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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하양
안현미
걷는사람 2024.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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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그것밖에 없어도 그러하듯이

탁구
귀래
사과술
주천강 옆 겨울
인생국숫집
테라 인코그니타
날아다니는 꽃
생계
초생활
노동의 미래
거돈사지
탐매
울프

2부 괴로워도 괴로웠다

변신 마스크
안개와 당국
비상시
마스크 드레스
벚꽃 대국
흰, 국화 옆에서
유령들
마스크 유령들
여의사
글쎄가 물음처럼 쌓여 가는 여름밤이었다
취향 없음
뛰어다니는 비
장마

3부 매달려 있다, 삶에

가계도
복잡한 피
가정식 눈보라
눈물 경고등
빈집
파란 혼
고척동 고모
고척동 고모의 풍선
누누더기 시
빌라에 산다
엄헬레나

4부 이생이 나에게 탁구공을 던졌다

천남성
울릉도
횡성
빨간 실

구룡포
장미
사월
비두리 옛집
탁구장
(나의)/탁구론

해설

사랑과 반복, 반복과 사랑
- 김태선(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An Hyeon-Mi

1972년 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나 서울과기대를 졸업했다. 2001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곰곰』 외 4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불편’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시집으로 『곰곰』, 『이별의 재구성』,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가 있다. 2010년 제28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Born in Taebaek, An Hyeon-Mi made her literary debut in 2001, when her poems were published in Munhakdongne. Her books of poems include Gomgom, Reconstructing Sep
1972년 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나 서울과기대를 졸업했다. 2001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곰곰』 외 4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불편’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시집으로 『곰곰』, 『이별의 재구성』,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가 있다. 2010년 제28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Born in Taebaek, An Hyeon-Mi made her literary debut in 2001, when her poems were published in Munhakdongne. Her books of poems include Gomgom, Reconstructing Separation, and Love Will Be Repaired Someday. She is the recipient of the 2010 SinDong-yup Prize for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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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8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08쪽 | 138g | 125*200*8mm
ISBN13
9791193412497

책 속으로

주고받는다 받기 위해 준다 주기 위해 받는다 그것밖에 없다 그것밖에 없어서 즐겁다 사랑하고 사랑받는다 사랑받기 위해 사랑한다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는다 헛소리 같지만 그것밖에 없다 튀어 오르고 튕겨 나간 건 끝까지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공 같은 것
---「탁구」중에서

한때 시간만이 신이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어떻게든 흘러가리라 이 침묵도 종내에는 나와 함께 시간 밖으로 날아가리란 믿음의 신도로 어떤 밤엔 술에 취해 잠들고 어떤 밤엔 술을 담그다 잠들었다 어떻게든 흘러가리라 그것이 딱 내 수준이었지만 내 수준을 부끄러워한 적은 없고 부끄러워하며 죽지도 않을 계획이다 시간은 신에게로 날아간다 더 이상 젊지 않은 신에게로
---「사과술」중에서

미래?

죽음을 갈아 넣는 세계와 헛된 죽음의 죽음을 멈추지 않는 이곳에 미래가 있습니까
---「노동의 미래」중에서

혼자 이불 쓰고라도 욕도 내뱉으라고 당신은 지금 감기 걸린 여자가 아니라 탈진한 여자라고 슬픈 여자가 아니라 아픈 여자라고 100평짜리 폐를 가졌으면서도 모기만큼 숨을 쉬니 그렇다고 그러다 죽는다고 숨통을 틔우라고 그랬다 숨을 쉬지 않고도 살 수 있다면, 잘못 태어난 게 아니라 잘못 꿈꾼 거라면, 좋겠다고 모기만 한 소리로 그랬다
---「여의사」중에서

달을 찍고 싶었으나 귤을 찍는다

인생이 대개 그와 같다.

호불호를 떠나야 한다

여자도 남자도 극복해야 한다

낯설고 두려운 세계로 초대된 우리들

내 불행은 내가 알아서 할 것

대게는 대게로

고양이는 고양이로

나는 나로 죽을 것이다

할머니라고 아홉 번이나 불렸고

삼만 살처럼 피곤해도

소만(小滿)에는 립스틱을 사자

동문하고 서답하자

내 물음과 내 울음은 내가 알아서 할 것
---「뛰어다니는 비」중에서

아버지는 술을 물처럼 마시고
어머니는 물을 술처럼 마셨다
---「가계도」 전문

물 쓰듯이 눈물을 과소비한 죄
깊이 있게 다정하지도 차갑지도 못한 죄
무해하지도 유해하지도 못했던 죄
물 쓰듯 눈물을 쓰면서도 끝내, 용서받지 못한 죄

[ 과출력 9단계 경보 ]
숨 쉬는 것처럼 눈물을 쓰고 있습니다

모른다고 하면 될 일이다
버러지처럼 살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불행도 공공재야?
울음도 물음도 되지 못한
출처가 불분명한 눈물이 있다
---「눈물 경고등」중에서

그녀는 고통 속에서 살았다 열여섯부터 예순아홉까지 (여성) 노동자 아니면 (여성) 해고 노동자로 살아온 그녀에게 고통은 공기와도 같았다 고통과 함께 밥 먹고 고통과 함께 잠들고 고통과 함께 출근했다 한 명의 남편과 네 명의 자식들마저 그녀를 떠났을 때도 고통만은 그녀의 곁을 지켰다 사람들은 고통이 그녀를 병들게 했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고통을 파먹으며 여태껏 살아남았다고 했다 한번 물어봐요 일생 억척스럽게 살아남느라 고통스러웠는데 고통이라면 지긋지긋하지 않아요? 열여섯부터 예순아홉까지 여성 노동자 아니면 여성 해고 노동자로 살아온 그녀는 말했다 일생 함께 울어 준 것도 웃어 준 것도 고통인데 이제는 피붙이 같다고 했다 언젠가 그날이 오면 (여성)은 두고 가도 고통만은 함께 가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고척동 고모」 전문

쉼표처럼 감자꽃 옆에서 산다 기차표 옆에서 운동화처럼 산다 착각하면서 산다 올챙이인지 개구리인지 헷갈리며 산다 술은 물이고 시는 불이라고 주장하면서 산다 물불 안 가리고 자신 있게 살진 못했으나 자신 있게 죽을 자신은 있다고 주장하며 산다 법 없이 산다 겁 없이 산다
---「빌라에 산다」중에서

죽은 새가 눈물을 물고 동쪽 바다로 날아가는 꿈을 꿨다

울창한 구릉 속에서 흘러나온 암흑이 분지를 돌아 나온 바람과 몸을 섞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살아온 시간과 살아갈 시간이 사무치고 있었다

더 이상 인간 가지고는 안 된다고 인간을 벗어 놓고 사랑마저 벗어 놓고 섬이 되고 있었다

폭풍이 오고 있었다 죽은 새가 미래와 하양을 물고 돌아오고 있었다

---「울릉도」 전문

출판사 리뷰

첫 시집에서부터 줄곧 그를 따라다닌 가난과 운명의 실타래에 매여 있지만 그는 그것을 “부끄러워한 적은 없고 부끄러워하며 죽지도 않을 계획이다”(「사과술」).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그는 한 항아리의 사과술을 담그며 술에 취해 잠들 것이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거짓말을 타전하다」, 『곰곰』)던 인생을 살았으므로, 그는 누구에게 도움 받으며 살 수 없는 존재였기에 “낯설고 두려운 세계로 초대된 우리들//내 불행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라 당당하게 말한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목소리이며 동시에 스스로를 타이르는 자기 암시이다. 시인이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고난은 자신에게 도래할 것이라 생각했고, 시인이기에 그것은 모두 견딤과 극복과 승화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여자도 남자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남자도 여자도 아닌 시인으로 “삼만 살처럼 피곤”한 인생을 살며 “동문하고 서답하자//내 물음과 내 울음은 내가 알아서 할 것”(「뛰어다니는 비」)이라고 매 순간 중얼거린다.

“삶을 이해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불가해하듯”(「날아다니는 꽃」) ‘구직도 구애도 구원도 없는’ 밤을 견디며, 타자들의 죽음을 목도하며 그는 이것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질문한다. “매일 밤 삶의 비애를 견디려 민생국숫집에 나와 혼자 술을” 마시는 한 시인이 있던 그 자리에서 그는 술을 마신다. 지금은 사경을 헤매고 있는 그 시인의 “외상값을 대신 갚으면 사경을 헤매고 있는 시인이 벌떡 일어”날까(「인생국숫집」) 하는 염원의 마음으로 외상값을 대신 갚는다. 지금 신이 지구를 떠나고 있으므로… 신이 사라진 시대, 신이 갚아 줄 수 없는 외상값을 시인이 대신 갚아 준다.

“배고픈 신이//고달픈 신이//과로사한 신이”, “신발도 신지 못한 신이//빨간 실로 친친 엉켜 있는 신이//마이너스 통장도 없는 신이//이름도 없이 사망하는 신이”(「빨간 실」) 여기 있을 뿐이다. 시인은 죽어 가는 인간 하나하나가 곧 신이며 신성성을 지닌 존재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불행한 운명을 살다 간 사람도 “가만히 들여다보면//누구나 환한 구석이 있기 마련”(「흰, 국화 옆에서」)이라고 말하며 그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끊임없이 탐구한다. 인간에 대해, 엄마에 대해, 고척동 고모와 숱한 ‘그녀들’에 대해. “어디로도 갈 수 있으면서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는 방범창 안 여자가//대추들처럼 매달려 있다”(「대추」)는 증언은 스스로 아름다웠던 존재들에 대한 찬사이며, 이때 ‘아름다운 존재’란 무엇인가를 건설하고 개발하며 미래의 시간을 서둘러 당겨쓰는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이다.

시인이 오랜만에 찾아간 고향 ‘비두리 옛집’은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채 “자신으로 죽고 있었다”. 이는 존재의 소멸인 동시에 이미지 부활이다. 시와 인생에 있어 뒤로 물러서지 않고 그 자신으로 살아내는 것, 그렇게 부끄럽지 않게 죽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해탈지경이요 하양의 세계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더 이상)//새도 노래하지 않고/꽃도 피어나지 않아도//(끝끝내)//돌아와 라켓을 잡듯/사랑을 붙잡겠다고”(「(나의)/탁구론」).

시인의 말

이곳에 살기 위하여 탁구를 칩니다. 주고, 받고, 받고, 주고, 단순하고 정직한 게 마음에 듭니다. 승부를 가르면 대부분 지지만 가끔 이기는 때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탁구공도 지구도 둥글고 둥근 것들은 예상 밖이고 예상 밖은 가끔 몹시 아름다운 때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던 시절마저도 끝장나 버린 이곳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아니 정확하게 미워하기 위해 시를 쓰고 탁구를 칩니다.

2024년 여름
안현미

추천평

‘액팅 이즈 리액팅’이라는 말이 있다. 탁구가 딱 그렇다. 탁구는 상대가 보낸 공에 대한 반응이다. 삶이 딱 그렇다. 그의 삶이 이미 탁구였다. 그 상대는 무자비했다. 서브권을 독점한 것도 모자라 고강도의 회전을 공에 걸어 보냈다. 불행이 삶을 데려왔다. “과부는 아니었지만 과부 같았던” 시절이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던 시절”로 대물림됐다. 가난, 파경, 실직, 실연. 혁명은 실패했고 노동은 미래가 없고 죽음은 연쇄되고 공정과 정의는 허상이었다. 스카이 서브처럼 강력하다. 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헷갈린다. 이토록 편파적인 공을 시인은 계속 받아 왔다. 불행을 면할 수는 없지만 헛된 불행은 면할 수 있다고? 불행을 환대할 수는 있다고? 물음과 울음이 뒤섞였다. 어떻게든 흘러가리라, 살아지리라, 시간만이 신이라는 생각이었다. 이판사판, 동문서답, 시대착오를 즐기며, 시라는 변신 마스크를 쓰고 리액팅했다. 몸이 나이보다 빨리 살았다. 이제 생존을 위해 반려 탁구를 친다. ‘순간’과 ‘하양’을 본다. 하양은 빛의 모든 파장이 반사하여 나타나는 색이 없는 색, 모든 색이 다녀간 ‘순간’ 이후의 색이다. 사람이 다녀갔고, 시절이 지나갔다. 공이 라켓에 닿는 때처럼 불행도 사랑도 순간이다. 하지만 그러한 ‘순간’에 극락이 있음을 알기에, 인간도 사랑도 벗고 섬이 되는 몽(夢)에서 돌아와 시를 쓰고 탁구를 친다. 승부를 벗은 이 랠리 속에서 들숨과 날숨, 구원 없는 불행과 부조리, 삶과 죽음이 뒤섞인 검정이 돌아오지 않는 색들을 기다리는 하양, 불행이라는 색마저 그리워하는 하양과 색즉시공으로 어울린다. “무자비가 무(無)를 버린다”는 아픈 유희의 극치를 쓴다. 까마귀보다 검은 밤이다. 불행을 전가하지 않는다. “내 불행은 내가 알아서” 한다. 중력과 권력과 AI와 고독을 반사하며 탁구공이, 시가 미래로 날아간다. 죽음을 하얗게 얻어 간다. 해탈지경이다. - 박장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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