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크레마클럽 EPUB
eBook 그리스와 로마 : 지중해의 라이벌 - 살림지식총서 116
지중해의 라이벌 EPUB
김덕수
살림출판사 2011.11.17.
가격
4,800
4,320 4,800 쿠폰혜택가
YES포인트?
24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 분야의 이벤트

이 상품의 시리즈 479

이 상품의 시리즈 알림신청

이 상품의 태그

소개

목차

그리스는 없다
영원한 로마(Roma Aeterna)
문명은 그리스로부터
아테네 vs. 로마
정치의 두 기둥:민주정치와 공화정치
폴리스 문화의 종착점:아테네 제국과 로마 제국
정복한 우리가 정복당했다

저자 소개

저자 : 김덕수
현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양사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에서 로마사 전공으로 석사,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아우구스투스의 프린키파투스의 형성 과정에 관한 연구」(1996)로 박사 학위를 받다. 저서로는 『역사 속의 말 말 속의 역사』(공저). 역서로는 『로마사』, 『로마문명사』. 논문으로는 「아우구스투스 시기 켄투리아 민회에서의 정무관 선출권」외 다수.

관련 분류

카테고리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11월 17일
이용안내
  •  배송 없이 구매 후 바로 읽기
  •  이용기간 제한없음
  •   TTS 가능 ?
  •  저작권 보호를 위해 인쇄 기능 제공 안함
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0.96MB ?
ISBN13
9788952244819

출판사 리뷰

문명은 그리스로부터
그리스인들이 알파벳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800년경의 일이다. 동부 지중해 연안에 있던 페니키아 문자를 토대로 아람어 문자의 일부 자음을 빌려서 그리스어 알파벳 24개(자음17, 모음 7)가 완성되었다. 문자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알파벳의 발명이야말로 지식의 대중화를 가져온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기원전 5세기와 4세기에 그리스 지식인들은 그리스 문자를 사용하여 시, 희곡, 서사시 등의 문학과 역사, 철학 등 서양의 고전들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다. 이후 서양 문명의 지적 원천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도 그 기저에는 알파벳이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8세기에 그리스 본토에서 폴리스들을 세운 이후 활발한 해상 활동과 식민운동을 통해서 지중해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갔다. 그들의 대외 활동은 곧 그리스 알파벳의 확대를 의미했다. 기원전 6세기부터 라틴어 알파벳 금석문들이 나타나는데, 학자들은 그리스 알파벳이 에트루리아인들을 거쳐 라티움 지방으로 들어온 것으로 생각한다. 로마인들이 사용한 라틴어 문자는 기독교 교회의 공식 문자가 되어 중세로 이어지고, 중세 이후 서양 언어의 모체가 되었다.

영원한 로마
고대 시대에는 이탈리아 반도에 이탈리아라는 나라가 없었고, 로마를 포함해서 여러 도시국가들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리스와는 달리 로마인들은 전쟁으로 또는 외교로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을 정복하면서 세력권을 확대해갔다. 기원전 3세기 초 이탈리아 남부의 타렌툼이 정복되면서 이탈리아 반도는 로마 공화국의 지배 영역이 되었다. 그렇기는 해도 나라 이름은 이탈리아가 아니라 로마였다. 이때부터 로마의 영원성에 대한 지배 이데올로기, 즉 ‘영원한 로마(Roma Aeterna)’ 관념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로마가 지중해 전역을 지배할 때 ‘영원한 로마’ 사상은 더욱더 널리 선전되었다. 따라서 지중해 통치 시대에 국가명은 로마 제국(Imperium Romanum)이었지 이탈리아 제국이 아니었다. 4세기에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된 이후에 ‘영원한 로마’ 사상은 기독교의 영원성과 맞물리면서 더욱더 힘을 갖게 된다.

로마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
그리스와 로마의 대립은 기독교에서도 나타난다. 그 대립의 씨앗을 심은 것이 313년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였다. 콘스탄티누스는 324년 권력의 라이벌이었던 매부인 리키니우스 군대를 물리친 뒤에 ‘새로운 로마’ 건설을 시작했는데, 동로마의 수도로 선정한 곳은, 유서는 깊지만 당시에는 쇠퇴한 그리스의 옛 식민시 비잔티온이었다. 이 도시는 이제 콘스탄티노폴리스, 즉 콘스탄티누스의 도시가 되었다. 콘스탄티노플의 중요성은 391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사실상 국교로 선언하면서 더 부각되었다.
당시 기독교 세계는 5대 교구, 즉 로마?콘스탄티노플?예루살렘?안티오키아?알렉산드리아로 나뉘어 있었는데, 서로마의 중심도시에 있는 로마 교회와 동로마의 중심 도시에 있는 콘스탄티노플은 정치적인 문제나 교리적인 문제로 대립하게 되었다. 결국 1054년에 로마 교황과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는 서로를 파문함으로써 사실상 분열을 공식화했다. 이때 로마를 중심으로 서유럽 세계를 통괄한 서방 교회는 로마 가톨릭으로,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동유럽으로 교세를 확장한 동방교회는 그리스 정교회로 불리게 되었다.

리뷰/한줄평12

리뷰

8.0 리뷰 총점

한줄평

8.3 한줄평 총점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
선택한 소장 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