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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미국의장군들 - 살림지식총서 464
EPUB
여영무
살림출판사 201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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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의 시리즈 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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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차례
남부군의 총사령관, 로버트 에드워드 리
뚝심의 장군이자 정치가, 율리시스 그랜트
미국의 아시아 함대 사령관, 조지 듀이
미국 전쟁사의 산증인, 조지프 퍼싱
독창적 전략전술의 대가, 더글러스 맥아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전략가, 조지 마셜
뛰어난 야전군 사령관, 조지 패튼
미 해군 현대화의 일등 공신, 윌리엄 니미츠
미 공군의 대부, 헨리 아놀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영웅, 아이젠하워
노르망디의 또 다른 영웅, 오마 브래들리
한국휴전에 서명한 슬픈

저자 소개 1

고려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고려대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아일보 논설위원, 통일연구소장, 통일원 정책평가위원을 역임하고 대한국제법학회 이사 겸 부회장, 세종대 석좌교수,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 방문교수를 지냈다. 고려대학교 대학원, 외국어대학교, 한양대학교 등에서 강의했으며 현재 남북전략연구소장, 뉴스앤피플 닷컴 대표 겸 주필과 KBS 방송 시사해설을 맡고 있다. 저서로 『괴물제국 중국』, 『국제테러리즘 연구』, 『테러리즘과 저항권』, 『통일의 조건과 전망』, 『북한 어디로 가나』, 『좌파대통령의 언론과의 전쟁』, 『배반당한 민족공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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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9월 04일
이용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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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기간 제한없음
  •   TTS 가능 ?
  •  저작권 보호를 위해 인쇄 기능 제공 안함
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5.12MB ?
ISBN13
9788952227027

책 속으로

듀이는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 후, 생포한 스페인 포로들로부터 스페인 함대의 능력이 얼마나 과대평가 되었나에 대해 듣고 깜짝 놀랐다. 스페인 함선들은 수선과 정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수병들은 무경험자가 많았고, 훈련도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또 스페인 함대 사령관이 일부러 전함들을 얕은 바다 위에 정박해 두어 만약 배가 침몰하더라도 수병들이 익사하지 않도록 미리 조치해 두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p.25

맥아더 장군은 전투에서 적이 자신에게 절대 해를 입히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작전 때마다 선두에 섰고, 부하들에게 대담하게 전진할 것을 쉬지 않고 명령했다. 맥아더는 전투 시 헬멧과 가스마스크를 쓰지 않을 정도로 대담함을 과시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그는 은성무공훈장을 네 개나 받았고, 전쟁 영웅 퍼싱 장군으로부터 “우리 부대에 일찍이 없었던 위대한 지휘관”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맥아더는 두말할 나위 없이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 중 한 사람이지만, 동시에 대통령의 문민우위 권위에 도전해 가장 많은 논란을 빚은 장군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그는 전략전술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함을 보였고, 높은 학식과 교양을 갖춘 데다 보기 드문 웅변가였다. 또 우뚝한 키와 귀족적 미남형의 풍모는 그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pp.36-38

아이젠하워가 가장 오랫동안 전략을 수립하고,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이 작전은 나치 독일군에게 결정적 타격을 안겨주었다. 이 작전을 일컬어 ‘90일간의 전투’라고 부른다. 그만큼 집중적인 전투가 전개되어 양측 모두 희생자도 많았다. 상륙 후 첫 3주 동안 연합군의 손실은 공식적으로 사망자 8,975명, 부상자 51,796명에 달했고, 작전 과정에서 독일군 41,000명을 포로로 잡았다. 전쟁 초기 서부 전선에서 순식간에 패배해 유럽 대륙에서 퇴각한 연합국 측은 이 작전을 통해 비로소 독일 본토로 진격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p.86

프랭크스는 이라크전쟁을 승리로 장식한 후 2003년 8월 말 미국 정부의 육군참모총장 제의를 사절하고, 58세의 비교적 왕성한 나이에 은퇴했다. 그는 혁혁한 무공을 세웠음에도 겸손을 잃지 않고 군인으로서의 최고 영예인 육군참모총장직 제의를 거절하는 용기를 보인 것이다. 그의 거절 이유는 간단했다. 아내 캐시와 함께 한동안 손자들을 무릎에 올려놓고 같이 놀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책을 쓰는 것도 고려중이며 상담업무 같은 것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아들)은 “나는 진정으로 토미를 신뢰한다”고 했고, 전 공화당 하원의장인 뉴트 깅그리치(Newt Gingrich) 국방부 자문위원은 “그는 아이젠하워와 많이 닮았다”고 격찬했다. 하지만 이런 평가에 대해 프랭크스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사실 내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하며 겸양의 태도를 보였다.

--- pp.118-119

리뷰/한줄평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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