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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조 해 진 소설의 시작 | 작가산문 외롭고 낮고 쓸쓸한 그와, 나의 이야기- 조해진·김필남 | 대담 박 준 유서와 유언 | 작가산문 무한한 타자의 잔상 - 박준·박형준 | 대담 김 희 선 모든 살아있는 것들로부터 | 작가산문 끝에서 시작하는 끝나지 않는 이야기들 - 김희선·양순주 | 대담 박 소 란 경에게 | 작가산문 울음이라는 교신법 - 박소란·손남훈 | 대담 손 보 미 시력 | 작가산문 오해로 열리는 삶의 다른 결들 - 손보미·최성희 | 대담 유 계 영 점과 백 | 작가산문 아직 태어나지 않은 말 - 유계영·박형준 | 대담 김 금 희 감만동戡蠻洞 | 작가산문 보통의 나날, 사라진 세계, 어떤 마음들에 관하여 - 김금희·김필남 | 대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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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는 마흔이 넘었고 청춘 시절보다 조금은 느슨해졌습니다. 나태일지도 모르고 유연성일지도 모르는 이 느슨함이 저는 좋습니다. 저 스스로를 미워하면서 고유한 존재로 승격하는 식의 자의식에는 이제 더 이상 지배받고 싶지 않아요. 온전히 듣고 공감하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타자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 p.42
시인은 쓰는 사람이기 전에 보는 사람이니까 제 눈앞에 있는 것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진부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시를 쓰는 내내 '삶'이라는 손목을 놓지 않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세상 무서운 줄 알고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마음에 안 들어도 어쩌면 이렇게 마음에 안 들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를 자주 탓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한 후회와 자기합리화와 도피 끝에 한 편의 새로운 시를 겨우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p.72 글쓰기의 윤리에 대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쓴다’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대상이 개인이든 아니면 사회, 세상, 혹은 그 무엇이든 간에, 불가해한 한 존재-그리하여 우리가 알 수 없는 수천수만의 내면과 외면을 지니는 입체적이고 살아있는 존재-에 대하여 쉽게 속단하거나 재단한 뒤 마치 모두 이해했다는 듯 평면적이고 죽은 듯한 존재로 그리는 일만은 결코 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것은 대상에 대한 ‘이해’도 ‘공감’도 아닌, 값싼 연민이나 동정에 불과하다고 감히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p.107 어쩌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야기하곤 했지만, 저는 무엇보다 저 자신을 위해 시 쓰는 사람일 뿐입니다. 저 자신을 들여다보고 또 견디기 위해서. 삶의 고통이나 슬픔을 짊어진 누군가를 연민하고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 스스로가 아파 울 뿐인 것입니다. --- p.149 저의 경우는 습작 시절에 ‘너처럼 문장을 쓰면’ 절대 직업 소설가가 될 수 없으리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기 때문에 고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물론 「담요」를 수정할 때에도 최대한으로 번역투 문장을 고치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제가 깨달은 것은, 제 문장 쓰는 스타일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으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어쩌면 문장이 번역투라는 것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인지도 모르죠. 단순히 문장의 문제가 아니라 제가 소설 속의 인물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그것을 그리는 방식의 결과 말입니다. 제가 만약 인물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쓰는 방식을 달리한다면, 문장도 자연스럽게 바뀔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p.184 시에서 어떤 물음에 대답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직조한 시적 세계 안으로 대상을 끌어와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시적 질문들은 질문 그대로 두어야 질기게 살아남아 여러 가지 착각으로 변모합니다. 어떤 이에게 읽히느냐, 어떤 계절에 읽히느냐에 따라 다른 착각으로 파생되기도 하고요. 여기까지 말하고 보니 제가 마치 답답하고 지루한 것이라면 조금도 참지 못하는 반골처럼 비춰질 것 같습니다. 현실의 제가 소심하고 고분고분하기 때문에, 시적 태도가 이러할 뿐입니다. --- p.221 사랑과 연애에 대해서 사실 그렇게 잘 쓰는 작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러한 일을 한 인간의 성장을 그리는데 주로 사용하고 그러자면 일단은 둘이 사랑했지만 결국 헤어져야 하고, 손을 놓고 나온 뒤에 하게 되는 깨달음과 발걸음에 더 관심이 많아요. 만약 제 작품에서 그러한 소재가 톤을 달리하고 있다면 아마 다루어야 하는 현실의 문제가 시간이 흐를수록 달라지기 때문이에요. 저는 개인의 감수성과 이 공동체의 것이 너무 밀접해서 문학적으로 다룰 때 그 영향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 p.2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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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단에서 주목받는 젊은 작가 7명을 만나다
타자들에 대한 시선부터 사라지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까지 타자들에 대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 작가 조해진이 이 책의 문을 연다. 타자들의 삶을 쓴다는 것은 아프고 고난한 일이 분명함에도 우리는 그가 쉬지 않고 쓰고 또 쓸 것임을 대담과 산문을 통해 읽을 수 있다. 시를 쓴다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사유하고 있는 박준 시인, 이야기꾼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김희선 작가와의 대담, 동시대의 시적 가치와 존재의 이유를 ‘울음으로 교신’ 하는 박소란 시인의 언어들, 특이성 속에서 보편성을 획득하는 과정으로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우리에게 들려지기 바란다는 손보미 작가의 말, 진솔하면서도 섬세한 유계영 시인의 말과 문장은 동시대의 시적 언어와 실천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말’들의 가능성을 정초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마지막 작가 김금희를 통해 우리는 사라지고 있는 것들, 그러나 더 이상 사라지지 말아야할 마음들이 무엇인지를 상기한다. 여기, 7명 작가들의 창작 의지와 그들 작품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불가능한 대화들』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보는 것에 익숙해져, 읽고 쓰는 행위가 그 힘을 상실하고 있다는 말은 2000년 이후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는 비명 같은 말이다. 하지만 『오늘의 문예비평』은 읽고 쓰는 힘이 여전히 강력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문학의 몰락과 비평의 종언이라는 온갖 풍문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또 외로이 걷고 있는, 여기 대담을 이끈 7명의 작가들을 통해서 그 힘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문학을 둘러싼 수많은 소문들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읽고 쓰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는 그 사실을 말이다. 언제나 그래왔듯 이 젊은 작가들은 흔들리지 않고 쓰고 또 쓸 것이다. 자신들의 선배 작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고 그들을 보며 여전히 읽고 쓰는 힘을 믿는 후배들을 위해서 그들의 사유와 읽기와 쓰기는 멈추지 않을 것임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오늘의 문예비평』의 ‘불가능한 대화’도 끝나지 않고 지속될 것이다. - 머리말 「읽고 쓰는 힘」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