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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프랑스 왕정의 신성함 : 클로비스의 축성식 절대왕권을 위한 이론적 여정의 출발 지상의 그리스도에서 살아 있는 신으로 왕조국가의 폭발적인 긴장 국가이성의 탄생 절대왕정의 거울, 베르사유 절대왕정은 수지맞는 장사였나? ‘절대’의 공허함 |
林承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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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사회에서 근대국가로
스스로를 젊은 아폴로라고 불렀고 자신이 거처하는 궁의 구석구석을 이름 깨나 알려진 그리스 신들로 도배하듯이 장식하면서 루이 14세(1643~1714)는 그렇게 신들과 어울려 살았다. “짐이 곧 국가”임을 보여줬던 프랑스 국왕의 이 같은 “절대주의”적 지배체제는 그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만큼이나 매력과 혐오감을 동시에 불러 일으켜왔다. 대략 16세기로부터 18세기까지를 중심무대로 하는 절대왕정은 시기적으로 유럽사회가 봉건사회를 탈피하여 근대적 발전 단계로 접어든 시점에 위치한다. 저자는 중앙집권의 강화를 통해 근대국가 체제를 형성했던 절대군주들과 정치인들의 노력이 역사의 변화에 어떠한 교훈과 영향을 주었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왕은 세습과 축성에 의해 최고의 사법권을 누리게 되었으며, 1438년 이후부터는 왕국 내부의 질서 유지 및 외부의 군사적 도전에 대한 왕국 수호를 위해 세금을 거두고 군대를 소집할 권리를 인정받았다. 15~16세기에 걸쳐 나타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거대한 변화인 국가의 등장은 전체 백성으로 하여금 공동의 이해관계가 존재하며 왕이야말로 그 진정한 수호자임을 인정하게 했다. 또한 앙리 4세에 의해서 그 종지부가 찍어진 프랑스 종교전쟁은 인간사회의 불안과 무질서, 공공 이익을 위협하는 질병들에 대한 치료제로서 절대적 왕권을 정치 교훈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성경 대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품고 다닌다”는 비판을 받았던 리슐리외는 국가이성을 왕국의 통치이념으로 확립하면서,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관료층을 기반으로 프랑스 전역에 걸쳐 합리적인 행정기구를 건설했다. 신을 만들어내는 연금술 절대주의는 국왕의 절대적 지배를 완성하기 위해 자신의 인간적 조건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의 경주였다. 그리고 신을 만들어내기 위한 연금술은 입법자로서 영원한 정의의 아버지, 전쟁과 복수의 전사, 그리고 치유의 기적을 행하는 주술사 등과 같은 정말 다양한 재료들을 사용했다. 저자는 절대권력을 창출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의 경주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져왔는지, 그리고 그러한 야망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갔을 때 어떠한 교훈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지를 역사로부터 묻고 그 답을 제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