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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오픈
상(床), 상(賞), 상(像) 박성준 배우(俳優) 3; 시작법(詩作法) 당신의 침대 김경주 let me in 천 번은 때려치우고 싶던 책상 서효인 공업 도시 나는 책상에 없다 박진성 키스 최초의 책상은 어디로 갔을까 김승일 시인의 책상 시인의 책상 이이체 누설(漏泄) 동화 유희경 각인(刻印) 나의 책상들 최정진 모드 시인의 책상 황인찬 노랑은 새로운 검정이다 겨울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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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책상
엄희경 (종교MD)
집에 있는 수많은 가구 중에 유일하게 어린 나이에 가질 수 있는 나만의 꽤 큰 물건. 책 한 권만 펼쳐 놓으면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철옹성 같던 나만의 공간. 의자에 앉으면 바닥에 발이 잘 닿지 않았던 때의 책상은 이런 이미지다. 책상은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고, 지극히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공간이었다. 종이와 볼펜, 책과 라디오, 러브레터와 지우개가 널려져 있던 바로 그 공간.
그런데 어른이 된 후로는 예전의 강제성이 없어져서인지 책상을 가까이 하기가 쉽지 않다. 이미 실용의 공간이 된지 오래다. 분명 책상은 학창시절 때가 더 실용을 위한 공간이었건만.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책상은 어떨까? 시인의 책상. 호기심이 확 인다. 특급요리사의 주방과 안방을 동시에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시인의 책상』은 이러한 관음에 응하는 책이다. 젊은 유망 시인 10인의 책상을 들려주고 보여준다. 시인이 털어놓는 자신의 책상이야기, 허남준 사진작가를 대동한 리얼 시인의 책상, 그리고 각 시인의 신작 시 등으로 구성한 이 책은 요리사의 안방과 주방을 지나 마지막으로 요리도 맛보는 풀-코스 요리(사)견학 보고서랄까? 자연스레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도구가 되는 오은의 책상, 첫 시집의 대부분을 썼다는 박성준의 퀸 사이즈 침대, 절대 믿기지 않는 김경주의 천 번은 때려치우고 싶은 책상, 담배 피는 여고생들의 발목만이 시선이 들어오는 서효인의 책상, 허름한 차를 타고 너의 손을 잡고 책상을 사러 돌아다니다 손에 쥐었다던 유희경의 좌식책상 등등 열 시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펼쳐진다. “꿈꾸는 청춘을 위한 젊은 시인들의 몽상법” 이라는 부제는 그들의 사연보다는 담겨진 책상 사진(혹은 책상으로 사용되는 공간의 사진)이 더 잘 설명해준다. 하나같이 시인의 책상이라고 하기엔 시시해 보일지 모르는 평범한 그들의 책상이지만 책상의 스타일, 그 위에 놓여있는 책들, 메모들, 그리고 시인의 표정에서, 시인들이 어떤 몽상에 빠져있는지 더 잘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시인은 시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던가. 역시 『시인의 책상』의 백미는 그들의 신작 시다. 이 시들은 꼭 두 번씩 읽어보게 되는데, 시를 각 에피소드 글 앞에 배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시가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그들의 책상 앞이라는 걸 알게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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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첫 시집의 대부분의 시를 이 침대에서 썼다. 침대가 답답하면 방을 잡으러 나갔다. 동료 시인들이 대개 카페에서 오늘의 커피나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흡연실에서 노트북과 씨름하고 있을 때, 나는 눕고 엎드려야 했다. 맑은 날, 모텔에 젊은 남자가 혼자 와서는 방을 빌린다. 시를 쓰겠다고 세 시간, 네 시간짜리 대실로 방을 잡아서 모텔 침대에 배를 대고 눕는 것이다. 이때는 이것 또한 내 책상인 것인데, 누군가 매일 가는 카페에 글이 잘되는 자리가 있듯이 나 또한 종종 가는 모텔에 글이 잘 나오는 침대가 있다. 가져온 노트북에는 작업 중인 시가 있고, 나는 옷을 훌러덩 벗을 준비가 되어 있다. 홀딱 벗고, 내 방처럼 엎드리는 것이다. 벽이 아니라 바깥쪽으로 엎드려 누워서, 노트북을 침대 끝에 올리고, 두 다리는 벽에 기대고서 골똘하게 나는 시간을 보낸다. 첫 시집, 나는 예순 편이 넘는 시를 다 이런 식으로 썼다. 시를 쓰다 엎어져 자기도 하고, 꿈에서 쓴 시를 깨어나서 옮겨 적기도 하면서 등은 굽고, 허리는 비틀어지고, 팔꿈치에는 굳은살이 박였다. 물론 모텔에서 시를 쓰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 여러 고충도 있었다. 우리나라 모텔은 대부분의 침대가 딱딱하다. 내가 글을 쓰기에는 좋지 못한 환경이다. 몸이 더 아프고 금세 지친다. 그리고 남자 혼자 와서 방을 잡으면, 엉큼한 모텔 주인이 찾아와서 여자를 불러준다며 방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보통 이런 것을 물어보는 모텔 주인은 남자가 아니라 늙은 여자일 때가 많다. 됐다고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시를 쓰러 왔다고는 말을 못한다. 그것은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시를 쓴다는 것을 알려서 말을 주고받기도 귀찮거니와 매번 이런 소모전으로 내가 빌린 공간을 방해 받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곳은 남자 혼자서는 방을 잡아주지 않는 곳도 많다.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어쩌면 그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침대를 책상 삼아 글을 쓰는 버릇, 누나의 다락방, 누나가 자주 쓰러졌던 자개 책상은 모두 내게는 ‘죽음’과 가까운 유사 이미지들이었다. 당장에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시를 쓰고, 자살하는 대신 살겠다고 시를 썼다. 그러다가 여기까지 나를 몰고 온 것이다.”---박성준, 「당신의 침대」 중에서
“그날 밤. 몰래 깨어난 나는, 사실 잠들지 않았으므로 깨어났다기보다는 일어난 것인데, 방문 바깥을 확인하고, 문을 잠근 후에 책상 앞에 앉아서 스탠드를 켠다. 일곱 살 남짓의 사내아이인 나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책상의 위를 쓰다듬어보는 것이다. 생애 처음으로 가져보는 내 책상이었다. 작은 책장이 딸려 있는 이 책상에는 스탠드도 달려 있고, 어디에 써야 할지는 모르지만 콘센트도 붙어 있다. 그리고 가지런한 책꽂이. 저녁 내내 나는 책상을 꾸몄더랬다. 백과사전의 ‘ㅇ’ 권과 몇 권의 노트와 필기구들. 몇 차례나 넣고 뺀 끝에 나는 그럴 듯한 모양의 책상을 갖게 되었다. 깨지면 다칠지도 모른다는 엄마의 주장으로 책상 유리는 치워져버렸고, 나는 그 점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다시 몇 번씩 책상 위를 어루만진다. 학교에 가면 나는, 그 어렵고 힘들다는 공부를 척척 해낼 것만 같다. 한동안의 고요. 나는 그 속에 홀로 불을 켜고 앉아서, 돌아눕는 동생의 기척 따위는 무시한 채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둔 조각칼을 꺼낸다. 나는 곧 그곳에 나의 이름을 새길 것이다. 요령도 없이, 삐뚤빼뚤하게. 한 자 한 자 새겨 내 이름과 함께 도착할 것일 시간과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을 담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 이름은 나의 것이 아니고, 남의 것도 아니어서 어느 공중에서 흐르듯 떠돌아다닐 것이라는 것은 모르고 있다. 그때 나의 등과 팔과 그 책상의 주변으로 모여든 까무룩, 한 어둠을 나는 보지 못한다. 그 어둠과 뒷모습은 나중, 나중에 어른이 되어버린 나에게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때 그 모습은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눈물 같은 것이다. 이제, 이름을 모두 새겼다. 웃음이 나올 정도로 순진한 크기와 위치에 놓은 이름이다. 내일은, 어린 나는 엄마에게 크게 혼날 것이다. 자신의 이름 때문에 후회를 하게 될 그 첫날이 될 것이다. 그래도 좋다. 방금 새겨놓은 그 이름 때문에 이 책상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것이 되었으므로. 책상 위를 따뜻하게 비추던 불빛이 천천히 사라진다. 온기는 남아 있다. 그 어릴 적 다디단 꿈이 그 위에 흥건하다.”---유희경, 「나의 책상들」 중에서 “책상 앞에 앉아 느꼈던 최초의 무력감을 기억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책상 앞에 앉았을 때였다. 그때 나는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나는 조바심이 많은 아이였고, 어린아이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으니까, 어린아이는 아직 무엇인가가 되지 못한 상태이니까, 아직 너무 어린 자신을 참기 어려웠다. 초등학교 입학을 며칠 앞두고서는 밤마다 하루하루 손꼽아가며 입학식 날을 셈하기도 했다. 한 밤, 두 밤, 세 밤, 네 밤…… 조금만 있으면 나도 어른이 되리라는 기대를 품고. 그리고 초등학생이 되어 책상에 앉았을 때, 그때는 이제야 진짜 ‘세계’를 마주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동경하던 어른에 가까워진 것만 같아 조금 뿌듯해졌다. 여전히 쌀쌀한 초봄이라 책상에 손을 가만 올리면 전해져오는 그 차가움에 놀라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적당히 따스해지던 것이 마음에 들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처음 겪는 일도 아니었는데, 그 모든 익숙함이 나에게는 새롭고 낯설게만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설렘과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책상 앞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얼마 없었던 것이다. 가만히 앉아 가만히 앞을 바라보는 일, 책상 위에 올라온 것을 또박또박 읽는 일, 선생님이 불러주신 것을 바르게 받아 적는 일 정도만이 나에게 가능한 일이었다. 책상 앞에 앉는 일은 순식간에 지루해졌다. 책상에 앉아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이 정도구나. 그리고 극도의 무력감이 엄습해왔다.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책상 앞에 앉아 처음으로 배운 것은 책상 앞에서의 무력함이었던 셈이다. 이게 진짜 ‘세상’이구나. 나는 생각했다.” ---황인찬, 「겨울 메모」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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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서 태어난 젊은 시인들이
감각의 최전선에서 눌러쓴 문장들 김승일의 경우를 좀 더 들여다보면 해답이 있다. 김승일은 우리가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는 낯선 소년의 얼굴로 등장했다. 그의 작품에는 눈에 띄는 잠언이나 특별한 수식이 없지만, 자신의 출생과 성장에 대한 날 선 고백들이 가득하다. 이 책에서도 앞쪽에서는 “책상에서 한 번도 제대로 글을 써본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기억을 더듬고 글을 써나가면서 “책상 앞에 앉아서 쓴 글이 하나 더 있었다. 한 편도 못 썼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고 새롭게 고백하는 것이다. 손쉬운 고백이라고 해서 그것의 진실성이 의심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젊은 시인들이, 나아가서는 우리 시대의 청춘들이 얼마나 고백에 대한 욕구가 강한지(고백하고 싶은 것이 많은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젊은 시인들이 책상을 향해 쏟아내는 거침없는 고백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또 다른 젊은이들에게 큰 공감과 안도감을 준다. 나아가 가방이나 코트 혹은 잡동사니를 올려두는 공간으로 전락한 책상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묻는다. ‘책상’은 곧 무엇보다 믿을 만한 고해의 대상이자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줄 내밀한 은신처가 되는 것이다. 오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딸린 방에 네 식구가 살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 역시 상(?에서 시작한다. 단체 손님을 받기 위해 다섯 개의 테이블을 붙여 만든 레스토랑의 3번 테이블에서는 모로 누워 구르기도 하고, 펄쩍펄쩍 뛰어오르기도 한다. 7번 테이블에서는 주로 낮잠을 잔다. 새로 산 소파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을 지배했던 이 자유로운 상에 대한 이미지는 현재 오은의 방에서도 그대로 찾아볼 수 있다. 오은은 방의 한가운데에 상 하나를 놓아두고 사용한다. 글을 쓰다가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책을 읽을 수도 있고, 다리가 아프면 잠시 뒤로 드러누울 수도 있다. 구석진 자리에 고정된 책상이 아닌 언제든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상이 오은 시의 상상력과 외연을 넓혀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최정진은 이 책에서 “책상은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는 유일한 장소”라고 말한다. 사실 책상만큼 아무 곳에나 놓일 수 있는 대상도 드물 것이다. 우리의 젊은이들 역시 아무 곳에나 책상을 놓아둘 필요가 있다. 구석진 자리에 언제나 자리한 책상이 아닌, 당신이 무언가를 시작하는 바로 그곳이 ‘진짜’ 당신의 책상이 되는 것이다. 작가도 책상이 싫다? 엎드린 청춘을 응원한다! 김경주는 ‘천 번은 때려치우고 싶던 책상’이라는 제목으로 편집자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10명의 시인 중 가장 늦게 원고를 보내온 김경주가 ‘천 번은 때려치우고 싶던 원고’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경주는 ‘책상에 앉는 것을 정말이지 천 번은 때려치우고 싶었다’라는 말로 작가로서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토로한다. 그러나 이내 “매일 책상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며 내가 벗어놓은 세계사에 지도를 그리는 꿈을 꾼다. 오로지 내가 벗어놓은 세계사. 그 위에 나 혼자만 누워 있다고 생각될 때 나는 시를 쓰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산다”고 고백한다. 김경주의 글을 통해 시인의 책상, 작가의 책상이 얼마나 치열한 사고의 전장인지 확인할 수 있다. 함께 실린 시인의 사진 역시 사실감을 더해준다. 박성준 역시 조금 다른 의미에서 책상의 어려움과 불편함을 호소한다. 박성준은 매트리스에 배를 대야 글이 써진다. 실제로 사진작가가 박성준의 책상을 촬영하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초록색 매트리스가 자신의 책상이라고 소개해 사진작가를 적잖이 당황케 한다. 박성준은 주로 침대에 엎드려 시를 쓰고, 이마저도 답답할 때는 모텔을 찾는다. 종종 가는 모텔에 특별히 글이 잘 써지는 침대가 있을 정도다. 홀딱 벗고 침대에 엎드려 첫 시집에 실린 대부분의 시를 썼다고 한다. 박성준은 딱딱하고 고정된 책상에서 글을 써야 한다는 오래된 편견을 몸소 깨뜨려 보여준다. 박성준이 침대에 엎드려 써낸 언어들 역시 같은 것을 말한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폼(form)을 유지하는 일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낡은 책상이면 어떻고 얼룩이 선명한 침대면 어떠한가. 어쩌면 무언가에 간절히 엎드려 꾸는 꿈이 가장 달콤할지도 모를 일이다. 당신의 책상에는 무엇이 놓여 있는가? 잔뜩 구겨진 원고지 뭉치와 접어둔 자국이 선명한 낡은 책들, 그리고 머리를 움켜쥐며 고뇌하는 시인의 모습…… 이것이 우리가 흔히 ‘시인의 책상’에서 연상할 수 있는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실제로 젊은 시인들의 책상은 이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대체로 데스크톱보다는 노트북을 사용하고, 더러는 태블릿 PC로 대신하기도 한다. 아이폰과 아이팟, 그 밖의 스마트 기기들도 자주 보인다. 이이체의 경우처럼 무엇이 무엇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운 책상도 있었지만, 대개 꼭 필요한 것들만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박진성의 책상에는 손때 묻은 노트와 연필이 놓여 있다. 끊임없이 ‘최초의 책상’을 탐구하는 그의 산문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박진성의 미려한 문장들은 산문과 운문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책상’이라는 물질과 ‘침묵’이라는 관념을 아포리즘 형태의 문장으로 이어놓는다. “사물과 관념의 가역반응”이 일어난다. “글을 쓰는”시인을 책상은 기다린다. 시인도 책상을 기다린다. 박진성의 말을 수락한다면 “도서관에 배치된 책상들”은 책상이 아니다. 침묵이 그러한 것처럼 책상도 “오로지 단 한 사람을 주인으로 갖는다.” 여백과 여백 사이에 놓인 문장들 속에서 우리는 홀연, 자신에게 묻게 될 것이다. 나에게 책상은 어떤 의미인가, 라고 말이다. 박성준의 책상에는 신내림을 받은 큰누나가 있다. 서효인의 책상에는 자발적 은둔자, 몽상적 가장, 문제적 연구자, 신실한 흡연자, 콜센터 김치녀, 그리고 무명의 당신이 있다. 유희경의 책상에는 새로 구입했다는 스탠드와 책이 몇 권 놓여 있고, 그가 좋아하는 시인의 글씨가 있다. 그가 좋아한다는 시인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그런 것을 유추하는 일은 “무례한 짓”일지도 모른다. 유희경의 말대로 책상에 앉아 “당신을 생각하거나, 구름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네 가지의 행동 말고” “다른 ‘짓’들”을 하는 것은 “무례하기 때문일 것이다”. 유희경의 책상에는 자신이 사랑하고 지키고 싶은 것들에 대한 경건함이 묻어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청춘들도 자신의 책상을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간절하게 원하는 것들이 놓여 있는지, 혹은 그곳에 앉아서 무엇을 꿈꾸고 생각했는지, 빛나는 청춘에 무례한 짓을 한 적은 없는지 세심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형태는 다를지 몰라도 누구에게나 책상은 있다. 그리고 그곳에 납작하게 엎드려 꾸는 달콤한 꿈이 있다. 여기, 꿈꾸는 청춘을 위한 젊은 시인들의 이야기가 있다. 몽상도 간절하면 현실이 된다. 10명의 젊은 시인들이 당신의 꿈을 응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