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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박물관이 아니다
기원 : 르네상스 시대의 미적 개인주의 형성 : 절대왕정의 밀실 성립 : 근대성을 비추는 거울 변화의 모색 박물관은 아직도 건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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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이온에서 박물관의 탄생까지
기원전 290년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설립된 일종의 연구?교육센터인 무제이온 이후 오랫동안 이러한 기관은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흔히 ‘암흑시대’라고도 불리는 중세기에 서양 세계에서 그나마 박물관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한 것은 수도원의 ‘보고(寶庫)’였다. 중세가 무르익어가면서 세속 군주의 힘이 증대되어갔고 그들도 점차 자신의 보고를 갖추어가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한 일은 이러한 추세에 불을 지른 것이 바로 십자군 전쟁이라는 점이다. 전례없는 규모의 동방원정을 통해 비잔틴 제국과 아랍세계의 진기한 물건들이 전리품으로 노획되자 그때까지 빈약하기 이를 데 없었던 소장품목이 크게 확장되었던 것이다. 박물관의 정통적 기원이 될 변화의 조짐은 14세기 후반 과거의 유산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생겨난 ‘르네상스’ 시기에 나타났다. 잊혀진 고대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심 덕분에 오랫동안 파묻혀있던 성경의 필사본, 조각품, 동전, 메달, 건물의 파편, 무덤이나 기념비의 비문들이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르네상스시대의 부호와 권력자들은 고대의 예술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예술창작을 적극 후원하고 나섰다. 바로 이와 같은 ‘후원’과 ‘수집’ 행위야말로 박물관 형성을 위한 토대를 이루는 것이었다. 후원과 수집 행위는 순전히 개인의 욕망을 분출하는 장이 되었다. 역사가 부르크하르트가 대가다운 안목으로 지적했듯이, 바야흐로 세속화된 개인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개인의 탄생과 가시적인 공간의 구축 새로운 주체적 의식은 가시적인 공간의 구축으로 이어졌다. 15세기 초반 건설된 메디치 궁의 공간은 권력자의 지배를 공고화하고 정당화하는 권력의 테크놀로지로서 기능했다. 그곳에서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는 자격은 오직 권력자와 그의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국한된다. 문화적 차별은 지배를 일상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역사적으로 우피치는 박물관의 시원이라고 말해진다. 우피치는 1560년경 코시모 1세가 바자리를 건축책임자로 임명하여 건립하였다. 원래 사무실 용도로 지어진 이 건물 4층의 ㄷ자 모양의 회랑에는 특별히 메디치의 방대한 소장품을 진열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이 회랑을 지칭하던 ‘갈레리아(galleria)’라는 명칭에서 오늘날의 ‘화랑(gallery)’이라는 말이 유래하였다. 근대성을 비추는 거울 이처럼 저자는 박물관의 기원과 형성배경을 추적함으로써 세력가나 절대 군주의 개인적 욕망이 공간을 통해 어떻게 분출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욕망이 다수의 대중과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보여준다. 즉 전문적인 박물관의 이론이나 운영 방안을 제시하기보다는 박물관이라는 거울을 통하여 근대성의 문제를 새롭게 비추어보는 방법이다. 저자는 그간 근대화나 포스트모더니즘 등에 관한 섣부른 논쟁 속에서 정작 근대의 다양한 면모에 대한 논의는 미루어져왔다고 지적한다. 박물관 영역은 이성중심주의, 역사, 민주주의, 자본주의 등으로 국한된 우리의 근대 이해를 근대성의 다른 한쪽, 즉 기억, 과거에 대한 연민, 아름다움에의 열망 등의 영역으로 확장시켜준다고 말하는 저자는 박물관이야말로 근대성의 가장 충실한 반영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우리 박물관의 부실함은 우리 근대성의 부실함을 비추는 거울임을 함께 지적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