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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불온하지만 살아 있는 형태로
사과의 출산 수용성 딱딱하고 완고한 뼈 졸다가 쳐다본 창문 글짜들 구조만 있는 당신은 내 국경이다 마지막 작고 보잘것없는 소리와 고요 난민이 된 어둠 날씨는 먹구름을 발표하고 생활 연출 해변의 불특정 신분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할 수 없는 일 무거운 것은 왜 가벼운 것에 포함되는가 시간 외 내일은 절벽에서 만나요 얼룩말 같은 밤 2부 당신에서 당신까지 당신은 슬픈 주소를 가졌다 당신의 저녁 그리운 쇄골뼈 당신의 후렴 연기가 나는 창문 과거형으로 복습하다 숙성 중인 생활 주술 나를 버릴 만큼은 아녔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밤하늘에 눈사탕이 날개 달린 개미가 거미를 물고 있다 당신이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작은 것 식품 고양이와 구름으로 저녁 변검술 3부 희미한 층위들 당신 반복하는 반복 씨 맞나요? 미신을 믿고 여름을 조심하고 소리라는 음식 당신을 설명하다 질문 고요의 반경 그때 당신 바지춤을 올리지도 못하고 만원 때문에 옆눈을 가지는 의심 한 뚝배기 하실라예 비가 오면 추억에 잠기는 건가요 기억의 자전 텅 빈 고요 시간의 신경 꽃나무의 미혹 4부 인공감정 고인 은둔거미 파란 하늘 사랑 알레고리 가정 어둠의 원본 연기론 원적 그리고 그래서 그러나 밤에서 밤으로 이미 알고 있는 일을 매일 한다 슬픔의 과학 너는 어디에 휘다 어두운 울음 이후의 주소 해설 뼈를 더듬어 저녁의 감정을 계산하다 -오연경(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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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를 기다린다
자신을 반품하는 방식으로 자기를 써서 누군가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택배 기사들은 파업 중이고 택배는 오지 않는다 일생을 무엇과 파업 중이지만 나는 나를 매일 어디로 보냈고 어딘가에서 반송된 나를 다시 받았다 이 지루한 핑퐁의 방식 종말은 벌써 지나갔는지도 몰라 죽어서도 천 년을 산다는 고사목이 있듯이 지금과 이후는 종말의 진자운동 중 그나마 불행의 마찰이 있으니 살아 있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겠지 ---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할 수 없는 일」 중에서 구름은 무엇이 한 켜만 보태져도 무너진다 오늘은 한기가 한 켜 보태져서 흰 눈이 퍼부었다 내일은 누군가의 기도가 한 켜 다음 내일에는 흔해 빠진 한숨이 한 켜 또 다른 내일에는 내일의 이복동생이 한 켜 보편적 세계도 한 켜 --- 「얼룩말 같은 밤」 중에서 어느 저녁에는 싱크대 물소리를 듣다가 오열한 적이 있다 또 어느 가을에는 연애편지를 나무 밑에 묻으려고 산에 갔다가 발에 밟히는 낙엽 소리와 오래 얘기하다가 내려온 기억도 있다 누가 나를 나쁘게 하지 않아도 나는 알아서 나빠졌다 나쁜 것이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변성기가 지나고 얼마 있으면 노안이 오고 노안으로부터 틀니가 멀지 않듯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나빠지는 것은 내 인생의 목록 적당한 순번에 이미 기록되어 있었기에 변성기에서 이명은 멀지 않았다 울음으로 시작해 비명으로 끝나는 여정도 멀지 않다 --- 「소리라는 음식」 중에서 당신을 완전히 이해하면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기에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 낮과 밤을 설명해야 하고 너무 쉽고 너무 뻔해서 일부러 길을 우회하는 행로를 설명해야 한다 (중략) 설명의 의미를 눈치챘다 해도 우리는 멈출 수 없지 기도해서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지루한 기도를 멈추지 않듯이 (중략) 어디까지 설명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문득 노안이 와서 당신이 아득하게 보일 때도 내가 당신을 어디까지 설명하다가 말았는지 기억나지 않았어 --- 「당신을 설명하다」 중에서 나는 최후에 개명할 것이다 개명할 이름은 고인 나와 비슷한 시기에 최후가 온 이들도 모두 개명을 하겠지 우스울 거야 모두 같은 이름이 되었으니 고인, 하고 부르면 수백 명이 동시에 쳐다볼 수도 있겠지 그 난감한 상황에서도 서로 통성명을 할 거야 저는 고인이라고 합니다 댁은? 아, 댁도 고인이시군요 저분도 고인이라고 하던데 이것 참 대략난감이올시다 개명한 이후에도 예전의 이름이 기억날까 그 이름으로 살았던 낮과 밤 혹은 그 이름을 걸고 내기를 했던 일들 고인이 되어서도 울 수 있을까 운다면 눈물은 어디서 흐를까 눈도 없이 울 텐데 --- 「고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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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사람 시인선 23
김대호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 출간 2012년 『시산맥』으로 등단한 이후 생활 곳곳에 파고드는 환난에 말미암아 시편을 써온 김대호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걷는사람)가 출간되었다. 김대호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삶, 그 이면을 사유한다. 시집을 관통하는 주요 시어로 ‘세월’, ‘인생’, ‘시간’, ‘반복’, ‘죽음’, ‘슬픔’, ‘온도’ 등이 눈에 띄는데, 이는 김대호 시인이 천착해온 삶과 죽음에 대한 실감이다. “이 악랄한 계산법은/죽는 일보다 사는 일이 더 지독하다는 이론에서 시작되었다”(「만원 때문에 옆눈을 가지는」)고 말하는 시인은 “바닥을 벗어나기 위해 매주 로또를 사는 일용직의 낡은 저녁”(「만원 때문에 옆눈을 가지는」), “해고 노동자의 자살 소식”(「의심 한 뚝배기 하실라예」), “핏덩어리 아기가 버려지는 사회”(「알레고리 가정」), “슬픔을 먹고 자란 아이들이 활보”(「어두운 울음」)하는 모습들을 주목한다. “모든 절망이 삶의 의지로 기록”(「이미 알고 있는 일을 매일 한다」)되기 때문이다. “가난했지만 누구도 사람을 해치지 않았”(「원적」)던 시절을 거쳐온 시인은, “자꾸 내 안에 무엇이 있다고 믿”(「구조만 있는」)기에 시를 쓴다. 작은 충격에도 무너지는 헐거운 희망을 가질 바에야 “견고한 슬픔에 의지하는 생활을 해왔”(「마지막」)으며, “불행의 마찰이 있으니 살아 있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었음은 물론이다. 오연경 평론가는 해설을 통해 “김대호의 시에는 견디기 힘든 생활과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이 팽배하지만, 그의 불가능한 계산법은 끝내 우리를 저 어둠의 온기와 활기로 데려다 놓는다. 시인의 계산법은 어떤 정답도 도출해내지 못할 테지만, 그가 첫 시집에서 착실하게 빼고 더하고 곱하고 나눈 시 쓰기의 마지막 줄에는 아름답고 희미한 주소가 어른거린다. 우리는 이제 시집을 덮고 일어나 김대호 시인이 등록한 ‘이후의 주소’에서 “푸른 저녁”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시인의 말 나는 너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 나는 문장을 수정했다 너는 나다 2020년 4월 김대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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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는 일상의 반응을 몸의 감각으로 일구는 시인이다. 그의 미적 반응은 자신을 존재하게 한 뼈의 감각으로부터 출발한다. 엑스레이를 찍으며 내가 풍화된다면 흰 뼈만 남을 것이라는 상상력이나 “내 뼈의 배열은 어떤 현실이 될까”(「딱딱하고 완고한 뼈」)라고 자문하는 것은 뼈의 감각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실례가 된다. 심지어는 그리움의 대상까지도 뼈의 감각에 의존한다. 쇄골뼈가 시린 당신과 당신의 쇄골뼈에 잠긴 화자의 정서가 처연하면서도 반짝거린다. 뼈는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유일한 감각이다. 뼈는 죽어서도 자신의 구조를 증거하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결국 “아름다운 것 하나 만져보는 일에 전부 탕진한”(「졸다가 쳐다본 창문」) 시간을 다행이라고 여기는 존재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시인은 그 어떤 투쟁과 독기도 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경험의 말을 잔잔하면서도 유쾌한 보폭으로 전해준다. 생활을 시적인 순간으로 담아낼 줄 안다. 택배를 기다리고, 해변을 산책하고, 고기로 저녁을 먹고, 중력을 이탈하는 산책자로서 시의 시간을 공유한다. 시적 화자는 “한 줄로 요약이 가능한 이력서”(「당신을 설명하다」)를 생활의 무게로 견딘다. 이러한 삶 속에서 당신을 그리워하고 얘기하는 시간은 시적인 순간이 될 것이다. 슬픈 주소를 가진 당신을 만나고, 냄새로 당신을 기억하고, 슬픔을 저녁 빛에 녹이는 상상력은 몸에도 국경이 있다고 믿는 마음에서 나온다. 시인은 태어나는 순간 무덤으로 완성되는 글자의 운명을 시의 운명이라고 말한다. “종이의 재질은 고요”(「고요의 반경」)라는 구절에서 보듯, 쓰는 자의 운명과 언어를 매만지는 시인의 자의식이 충만하다. 어떤 언어에 시인은 힘을 얻을까. “식물은 한 계절이 평생”이지만, 시인은 “평생을 한 계절에 압축”(「질문」)하려는 자가 아니던가. 평생을 시로 견디겠다는 시인의 질문이 꼭 나에게 하는 말 같아서 마음에 오래 남는다. - 이재훈 (시인) - 이재훈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