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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목차 I. 공포의 아이러니 II. 그들의 가족사 III. 저택의 역사 IV. 저택에서의 밤 V. 모든 것의 끝 저자 소개 Copyrigh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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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이 소설 속의 표현들이 당신의 감각을 압도할 것이다. 러브크래프트는 분위기와 시각적 디테일을 누벼서 상당히 괴기스럽고 공포스러운 유령 저택의 그림을 완성하고 있다. [중략] 등장 인물들이 겪고 있는 것과 동일한 공포와 예측을 할 수 있는 소설이다." - Lizzy Lessard, Amazon 독자 "최후의 유령 저택. 시중에는 아주 많은 유령 저택에 대한 이야기들과 책들이 많다. 대부분은빅토리아 시대 스타일의 저택에서 시작해서 시체와 피가 넘쳐 나는 고어물로 전개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아주 독특하고 기이한 느낌을 준다. 이것은 그냥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은 공포와 괴기 문학 쟝르에서 어떤 식으로 소설을 쓸 것인가에 대한 일종의 마스터 클래스라고 할 수 있다. 극적인 구성이나 등장 인물의 성격적 발전이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는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공포와 기괴함을 서술하는 방식에 있어 독자를 어떤 방식으로 끌어 들이는 지를 충실히 보여준다. 굉장히 재미있게 읽히는 소설이고, 러브크래프트 특유의 뛰어난 스타일과 기이한 이야기를 빚어내는 솜씨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Pop Bob, Amazon 독자 <미리 보기> 가장 커다란 공포 속에서도 아이러니는 존재한다. 어떤 경우에는 공포스러운 사건의 발생 자체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방식으로 아이러니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다른 경우에는 공포스러운 장소와 사람의 우연한 만남 속에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1940년대 후반 에드거 앨런 포우가 머물렀던 오래된 프로비던스 시에서 일어난 사건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 도시에서 포우는, 재능있는 여류 시인 위트먼 부인에 대해서 애정 공세를 펼쳤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포우는 일상적으로 그 도시의 베네피트 가에 있는 문제의 저택을 지나서 위트먼 부인의 집까지 북쪽으로 산책을 즐겼다. 문제의 저택은 과거에는 '골든볼 여관'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독립 영웅인 워싱턴, 제퍼슨과 라파예트가 머무르기도 했다. 포우는 산책로의 끝에 위치한 성 요한 교회 부근의 언덕을 유난히 좋아했는데, 그곳에는 18세기식의 공동 묘지가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말하는 아이러니란 이런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공포 소설 작가, 에드거 앨런 포우는 산책로의 동쪽에 위치한 그 저택을 언제나 지나쳤을 것이다. 음산한 고대식의 그 건물은 평지 중간에 갑자기 솟아 오른 언덕 위에 서 있었다. 그 지역이 숲으로 둘러싸인 시기부터 존재한, 아주 지저분한 정원이 그 건물 옆에 있었다. 포우는 그 건물에 대해서 글을 쓰거나 언급한 적이 없다. 아니, 그가 그 건물을 알고 있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그러나, 뭔가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저택은, 공포 소설의 천재 작가가 선사하는 공포 이상의 것을 품고 있는 곳이었다. 물론 그 작가 자신이 그 저택을 모른 체 지나쳤다고 하더라도, 그 저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소름 끼치는 모습을 가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저택은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것이었다. 원래 농장 건물 - 또는 반은 농장, 반은 주택 형식의 건물 - 로 설계된 저택은 전형적인 18세기 뉴 잉글랜드 식민지 양식을 따르고 있었다. 풍성하게 치솟은 지붕과 돔이 없는 지붕 밑 공간, 조지아 양식의 복도와 내부 장식에 사용된 패널 처리는 당시의 취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정면은 남쪽을 바라 보고 있고, 한 쪽의 박공벽은 동쪽으로 뻗은 언덕 위에 있는 낮은 층 창문으로 이어지고, 반대편은 거리 쪽으로 건물의 토대가 노출되어 있었다. 150년 전에 건축된 그 건물은, 당대 특유의 허영심을 반영하여, 도로의 경사와 굴곡을 그대로 따라서 지어졌다. 베네피트 가는 첫 번째 이주민들이 묻힌 공동 묘지를 따라서 휘어지다가 '북 공립 묘지'로 시체가 이장된 구역을 가로 질러서 곧게 뻗어 나갔다. 그 건물은 이러한 도로의 모양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서쪽 벽은 도로에서부터 6미터 정도 높이에 있는 급경사의 잔디밭을 따라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독립 혁명 시기에 이루어진 도로의 확장으로 인해서 저택과 도로를 구분하는 공간은 축소되었고, 건물의 토대가 지면으로 노출되었다. 그래서, 벽돌로 만들어진 지하실이 만들어지고, 거리로 통하는 현관문과 작은 창문이 새로 만들어진 도로에서 보이는 위치에 추가되었다. 100년 전 보행로가 만들어지면서, 저택과 도로를 구분하는 공간은 모두 사라졌다. 따라서 에드거 앨런 포우가 이 거리를 걸었을 때는 보행로를 따라 쌓인 진한 회색 빛의 벽돌만이 보였을 것이었다. 그리고, 고전적인 양식의 양철 지붕 옆쪽이 3미터 위에 있는 것을 올려다 봤을 것이었다. 농장처럼 보이는 뜰은 언덕 쪽까지 길게 펼쳐져 있어서, 건너편의 위트 가 근처까지 이어졌다. 베네피트 가 가까이에 있는 남쪽 공간은 현재의 보행로보다 훨씬 높이 있었기 때문에 습한 이끼가 낀 돌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테라스를 이루고 있었다. 그 돌벽 사이로 좁은 계단이 나 있었고, 계단은 안쪽으로 올라 가서 거친 흙바닥이 보이는 잔디밭을 지나, 그리고 습기에 젖은 벽돌길을 따라 정원으로 이어졌다. 정원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거의 부서진 시멘트 장식 항아리와 매듭 장식의 철사에서 떨어져 내린 녹슨 장식 주전자, 비슷한 종류의 장식물들이 이곳 저곳에 놓여 있었다. 정원 끝 쪽에는 날씨에 찌든 현관문과 그 옆의 부서진 장식등, 부식된 느낌의 그리스식 기둥, 그리고 벌레 먹은 삼각형의 벽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내가 어렸을 때, 그 버려진 집에 대해서 들은 것은, 그곳에서 죽은 사람들이 놀랄 만큼 많다는 것이었다. 내가 들은 것은, 바로 그 이유로, 저택이 지어진 지 20년 정도 후에 원래의 집 주인들이 모두 이사를 나가버렸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그 저택이 건강에 좋지 않는 환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천장의 습기로 인한 곰팡이의 번식, 뭔가를 연상시키는 악취, 복도를 떠도는 먼지들, 우물과 펌프에서 나온 물의 오염. 이런 것들이 원인이었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 저택의 이 모든 것들이 상당히 나쁜 편이었고,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들을 원인이라고 믿고 있었다. 고문서 수집가인 우리 삼촌, 엘리후 와이플 박사의 메모만이 그 저택에 얽힌 좀 더 어둡고 희미한 옛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었다. 메모에 의하면, 늙은 하인들과 전승되어 오는 이야기에 기반한 추측이 존재했다. 그러나, 그 추측은 결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했고, 프로비던스가 현대적인 인구 규모를 갖춘 거대한 도시가 되면서 모두 잊혀졌다. 일반적으로, 지역 사람들 대부분에게는 그 저택이 진정한 의미에서 '유령이 나오는' 집으로 간주된 적은 없었다. 그 저택과 관련해서, 흔들거리는 의자라든가 차가운 바람, 바로 꺼지는 불꽃, 창문에 나타난 얼굴과 같은 이야기가 떠돌아다닌 적은 없었다. 가장 공포스럽게 언급되는 경우에도, 그 저택은 '운이 없는' 곳 정도로 간주되었다. 오히려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은, 그 저택에서 죽어 나간 사람들의 공포스러운 숫자였다. 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죽어 나갔던' 숫자였다. 왜냐하면, 60년 전 뭔가 사건이 있고 나서, 그 저택은 버려진 채 임대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들이 모두 한 가지 원인에 의해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오히려, 뭔가에 의해서 생명력이 빨려 나간 듯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던 신체적 허약함이나 질병이 악화되면서 죽은 것이다. 그곳에서 죽지 않은 사람들은 다양한 정도의 무기력증이나 빈혈, 심적 소모 증상을 나타냈다. 일부는 정신적 장애를 보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결국 그 저택이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 하나 언급되어야 할 것은, 그 저택의 주변에서 사는 사람들의 경우 어떠한 정신적 육체적 문제나 질병도 겪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