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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설해목 지는 소리를 듣다
초가을 밤 어머니가 다녀가셨다 이름을 적어 본다 돈벌레를 잘 모시고 새벽에 깨어서 호스피스 병원 뜰에 앉아 합장을 하고 낙과·3 산거·11 산거·12 산거·13 산거·14 산거·15 산거·16 산거·17 산거·18 산거·19 산거·20 찔레꽃 피면 2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소낙비와 사과꽃과 옥수수 대궁 소낙비 꽃을 기다리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불영사에 가서 문득 울음이 났다 오래 앉아 있었다 저녁에 눈썹 봄 입동 늦은 저녁 저 어린 잣나무처럼 내가 쓰고 싶은 시 배달 라이더처럼 마가리 캠핑장에서 산협 역병이 창궐하던 해 문자 메시지 영욕이 반이라는 말 시냇물 이별할 때를 안다는 것 3부 혼자라는 말을 생각하다 내 등이 너무 멀다 눈 내리는 밤 새가 집을 지었다 별 봉정사 아랫마을에서 연필을 깎네 금몽암 그늘 내 사랑은 오래되었으니 봄이 오고 가는 동안 연민 수타사에서 출근길 손을 베다 저녁 산새 배웅 마음이 아프니 몸도 아픈 돌아가신 분에게 전화를 하고 그가 꽃 핀다 배웅 발문 장년의 저녁, 그 혼돈의 안팎 풍경 - 김경수(문학평론가) |
김남극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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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어느 후미진 민박집 다다미방에서
술로 잠을 청했는데 새벽에 어머니가 오셨다 참 잘해 줘서 고맙다고 내게 말하시고는 숨을 거두셨다 나는 다음 생에는 부잣집에 태어나시라고 엄마를 사랑해 주는 부모를 꼭 만나시라고 평생 잘 안 들리던 세상 소리도 잘 들으시라고 말씀드리고는 크게 크게 울었다 ---「어머니가 다녀가셨다」중에서 100일간 몸을 누이고 산소발생기 기포처럼 생에 온기를 넣거나 2층 현관에 나와 앉아 자원봉사 아이들의 연주를 들으면서 손자들을 기다렸던 어머니의 마지막 겨울 그 겨울이 가고 있었다 나는 주말이면 반찬을 해서 깔끔하게 닦은 반찬통을 들고 이 병동을 드나들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죽음에 좀 익숙해지기를 바랐다 (중략) 모두에게 봄은 또 오는데 어머니는 북망에 갈 예정이다 ---「호스피스 병원 뜰에 앉아」중에서 꽃은 욕심처럼 피었고 열매는 무심하게 떨어진다 일찍 세상을 하직하는 일도 별일 아니라는 듯 이 세상에 무슨 미련 있겠냐는 듯 ---「낙과·3」중에서 조그만 말에도 상처를 받는 게 늙는 것인가 생각하다가 술을 혼자 마신다 늙는 것이란 무엇인지 다 그런 것인지 새벽이 지나는 동안 혼자 이 추위의 가운데 앉아 억울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 이 엄동설한의 한기를 견디는 것 그것이 또 한 생애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다 ---「산거山居·13」중에서 마른 고사리가 연해지듯 마른 고사리가 봄날 고사리처럼 살이 오르듯 한기 속에서도 긴 겨울밤의 기억과 근육이 풀어지듯 당신을 향한 마음도 불어 오르길 빌면서 설해목 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산거山居·19」중에서 영원한 건 없다고 나 같은 백면서생에겐 절집 추녀 끝에 매달려 작은 울음 우는 물고기처럼 처연한 생활만 있는 거라고 불영사는 나를 가르쳤지 ---「불영사佛影寺에 가서」중에서 창밖은 폭설로 더 환하게 방을 비추는 동안 나는 예전 아버지나 어머니처럼 앞대로 나간 아이들 걱정을 하며 어느 산속 암자에 들러 절을 하면서 두 아이의 무고를 빌거나 새벽에 일어나 앉아 몇 년 전 여행 사진을 뒤적이며 아이들의 빛나는 청춘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눈 내리는 밤」중에서 저 나무 그늘로 새가 날아갔다 저 처마 그늘로 그는 사라졌다 저 산그늘 아래로 그녀가 사라졌다 나만 남았다 그늘은 자꾸 내게 이별을 원한다 그래서 이별은 그늘처럼 내 발밑까지 왔다 그늘에는 그늘이 없다 다행이다 ---「그늘」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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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사람 시인선 92
김남극 『이별은 그늘처럼』 출간 “한기 속에서도 긴 겨울밤의 기억과 근육이 풀어지듯 당신을 향한 마음도 불어 오르길 빌면서 설해목 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산협의 외진 길을 홀로 걸어가는 사람 하찮은 것을 장엄하게 우러르는 시의 얼굴 강원도 봉평에서 태어나 2003년 《유심》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남극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이별은 그늘처럼』이 걷는사람 시인선 92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장년의 저녁, 그 혼돈의 안팎 풍경”(김경수 발문)이란 표현처럼 김남극 시인은 강원도 봉평의 산협(山峽)에서 인간이 늙어 가며 겪어야 하는 이별과 설움, 육체의 아픔과 정신의 처연함에 대해 써 내려간 60편의 시를 책으로 엮었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이별과 잊힘, 그 쓸쓸함의 이면에는 인간에 대한 끊을 수 없는 애정과 그리움이 자리 잡고 있음을 시편들은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 시인이 걸어간 길을 따라가면 산협의 오솔길 사이로 눈이 내리고 이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성장해 도시로 나간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중년의 사내가 나타난다. 이 산협의 마을에는 중장비 일을 하는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는 어린아이도 있고 하루 종일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며 “어디서 내려야 할지 알 수 없”고 “어디로 가야 하고 어디에서 돌아와야 하는지”(「늦은 저녁」)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세상에서 “고단하고 불편한 마음을 들여다보니/미움과 분노와 서러움과 서글픔”(「저녁에」)으로 잠을 못 이루는 중년이 있고, “‘내가 이러려고 널 오라고 한 게 아닌데’”(「산거·12」) 혼잣말하는 병든 노모가 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시인에게 세상살이는 수수께기 같다. “세상에 웬만한 것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묘하거나 신비로운데”(「눈썹」) 자기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면 하찮은 생활이 먼저 보이고, 자려고 또 누우면 “양손을 이리저리 휘둘러도 가려운 곳에 닿지 않는”( 「내 등이 너무 멀다」 ) 상황에 삶이 아연해진다. 발문을 쓴 김경수 문학평론가는 그런 장년의 삶에 대해 “온갖 종류의 애증의 감정들, 본말이 전도된 듯한 세상에 대한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과 함께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겪으며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경험과 감정에 맞닥드리게 된다고 말한다. 이때 “이런 요동치는 안팎의 환경에 더해 질병이나 육체적인 불편 같은 것마저 떠안고 가야 한다면 장년의 위기성은 더더욱 배가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년기는 어쩌면 성인기의 문턱에서 맞는 사춘기에 버금가는 문제적인 시기”이며, 김남극이 그려낸 장년의 풍경은 곧 자신이 걸어가야 할 운명의 길이며, 시인은 주변 사람들이 걸어갔던 길을 톺아봄으로써 그 운명을 넘어서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인생의 슬픔을 초월하기보다는 그대로 응시하려는 김남극의 태도는 시에 살을 붙여 꾸미려 하지 않는 의지와 연관되어 있다. 이를 테면 “마당 하나 횡단하기 힘들어 지친 지렁이를 보다가/그 하찮은 생의 거룩함”(「저녁에」)을 발견하는 것이나, “시집올 때 해 온 열두 동이들이 옥수수술의 그 찰진 맛을/이젠 보지 못하고 떠나겠다고 하시”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아쉬운 것은 아쉬운 그대로, 비어 있는 것은 비어 있는 그대로 이미 ‘충분히’ 존재하고 있음을 노래한다. 추천사를 쓴 전동균 시인은 이 시집이 “산협에 살며 장년에 접어든 시인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 줄 뿐 아니라, “어머니의 죽음과 자녀와의 이별, 삶의 상처와 고독과 그리움을 매개로 사람살이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다고 말하며, 이러한 진솔함은 단순히 세상을 보여 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삶과 세상의 한가운데를 조용히 관통하는 통로가 된다”고 말한다. 현란한 수사를 붙이지 않고 자신과 산협의 거울을 통해 소박하고 귀한 시의 언어를 보여 주는 시집이다. 시인의 말 죽음으로 이별하는 일이 잦다. 그래도 이별은 익숙하지 않다. 그대의 얼굴은 아련하고 흐려지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미혹한 내가 두렵기도 하다.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기로 한다. 나무를 경배하고 꽃을 숭배하면서 또 몇 년을 살아 보기로 한다. 시집을 세 권 내기로 했는데, 이 시집이 마지막이다. 여기서 마치면 좋겠다. 아내와 두 아이가 고맙다. 다들 평화롭기를, 무고하기를 빈다. 2023년 가을 김남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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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익의 노래를 들으며 김남극의 시를 읽는다. 시 속에는 강원도 산협의 외진 길이 나 있고, 그 길을 홀로 걷는 이의 모습이 비친다. 장사익의 노래가 서민의 감성으로 삶의 애환을 들려주듯 김남극의 시는 강원도 산협에 살며 장년에 접어든 시인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어머니의 죽음과 자녀와의 이별, 삶의 상처와 고독과 그리움을 매개로 사람살이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이 산협의 외진 길은 산속으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들 삶과 세상의 한가운데를 조용히 관통하는 통로가 된다. 그의 시는 화장기가 없는 민낯을 보여 준다. 언어를 비틀지도 기교를 부리지도 않는다. “외롭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그립기도 한”(「눈 내리는 밤」) 육성이며, “별이 가득한 하늘을 내다보며 아픈 마음을 달래”는 (「마음이 아프니 몸도 아픈」) 진술이다. “모두에게 봄은 또 오는데/어머니는 북망에 갈 예정이다”(「호스피스 병원 뜰에 앉아」)라고 툭 던지는 언어의 배면에는 쉬 말할 수 없는 곡진한 정서가 배어 있다. 단독자인 ‘나’의 체험과 감정이 보편적 인간의 근원적 사건과 감정으로 연결되면서 그의 시들은 파동을 일으키며 공감을 얻는다. 외진 산협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되 사람 냄새가 물씬 나고, “무엇이 우리를 사랑으로 이끌고 미움에서 멀어지게 하는지/또 죄는 왜 쌓이고 속죄하지 않는지”(「손을 베다」) 스스로에게 되묻는 질문을 통해 “하찮은 것이 가끔 장엄한 무엇이 되기도 하는”(「수타사에서」) 장면을 목격한다. 인공의 방부제와 감미료가 첨가되지 않는 수제 막걸리 같은 시편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별똥별이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냇가”(「연민」)에서 아득하고 아픈 삶의 얼굴을 대면할 수 있으리라. - 전동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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