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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사랑은 있고 사랑은 없고 사람 같은 사람은 희박해지고 있다지만
생활 공기 속에서 철원 봄에서 여름-겨울방학 일기 삼거리 국밥집 사랑한다 벽장 속 까마귀 미파솔 라시도 시라솔파 그것이 되어가는 느낌 재의 맛 베를린 느린 슬픔 탐구생활 아주 이따금 쓰는 일기 2부 썩기 직전 가장 향기로웠던 그곳의 그것 칼 옥미에게 저물녘의 빛 페이크 만우절 일곱 살 내 의자 이런 질문 정서건설이력철거전문 세 개 지난 애인들에게 사거리 빵가게 끝과 시작 지난여름 3부 이것만으로 충분한 기분 무쇠 발판 재봉틀 공놀이 사랑의 유령 싱크홀 배꼽 아주 조금의 설탕 그 개 먼 불빛 어떤 사소한 감정에 대하여 안개 군락지에서 아이스크림 일기 돌멩이 읍니다 믿음의 문제 다녀갑니다 4부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다 능에서의 한나절 붉은 방 둥, 둥둥 버티컬 햇빛에 대한 미사 벌레였던 저녁 직업학교 맞은편 사진관 껌 봄날의 어두운 산책 아버지 도덕 선생님 탁자 아래 밤늦은 역사에서의 독서 강아지 울음소리 요리법 다시 한 번 해설 엉망이라는 비질서와 진창이라는 바닥에서 우리 함께 -정기석(시인·문학평론가) |
이진희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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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실만을 말하지
물론 맹세할 수 있어 이까짓 거짓말 내 앞의 당신은 달콤해야 하니까 당신 앞에선 달콤한 말만 선물할 거니까 커다란 리본을 달아서 커다란 선물을 보낼게 커다란 상자에 넣어서 커다란 꽃다발과 함께 커다란 페이크를 만들어줄 테야 --- 「페이크」 중에서 까마득한 고층에서 훌쩍 뛰어내리자 세상이 사라졌다 축하받을 존재와 축하의 장소가 확실했다 무궁한 손뼉들과 향기로운 꽃다발들 해외 입양아던 젊은이가 친모를 찾고 있었다, 당신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누구였는지 알고 싶습니다 곁눈질로 보았다 걸레질을 하던 나의 어머니가 텔레비전 앞에서 가슴을 쥐어뜯던 모습 출구가 차단된 동굴에 차오르는 매운 연기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기일인지도 모르는 날 겨우 몇 묶음의 폐지를 두고 살인이 저질러지기도 하는데 거짓말처럼 살아가고 거짓말처럼 태어나고 거짓말처럼 죽어가는 --- 「만우절」 중에서 아무리 아름다울지라도 이곳 눈부신 정원에 이식된 꽃들은 지친 표정을 들키는 즉시 뽑혀나가고 오늘 아침 고용된 앳된 악사들은 좀처럼 어두워지지 않는 밤의 전경을 노련하게 연주해야 하는데 남아도는 우유처럼 버려질 물질을 생산하느라 한밤중에도 불 밝힌 먼 곳의 공장들 --- 「재의 맛」 중에서 그때로부터 먼 훗날 바람의 병사들이 검은 돌담을 무시로 타넘던 추운 밤들을 생각하는 오늘 나는 어쩌다가 생겨났다 지금의 내가 아닐 수도 있었던 나는 어쩔 수 없어져서 태어났다 그날, 나의 어린 엄마가 도망칠 배편을 어렵사리 구해놓은 그날 시집간 막내딸 어찌 사는지 궁금했던 외할아버지가 언제 가마 하는 기별 없이 섬에 내리지 않았더라면 엄마는 여태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았겠지 엄마 배 속에 든 나도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랬던 그때가 지금에 이르다 그 옛집 어두컴컴한 건넛방 무쇠 발판 재봉틀로 밤마다 엄마가 기워 나간 건 도무지 알 수 없는 심란한 미래 어쩌다가 이런 시가 쓰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은 오늘 이상하다 발이 몹시 시리다 차가운 무쇠 발판을 밤새 맨발로 구른 것처럼 --- 「무쇠 발판 재봉틀」 중에서 나의 애인들 지금이야 다저녁에 훌쩍 지나간 계절이지만 불이고 물이고 칼날이면서 솜털이던 사랑 비슷했던 사랑으로 한때 나는 나의 슬픔과 분노 결핍과 망설임을 메꿔왔는데 그 슬픔과 분노, 결핍과 망설임이 나의 가장 오랜 애인이었는데 한때 전부였으나 이제 아무렇지 않은 한때는 공포였던 연애도 탈 대로 타버려 손가락을 대보면 부드러움만 남아 있다 --- 「지난 애인들에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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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문학수첩』 신인상으로 등단해 폭력과 광기로 점철된 세계에 길항하는 사유의 시편들을 써 온 이진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페이크』(걷는사람)가 출간되었다. ‘거짓, 속임수, 속됨’을 의미하는 ‘페이크(fake)’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진희는 여전히 이 거짓말 같은, 출구 없는 세계를 그리고 있으되 타인에 대한 애정과 연대의 호소는 더욱 강해졌다.
해설을 쓴 정기석 평론가의 말처럼 “세계는 여전히 엉망진창인데, 모두 아무렇지 않은 척 ‘페이크’를 쓰고 있”다는 인식에서 이진희의 시는 출발한다. 그렇다면 고통은 각자의 몫인가? 우리는 진실을 외면한 채 눈을 감아야 하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오랫동안 제기되어 진부해진 질문이라고 하더라도 원인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질문이 폐기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질문을 진부한 것으로 여기게끔 만들어 질문의 내적 의미를 가리는 또 다른 ‘페이크’가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각성에서 이진희의 시는 잉태되고 뻗어 간다. 그리하여 필연적으로 이진희의 시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많은 죽음과 불행, 악몽과 비참함, 고독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부재와 부러진 것들투성이다. 그는 없는 사람들에 쫓겨나고 폭력을 당하고 사라진 것들 사이에 홀로 남겨진다. 이것이 사실 적나라한 우리 삶의 풍경일 것이다. 다만 우리는 피하고 이진희 시인은 ‘어깨를 꼿꼿이 펴고 앞을 똑바로’(「일곱 살」) 본다. 그러나 그는 싸우지 않고 싸안는다. 투명하고 당당하게 대면한다.”(김경후 시인) 그런 점에서 이진희의 시는 이 시대에 더욱 유의미하게 작용한다. 어른답지 않은 어른들(「아버지」, 「도덕 선생님」)이 수두룩하고, ‘태어난 이유도 성장하는 목적도 알지 못한 채/좁은 철창에 갇혀 피둥피둥 사육되는 시간들’(「재의 맛」)로 가득한 세계이지만 시인은 어느 날 ‘샤워장 안에서 발견’(「옥미에게」)된 한 사람을 보고 그를 나인 듯 우리인 듯 여긴다. 지금 이곳에서 이진희는 “스스로 망각과 도취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며 경계선 위에 다시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세상은 최적과 쾌적을 위해 아름다움을 포장하고 쓸모의 체계를 만들지만” 이진희는 “가장 비천한 벌레로, 하찮은 돌멩이로 내려”간다. 그리고 외친다. ‘피 흘리며 기우뚱 기우뚱 날아보자’(「벽장 속 까마귀」)고. 그리하여 이 시집은 ‘쓸모없지만 빛나는 것들’(「시인의 말」)을 향한, 격렬한 사랑의 표현이다. 시인의 말 다시라도 나는 지금과 똑같은 세계를 만들어내겠지만 사랑하네 쓸모없지만 빛나는 것들 2020년 4월 이진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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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면 봄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고 꽃 진 자리를 보고 봄이라는 사람이 있다. 이진희 시인은 떨어진 꽃 한 잎 한 잎을 기억하면서 자라나는 봄의 뿌리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뿌리가 아프고 내밀하게 자라나는 소리가 그의 시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 모래바람과 죽음과 웃음과 사랑을 품은 뿌리의 봄기운이 가득하다. 그의 시는 고통스럽다. 많은 죽음과 불행, 악몽과 비참함, 고독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부재와 부러진 것들투성이다. 그는 없는 사람들에 쫓겨나고 폭력을 당하고 사라진 것들 사이에 홀로 남겨진다. 이것이 사실 적나라한 우리 삶의 풍경일 것이다. 다만 우리는 피하고 이진희 시인은 “어깨를 꼿꼿이 펴고 앞을 똑바로”(「일곱 살」) 본다.
그러나 그는 싸우지 않고 싸안는다. 투명하고 당당하게 대면한다. 없는 사람들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 없는 사람들이 그의 말 속을 다녀가고 그는 우리에게 다녀간다. 그는 자신을 내주고 빈자리를 만들어주려 안간힘으로 귀 기울이며 상처받은 가슴 높이의 말들을 다정하게 포옹하려 한다. 마치 자신의 마음과 말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내어주는 것이라는 듯. 그 자리는 너무 고요하게 아파서 죽음과 사랑이, 매몰과 승화가, 나와 네가 서로 마주보고 자라나는 것 같다. “상처를 거울처럼/폐허를 장미처럼” 껴안고 “외면당한 것들과 손잡으려 애”(「그곳의 그것」)쓰는 시들이 여기 있다. “너는 여태 나인 것 같고, 모든 우리인 것만 같”(「옥미에게」)은 사람이기 위해,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사랑한다」)르기 위해 그는 “불행한 자를 위로하는 더 불행한 자”(「이런 질문」)로 “의자와 설탕과 다정한 포옹이 필요한”(「아이스크림 일기」) 우리에게 온다. - 김경후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