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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영화와 독립영화
독립영화의 역사 한국독립영화의 위상 한국독립영화의 미학과 정체성 한국독립영화의 역할 한국독립영화의 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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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로서 민중영화의 태동
서울대학교 영화연구회 ‘얄라셩’(1979년)은 집단창작체제로 운영되는 본격적인 독립영화의 활동을 모색한 선발그룹으로 현재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홍준, 박광수, 송능한, 홍기선, 황규덕 등이 참여하였다. 얄라셩은 집단창작체제로 공동체적 의식을 추구하여 새로운 사회적 삶을 주장하는 현실참여의 영화제작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순수 작은영화의 성격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서울영화집단’(1982년)으로 다시 태어나 집단제작과 개인제작을 병행하면서 다양한 작품으로 현실에 참여하는 역할을 넓혀갔다. 그들은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영화에 관심을 갖고 영화운동을 통한 사회개혁을 시도하는 ‘민중영화’를 제창하였다. 이즈음 19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은 국민들의 민주화 열기를 전국적으로 폭발시켰고 급변하는 사회 정세 속에서 대학영화는 사회운동으로서 그 역할이 확대되고 있었다. 소형영화의 대중화 그리고 전문화를 시도한 ‘장산곶매’의 「오! 꿈의 나라」(1987년)는 한국 작은영화의 장편영화 시도라는 큰 업적도 있었지만 당시 금기시하던 광주민중항쟁을 처음으로 언급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진정한 작은영화의 역할을 대내외적으로 알렸다. 상계동 철거민들의 애환을 다룬 비디오 다큐 「상계동 올림픽」(1988년)과 작은영화의 질적 전환을 이룬 장산곶매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노동자의 투쟁을 그린 「파업전야」(1990년)는 1990년대의 노동영화운동으로서 민중영화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p.2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