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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은 살아 있다|기획의 말|
지금은 여행 중|강윤화| 영희의 조건|김경은| 어느 왼발잡이 토끼의 무덤|김남일| 그건 아니야, 오빠|김도언| 태일돌멩|김종광| 지르 자자! 찌찌!|김하경| 게으름뱅이 형|손홍규| 은지들|윤이형| 화이바|윤정모| 전태일이 밥 먹여주냐|이시백| 비명|이재웅| 어떤 순간|정도상| 서울, 기차|조해진| 배|최용탁| ……그 뒤,|한상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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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사람이 바꾼다. 전태일 열사가 참혹했던 노동자들의 삶을 바꾸고, 사람을 나사못 동강이쯤으로 여기던 일터를 바꾸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으로 바꾸었듯이 지금도 수많은 전태일들이 바위 같은 세상과 물 같은 세월과 싸우고 있다.
전태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그가 불살라 얻은 권리 위에서 잠든 세상은 누구의 것인가. 그가 바꾸어놓은 세상이 거저 찾아온 것이 아니며, 그가 세상에 남긴 것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듯이 우리는 오늘도 싸워야 한다. 싸우지 않고 얻는 것은 구걸이며 모독일 뿐이다. 권리는 구걸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얻는 것이며, 분노는 싸우는 이들의 힘이다. 전태일이 스스로를 불살라 얻은 세상에서 글 쓰는 이들이 할 일은 무엇인가. 또 다른 전태일들의 외침을 받아 적는다. 더 이상 전태일 같은 사람이 없는 세상. 그렇게 까맣게 잊혀서 그를 피 맺힌 가슴으로 불러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꾼다. 까만 씨앗처럼 어두운 지층 속에서 꿈꾸는 세상의 개화를……. 그 꿈이 있는 한 전태일은 도처에 살아 있다. ---여러 작가들을 대신하여 이시백 우리는 물론 이 무덤의 소유권은 끝내 인수하지 못했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도 마지막 남은 이 0.7평 공간은 마지막까지 자기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며 싸운 이 토끼의 ‘소유’라는 걸 인정해주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이 토끼 무덤 주변을 빙 둘러 놀랄 만한 엔터모뉴멘트, 즉 오락기념물 지역으로 개발할 예정입니다. 보라, 여기 위대한 토끼가 잠들다. 날로 물질문명에 찌들어가는 현생인류의 영혼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목숨까지 바쳐가며 싸운 왼발잡이 토끼, 그가 있어 우리는 행복한 공생의 추억을 지닐 수 있게 되었노라. 만국의 토끼여, 단결하라! 단결하여 추억하라! 사실 실컷 추억하라고 하죠, 뭐. 추억하는 데 뭐 우리 돈이 듭니까. 걔네들 돈이 드는 거지, 큭! 안습, 큭! 아, 고맙습니다. 자꾸 고맙습니다. 토끼만이 아니죠. 눈앞에 벌써 전 세계 아이들이 부모 손을 끌고 달려오는 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엄마, 우리도 그 토끼 보러 가요. 슬픈 토끼, 슬픈 종족, 슬픈 추억!---김남일 「어느 왼발잡이 토끼의 무덤」 중에서 설립자 겸 초대 이사장은 칠순 나이가 되었으며 장성한 자식들은 교장 자리와 이사장 자리를 요구하고 있다. 전교조 출신 교사들은 10년이 지나자 정말이지 대학 교수처럼 되어버렸다. 불성실한 대학 교수처럼! 혈기 방자하며 헌신적이던 이십대 청년 교사들은 불혹도 못되어 벌써 늙은 ‘꼰대’가 돼버렸다. 설립자가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던 행정실 사람들도 비리에 익숙해지고 말았다. 가난하거나 불우하지도 않은데 입학하는 학생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얘기를 해야 독자들은 즐거워할 테다. 서로 싸우고 배신하고 뒤통수 치고 음모를 꾸미고 아옹다옹하고 매수하고 삼각관계 이상의 불륜 로맨스가 있고……. 다 있다. 걱정 마시고 기대하시라. 본격적인 이야기는 설립자의 큰아들이 2대 이사장에 오르면서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바꿔나가는 소란으로부터 시작된다.---김종광 「태일돌멩」 중에서 형은 정말 대단한 게으름뱅이예요. 말도 하기 싫어하거든요. 원하는 게 있으면 손가락을 까딱대지요. 이젠 하도 익숙해서 형이 뭘 원하는지 손짓만 보고도 알아요. 원래 말은 했어요. 작년 이맘때 형이 병원에서 집으로 실려 왔던 무렵에는요. 나는 형을 좀 혼내고 싶었어요. 엄마 말을 듣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니 이 꼴이 아니냐구요. 형한테 물었어요. 선생님도 자주 그러시잖아요. 커서 뭐가 될 거냐고. 나도 그렇게 물었죠. 형은 물고기처럼 웃었어요. 누운 꼴도 꼭 파닥대는 물고기 같았으니까요. 소리 없이 입을 뻐끔대더니 한다는 말이 글쎄 노동자라는 거예요. 기가 막혔어요. 뭐가 됐느냐고 물은 게 아니었는데. 선생님도 노동자가 뭔지 아시죠. 나는 노동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도 노동자라구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선생님은 아니잖아요. 나도 알아요. 노동자는 더러워요. 늘 땀 냄새가 나요. 역겨운 냄새가 나요. 집에 오면 빈둥대요. 돈돈 못 벌구요. 싸움이나 하다 병원에 가구요. 선생님도 그러세요? 아니잖아요. 선생님도 노동자 맞다구요? 그럼 난 선생님은 안 될래요. 사장님이 될 거예요. 나는 좋은 사장님이 될 수 있어요. 형 같은 게으름뱅이를 일 잘하는 일꾼으로 만들 수 있어요. 선생님도 내가 좋은 반장이라고 하셨잖아요. 나 때문에 우리 반이 부지런한 반이 되었다구요.---손홍규 「게으름뱅이 형」 중에서 일을 못한 지는 6개월이 지났다. 심지어 식당 주방에서 설거지를 할 때도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통증 때문에 일주일 이상을 버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다섯 명의 동생들이 부지런히 커가고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패도 롱은 쥘 수 없다. 다시 농사를 지을 만한 몸이 아니었고 동생들의 신분 상승을 보장해줄 돈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동생들에게 가장이 아니라 짐이 될 터였다. 조명이 꺼진다. 이제, 무대를 내려갈 시간이다. 롱은 의자에서 일어나 티켓을 끊고 서울이라는 기차에 오른다. 1등칸과 2등칸, 식당칸과 화장실을 모두 지나간다. 기차의 끝과 끝을 모두 돌며 샅샅이 살펴봤지만 롱의 티켓에 찍힌 좌석은 없다. 롱은 검표원의 눈을 피해 칸과 칸 사이의 통로 구석에 기대선다. 기차 창문 밖으로 서울이, 롱의 꿈이 스쳐간다. 언제나 필요 이상의 고독을 배우게 했던 서울에서의 삶 자체가 롱에겐 환부 없는 통증이었다. 이 기차가 어디로 가는지, 롱은 모른다. ---조해진 「서울, 기차」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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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개의 모양으로
분열되는, 되살아나는, 활보하는 전태일이 있다 열다섯의 소설가가 ‘지금-여기’에서 발굴한 열다섯의 전태일 이 책은 15명의 소설가들이 노동운동의 아이콘 ‘전태일’을 키워드로 쓴 15편의 짧은 소설집이다. 작가들은 자유분방한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40여 년 전에 자기 몸을 불사른 전태일에 현재적 의미를 부여했다. 전태일이라는 상징을 과거의 역사나 동상 안에 가두지 않고 지금, 여기서 우리와 함께 삶의 이야기를 써나가는 서사로 살려냈다. 전태일이라는 다소 무거운 공통의 키워드를 가지고 있지만, 형식도 소재도 다양하다. 한국문학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중견 작가들과 문학적 모험을 감행하고 있는 참신한 신인 작가들은 각자의 문학적 개성을 잃지 않고 활달한 상상력을 발휘했다. 전태일이라는 이름은 15명의 작가들을 통과하면서 청년으로 이주노동자로 분화되고, 우리 시대의 문제적 공간 속에서 되살아나기도 하며, 수많은 군중들로 활보하기도 한다. 이 책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짧은 소설’이라는 점이다. 『어느 왼발잡이 토끼의 무덤』에 실린 짧은 소설들은 낯익은 것들에 ‘타격’을 가하는 것들이다. 청탁 시스템과 원고지 분량 안에 갇혀버린 상상력을 풀어놓아 정형화된 한국문학에 ‘타격’을 가하고, 잡지라는 한정된 지면을 떠나 자유롭게 유랑하는 문학의 가능성을 열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15편의 소설들은 과감한 생략이나 집중도 높은 서사, 정갈하지만 더욱 입말에 가까운 문장들,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의 미학으로 짧지만 두 배의 즐거움, 긴 여운을 남기며 한국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이 책은 15명의 소설가들이 노동운동의 아이콘 ‘전태일’을 키워드로 쓴 15편의 짧은 소설집이다. 작가들은 자유분방한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40여 년 전에 자기 몸을 불사른 전태일에 현재적 의미를 부여했다. 전태일이라는 상징을 과거의 역사나 동상 안에 가두지 않고 지금, 여기서 우리와 함께 삶의 이야기를 써나가는 서사로 살려냈다. ‘그때’의 거리와 ‘지금-여기’의 거리는 묘하게 닮았다. 그렇게 삶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져왔다. 열다섯의 소설가가 ‘지금-여기’에서 발굴한 열다섯의 전태일 15개의 소설들은 전태일이라는 다소 무거운 공통의 키워드를 가지고 있지만, 형식도 소재도 다양하다. 한국문학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중견 작가들과 문학적 모험을 감행하고 있는 참신한 신인 작가들은 각자의 문학적 개성을 잃지 않고 활달한 상상력을 발휘했다. 전태일이라는 이름은 이 15명의 작가들을 통과하면서 청년으로 이주노동자로 분화되고, 우리 시대의 문제적 공간 속에서 되살아나기도 하며, 수많은 군중들로 활보하기도 한다. 강윤화, 김남일, 김경은, 김남일, 김도언, 김종광, 김하경, 손홍규, 윤이형, 윤정모, 이시백, 이재웅, 정도상, 조해진, 최용탁, 한상준. 이상 15명의 작가는 ‘우리 시대의 전태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리고 이들은 ‘전태일이 도처에 살아 있다’는 것을 발견해낸다. 전태일이 스스로를 불살라 얻은 세상에서 글 쓰는 이들이 할 일은 무엇인가. 또 다른 전태일들의 외침을 받아 적는다. 더 이상 전태일 같은 사람이 없는 세상. 그렇게 까맣게 잊혀서 그를 피 맺힌 가슴으로 불러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꾼다. 까만 씨앗처럼 어두운 지층 속에서 꿈꾸는 세상의 개화를……. 그 꿈이 있는 한 전태일은 도처에 살아 있다. ―이시백, 「기획의 말」에서 시대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눈은 현실의 정확한 지점을 가르면서도 삶의 이면들을 섬뜩하게 드러낼 만큼 입체적이다. 여행 자금을 만들기 위해 친구의 자취방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청춘의 단면이나, 공장 노동자들을 집단 해고한 사장 오빠에게 여동생이 진심 어린 충고를 담은 한 통의 편지, 말문이 트이지 않던 네 살 아이가 촛불집회에서 ‘지르 자자! 찌찌’ 하고 외치는 에피소드, 철거 용역이 헤어졌던 아버지를 철거 현장에서 만나는 순간, 한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추방당하기까지의 이야기 등 소설은 짧고 간명하다. 그리고 오래도록 여운이 지속된다. 이처럼 각각의 이야기들은 전태일과 이 시대를 동시에 가르며 촌철살인의 미학을 낳는다. 짧은 소설, 한국문학의 새로운 가능성 이 책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짧은 소설’이라는 점이다. 손바닥(掌篇)소설, 엽편소설, 콩트, 미니픽션 등으로 불리는 짧은 소설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분량에 구애받지 않는 작품들을 다소 출간해온 소설가 이기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탁, 사건들을 하나의 장면으로 만들고 해석은 독자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 단편이 파헤치는 것이라면 콩트는 발견하는 것, 타격을 주는 것이다. 탁! 그렇게만.” 이 책 『어느 왼발?이 토끼의 무덤』에 실린 짧은 소설들은 그렇게 낯익은 것들에 ‘타격’을 가하는 것들이다. 그것은 청탁 시스템과 원고지 분량 안에 갇혀버린 상상력을 풀어놓아 정형화된 한국문학에 ‘타격’을 가하고, 잡지라는 한정된 지면을 떠나 자유롭게 유랑하는 문학의 가능성을 열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15편의 소설들은 과감한 생략이나 집중도 높은 서사, 정갈하지만 더욱 입말에 가까운 문장들,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의 미학으로 짧지만 두 배의 즐거움, 긴 여운을 남기며 한국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