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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소네트 작가 소개 작가 연보 작품 속 역사 문화 산책 작품 해설 판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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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시간의 강을 건너온 사랑과 고뇌의 목소리, 셰익스피어 소네트 셰익스피어. 이 이름만 들어도 어떤 이는 경외감을, 어떤 이는 왠지 모를 부담감을 느낄 것이다. 영문학의 정점이니, 인류 최고의 극작가니 하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지만, 막상 그의 작품을 직접 펼쳐 들기란 쉽지 않다. 40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 고풍스러운 언어의 장벽 때문이리라. 하지만 우리가 셰익스피어를 만나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의 소네트를 권하고 싶다. 그의 희곡들이 거대한 인간 드라마의 무대라면, 소네트는 셰익스피어 개인의 가장 내밀한 목소리, 그의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리는 듯한 은밀한 고백록과 같기 때문이다. 이번에 번역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전집은 그런 의미에서 반가운 책이다. 총 154편에 달하는 소네트는 단순한 연애시 모음집이 아니다. 그 안에는 사랑의 열정과 환희, 배신과 질투,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와 그 소멸에 대한 탄식, 시간의 무상함과 예술의 영원성, 그리고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고독과 성찰까지, 실로 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다채로운 감정의 스펙트럼이 섬세하고도 강렬한 언어로 새겨져 있다. 이 소네트들은 대개 '젊은 귀족(Fair Youth)', '검은 여인(Dark Lady)', 그리고 '경쟁 시인(Rival Poet)'을 둘러싼 복잡 미묘한 관계 속에서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초반부(1편~17편)는 젊은 귀족에게 결혼하여 아름다움을 후세에 남기라고 권유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예를 들어 소네트 1편은 이렇게 시작한다. 가장 아름다운 존재들에게서 우리는 생명의 연속을 바라네. 그래야 아름다움의 장미가 영원히 시들지 않으리니, 익은 꽃이 시간 따라 져버려도 부드러운 새싹이 그 기억을 이어가리라. (소네트 1편 中) 이 얼마나 직설적이면서도 시적인가! 아름다운 존재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는 것은 일종의 '죄악'이며 '낭비'라고까지 말한다. 소네트 2편에서는 세월이 흘러 젊음의 아름다움이 시들었을 때, 자식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이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찬사를 받겠냐고 설득한다. "늙었을 때 다시 젊어지는 것과 같고 / 차가워진 피가 따뜻함을 느끼는 것과 같으리."라는 구절은 세월의 덧없음과 그에 맞서는 인간의 지혜를 동시에 보여준다. 셰익스피어 번역은 늘 논쟁거리다. 그의 언어유희, 중의적 표현, 당대의 문화적 배경을 현대 한국어로 온전히 옮기는 것은 지난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 번역본은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원문의 시적 리듬과 의미를 살리면서도 현대 한국어 독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셰익스피어 특유의 은유와 상징을 과감하면서도 섬세하게 풀어내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가령, 우리가 익히 아는 소네트 18편을 보자. 너를 여름날에 비유해볼까? 너는 더 사랑스럽고 더 온화하구나. 거친 바람은 5월의 사랑스러운 봉오리를 흔들고 여름의 계약은 너무나 짧은 기한을 가지네. (...) 하지만 네 영원한 여름은 시들지 않으리라 네가 소유한 그 아름다움을 잃지도 않으리라 죽음도 그의 그늘에서 네가 방황한다고 자랑하지 못하리라 네가 시간에 대한 영원한 선 안에서 자랄 때. 사람들이 숨 쉴 수 있고 눈이 볼 수 있는 한 이것은 살아있고, 이것이 너에게 생명을 주리라. (소네트 18편 中) '여름날'에 비유되지만 그보다 더 사랑스럽고 온화한 존재. 그 아름다움을 시간도 죽음도 어쩌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이것은 살아있고, 이것이 너에게 생명을 주리라"는 마지막 구절에서 시 자체의 불멸성으로 승화된다. 번역은 이 과정을 담백하면서도 힘 있게 전달한다. 소네트 중에는 사랑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작품들도 많다. 그중 백미는 단연 소네트 116편일 것이다. 참된 영혼들의 결합에 내가 장애를 인정하지 않으리. 사랑은 변화를 맞닥뜨려도 변하지 않고, 떠나가는 이를 따라 떠나가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네. 오, 그렇소! 사랑은 영원히 고정된 등대, 폭풍우를 바라봐도 결코 흔들리지 않으며, 모든 방황하는 배에게 북극성이 되어 그 높이는 측정되나 그 가치는 알 수 없소. (소네트 116편 中)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변치 않는 사랑의 가치를 '영원히 고정된 등대', '북극성'에 비유하며 노래한다. 마지막 두 구절 "만약 이것이 오류이고 내게 증명된다면, / 내가 글을 쓴 적도, 어떤 이도 사랑한 적도 없으리."라는 단언은 사랑에 대한 시인의 절대적인 믿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모든 소네트가 아름다운 사랑만을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검은 여인'에게 향하는 시선은 때로는 격정적이고, 때로는 자기혐오에 가까운 복잡한 감정을 드러낸다. 소네트 129편은 욕망의 허무함과 그 파괴적인 본질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치욕의 낭비 속에 정신을 소모하는 것, 그것이 행동하는 욕망이오. 그리고 행동하기 전까지, 욕망은 위증하고, 살인적이며, 피에 젖고, 비난으로 가득하고, 야만적이고, 극단적이며, 거칠고, 잔인하고, 신뢰할 수 없소. (...) 이 모든 것을 세상은 잘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사람들을 이 지옥으로 이끄는 천국을 피하는 법을 알지 못하오. (소네트 129편 中) 욕망을 "사람들을 이 지옥으로 이끄는 천국"이라 표현한 마지막 구절은 인간 내면의 모순을 꿰뚫는 셰익스피어의 통찰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 번역본을 읽으며 독자들은 셰익스피어가 구사하는 다채로운 표현과 감정의 파노라마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때로는 부드럽고 감미로운 사랑의 속삭임으로, 때로는 절망과 분노의 외침으로, 때로는 냉철한 자기 성찰의 독백으로 다가온다. 이 책에 실린 "작가 소개"와 "작가 연보"는 셰익스피어의 생애와 그가 활동했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어, 소네트의 의미를 더욱 깊이 있게 파악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비록 짧은 "작품 해설"이 전부지만, 독자 스스로가 154편의 시를 읽으며 자신만의 해설을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더 클 것이다. 이 소네트들은 400년 전 한 천재 시인의 고뇌와 환희를 담고 있지만, 놀랍게도 오늘 우리의 감정과 다르지 않다. 사랑에 아파하고, 시간에 절망하며, 아름다움에 경탄하고, 불멸을 꿈꾸는 인간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읽는다는 것은, 한 위대한 예술가의 영혼과 대면하는 일이며, 동시에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성찰의 시간이 될 것이다. 특히 이 번역본은 셰익스피어의 언어가 지닌 시적 아름다움과 극적 긴장감을 현대 한국어의 자연스러움 속에서 최대한 살리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난해한 구절이나 문화적으로 생소한 개념에 대한 별도의 각주나 해설이 풍부하지 않다는 점은 다소 아쉬울 수 있으나, 오히려 독자가 원문 자체에 집중하며 스스로 그 의미를 곱씹어볼 여지를 남겨둔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왜 고전을 읽는가? 그것은 과거의 지혜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조망하기 위함이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그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 그리고 그것을 담아내는 언어의 아름다움은 디지털 시대의 짧고 휘발적인 메시지에 익숙한 우리에게 느림과 깊이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이 잘 다듬어진 번역본을 통해 셰익스피어가 선사하는 불멸의 언어와 감동을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분명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될 것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르네상스 영국 어느 골방에서 깃펜을 들었을 시인의 숨결이, 그리고 그가 마주했을 사랑과 번민의 순간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될 테니 말이다. 이것은 단순한 시집이 아니라, 시간의 벽을 넘어 우리에게 말을 거는 한 위대한 영혼의 초상화다. |