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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철
철 철 2 철 3 철 4 철 5 철 6 철 7 살얼음 한강 연필 공책 솔직한 돼지 퍼즐놀이 고장 난 사람과 의자 흰 집 나의 여름과 당신의 수염 사파의 여인 초록의 폭력 우유를 마시며 2부 밑 밑 알약들의 왈츠 기념일 전날 나를 기포의 방에 나의 아름다운 벽 속에서 나의 겨울 사과 안녕 물 위를 걷는 도마뱀; 빗방울 네가 잊히지 않는 말 동그란 힘 절제술 뇌태교의 기원 3부 키스 키스 사춘기 눈먼 치정 쿠마리의 역사 없는 줄 알았지 접시는 둥글고 저녁은 비리고 테이블 포개진 빈 화분 활과 무사 늑골이 빛나는 발레교습소 날씨 폐허라는 미래 문 없는 저녁 후기 4부 독점 수족관에 돌고래나 흰고래가 있다 그러면 코뿔소의 조용한 날들 1 코뿔소의 조용한 날들 2 수목장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나무밖에 없는 세계 나의 아름다운 장대 손이 없다 독점 목 없는 마네킹 고척스카이돔과 낙관주의자 엄마 썸머 가든 해설 말한다, 듣는다, 들은 것을 다시 말하기로 한다 -선우은실(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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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섯 살에
철조망에 걸려 찢어진 뺨을 가졌다 철을 왜 바다 가까이 두었을까? 눈을 감고 바다를 들으려고 바람을 따라갔다 피가 나는 뺨을 받아왔다 아무도 나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잠을 잤다 할머니 무릎을 베고 지린내가 심장까지 따라왔다 -중략- 갈라지는 물 다시 아무는 물 꿰매지 못한 뺨 철을 바다 가까이 두는 게 더는 이상하지 않았다 --- 「철」 중에서 소녀가 혼자 낳은 아이들은 함대만 한 유람선 밑에서 장딴지의 핏줄이 파래지도록 물장구를 친다 마을과 이어진 골짜기에서 쏟아져 나온 엄청난 늘들 모자를 쓴 마을 전체가 주일마다 수군거린다 “과거는 끝났다 미래밖에 없다” 백사장엔 최후를 팔아서 삶을 연명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떠난 남자의 아이들이 몰려다닌다 --- 「철 5」 중에서 망자들은 더 이상 망가질 게 없어서 천국에서 산다 이미 찢어진 것들은 다시 찢어지지 않는다 길고 긴 아침이 올 것이다 영웅의 눈 코 입은 썩지 않는다 이 세계의 피가 다 빠져나갈 때까지 콘크리트에 박혀 있을 것이다 고단한 몸을 처음 내린 자리에 미래의 폐허를 세워두려고 --- 「철 6」 중에서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품이 큰 잠옷을 입고 강가로 간다 쉽게 찢어지고 쉽게 갈라지고 쉽게 입을 다무는 물속 세상으로 들어간다 -중략- 죽기 직전의 소녀는 강물이 움켜쥔 그것이 자신의 속옷임을 한눈에 알아본다 없지도 있지도 않은 세상이, 밑에 있다 밑은 이토록 낮은 곳에 있어 물 위에서 일렁이는 검은 얼굴이 물 밑에 있다고 쓴다, 흘러가고, 흘러가고, 하나의 그림자가 번져간다 --- 「밑」 중에서 제발 살려만 주세요//제발 잠 좀 자게 해주세요//우리는 국가 없는 사람이 아니에요//아니 국기만 있고 국가 없는 사람이 맞아요//적에게 발이 묶여 본국에서 썩은 나무 취급을 받았어요//우리는 난파된 사람, 아니 묘지 없는 무덤이랍니다 --- 「문 없는 저녁-Angeles City 2」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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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 상황에 처한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온 이소연 시인의 첫 시집『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걷는사람)가 출간되었다. 2014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활발한 작품활동을 해온 이소연 시인은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에서 말하기 방식에 대해 주목한다. 말함과 말할 수 없음 사이에서, “그냥 바라만 봐야 하는 폐허”(「문 없는 저녁 - Angeles City 2」) 에서 더듬거리거나 주저하며 한마디씩 이야기한다. 이 주저함은 시적인 언어, 머뭇거림과 이야기함으로 변주된다.
문보영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시집 속에 등장하는 마을에 대해 이야기한다. “안으로 상처를 키우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이 마을에는 시끄러운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이 마을은 “시끄러운 사람은 들어올 수 없”으니까. 마을은 하나의 공동체이며 공동체가 기진 감싸안음과 배척이 동시에 일어난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쉽게 말하지 못하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다물어지지 않는 입’(「접시는 둥글고 저녁은 비리고」)을 가졌”다. 문보영 시인이 말하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리지 않는 주저함”은 시적인 순간이며 동시에 인간이 가진 찰나적 혼란이다. 「철」연작에서 시인은 유년기부터 겪어 왔던 ‘철’에 대한 상처를 이야기한다. “나는 여섯 살에/철조망에 걸려 찢어진 뺨을 가졌다”(「철」). 처음 얻은 상처 이후 그녀는 ‘철’의 폭력성을 일상에서 느끼고, 자신과 공동체의 상처를 내면화하며 점점 익숙해져 간다. 상처를 얻었을 때 “아무도 나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기 때문에 상처는 봉합된 동시에 더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다. 상처가 흉터로 남듯 폭력성은 기억의 밑바닥에 가라앉았을뿐 사라지지 않았다. 이후 시인은 부당함과 폭력성에 침묵하면서 ‘철’의 변주곡에 의해 끊임없이 고통받고 머뭇거리고 신음하고 그것을 노래한다. 문학평론가 선우은실은 두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오늘”과 “말한다”는 시제가 현재성을 띤다는 것, 둘째, “‘나’는 죄로 가득한 세계에 대한 인식을 여전히 지니면서 이제 그것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말’”함이다. 이소연의 시는 지금 이 지옥에서 말함으로써 세계를 기록하고 다시 살고자 하는 의지를 획득한다. 시집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에는 수없이 상처받는 순간들이 기록되어 있다. 동시에 상처받으며 우는 소녀들, 천천히 죽어가는 소녀들의 목소리가 연주된다. 이 목소리는 특정 지역의 목소리가 아니라 더 넓은 세계 모든 여성의 목소리로 확대되어 간다. 국가를 넘어선 여성/약자들의 목소리는 거대한 폭력 앞에서 절규한다. “제발 살려만 주세요//제발 잠 좀 자게 해주세요//우리는 국가 없는 사람이 아니에요//아니 국기만 있고 국가 없는 사람이 맞아요//적에게 발이 묶여 본국에서 썩은 나무 취급을 받았어요//우리는 난파된 사람, 아니 묘지 없는 무덤이랍니다”(「문 없는 저녁-Angeles City 2」 부분). 이 목소리는 최초에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았던 순간을 되새기는 시간이며, 그 이후 너무나 당연하게 인식된 철의 세계로부터 도망하고자 하는 의지의 산물이다. 시인의 말 혼자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혼자를 잊지 않는 것 네가 나를 빠져나가도 나는 선명하고 온전하다. 그러나 증표처럼 내가 있을게. 2020년 2월 이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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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어떤 마을을 꿈꾸게 한다. 이 마을은 세상의 아주 낮은 곳에 있으며 아무나 출입할 수 없다. 마을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가까스로 살아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한때 폐허였다. 마을은 조용하고 작으며 길이 없으므로 아무 데로 걸을 수 있다. 시끄러운 사람은 들어올 수 없다. 사람들은 다시 살아보고 싶어서 이곳으로 흘러들어온다. 그러나 이 마을에서도 상처는 발생한다.
마을 사람들은 상처에 관한 긴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만으로 밤을 새우기도 한다. 아무도 지루해하지 않아서 마을은 유지된다. 이 시집을 읽으며 나는 방심할 때의 내 표정을 본 사람을 떠올렸다. 나만 아는 내 모습을 들켰을 때의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한 번 들키자 두 번 들키는 건 쉬웠다. 그리고 자꾸자꾸 들키고 싶었다. 들킨 김에 시인에게 다 털어놓고 싶었다. 이 상상 속 마을은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다. 다 털어놓고 싶은 사람들, 안으로 상처를 키우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이 마을에는 시끄러운 사람이 없다. 시끄러운 사람은 들어올 수 없다. 마을 사람들은 ‘쉽게 말하지 못하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다물어지지 않는 입’(「접시는 둥글고 저녁은 비리고」)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리지 않는 주저함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냥 바라만 봐야 하는 폐허’(「문 없는 저녁 - Angeles City 2」) 앞에서 ‘이 세계의 피가 다 빠져나갈 때까지’ (「철 6」) 손을 잡는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꽤 잘 알지만 그만큼 모르며 그래서 서로를 아름답게 방목한다. 그들은 친구이다. - 문보영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