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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서 산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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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장 - 마음속에 흐르는 쓸쓸함이 더더욱 쓸쓸해지고

꽃을 묻다 - 니이미 난키치
운모편암 - 미야모토 유리코
여름 모자 - 하기와라 사쿠타로
비와 아이 - 미야모토 유리코
소세키 산방의 겨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쓰메 소세키 선생의 일화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장의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목련꽃 호리 - 다쓰오
싸리꽃 - 호리 다쓰오
불에 쫓겨 - 오카모토 기도
술의 추억 - 다자이 오사무

제2부 - 거리에 비 내리듯 내 마음에 눈물을

좋아하는 친구 - 사토 하루오
아버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10년 - 나카지마 아쓰시
병상 생활에서 깨달은 발견 - 하기와라 사쿠타로
세 명의 방문객 - 시마자키 도손
사후 - 마사오카 시키
의무 - 다자이 오사무
달리지 않는 명마 - 다자이 오사무

제3부 - 은은한 향을 남기고 사라진 선향처럼

도토리 - 데라다 도라히코
유리문 안에서 (중에서) - 나쓰메 소세키
꽃을 든 여자 - 호리 다쓰오
어린 시절의 기억 - 이즈미 교카
풀종다리 - 고이즈미 야구모
시키의 그림 - 나쓰메 소세키
산잔 거사 - 나쓰메 소세키
화롯가 - 호리 다쓰오
아버지의 모습 - 사토 고세키
어머니의 냄새 - 사토 고세키
고향을 그리다 - 김사량

저자 소개 16

나쓰메 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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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sume Soseki,なつめ そうせき,夏目 漱石,나츠메 긴노스케 夏目 金之助

나쓰메 긴노스케는 원치 않은 아이로 태어났다. 갓난아기 적에 시오바라 가문으로 입양되었다가 양부모의 이혼으로 다시 나쓰메 집안으로 돌아왔다. 부모한테서 인정받지 못한 불안한 환경 속에서도 면학에 전념하여 동경제국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친구에게서 ‘돌로 이를 닦는다’는 뜻의 소세키라는 호를 물려받았다. 그는 거의 평생 어디 한곳에 정착하지 못했다. 이곳저곳에서 영어교사 생활을 전전하다가 일본 정부의 명령으로 영국 국비유학을 떠났지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신경쇠약에 시달리면서 자기의 본령을 찾느라 유학생활도 실패했다. 소세키는 뒤늦게 하늘이 내린 자기 재능과 자신이 가야 할
나쓰메 긴노스케는 원치 않은 아이로 태어났다. 갓난아기 적에 시오바라 가문으로 입양되었다가 양부모의 이혼으로 다시 나쓰메 집안으로 돌아왔다. 부모한테서 인정받지 못한 불안한 환경 속에서도 면학에 전념하여 동경제국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친구에게서 ‘돌로 이를 닦는다’는 뜻의 소세키라는 호를 물려받았다. 그는 거의 평생 어디 한곳에 정착하지 못했다. 이곳저곳에서 영어교사 생활을 전전하다가 일본 정부의 명령으로 영국 국비유학을 떠났지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신경쇠약에 시달리면서 자기의 본령을 찾느라 유학생활도 실패했다. 소세키는 뒤늦게 하늘이 내린 자기 재능과 자신이 가야 할 인생을 깨달았다. 도쿄로 돌아온 후 서른일곱 살이 돼서야 기분 전환 삼아 소설 한번 써보지 않겠냐는 친구의 권유로 단편을 하나 쓴 것이 소세키의 인생을 바꾸었다. 그것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였다. 그는 내면에 가득했던 세계를 한꺼번에 폭발시켰다. 『도련님』, 『풀배게』, 『우미인초』, 『산시로』, 『그 후』, 『문』, 『마음』, 『열흘 밤의 꿈』, 『봄날의 소나티네』, 『현대 일본의 개화』, 『나의 개인주의』 등 소설, 하이쿠, 수필, 평론, 한시, 강연, 여러 장르에 걸쳐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일본인이 사랑하는 국민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국가와 권력을 멀리하였다. 문부성이 박사학위를 선사하자 그것을 거부하였다.

“박사가 아니면 학자가 아닌 것 같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한다면 학문은 소수 박사들의 전유물이 되어 학자적인 귀족이 학문권력을 장악하는 폐해가 속출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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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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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uunosuke Akutagawa,あくたがわ りゅうのすけ,芥川 龍之介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1892년 도쿄의 서민 지역인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외가에 양자로 들어가 두 이모가 그를 양육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도쿄제일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했다. 기쿠치 칸, 구메 마사오 등과 재학생 시절 동인지 『신사조』를 발간해 『라쇼몬』 『코』 등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나츠메 소세키로부터 단편 『코』가 절찬을 받으며 일약 다이쇼 시대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전공인 영문학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러시아문학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아 간결하면서도 평이하고 명쾌한 필치가 특징이지만 한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왕조물’, ‘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1892년 도쿄의 서민 지역인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외가에 양자로 들어가 두 이모가 그를 양육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도쿄제일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했다. 기쿠치 칸, 구메 마사오 등과 재학생 시절 동인지 『신사조』를 발간해 『라쇼몬』 『코』 등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나츠메 소세키로부터 단편 『코』가 절찬을 받으며 일약 다이쇼 시대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전공인 영문학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러시아문학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아 간결하면서도 평이하고 명쾌한 필치가 특징이지만 한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왕조물’, ‘기독교물’, ‘에도물’, ‘개화기물’, ‘현대물’ 등의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나생문(羅生門)』, 『마죽(芋粥)』 등 150편 정도의 단편 소설을 남겼다.

초기에는 일본 고대 설화 문학에서 소재를 취해 보편적이면서 현대적인 인간 에고이즘의 내면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썼고, 이후 예술지상주의적인 경향의 작품들, 에도 시대 그리스도교 박해를 다룬 기리시탄 작품들, 일본의 근대화를 주제로 한 작품들 등을 쓰다가 말년에는 자살을 염두에 둔 듯 자신의 삶을 무자비하게 조롱하고 야유하는 자전적인 작품들이 많다. 1927년 7월 24일 새벽, 비가 세차게 내리는 가운데 다바타의 자택에서 치사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했다. 그가 밝힌 자살의 이유는 ‘장래에 대한 그저 막연한 불안’이었다. 아쿠타가와의 자살은 관동대지진과 더불어 일본 근대사에서 다이쇼라는 한 시대의 종언으로 느껴질 정도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던졌다. 1935년 아쿠타가와의 친구였던 문예춘추의 사주 기쿠치 칸이 아쿠타가와상을 제정했고 현재까지도 이 상은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으로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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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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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zai Osamu,だざい おさむ,太宰 治,츠시마 슈지津島修治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35년 제1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단편 「역행」이 올랐지만 차석에 그쳤고, 1936년에는 첫 단편집 『만년(晩年)』을 발표한다. 복막염 치료에 사용된 진통제 주사로 인해 약물 중독에 빠지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지만, 소설 집필에 전념한다. 1939년에 스승 이부세 마스지의 중매로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한 후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썼다.

1947년에는 전쟁에서 패한 일본 사회의 혼란한 현실을 반영한 작품인 「사양(斜陽)」을 발표한다. 전후 「사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기 작가가 된다. 그의 작가적 위상은 1948년에 발표된, 작가 개인의 체험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을 통해 더욱 견고해진다. 수차례 자살 기도를 거듭했던 대표작은 『만년(晩年)』, 『사양(斜陽)』, 「달려라 메로스」, 『쓰기루(津?)』, 「여학생」, 「비용의 아내」, 등. 그는 1948년 6월 13일, 폐 질환이 악화되자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人間失格)』을 남기고 카페 여급과 함께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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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이미 난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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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kichi Niimi,にいみ なんきち,新美 南吉

1913년 아이치현 한다시에서 태어났다. 4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를 여의고, 8살 때 외가에 양자로 들어갔다. 한다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문학에 흥미를 갖고 동화나 시를 문학잡지 등에 투고하는 한편 이와나메에서 임시교사를 하면서 창작을 계속했다. 1931년에는 문예동화잡지 《붉은 새》에 동요 ‘창’이 실리는 것을 계기로 잇달아 작품이 채택되었다. 그 후 도쿄외국어대학교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고향의 여자고등학교에서 교원으로 근무하면서 창작활동을 계속했다.그러나 결핵이 악화되어 1943년 29세의 짧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렇지만 금빛여우로 대표되는 110여 편의 동화와 60편
1913년 아이치현 한다시에서 태어났다. 4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를 여의고, 8살 때 외가에 양자로 들어갔다. 한다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문학에 흥미를 갖고 동화나 시를 문학잡지 등에 투고하는 한편 이와나메에서 임시교사를 하면서 창작을 계속했다. 1931년에는 문예동화잡지 《붉은 새》에 동요 ‘창’이 실리는 것을 계기로 잇달아 작품이 채택되었다. 그 후 도쿄외국어대학교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고향의 여자고등학교에서 교원으로 근무하면서 창작활동을 계속했다.그러나 결핵이 악화되어 1943년 29세의 짧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렇지만 금빛여우로 대표되는 110여 편의 동화와 60편의 소설, 그리고 여러 편의 하이쿠와 시를 남겼다. 그가 짧은 생애 속에서 실존을 걸고 추구했던 ‘생명체들 사이의, 그러나 차원을 달리한 영혼들의 소통과 공명’이라는 문제의식은 생태계 파괴와 일상적인 폭력을 초래하는 현대인의 오만한 태도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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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유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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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iko Miyamoto,みやもと ゆりこ,宮本 百合子

1899년 도쿄 출생. 1916년 3월 오차노미즈 고증학교를 졸업하고, 4월 일본여자대학 영문과 예과에 입학하였으나, 데뷔작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를 『중앙공론』9월호에 발표하고 학교를 자퇴해 작가 생활에 들어갔다. 1918년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그곳에서 아라키 시게루를 만나 이듬해 결혼하였다. 1930년 일본 프롤레타리아 작가 동맹에 가입하였으며, 이듬해 11월에는 일본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작품활동으로 인해 여러 차례 검거와 석방을 되풀이 하였으며, 1938년 1월 부터 이듬해 봄까지 집필 금지를 당하여 정신적,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았다. 태평양 전쟁 발발
1899년 도쿄 출생. 1916년 3월 오차노미즈 고증학교를 졸업하고, 4월 일본여자대학 영문과 예과에 입학하였으나, 데뷔작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를 『중앙공론』9월호에 발표하고 학교를 자퇴해 작가 생활에 들어갔다. 1918년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그곳에서 아라키 시게루를 만나 이듬해 결혼하였다. 1930년 일본 프롤레타리아 작가 동맹에 가입하였으며, 이듬해 11월에는 일본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작품활동으로 인해 여러 차례 검거와 석방을 되풀이 하였으며, 1938년 1월 부터 이듬해 봄까지 집필 금지를 당하여 정신적,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았다. 태평양 전쟁 발발 직후 검거되어 시력과 언어장애 등을 얻었지만, 작품활동을 계속 하였으며, 1951년 1월 21일 급성 뇌수막염균 패혈증으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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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와라 사쿠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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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giwara Sakutaro,はぎわら さくたろう,萩原 朔太郞

1886년 11월에 군마 현 마에바시 시에서 태어났다. 마에바시 중학교 때부터 당시의 가장 유명한 문학잡지인 [명성(明星)]에 단가(短歌)를 투고하는 등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을 떠나 타지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만 몇 번의 낙제를 거듭한 후 귀향하여 1913년경부터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개시했다. 이후로 수도 도쿄(東京)와 고향을 오가는 생활을 계속하면서 시작에 전념하여 1917년, 처녀 시집 『달 보고 짖는다』를 간행했다. 이 시집에서 근대인들의 고독감과 신경 쇠약, 우울증을 구어체(口語體)로 섬세하게 표현해 냄으로써, 하기와라 사쿠타로는 다카무
1886년 11월에 군마 현 마에바시 시에서 태어났다. 마에바시 중학교 때부터 당시의 가장 유명한 문학잡지인 [명성(明星)]에 단가(短歌)를 투고하는 등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을 떠나 타지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만 몇 번의 낙제를 거듭한 후 귀향하여 1913년경부터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개시했다.

이후로 수도 도쿄(東京)와 고향을 오가는 생활을 계속하면서 시작에 전념하여 1917년, 처녀 시집 『달 보고 짖는다』를 간행했다. 이 시집에서 근대인들의 고독감과 신경 쇠약, 우울증을 구어체(口語體)로 섬세하게 표현해 냄으로써, 하기와라 사쿠타로는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郞)와 함께 ‘일본 근대시의 완성자’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게 된다. 관능적이며 근대적인 고독에 대한 시를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로 썼고, 이는 일본 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1923년에 두 번째 시집 『우울한 고양이』를 출판한다. 이 시집에서는 우울함과 무료함, 권태로움을 ‘우울한 고양이 스타일’이라 불리는 독특한 시 형식으로 표현했다. 쇼펜하우어와 니체, 불교의 영향을 받은 염세적 허무 의식과 관능적이며 퇴폐적인 시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1925년에 발간한 『순정 소곡집』은 단가에서 시로 옮길 때의 작품인 ‘애련(愛憐) 시편’과 30대 후반에 발표한 ‘... 향토망경(鄕土望景) 시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자에는 소년 시절의 순수한 감상과 영탄이, 후자에는 도쿄에서 바라본 변해가는 고향의 모습과 비속한 인생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어 있다.

1934년에 출판된 마지막 시집 『얼음 섬』에서는 고향을 상실한 영원한 방랑자로서 당시 사회에 대한 ‘분노와 증오와 적요(寂寥)와 격정’을 담은 ‘절규’를 비분강개의 한문 번역 투의 문어체로 표현했다. 그 밖에 아포리즘을 모은 책 『새로운 욕망』(1922), 시론집 『시의 원리』(1928), 수필집 『일본으로 회귀』(1938), 산문시집 『숙명』(193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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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하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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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uo Sato,さとう はるお,佐藤 春夫

시인이자 소설가, 평론가. 와카야마(和歌山)현 출신. 1910년 게이오의숙대학(慶應義塾大?) 문학부에 입학했다. 1911년 대역사건에 연루된 오이시 세노스케(大石誠之助)를 노래한 시 『우자의 죽음』 (1911)을 시작으로 서정시 『한숨』 (1913)을 발표하는 등, 시재(詩才)에 재능을 발휘했다. 1913년 퇴학 후 메르헨풍의 환상적인 단편소설 『스페인개의 집』,전원생활의 심상풍경을 예리한 신경과 청춘의 불안으로 묘사한 『병든 장미』 (『전원의 우울』 제1고) 등으로 신진작가의 입지를 굳혔다. 이후 처녀시집 『순정시집』,소설 『도시의 우울』, 『여계선기담』,평론·수필집 『따분한
시인이자 소설가, 평론가. 와카야마(和歌山)현 출신. 1910년 게이오의숙대학(慶應義塾大?) 문학부에 입학했다. 1911년 대역사건에 연루된 오이시 세노스케(大石誠之助)를 노래한 시 『우자의 죽음』 (1911)을 시작으로 서정시 『한숨』 (1913)을 발표하는 등, 시재(詩才)에 재능을 발휘했다. 1913년 퇴학 후 메르헨풍의 환상적인 단편소설 『스페인개의 집』,전원생활의 심상풍경을 예리한 신경과 청춘의 불안으로 묘사한 『병든 장미』 (『전원의 우울』 제1고) 등으로 신진작가의 입지를 굳혔다. 이후 처녀시집 『순정시집』,소설 『도시의 우울』, 『여계선기담』,평론·수필집 『따분한 읽을 거리』 등 다채로운 영역에서 활약했다. 1948년 예술원회원, 1960년 문화훈장을 받았고 1964년 5월 자택에서 방송용 자서전 녹음 도중 사망하였다. 20세기 전반 일본의 전통적 ·고전적 서정시의 제1인자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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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고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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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자키 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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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mazaki Toson,しまざき とうそん,島崎 藤村,본명 : 시마자키 하루키

1872년 일본 나가노 현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논어, 효경 등을 배우며 자랐고, 메이지 학원에 다니던 시절에는 셰익스피어, 바이런 등 서양 고전을 탐독하며 문학에 눈을 떴다. 메이지 학원 졸업 후 메이지 여학교 고등과 영어교사로 재직했고, 이듬해 기타무라 도코쿠 등과 함께 문학잡지 『문학계』의 창간 동인으로 참가해 시와 수필을 발표했다. 1897년 첫 시집 『약채집』으로 등단, 『일엽주』, 『여름 풀』, 『낙매집』 등 총 네 권의 시집을 발표하며 메이지 시대 낭만주의 문학의 선두로 평가받았다. 이후 시 창작을 접고 나가노 현 고모로 의숙에서 6년간 교사로 근
1872년 일본 나가노 현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논어, 효경 등을 배우며 자랐고, 메이지 학원에 다니던 시절에는 셰익스피어, 바이런 등 서양 고전을 탐독하며 문학에 눈을 떴다. 메이지 학원 졸업 후 메이지 여학교 고등과 영어교사로 재직했고, 이듬해 기타무라 도코쿠 등과 함께 문학잡지 『문학계』의 창간 동인으로 참가해 시와 수필을 발표했다. 1897년 첫 시집 『약채집』으로 등단, 『일엽주』, 『여름 풀』, 『낙매집』 등 총 네 권의 시집을 발표하며 메이지 시대 낭만주의 문학의 선두로 평가받았다. 이후 시 창작을 접고 나가노 현 고모로 의숙에서 6년간 교사로 근무하다가 1906년 『파계』를 자비 출판했다.

첫 소설인 『파계』는 예상과 달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비로소 일본 문단에도 본격적인 자연주의 소설이 등장했다는 절찬을 받는다. 이어서 『봄』(1908), 『집』(1911) 등의 장편을 잇달아 발표하며, 다야마 가타이와 더불어 일본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선구자적인 입지를 확고히 했다. 1913년 프랑스로 건너갔다가 제1차 세계대전을 만나 1916년에 귀국, 『신생』(1918)과 『봄을 기다리며』(1925)를 발표한다. 말년에는 자신의 아버지를 모델로 한 역사소설 『동트기 전』(1932, 1935)를 발표했으며, 1943년 『동방의 문』을 집필하던 중 뇌출혈로 사망했다. 일본의 근대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놓지 않은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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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 다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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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tsuo Hori,ほり たつお,堀 辰雄

도쿄에서 태어나 1921년 제일고보 이과를 거쳐 1929년 도쿄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전쟁 당시의 불안정한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문학 세계를 고수한 작가다. 당시까지 사소설(私小說)적이었던 일본 소설의 흐름 속에서 호리는 픽션이라는 ‘지어낸 이야기’로 낭만파라는 문학 형식을 확립하려 했다. 1923년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알게 되어 그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아쿠타가와의 자살에서 받은 큰 충격을 대학 졸업 논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론」 및 「성가족(聖家族)」에 담아냈다. 전쟁 말기부터 결핵 증상이 악화해 전후에는 거의 작품 활동을 중단한 채 49세의 나
도쿄에서 태어나 1921년 제일고보 이과를 거쳐 1929년 도쿄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전쟁 당시의 불안정한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문학 세계를 고수한 작가다. 당시까지 사소설(私小說)적이었던 일본 소설의 흐름 속에서 호리는 픽션이라는 ‘지어낸 이야기’로 낭만파라는 문학 형식을 확립하려 했다. 1923년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알게 되어 그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아쿠타가와의 자살에서 받은 큰 충격을 대학 졸업 논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론」 및 「성가족(聖家族)」에 담아냈다. 전쟁 말기부터 결핵 증상이 악화해 전후에는 거의 작품 활동을 중단한 채 4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문학은 서정성이 높아 시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대표작으로는 「성가족(聖家族)」, 『아름다운 마을(美しい村)』, 「바람이 분다(風立ちぬ)」, 「광야(曠野)」 등이 있다. 이 대표작들에는 사랑을 통해 죽음을 넘어선 곳에서 진정한 생을 발견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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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지마 아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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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sushi Nakajima,なかじま あつし,中島 敦

1909년 도쿄 출생. 1920년에 용산중학 한문 교사로 부임한 부친을 따라 경성으로 건너와 용산소학교를 거쳐 경성중학에 입학, 4학년 수료 후 1926년 도쿄제일고등학교에 입학하며 경성을 떠났다. 1933년 도쿄제국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요코하마 고등여학교의 교사를 거쳐 일본 식민지 팔라우 남양청에서 서기로 교과서 편찬 작업을 했다. 1942년 귀국하여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나 지병인 기관지천식으로 33세로 요절했다. 대표작 「산월기」는 전후부터 지금까지 일본 교과서에 늘 실리는 ‘국민교재’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토대로 번뜩이는 지성으로 빚어낸 그
1909년 도쿄 출생. 1920년에 용산중학 한문 교사로 부임한 부친을 따라 경성으로 건너와 용산소학교를 거쳐 경성중학에 입학, 4학년 수료 후 1926년 도쿄제일고등학교에 입학하며 경성을 떠났다. 1933년 도쿄제국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요코하마 고등여학교의 교사를 거쳐 일본 식민지 팔라우 남양청에서 서기로 교과서 편찬 작업을 했다. 1942년 귀국하여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나 지병인 기관지천식으로 33세로 요절했다. 대표작 「산월기」는 전후부터 지금까지 일본 교과서에 늘 실리는 ‘국민교재’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토대로 번뜩이는 지성으로 빚어낸 그의 작품은 일본에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으며, 특히 소년기를 조선에서 보낸 경험에서 나온 「범 사냥」을 비롯한 세 작품은 우리에게는 필독 작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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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모토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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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do Okamoto,おかもと きどう,岡本 綺堂

소설가, 극작가. 도쿄 출생. 영국 공사관에 근무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버지에게서는 한시를, 숙부와 공사관 유학생들로부터는 영어를 배우게 된다. 도쿄일일신문에 입사해 기자로 일하면서 소설 『다카마쓰성』을 발표했다. 1902년 『고가네 범고래 소문의 높은 파도(金??高浪)』가 가부키좌(歌舞伎座)에서 상연되고 이후 『유신전후(維新前後)』(1908), 『슈젠지 이야기(修?寺物語)』(1911) 등이 성공을 거두며 신가부키를 대표하는 극작가가 된다. 1916년, 셜록 홈즈의 영향을 받아 일본 최초의 체포물인 「한시치 체포록(半七捕物帳)」을 집필하기 시작했고 『세계괴담 명작집(世界怪談名作
소설가, 극작가. 도쿄 출생. 영국 공사관에 근무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버지에게서는 한시를, 숙부와 공사관 유학생들로부터는 영어를 배우게 된다. 도쿄일일신문에 입사해 기자로 일하면서 소설 『다카마쓰성』을 발표했다. 1902년 『고가네 범고래 소문의 높은 파도(金??高浪)』가 가부키좌(歌舞伎座)에서 상연되고 이후 『유신전후(維新前後)』(1908), 『슈젠지 이야기(修?寺物語)』(1911) 등이 성공을 거두며 신가부키를 대표하는 극작가가 된다. 1916년, 셜록 홈즈의 영향을 받아 일본 최초의 체포물인 「한시치 체포록(半七捕物帳)」을 집필하기 시작했고 『세계괴담 명작집(世界怪談名作集)』, 『중국괴이 소설집(支那怪奇小?集)』을 편역했다. 후진 양성을 위해 월간지 『무대(舞台)』를 간행하고 계속 희곡을 집필했다. 연극계 최초의 예술원회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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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오카 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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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ku Masaoka,まさおか しき,正岡 子規

하이쿠시인, 수필가. 근대 하이쿠 예술을 집대성한 인물. 시키 혹은 호토토기스라 불리는 두견새는 목에서 피를 토하도록 운다는 중국설화 때문에 폐결핵을 상징하는 새가 됐다. 대학시절 폐결핵이 발병한 이래 줄곧 병상을 멀리 떠나지 못했던 그는 필명을 시키라 짓고 하이쿠 연구와 창작에 몰두했다. 그가 만든 하이쿠 잡지 『호토토기스』는 하이쿠시인을 위한 창작의 장이 됐고 시키와 평생의 벗이었던 소세키의 작품이 처음 발표되기도 했다. 수필집 「병상육척」은 고통스런 일상을 위트 있고 아름다운 문체로 써낸 산문으로 이름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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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다 도라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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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ahiko Terada,てらだ とらひこ,寺田 寅彦

1878년 도쿄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의 아낌없는 지원 아래 어렸을 적부터 과학적 탐구 정신을 키워 나간다. 고등학교 시절에 당시 영어 교수로 있던 나쓰메 소세키를 만나 하이쿠에 흥미를 가지게 됐으며, 물리학 교수 다마루 다쿠로의 가르침을 받고 물리학에 뜻을 둔다. 도쿄 제국 대학 물리학과에 진학하면서 상경한 이후엔 가인(歌人) 마사오카 시키, 다카하마 교시 등과 교류하며 문학적으로 현저한 영향을 받는다. 이때부터 문예지 [호토토기스]에 수필 및 사생문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필 활동을 시작한다. 학부를 졸업하고 조교수를 거친 후 우주 물리학 연구를 위해 국비
1878년 도쿄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의 아낌없는 지원 아래 어렸을 적부터 과학적 탐구 정신을 키워 나간다. 고등학교 시절에 당시 영어 교수로 있던 나쓰메 소세키를 만나 하이쿠에 흥미를 가지게 됐으며, 물리학 교수 다마루 다쿠로의 가르침을 받고 물리학에 뜻을 둔다. 도쿄 제국 대학 물리학과에 진학하면서 상경한 이후엔 가인(歌人) 마사오카 시키, 다카하마 교시 등과 교류하며 문학적으로 현저한 영향을 받는다. 이때부터 문예지 [호토토기스]에 수필 및 사생문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필 활동을 시작한다. 학부를 졸업하고 조교수를 거친 후 우주 물리학 연구를 위해 국비 유학생 자격으로 베를린 대학교에 입학한다. 유럽과 미국을 여행하고 귀국한 다음엔 이학부 교수로 취임한다. 「라우에의 회절 무늬 실험 방법 및 그 설명에 관한 연구」(1917)로 제국 학사원 은사상을 수상하고, 정부 및 군대로부터 각종 조사 활동과 연구를 위촉받는다. 과학 저술로는 『바다의 물리학』(1913), 『지구 물리학』(1915, 1933)이 있으며, 『후유히코슈』(1923), 『만화경』(1929), 『가키노타네』(1933) 등 수필집도 펴냈다. 1935년 전이성 골종양 으로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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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야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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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빛 속으로』가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에 오른 바 있다. 수상식에 참석한 김사량은 조선의 작가로서 민족에 관한 글을 쓰는 데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민족의 현실을 진솔하게 써 나가겠다고 다짐한다.김사량은 일본어로 작품을 발표하면서 일본 문단에 등장했지만, 그의 작품 세계는 『빛 속에』에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민족의 정체성을 고심하며 민족 해방에 대한 관심과 어두운 식민지 현실에 주목하고 있다. 이런 그에게 일본 제국주의는 답답한 것이었고 마침내 중국 연안으로 망명한다. 『노마만리』를 보면 망명 당시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그에게 ‘노마만리
평양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빛 속으로』가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에 오른 바 있다. 수상식에 참석한 김사량은 조선의 작가로서 민족에 관한 글을 쓰는 데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민족의 현실을 진솔하게 써 나가겠다고 다짐한다.김사량은 일본어로 작품을 발표하면서 일본 문단에 등장했지만, 그의 작품 세계는 『빛 속에』에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민족의 정체성을 고심하며 민족 해방에 대한 관심과 어두운 식민지 현실에 주목하고 있다. 이런 그에게 일본 제국주의는 답답한 것이었고 마침내 중국 연안으로 망명한다. 『노마만리』를 보면 망명 당시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그에게 ‘노마만리’는 시시각각으로 조여드는 신변의 위협으로부터 도피하여 창작의 자율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항일 투쟁에 동참하는 길이었다.해방 이후, 조선의용군 본부 선발대로 귀국한 그는 북한에 머무르며 창작 활동을 펼친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종군작가단의 일원으로 전선에 나섰다. 1950년 10월 원주 부근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김사량은 남북한의 문학사에서 그리고 재일 조선인 문학에서 대단히 문제적인 작가다. 재일 조선인 문학에서는 그가 아쿠타가와상 후보 작가에 오르면서 재일 조선인 작가로서 명망을 얻은 만큼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맥락에서 논의되기도 했다. 남한에서 김사량의 문학은 식민지 말기 이중언어의 글쓰기, 또는 친일 문제와 관련해서 논의되었다. 북한에서 김사량의 문학은 1950년대 초반 연안파의 숙청과 함께 그 이름이 사라졌다가 1987년 복권된 것으로 보인다. 북에서 그는 사회주의 건설기에 활약한 양심적 민족주의자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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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5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68쪽 | 254g | 125*188*16mm
ISBN13
9791195992249

책 속으로

나는 같이 놀 친구가 없어 외로울 때면, 등불 아래에 쓰루가 감춘 꽃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힘이 솟았다. 그곳에 달려가 꽃을 찾아 헤매는 동안의 희망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 「니이미 난키치: 꽃을 묻다」 중에서

나는 바보와 거지가 세상에서 가장 싫고 창피한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곧 학교에 가서 쓰게 될 글자가 아무래도 써지지 않는다. 글자를 못 쓰는 건 분명 바보일 거야. 나도 그런 바보였어, 그런 절망적인 기분이 들어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 「미야모토 유리코: 운모편암」 중에서

비가 자주 내렸던 것 같다. 너무 자주 내리면 아이들의 마음에도 축축함이 스며든다. 멍하니 격자문에 뺨을 갖다 댄 채, 빗물에 떠다니는 감꽃을 바라본다. 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항아리 모양의 감꽃 여러 송이가 하염없이 떠다니면, 아이들도 하염없이 그걸 바라본다.
--- 「미야모토 유리코: 비와 아이」 중에서

나는 그만 단념하고 한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결국 내 눈으로 보지 못했다. 설국의 봄에 맨 처음 핀다고 하는 그 목련꽃이 지금 어디선가 산마루에 또렷이 서 있는 모습을 그저 마음속으로만 떠올려보았다. 그 새하얀 꽃은 이제 막 눈이 녹으면서 꽃잎의 물방울처럼 똑똑 떨어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
--- 「호리 다쓰오: 목련꽃」 중에서

도토리를 주우며 기뻐하던 아내는 이제 없다. 무덤 위 흙에는 이끼 꽃이 몇 번이나 피었다. 산에서 도토리가 떨어지면 직박구리 우는 소리에 낙엽이 떨어진다. 올해 2월, 아내가 남겨준 여섯 살 된 아이를 데리고 이 식물원에 놀러와 옛날과 변함없는 도토리를 줍게 했다. 이런 사소한 것까지 유전이라는 게 있는 건지, 아이는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대여섯 개쯤 주울 때마다 숨을 할딱이며 내 곁으로 뛰어와, 내 모자 안에 펼쳐놓은 손수건 위로 던져 넣는다. 주워온 도토리가 점점 늘어나는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뺨을 발그레 물들이며 기뻐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다. 부정할 수 없는 엄마의 그림자가 천진난만한 얼굴 한구석에 얼핏 스치면서, 희미해져 가는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 「데라다 도라히코: 도토리」 중에서

시키는 인간으로서, 또 문학자로서 가장 ‘서투름’이 부족한 사내였다. 오랜 세월 그를 알고 지내온 그 어떤 순간에도 나는 그의 서투름을 보고 웃을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또한 그의 서투름에 반해버린 순간조차 없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거의 10년이 되어가는 오늘, 그가 날 위해 일부러 그려준 한 송이 구름국화 그림 속에서 이 ‘서투름’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결과로 내가 웃고 감탄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로서는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다만 그림이 너무나 쓸쓸하다. 그럴 수만 있다면 시키가 이 ‘서투름’을 좀 더 웅대하게 발휘하여 내 쓸쓸함을 달래주었으면 좋겠다.
--- 「나쓰메 소세키: 시키의 그림」 중에서

강한 기세, 힘센 사상, 큰 감격, 불타오르는 시적 정서, 그런 모든 종류의 책이나 이야기는 생리적으로 불쾌하고 이상한 공허함을 가져왔다. 나의 지친 심신은 조용한 다실에서 들려오는 쇠 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를 즐겼다. 아내와 이웃 아낙네들이 쓸데없는 일상 잡담을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흥취 깊고, 황홀한 시정으로까지 여겨졌다. 그런 평범하고 무미한 일들이 나를 항상 기분 좋은 꿈의 황홀로 이끌 때까지 특별한 멋의 예술적 심경을 느끼게 했다.
--- 「하기와라 사쿠타로: 병상 생활에서 깨달은 발견」 중에서

글을 팔아서 입에 풀칠을 해도 좋다. 하지만 글을 사는 쪽은 장사꾼이다. 일일이 주문하는 대로 떠맡다가는 배겨 낼 수가 없다. 가난 때문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삼가야 할 것은 글을 함부로 많이 쓰는 것이다. 선생은 그러면서 “자네는 아직 젊으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하겠지. 이건 내가 자네 대신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말일세” 하고 말했다. 나는 지금도 그때 선생이 지은 미소를 기억한다. 어두운 처마 끝에서 살랑거리던 파초 잎도 기억한다. 하지만 선생의 훈계에 충실했다고 단언할 자신은 없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소세키 산방의 겨울」 중에서

인간은 누구나 한번은 죽는다는 것은 모두 다 알고 있지만, 그걸 강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어떤 이는 아직 젊은데도 끊임없이 죽음을 의식해, 오늘밤 잠들면 내일 아침 이대로 죽어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밤잠을 못 이루는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죽음을 완전히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자네도 한 번은 죽어, 하고 겁을 줘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 「마사오카 시키: 사후」 중에서

바보같이! …… 보리 낱알 반쯤만 한 벌레 때문에 나는 선량한 소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 그 한 없이 작은 생의 소멸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내 마음을 힘들게 한다. ……

--- 「고이즈미 야구모: 풀종다리」 중에서

출판사 리뷰

수필은 소설과는 달리 흥미진진하거나 드라마틱하지는 않더라도 진솔하게 드러나는 작가의 모습에 다가갈 수 있는 글이다.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소소한 일상에서 겪는 크고 작은 일들에서 뜻밖의 재미를 느낀다. 겹겹의 세월과 함께 쌓인 삶의 경험에서 배움을 얻는다. 작가가 자신의 삶에서 겪고 느낀 것들은 우리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 또한 수필은 주로 문장의 힘으로 독자에게 다가가는 글인 만큼, 작가의 진정한 문장력이 드러나는 장르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일본 근대 작가들의 소설은 많이 소개되었지만 수필은 비교적 덜 알려진 것이 아쉬웠던 참에, 좋은 수필들을 모아 선집으로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좋은 글들을 모은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글을 하나하나 찾아 읽고 선별하여 번역하기까지 참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이름난 문호들부터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까지 수많은 작품을 어디서부터 어떤 기준으로 골라 읽어야 할지, 처음에는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서 선집의 테마를 몇 가지 정하고 거기에 맞춰 작품을 골라 읽는 것부터 시작했다. 좋은 글을 만나면 그 작가의 또 다른 글들을 찾아서 읽었고, 가지치기하듯 작품을 고르는 작업이 이어졌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추억’, ‘인생’, ‘그리움’이라는 세 가지의 테마를 중심으로 총 30편의 작품을 골라 선집을 엮게 되었다. 각 작품 말미에는 작가 소개와 함께, 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있으면 간단하게 덧붙였다.

글을 읽다보면, 작가들의 가슴속에 아련하게 남은 아름다운 기억들,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마치 단편 영화를 보는 것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작가들의 옛 추억과 지나온 삶이 담긴 글들을 읽으면서, 문장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문학적 경험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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