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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유흥 공간 출현하다
호텔식 다방에서 음악다방으로 카페, 서양식 술집의 성쇠(盛衰) 다방, 문화 공간 혹은 무기력한 인텔리의 집합소 카페, 퇴폐와 환락의 전당 순수와 관능의 간극, 다방걸과 카페걸 카페걸, 천사이자 악녀인 야누스 카페걸, 그들의 진실과 항변 도시의 판타스마고리아를 나오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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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오늘날의 다방이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여급과 더불어 차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 인식된다면, 카페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청춘남녀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장소로 생각된다는 것이다. 이는 초창기 다방과 카페의 개념이 완전히 뒤바뀐 상황을 보여준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개념의 전도가 일어난 것일까? 하긴, 필자가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들어갔던 다방도 오늘날의 모습과는 달랐다. 필자에게 다방은 예쁜 유리그릇에 담긴 반숙을 먹던 곳으로 기억되고 있으니. 또 재미있는 것은 다방 안의 야자나무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다방의 한쪽 내지는 가운데에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야자나무는 초창기 다방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4-5쪽) 우리나라 사람이 처음으로 창업하였던 다방은 1927년 봄에 영화감독 이경손이 하와이에서 데려온 묘령의 여인과 종로구 관훈동에 개업한 ‘카카듀’였다. 그러나 경영도 미숙하고 손님도 많지 않아서 이경손은 수개월 만에 ‘카카듀’의 문을 닫고 상해로 갔다고 하니, 처음부터 다방이란 새로운 공간이 일반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근대 문물을 먼저 경험하고 돌아온 해외유학파 출신과 이른바 문화인을 자처한 일부 사람들은 서로의 지식을 나누고 자연스러운 토론도 하는 유럽식의 살롱문화를 다방을 통해서 실현해 보고 싶었다. 뒤에 살펴 볼 카페와 달리 주로 문화?예술인들이 다방의 경영에 손을 대었던 데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9-10쪽) 정복과 정모 차림으로 카페에 출입하는 학생들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았는데, 이는 역으로 당시 학생들의 카페 출입이 빈번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위의 기사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당시의 카페가 지니고 있는 문화적 성격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카페가 퇴폐적이고 환락적이고 도피적이고 환멸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종종 경성의 1930년대를 ‘에로 그로 넌센스’의 시대였다고 기술하기도 한다. 에로티시즘(Eroticism)의 약자인 ‘에로’와 그로테스크(Grotesque)의 약자인 ‘그로’, 그리고 넌센스(Nonsense)가 합쳐진 ‘에로 그로 넌센스’는 ‘음탕하고 기괴하며 어처구니없이 우스운 것’을 의미하였던 것이다. 일본에서 유행하였던 이 말은 식민지 조선에도 유입되었는데, 카페는 ‘에로 그로 넌센스’를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는 장소였다고 볼 수 있다. 카페는 데카당과 에로의 극치를 보여주었으며 온갖 범죄의 온상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37쪽)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