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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소르본 대학 : 프랑스 지성의 산실 - 살림지식총서 175
프랑스 지성의 산실 EPUB
서정복 저
살림출판사 201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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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파리와 파리 대학
대학의 체제 갖추기와 자율권 확보
캠퍼스의 일정, 학위취득 및 진로
학생들의 갈등과 의식의 변화
도서관의 건립과 연구여건
새로운 변화의 시도
프랑스 혁명과 파리 대학의 종말

저자 소개

저자 : 서정복
현 충남대학교 사학과 교수. 프랑스 Universite de Lille III에서 프랑스 사학전공. 「베르트랑 바래르: 그의 정치와 사회사상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 받음. 한국프랑스사학 회장, 한국서양사학회 감사 역임.
현 한국서양문화사학 회장, 역사학회 감사. 저서로는 『프랑스 근대사연구』 『프랑스혁명과 베르트랑 바래르』 『살롱문화』 『전환의 시대 대학은 무엇인가』(공저) 『부르봉왕조시대의 프랑스사』(역저) 『프랑스인의 아메리카회상』 『프랑스혁명과 교육개혁』(역서) 등. 논문으로는 「나폴레옹시대의 교육실태와 제국대학」「프랑스 살롱의 기원과 문화적 역할」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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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1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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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0.32MB ?
ISBN13
9788952245236

출판사 리뷰

‘대학’의 성립
오늘날 대학을 상징하는 ‘유니버시티 university’는 원래 라틴어의 ‘유니베르시타스 universitas’에서 유래된 것이다. 처음에 그것은 길드나 자치도시에서 단순히 ‘다수?복수?사람들의 집합체’ 또는 ‘합법단체?법인단체’를 의미했다. 이처럼 여러 단체에 적용되었던 유니베르시타스는 13세기 초에 이르러 ‘학생조합 또는 교수조합’ 등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유니베르시타스는 사람들의 모임이나 가르치는 과목에 중점을 두었으므로 시설이나 장소보다는 ‘학문의 보편성’에 더 가까운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며, ‘유니버시티’로 보편화된 것은 15세기 이후로 보인다.

초기 대학들은 모두 중세 도시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왕이나 제후들에 의해 설립된 것이 아니고 거의 모두 자생적으로 발생했다. 세계 최초라는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1128. 11)과 살레르노 대학을 비롯해서 프랑스의 파리 대학,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이 모두 그러하다.

새로운 변화의 현장
이 책은 파리-소르본 대학의 역사와 문화를 다양한 측면에서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 중에서 특히 대학의 개혁에 대한 사례와 수난극복에 대한 부분은 오늘날 대학과 지식인의 역할과 사명에 대해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1534년 교양학부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를 모든 철학연구의 표준이자 기본으로 했다. 그것은 ?성서?가 신학의 기본이듯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가 과학과 철학의 표준으로 인정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이 대학에서 읽혀진 형태로 볼 때 상당 정도가 가짜일 것으로 판단했다. 라뮈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은 무엇이든지 거짓이다’라는 주제를 제안했고, 후일 파리 대학의 총장이 된 갈랑(Galland)은 심지어 그를 ‘부모살해범’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위그노와 가톨릭의 치열한 싸움 속에서 죽음을 맞았다. 1572년 성 바르델레미 축일에 시작된 끔찍한 학살의 3일째에 학살자들이 콜레주 드 프렐에 침입하여 만행을 저질렀다. 칼로 난자당한 라뮈의 시신은 따로따로 위층 유리창을 통해 마당으로 내던져졌다. 분노와 복수에 찬 가톨릭 파들은 소름끼치는 냉소와 험담을 퍼붓고 학생들은 시신에 채찍을 가했으며, 일부 교수들은 계란세례를 주며 모욕했다. 마침내 그의 시신은 진흙탕 위로 끌려가 센 강물에 버려졌다. 대학 개혁의 선봉이 되었고, 항상 “지식을 추구함에 있어 인간의 마음은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한 라뮈는 그렇게 처참한 죽음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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