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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와 만나다
바로크란 무엇인가? 역사 속의 바로크 문예사조로서의 바로크 테마로 본 바로크 다시 나보나 광장을 꿈꾸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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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만나는 ‘바로크’
“결혼 준비를 하는 친구가 혼수를 바로크 가구로 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친구는 왠지 세련되고 뭔가 화려한 느낌을 주는 근사한 느낌의 바로크란 말이 좋다고 했다. 친구에겐 바로크가 세련된 화려함의 유럽풍 스타일과 동의어였던 것이다.” 바로크란 단어는 이렇게 여기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일상 속에 벌써부터 들어와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책이나 잡지, 혹은 영상 매체를 통해 가끔씩 마주치게 되는 바로크란 말을 나름대로 어떤 느낌,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에서 바로크란 말은 극히 주관적이고 모호한 느낌들로만 축소되어 버리고 말았다. 바로크 세계로의 초대 1690년 프랑스에서 발간된 퓌르티에르사전에서는 바로크를 “그 모양이 완벽하게 둥글지 못한 진주에 대해서만 사용되는” 용어로 규정하고 있다. 바로크 개념이 처음 예술 분야에 적용될 때는 자연스러운 것을 벗어난, 지나치게 인위적인 형태를 가리키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했지만, 여러 차례 재조명을 받으면서 ‘바로크적’이라 비난 받던 기이함은 이제는 시대와 작품을 막론하고 규범과 전통을 전복시키는 창조성의 증거로 인정받고 있다. 저자를 따라 어원, 역사, 문예사조 속에서 모습을 하나하나 찾아가다 보면 그 실체를 좀더 명확히 볼 수 있다. 특히 바로크인들이 갖고 있던 세계관을 몇 개의 테마로 바라보는 내용에서는 살아있는 개념으로서의 ‘바로크’에 대해 더욱 공감할 부분이 많다. “모든 것은 변한다.”“이 세상은 하나의 연극이 펼쳐지는 극장이다.” “인생은 하나의 꿈에 지나지 않는다.”와 같은 바로크적 세계관(인생관)은 매일을 헛된 미망과 집착에 사로잡혀 헛되이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인간 삶의 유한성을 깨닫고, 매일의 삶 앞에서 겸손할 수 있는 마음을 배우게 한다. 죽음에서 우아한 이미지를 걷어 내고 흉측한 해골과 고통스런 순간의 묘사를 선호했던 바로크인들은 “죽음을 기억하라(메멘토 모리)!”를 외쳤다. 이는 삶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죽음의 자리를 항상 명확하게 의식하면서 역설적으로 현재 주어진 짧은 생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그들의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물질만능의 시대에서 가치관의 혼동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메시지를 발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