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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본적도 현주소도 모티이다
오랜만에 걸려 온 전화 이름·1 이름·2 삶은, 계란입니다 한 신발이 있었습니다 테니스공과 정수리 끝은 끝이라 말하지 않는 바람이 비닐봉지를 펄럭이게 하듯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나무칼로 귀를 베어 가도 모를 한숨 푹 울고 나면 고드름 바닥을 열어 바다를 꺼내다 2부 하다 만 기도 Cut-in 눈 내리는 날 불알교 통학길 삼천리자전거 두 손을 포개어 죽은 소의 뿔을 만지다 맨발 소 시계초 꿈 천축잉어 어느 날 3부 비는 누구의 팔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을까요 풍경 반반 풍각 소머리국밥집 숨 쉬는 전화 우산고로쇠나무 느닷없이 호스피스병동역 시도 때도 없이 굿모닝! 굿모닝! 반은 보이고 반은 보이지 않았네 플라타너스는 얼마나 좋을까요 부고를 받고 불량과 반칙과 변덕을 단풍이 옷 갈아입을 때 4부 맨발의 물총새처럼 풍경 반반 풍각 소머리국밥집 숨 쉬는 전화 우산고로쇠나무 느닷없이 호스피스병동역 시도 때도 없이 굿모닝! 굿모닝! 반은 보이고 반은 보이지 않았네 플라타너스는 얼마나 좋을까요 부고를 받고 불량과 반칙과 변덕을 단풍이 옷 갈아입을 때 해설 삶과 죽음의 공존과 ‘거꾸리 시학’ ─이성혁(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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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에 한 지붕 아래 두 아이 받아내면 삼신할미 토라진다는 할머니 말씀, 된똥 누듯 쏟은 첫딸, 아버지는 예수님과 동창이라며 뜰 정庭, 예도 례禮, ‘정례’라 이름 지었지 하나 할머니는 이름조차 아까웠던지 그저 “모티야”로 불렀다 제 몸에서 나온 실로 저를 가두는 누에고치처럼 큰동서 피해 외양간 모티에서 몸 풀었던 엄마, 모티는 간도 쓸개도 면목도 없었다
그래, 나는 본적도, 현주소도 다 모티이다 ---「이름.1」중에서 천적 만난 장끼는 덤불에 머리 처박고 엉덩이를 하늘 쪽으로 높이 올려 숨는다지 숨어도 다 숨지 못하는 꿩처럼 외면이 먼저 인사를 하는 자리 훌훌 걷어낼 수 없는 저 외면을 여백이라 할 수 있을까? 이해관계로 얽힌 법정도 아닌데, 불편한 마음 둘 데가 없다 그래, 외등은 외로워서 환할까 ---「어느 날」중에서 ‘이OO 시인 별세, 코로나로 조문 사절’ 펑펑 내리는 저 눈발에 뛰어든 부고는 그이의 유고遺稿였을까요 도무지 믿기지 않은 그 부음, 떫은 땡감 베어 문 듯 생목 올라 ‘서하 시인 사망, 코로나로 조문 사절’ 나의 유작을 중얼거려 봅니다 이승을 벗듯이 옷가지 벗고 뚜껑 없는 관곽으로 들어가 누우니 죽음이 빙 둘러쌉니다 (중략) 죽음도 숨을 쉬는지 추깃물이 뽀글거립니다 ---「부고를 받고」중에서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버려진 걸레처럼 누웠다 저 죽음, 날것이다 가족인지 연인인지 흰 고양이 한 마리 다가오더니 코를 연신 킁킁댄다 언제 부음이 갔는지 몇 마리의 고양이가 와서 코로 주검을 어루만진다 맨발로 뛰어나온 울음이 부글부글 부푼다 어둠이 파도치는 입관과 하관 사이 주검이 길을 꽉 물고 있다 ---「로드킬」중에서 불 꺼진 윗목, 콩나물시루에 흘러내리는 물소리처럼 밥물 끓는 것처럼 맨발의 물총새처럼 쉼 없이 안달 난 강물처럼 산이 늘 푸른 파도로 출렁이는 것처럼 늙은 여치 소리가 파래지는 것처럼 벼 자라는 소리 듣고 매미가 우는 것처럼 낮달이 손수건을 꺼내 흔드는 것처럼 머리 풀던 저녁연기가 잠시 망설이는 것처럼 더운데 덥지 않은 것처럼 단추를 채우는 입추다 ---「입추」중에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전화하던 엄마의 부지런함이 하늘나라에 간다고 해서 달라질까? 혹시나 해서 엄마를 삭제하지 않았다 아침저녁은 아니더라도 이틀에 한 번, 아니 일주일에 한 번, 그도 아니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걸어 주겠지 했는데 무소식이다 (중략)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신 후 걸어 주십시오” 아주 새파란 목소리다 그새 젊어지셨나? 빤히 있는데 없단다 있는 게 있는 게 아니고 없는 게 없는 것 아닐까 불퇴전의 허기만 남고 사라져 버린 단골 식당처럼 아득하다 하늘나라에 빨간 공중전화 하루빨리 설치하라고 재촉이라도 해야겠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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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밭에 발목 빠진 낮달이 등 토닥여 주는 오후,
그사이 눈물 봉지 같은 연꽃이 또 터진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전하는 심심한 애도 ‘모티(모퉁이)’에서 발동하는 해학과 풍자의 받개질 걷는사람 시인선 77번째 시집으로 서하 시인의 『외등은 외로워서 환할까』가 출간되었다. 1999년 《시안》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시인은 그동안 시집『아주 작은 아침』 『저 환한 어둠』 『먼 곳부터 그리워지는 안부처럼』을 냈으며 제33회 대구문학상, 제1회 이윤수 문학상을 수상했다. 서하 시인은 우뚝하고 씩씩하게 지난날의 상처를 딛고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얘기를 펼쳐내는가 하면,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인생, 팬데믹이 불러온 미증유의 시대 상황을 예리하고도 환상적인 장면으로 보여 주기도 한다. “꿈에 마스크를 쓴 아이를 낳았다 하면 믿겠니”(「오랜만에 걸려 온 전화」)라는 표현은 섬뜩한 인류의 오늘을 초상화처럼 그려내고, “죽음도 숨을 쉬는지/추깃물이 뽀글거립니다//혼자 쓰는 죽음이 점점 빼곡해집니다”(「부고를 받고」)라는 대목은 팬데믹이 가져온 병과 죽음의 일상화를 상기하며 ‘쓰는 일’의 사명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그런 한편 서하 시인이 불러내는 옛이야기는 애잔한 눈물과 천진한 웃음으로 뒤범벅돼 있다. 수학여행 갈 형편이 안 되어 어른들 심부름으로 하루를 보내던 어린 날을 떠올리며 “내 머리칼 잡아당기는 동생을 엉덩이 받치고 있던 손으로 한 대 쥐어박았더니 버려진 오후가 앙앙 울었”(「Cut-in」)던 장면을 소환하는가 하면, “소여물 써는 작두를 옮긴 한 모티”에서 태어나 “본적도, 현주소도 다 모티”(「이름·1」)로 살아왔던, 그저 딸이라는 이유로 구석에서의 삶을 강요당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퍽 담담하게, 구성지고도 위트 있게 그려낸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전히 굳건한 남성우월주의를 향해 대찬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다시 태어나면 벌레가 되더라도 수놈이 되겠다던 고모, 주야장천 대를 이어 내려오는 불알교의 탱탱한 신심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불알교」)라는 구절에서는 통쾌함과 쓴웃음이 교차한다. 서하 시인의 위트는 시집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특히 경상도 사투리를 맛깔나게 구현한 「눈 내리는 날」이 절창이다. 선생님을 짝사랑하던 시적 화자가 불현듯 찾아온 실연에 낙망하며 “부글거리는 내 속을 확 디비시 놓은 담임 샘이 엄청시리 미깔시럽었다 (…) 코바늘로 콕콕 찌리고 싶었다”라고 하는 것이나 “찔룩거리던 그날맹크로 배긑에는 아작아작 눈이 온다”, “수학 샘도 담임 샘도 인자는 갱죽거치 다 늙어뿌껬다” 같은 시구를 읽노라면 따뜻하면서도 촉촉한 감성으로 마음이 충만해진다. 삶 도처에 널린 죽음의 상징과 의미를 재해석한 시들도 눈에 띈다. 그는 대놓고 “다정다감하지 않지만 이래라저래라 훈수 두지 않는 해골이 나는 좋다”(「죽은 소의 뿔을 만지다」)고 얘기한다. 소나 고양이 같은 죽어 있는 생명체가 등장하는 시에서는 죽음과 삶이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지를 그려내고, 생명체끼리의 존중과 애도를 처연하고도 아름답게 그려낸다. 해설을 쓴 이성혁 평론가는 “서하의 시는 삶에서 죽음을 찾아내고 죽음에서 생명을 이끌어내면서 써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 쓰기는 결국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일로 나아갔다. 이렇게 써진 시에는 전도된 시간, 거꾸로 매달린 시간이 응축되어 있을 터였다. 거꾸로 매달린 저 고드름처럼 말이다.”라고 강조하며, 이러한 서하의 시학을 ‘거꾸리 시학’이라고 일컫는다. 장옥관 시인이 ‘추천사’에서 밝힌 것처럼 “해학과 풍자의 겨드랑이에 슬쩍 끼워 넣는 아련하고 아릿한 슬픔의 기미”를 이 한 권의 시집에서 읽을 수 있다. 시인의 말 네 번째 매듭을 묶는다. 염낭거미는 새끼들의 먹이가 되며 생을 마감한다. 소여물 써는 외양간 모퉁이에서 몸 풀었던 우리 엄마의 생도 거미와 흡사했다. 아이는 자라 어른이 되는데 딸은 환갑이 지나도 아들이 안 되더라는 북데기 같은 말, 소 잔등에 실어 보낸다. 부디 좋은 곳에 가 닿기를… 2023년 봄을 기다리며 서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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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은 우뚝하다. 씩씩하다, 튼튼하다. 단어와 단어, 행과 행 사이를 성큼성큼 건너뛰는 시의 보폭이 경쾌하다. 누가 소의 걸음이 느릿하다고 했던가, 개구쟁이 딱지 뒤집듯이 말의 의미를 뒤집는 시원시원한 솜씨가 있다. 해학과 풍자의 겨드랑이에 슬쩍 끼워 넣는 아련하고 아릿한 슬픔의 기미도 얼핏 감지된다. ‘정례’라는 이쁜 이름 뒤에서 한낱 ‘모티’로 불리던 성장사, “주야장천 대를 이어 내려오는 불알교”를 향해 “온 힘 다해 받개질”을 꿈꾼 걸까. “참 간절히,/최선을 다해” 뛰엄뛰엄 속엣말 꺼낸 게 이번 시집이다. 어둡고 축축한 어제의 골짜기를 온전히 견뎌냈기 때문일까. “결코 끝은 끝이라 말하지 않는” 삶의 이슥함을 보듬을 줄 아는 시선의 곡진함이 따스하고 눈물겹다. 일상의 작고 여린 것들에게 눈길 던지며 그 사연에 다정함을 버무려 내놓은 가정식 백반. 신축년 소띠 해에 영천 땅에서 태어나 생의 징검다리를 우직하게 내딛는 우보牛步가 참으로 믿음직하다. - 장옥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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