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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과 사랑하는 겨울
임주아
걷는사람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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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희곡 top10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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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당신이 내 처음이야

아오리

복숭아
지각

걷는 연습
세탁기 소리 듣는 밤
백행
나를 관찰하는 장미
산책
호수 만들기
무성인
ㅍㅍㅍ

2부 생일이 적힌 종이


토토
포도
사전
2011
죽은 사람과 사랑하는 겨울
묘지에서
옷장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망종
밤의 공터
징조

3부 서로의 온몸을 파먹으며

전단지

피크닉
빈집
하지
저녁의 눈빛
좋은 사람
부고
이름 늦음
김오순전
물결무늬

4부 어디선가 폭죽 터뜨리는 소리

폐업
아이와 어른
놀이공원
두 귀는 조금 떨어져
밀밭의 연인
빗소리
그런 날

일일
울며 살아난
물속에 빠뜨리면 투명해진다

해설
불안한 사랑에서 불안을 위한 사랑으로
―양재훈(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2015년 광주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전주에서 책방 물결서사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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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124g | 125*200*20mm
ISBN13
9791193412206

책 속으로

우리는 아오리처럼 젊었다 얼마나 흰지 모르는 채 단단한 연두로 살았다 반으로 갈랐을 때 우리는 하나가 아닌 여러 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 안에 나는 하얗게 질려 있었고 하나 안에 너는 까만 씨를 물고 있었다 우리는 모르는 척 서로를 나누어 가졌다 사이좋게 양손에 쥐고 언덕으로 달리고 달렸다 서로의 머리 위에 꼭지가 자라나는 것을 바라보면서 뒤통수도 없이 아무 말 없이 돌아선 연두들이 머리를 짓찧으며 굴러오고 있었다
---「아오리」중에서

그러다 세탁기 앞에 까치발을 들고 더러운 양말을 꺼내 신는 아이가 떠오르고 스무 켤레도 넘는 새 양말을 머리맡에 두고 나간 사람도 툭 생각난다

죄책감에 사 온 그 양말들이 어둑어둑 모여 한밤중 경쾌하게 돌아가면 누군가 돌아오는 소리 들은 듯 평온해지고

세탁기 초인종 울리면 주인 목소리를 알아챈 강아지처럼 한달음에 달려가 베란다에 솟아오른 꽃향기를 들이마시곤 했다
---「세탁기 소리 듣는 밤」중에서

매일 살기 위해서
매일 호수를 만드는
매일 걷기 위해서
매일 호수를 짓는다
호수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호수에서 나오지 않기 위해서
호수를 만든다
호수를 지운다
호수를 완성한다
---「호수 만들기」중에서

이유 없이 눈물이 날 때가 있다. 마음 한구석이 부서진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중략) 이상한 곳으로 질주할 것 같아 마음을 다 내놓을 때가 있다. 세상이 너무 커다란 구멍 속으로 사라져 뒤쫓아 통과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아 책장을 넘길 때가 있다. (중략) 아무와도 말하고 싶지 않아 언덕에서 굴러떨어진 적 있다. 떨어져 맨홀 속으로 들어간 적 있다. 뚜껑이 잘 닫히지 않아 다시 닫으러 올라간 적 있다.
---「홀」중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겨울에 태어나 겨울에 죽었다. 그래서 겨울이 좋다. 입을 다물 수 있어서. 죽은 사람은 죽은 뒤에 말을 꺼내고 등으로 벽을 치며 입술을 문다. 겨울은 웃지 않는 사람들의 것. 그런 사람들이 자주 뒤돌아보는 곳.

겨울에는 주머니가 자주 터진다. 길을 잘못 든다. 잘 넘어진다. 보고 싶어 사라진다. 보이지 않게 돌아선다. 내가 나를 던지지 않고 아무도 나를 밀지 않아서 눈이 떨어진다. 어깨에 떨어진 사람들이 꿈을 꾼다. 꿈에서 성벽보다 높은 난간을 바라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다.
---「죽은 사람과 사랑하는 겨울」중에서

앞숲으로 천천히
그가 산책을 가자고 했다
가파른 길 위를 천천히
도착한 숲에는 작은 무덤이
무덤 옆에는 일인용 텐트가 있었다
들어가 향을 피우고 촛불을 켰다
우리는 숲에서 종종 피크닉을 열었다
서로의 온몸을 파먹으며
긴 잠에 빠져들기 전까지
---「피크닉」중에서

같이 느낀 단 한 번의 즐거움을 쪼개고 쪼개 나빠지려 하는 마음에 이어 붙이면 조금 아물 수도 있을까. 오늘이 좋대도 내일은 모르겠고,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알 수 없지만. 다짐도 싫고 각오도 싫고 계획도 싫지만. 다만 덜 절망하고 덜 미워하며 살고 싶다. (중략) 나는 매일 달라서 오랜만에 크게 웃고 떠들며 갑갑한 껍질을 벗고 한 달에 한 번 신중하게 울며 살아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울며 살아난」중에서

많은 것을 함께하려 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모든 관계에서 하나부터 열까지라는 건 존재하기 어려운 일이다. 다섯이라도 가면 다행이니 그것으로 고마워하는 게 좋다. (중략) 어느 누구도 내 마음 같을 수 없고 그 속도도 맞을 수 없다. 그것을 인정하게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착오를 거름으로 착각해야 할까. 아무것도 갖지 마. 내가 좋아하고 열성적으로 해 왔던 노릇도 끝나는 날이 오겠지.

---「물속에 빠뜨리면 투명해진다」중에서

출판사 리뷰

걷는사람 시인선 106
임주아 시집 『죽은 사람과 사랑하는 겨울』 출간

“우리는 숲에서 종종 피크닉을 열었다
서로의 온몸을 파먹으며
긴 잠에 빠져들기 전까지”

이상하리만큼 아름다운 물성의 향연
물결과 꿈결을 닮은 로맨틱한 세계


2015년 광주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임주아 시인의 첫 시집 『죽은 사람과 사랑하는 겨울』이 걷는사람 시인선 106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전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며 문화와 개인을 연결하는 문화 기획을 다채롭게 선보여 온 임주아 시인은 “겨울의 한가운데서 도망치지 않고, 깊고 깊은 어둠을 오래 바라보고 품다가 마침내 어둠에서 눈의 흰빛을 발견하는”(안미옥, 추천사) 사람이다. 시인 임주아가 골몰해 온 하나의 치열하고 아름다운 세계가 마침내 우리에게로 당도했다.

임주아의 시 세계는 물결을 닮아 있다. 몽환적이고도 환상적인 감각에 기인한 작법은 자아와 세계를 연결 짓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물속은 꿈결 꿈속은 물결”을 닮은 이 세계는 “사랑하는 것과 망가진 것 무너진 것과 돌아선 것”들로 가득하다. 이상하리만큼 아름다운 물성을 빚어내는 마음과 사건이 시집 곳곳에서 눈을 반짝이는 것이다. “이곳의 기묘한 환대 넓고 깊은 밤의 무한한 짙음 느슨한 사랑과 늘어난 마음”을 살피다 보면, 끝내 “잠깐 바람결에 사랑을”(「백행」) 두는 법을 깨닫는 순간에 이르고, 그 방법론이 임주아의 시 세계를 아우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은 언제나 절망과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많은 것을 함께하려 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어두워”(「물속에 빠뜨리면 투명해진다」)지는 순간을 대면하는 일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기에, 임주아의 화자들은 불안을 느끼면서도 “몰래 울다 나올 수 있는 길”(「두 귀는 조금 떨어져」)을 염두에 둔다. 인물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다”(「죽은 사람과 사랑하는 겨울」)라는 의미심장한 진실을 곁에 둔 채 “살고 싶지도 죽고 싶지도 않아 좋다고”(「피크닉」) 생각하면서도 “눈 감으면 엎질러진 빛이 있”(「징조」)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다만 덜 절망하고 덜 미워하며”(「울며 살아난」) 살고 싶다는 소망을 놓지 않는다. 그러니 불안을 꼭 껴안은 채로 울면서도 달려 나가고자 하는 움직임이 곧 사랑의 다른 이름이며, 시인 임주아가 일러 주는 “살아남아 사랑을 돌보”(「폐업」)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인물들이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시 세계에서는 다채로운 마찰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유년기에 겪은 애증의 감정과 그에 기인한 이별의 서사는 “비명인지 환호성인지 모를”(「지각」) 얼굴을 하고 있으며, 사랑은 결국 “서로의 온몸을 파먹”(「피크닉」)는 일과 다름없을지 모른다. 파도에 부서지는 햇살만큼이나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풍경들, 잔혹한 동화 같은 장면이 겹겹이 쌓여 이 세계를 일구어낸다. 이로부터 시작되는 파동이 임주아의 시가 가진 아름다운 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해설을 쓴 양재훈 문학평론가는 “이 시집은 고통 속에 머물고자 하는 마음과 그것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 고통을 즐기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 등이 뒤섞여 있는 상황에서 고통 속에 머물기를 선택한 주체 내면의 드라마를 담고 있”음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또한 이 시집을 “불안한 사랑에서 불안을 위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여정의 기록”이라고 정의한다. 이 책을 펼친다면, “성실하게 빛나고/홀로 가라앉”(「산책」)는 자리에 기꺼이 가서 “치열하게 애도하”(안미옥, 추천사)는 한 시인의 마음에 당신도 같이 깃들게 될 것이다.

시인의 말

쓰는 오늘 속에 존재하며 거의 혼자

2023년 12월
임주아

추천평

임주아의 시를 읽으면 겨울의 한가운데서 도망치지 않고, 깊고 깊은 어둠을 오래 바라보고 품다가 마침내 어둠에서 눈의 흰빛을 발견하는 한 사람이 떠오른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가고 함께 뒹굴고 “흙 묻은 울음을 꺼내 입 속에 넣고” 걷고 또 걷는 한 사람 말이다. 임주아의 시는 “물 자국처럼 사라지고 싶”(「빈집」)은 고통과 비애 속에서도 목소리를 낸다. 그것은 ‘비명’과 ‘환호성’이 같은 무게를 지녔음을 아는 사람의 목소리다. 쉽게 울음을 터트리지 않고, 그렇다고 아픔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세상을 슬픔으로만 뒤덮어 보려고 하지 않는다. 임주아의 시는 ‘살아 있음’을 본다. 치열하게 애도하며 “성실하게 빛나고/홀로 가라앉”(「산책」)는 자리에 기꺼이 가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본다. 곁에 있던 사랑을 본다. - 안미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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