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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나폴레옹 : 위대한 프랑스를 향한 열정 - 살림지식총서 360
위대한 프랑스를 향한 열정 EPUB
서정복
살림출판사 201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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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의 시리즈 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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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혁명적 지성 - 있었는가, 없었는가?
전쟁의 영웅 - 승리한 마르스인가, 패배한 마르스인가?
집권 과정 - 혁명인가, 쿠데타인가?
통치 스타일 - 공화정인가, 독재정인가?
학문과 기술 진흥 - 창조자인가, 파괴자인가?
황제의 여인들 - 정치에 도움이 되었나, 해가 되었나?
영웅의 빛과 그림자 - 빛날 것인가, 사라질 것인가?

저자 소개

저자 : 서정복
현 충남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역사학회 평의원, 한국서양문화사학회장. 프랑스 Universite de Lille III에서 프랑스 사학전공, 「베르트랑 바래르: 그의 정치와 사회사상을 중심으로」로 역사학 박사학위 받음. 저서는 『프랑스 근대사연구』 『프랑스 혁명과 베르트랑 바래르』 『살롱문화』 『소르본 대학』 『프랑스 혁명』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시대의 교육개혁사』, 공저로 『전환의 시대 대학은 무엇인가?』 『유럽사의 구조와 전환』 『혁명, 사상, 사회변동』 등이, 역서로는 『프랑스인의 아메리카 회상』 『프랑스 혁명과 교육개혁』 『부르봉 왕조시대의 프랑스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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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0월 10일
이용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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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기간 제한없음
  •   TTS 가능 ?
  •  저작권 보호를 위해 인쇄 기능 제공 안함
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2.66MB ?
ISBN13
9788952220394

책 속으로

나폴레옹 하면, 흔히 우리는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라는 명언, 백마를 타고 알프스 산을 넘는 장면이나 쿠데타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프랑스 사람들은 그를 잔 다르크, 드골과 함께 가장 훌륭한 애국자로 생각하고 있다. 테일러의 말과 같이 그는 비스마르크, 레닌, 손문처럼 세상을 바꾼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그는 혁명을 순리적으로 이끌어, 제국을 건설함으로써 부르봉 왕조의 부활을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혁명의 지도자이자 혁명 이념의 전도자, 홍보자 및 혁명의 우상이 되었다. 프랑스 위인 열전에서, 그는 1980년 드골에게 선두를 내주기 전까지,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성과 위엄을 누려 왔다. --- p.3

나폴레옹은 역사상 군인으로서 가장 출세했고 이름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20대에 이미 프랑스 혁명에서 가장 출세한 장군이 되었고,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을 거쳐 이집트까지 극적인 원정을 했고, 30대에 제1통령이자 프랑스 제일의 실권자가 되었다. 그는 전쟁에서 잔뼈가 굵었고, 전쟁에서 영광을 얻었으며, 전쟁에서 힘을 얻어 정권을 잡아 황제까지 오른 전쟁의 귀재였다. 그는 영국을 비롯해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이집트, 러시아 등과의 싸움에서 20회나 승리했다. 그는 카이사르보다 알렉산더 대왕보다 더 많은 전승을 했다. --- p.12

나폴레옹이 비록 전쟁을 좋아했고 전쟁터에 행복을 느꼈을지라도, 학문과 기술 개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애정을 가진 지성을 갖춘 군인이었다. 그의 문화 업적은 ‘나폴레옹 법전’ 편찬, 학사원 설립, 그리고 교육 개혁 즉, 제국대학 설립, 사범학교와 특수 전문학교 설립, 바칼로레아의 창설 등 많은 것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나폴레옹은 푸르크루아로 하여금 공교육 계획을 작성하게 했고, 교육개혁위헌회의 토론에 계속 참여하는 열성을 보였다. 한편 나폴레옹의 생애에서 그가 가장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 중 하나는 1797년 12월 25일 정치적 이유로 밀려난 카르노(Carnot) 대신에 국립 학사원(Institut National, 1795)의 기계 분과 위원에 선출되었던 것이다. 그는 어느 날 저녁 식사 중, 라플라스(Laplace)에게 “내가 만약 총사령관이 되지 않았더라면 정밀과학에 몰두했을 것이며, 아마도 뉴턴, 갈릴레이의 길을 뒤따랐을 것이다”라고 했다.

--- pp.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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