돌이치는 우중충한 상가 모퉁이의 주점, 타클라마칸 땅거미가 밀려오고 뜨거운 모래언덕도 식으면 길 잃은 사람과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몸을 부린다. 목초지와 물길을 찾아 헤매던 카우보이들이 진을 치고 중언부언에 횡설수설을 더하여 다투다가 졸고 있다. (중략) 거리에는 시궁창 냄새가 흘러 다니고 길고양이가 찢어발긴 쓰레기 봉지가 뒹굴고 있다. 고층아파트 단지에 밤이 깊어 가고 잠 안 오는 날이 잦고 어디선가 마두금 흐느끼는소리 불을 끄고 어둠에 잠기는 주점, 타클라마칸 ---「주점 타클라마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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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향기를 저잣거리에서 싸구려로 팔아넘겼습니다.
되지빠귀의 환희를 울음으로 오역했습니다.“ 허기를 채워 주는 자비 한 스푼 머금고 ‘그늘진’ 당신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시 걷는사람 시인선 75번째 작품으로 정용기 시인의 『주점 타클라마칸』이 출간되었다. 2001년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화요문학’ 동인으로 활동 중인 시인은 『하현달을 보다』 『도화역과 도원역 사이』 『어쨌거나 다음 생에는』 등의 시집을 출간했다. 정용기 시인은 현대사회에 복무하는 시민으로서, 시인으로서의 문제의식을 시에 담아내며 세상에 대한 성찰과 자기비판을 멈추지 않는다. 특히 이번 시집에서 정용기 시인은 더 극진히 엎드려 용서를 구하는 태도를 취한다. ‘시인의 말’에서 그는 “공짜로 챙긴 풍광이 어마어마했습니다./그늘진 곳을 애써 외면했습니다.//용서를 빕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되풀이되는 잘못들에 대한 용서 구함이다. 시집을 펼치면 온통 사막뿐인 곳에서, 잠 못 드는 도시의 밤 속에서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시인의 얼굴이 보이는 것만 같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 산업 문명에 의해 쫓겨난 생명체들, 단 한 번도 얼굴을 마주치지도 못한 이웃들과, 로드킬 위험에 처해 있는 고양이들, 대형 슈퍼마켓과, 목숨을 걸고 배달해야 하는 배달 노동자들, 그리고 적자뿐인 가계의 삶. 이곳(도시)은 결국 “온갖 쓰레기들의 고상한 고향”이고, “주체 못 할 욕망을 가득 실은 카트”(「나는 오늘도 코스트코에 간다」)가 오가는 곳이다. 그리고 시인은 더 무서운 현실을 직시하고 만다. 나 또한 “이 욕망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김안 시인, ‘해설’)다고 말이다. 한없는 인간의 욕망에 떠밀려 지금 도시는 사막과 다름없는 공간이 되고 말았다. 표제작 「주점 타클라마칸」은 도시와 사막의 일상을 겹쳐 놓고 있으며, 이 겹침은 도시의 삶에 대한 시인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고 있다. 그리하여 이 시 속에 표현된 “마두금 흐느끼는 소리”는 어쩌면 시인의 울음소리와 같은 것이 아닐까. 욕망투성이의 현실에서 그나마 시인에게 삶의 균형 감각을 일깨워 주는 것은 다름 아닌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과, 저물어 가는 아름다운 세상의 풍경”(양애경 시인, ‘추천사’)일 것이다. 시집 3부에 놓여진 시 「벚꽃축제」 에는 가슴 먹먹한 장면이 펼쳐진다. “저승에서 잠시 짬을 내어 오신/어머니가 가마솥 가득 밥을 안쳐 놓았다/가마솥 안의 쌀들이 불꽃을 받아들여/투명하게, 하얗게 부풀고 있다”라며, 봄날 환하게 피는 벚꽃을 마치 돌아가신 어머님이 지어 주신 뜨끈한 밥처럼 그려 놓는다. 이처럼 시인은 시공간을 초월한 모성애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인생의 찬란함을 노래한다. 그 찬란함을 기억함으로써 시인은 ‘사막 타클라마칸’에서의 삶을 조금이나마 구원받고 있으며, 이 시집을 펼치는 독자들 역시 기꺼이 그 구원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말 찔레꽃 향기를 저잣거리에서 싸구려로 팔아넘겼습니다. 되지빠귀의 환희를 울음으로 오역했습니다. 공짜로 챙긴 풍광이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늘진 곳을 애써 외면했습니다. 용서를 빕니다. 2022년 11월 정용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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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문학 동인으로 반평생을 함께 글을 써 왔지만, 정용기 시인이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고, 말이 길어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정용기 시인은 말 없는 사나이다. 술 한 모금에 목까지 빨개지므로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따라서 거나한 술자리 끝에 모두들 안심하고 목숨을 맡긴다. 실제로 그는 침착하고 꼼꼼한 베스트 드라이버로, 말없이 유능하다. 그러니 정용기 시인을 제대로 알고 싶으면 정용기 시인의 시를 읽어야 한다. 조용하고 조심스럽고 얼핏 무뚝뚝해 보이는 그의 속이 얼마나 화사한지, 신비롭게 울리고 떨리는지, 그의 시집을 열어 보아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의 시 「벚꽃축제」의 아슴하고 아득한 황홀감을 보라. 눈이 번쩍 뜨이는 반전이다.
정용기 시인의 이번 시집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과, 저물어 가는 아름다운 세상의 풍경으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시 「형상기억합금」에서, “하지 무렵의 기나긴 날이 저물고/물수제비 뜨던 예닐곱 살의 은하수 강변에서/저승으로 옮겨 간 사람들의 안부까지도/깜박깜박 전해 오는 반딧불을 따라” 걷는 시인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도 우리가 잃어버린 그리운 세상에 돌아가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우리 모두 이승보다는 저승이 더 잘 보이는 나이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승도 견딜 만하여 그윽’하다는 정용기 시인의 말을 믿고 힘을 내어 한참 더 살아 보기로 한다. - 양애경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